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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논변 4

블라우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12.14 19: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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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영보는 결심을 굳혔다.

 “해보겠소이다. 내가 사또의 병을 고쳐보겠소.”


 현령은 의외의 반응이라는 듯, 약간 눈을 크게 뜨며 영보에게 말했다.

 “거 배짱 한 번 큰 친구군 그래. 그러면 어디 한번 해보게나. 대신, 나중에 봐달라거나 도중에 물러달라고 하기 없기야.”

 “잘 알겠소.”

 영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이리로 오게.”

 현령은 영보를 군수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영보는 조심스레 현령을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들이 묵는 거처에 도착했다.

 영보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현령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군수는 어디 있소?”

 “이 방일세.”

 현령은 영보에게 대답하며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여는 순간, 방안의 광경이 영보에 눈에 들어왔다.


 방안은 예상외로 굉장히 말끔했다.

 관노들이 깨끗이 청소를 하였는지 어디하나 먼지 가라앉은 데가 없어보였다.

 관리들이 쓰는 서랍과 나무로 된 탁자, 그리고 이부자리까지 이상해 보이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약간 어둡고 음침해 보이는 것만 빼면 말이다.

 창 사이로 빛이 하나도 안 드는지 방구석 쪽은 굉장히 어두웠다.

 그 구석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군수 나리, 의원이 왔습니다.”

 현령이 방구석에다 대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구석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왔는가.”


 딱 한 번 들었을 뿐인데 온몸이 굳으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게, 그 군수의 목소리?’

 어찌나 음침하던지 마치 범이 낮게 우는 소리와도 같았다.


 “자네가 의원인가?”

 구석의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말했다.


 “그렇소, 내가 의원이오.”

 영보가 대답했다.


 그러자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군수가 일어나 천천히 영보 쪽으로 걸어왔다.

 군수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허름해 보이는 옷매무새와 산발이 된 머리, 얼굴을 뒤덮고 있는 흉터.

 이 정도는 봐줄만했다.

 문제는 시뻘겋게 핏발이 서있는 눈과 온통 검댕이가 되어버린 눈두덩이.

 딱 봐도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


 “당신, 어떻게 된 거요?”

 “내 꼴이 말이 아니지.”

 군수가 별일 아닌 듯이 대답했다.


 영보가 놀랄 만도 했다.

 누가 보면 시체가 일어나 걷는 것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안타깝지만 아무도 내 병을 고치지 못하였네. 자네도 별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군수가 한탄하였다.


 “그나저나, 자네는 왜 나를 고치러 왔는가? 보아하니 이 동네 사람은 아닌 듯한데 혹여라도 뭔가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네.”

 “뭔가를 바라고 온 게 아니오.”

 영보가 조용히 대답하였다.


 그리고 현령을 향해 말하였다.

 “잠시 밖으로 나가주시오.”


 현령은 그 말을 듣고 의아해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혹여 내가 보기라도 하면 안 되는 것이라도 있나?”

 이에 영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금부터 이 자의 진맥을 잴 터인데 그러려면 주변이 조용해야 하오. 그리고 행여 이 안이 소란스러워도 안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시오.”


 이에 현령은 크게 놀라 말했다.

 “대체 군수 나리께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나?”

 “시술을 할 예정이오. 그러면 발작이 더 심해지겠지. 하지만 혹시라도 누가 안에 있으면 환자가 누군가를 해할까 염려되오. 그러니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주시오.”

 영보는 진지하게 답변하였다.


 “알겠네.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지. 그럼 이만 나가보겠네.”

 현령은 대답을 마치고 방을 나갔다.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군수가 영보에게 질문하였다.

 “대체 어떤 시술이기에 내 발작이 더 심해진단 말인가?”

 “한 가지 약조를 해주시오.”

 “무슨 약조 말인가?”


 영보는 문을 열어 밖에 누군가 있나 살펴본 후,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말하였다.


 “지금부터 내가 벌일 일에 대해 당신은 그저 의원이 시술을 한 것으로만 여기시오. 아무도 여기서 벌어질 일을 알아선 안 되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걱정 마시오. 지금부터 내 정체를 밝힐 터이니.”

 영보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엄청난 기세를 발휘했다.


 “태극(太極)!”


 이 말과 함께 그의 등 뒤로 기운이 모아지더니 하나의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음의 고요한 기운과 양의 활기찬 기운이 서로 합쳐져 조화와 질서를 이루더니 이윽고 하나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자네, 설마...!”

 “그렇소.”


 군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군자(君子)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그저 감탄만 할 따름이었다.


 “내 군자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으나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아직 그대는 죽기엔 이르오.”

 빙그레 웃으며 영보가 대답하였다.


 “내 실제로 태극을 보니 그 형상이 참으로 아름답구먼. 어찌하여 그 나이에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그대도 힘써 공부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오.”

 “허나, 내 행색이 이러하니 군자는커녕 선비라도 될 수 있을지 염려되오.”

 “그대는 이미 훌륭한 선비요. 다만 탁한 기질이 그대를 감싸고 있어 그 본질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뿐이지.”

 “내가 어찌하여 이리 되었는지 알 수 있겠소?”

 군수는 간절히 부탁하였다.


 “걱정 마시오. 내 있는 힘껏 그대를 도우 리다.”

 “정말 고맙소.”

 영보가 군수를 향해 말하였다.


 “그럼, 이제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한 번 보겠소. 많이 괴로울 터니 참기 바라오.”

 “알겠소이다. 내 안 그래도 괴로운 데 나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참을 수 있소.”

 “그럼 가겠소.”

 영보는 그의 기세를 군수의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


 “크... 크으윽!”

 군수는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좀만 참으시오.”

 영보가 집중하며 말했다.


 그는 기세를 계속 끌어 모으며 군수의 몸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한 번 기세를 끌어넣더니 마치 구멍 뚫린 보가 터지듯이 한꺼번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마침내, 영보는 그의 기세를 군수의 몸 안에 집어넣는 것을 성공하였다.


 ‘드디어 해냈군.’

 영보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군수의 몸 안은 가관이었다.

 각종 탁한 기질이 오장 육부를 뒤틀고 있었고 그의 뇌에는 온갖 잡기질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었다.

 ‘이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때였다,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다니, 참으로 건방지구나!”

 사방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요!”

 영보가 고함쳤다.


 “이 군수의 몸은 내가 점령한 나의 것이다. 감히 남의 것을 함부로 탐하다니, 어리석구나!”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몸을 물건처럼 다루다니, 참으로 흉악하구려. 당장 모습을 드러내시오!”

 “하하하! 내가 남의 말을 그리 쉽게 들을 것 같으냐?”

 목소리가 비웃으며 대답했다.


 영보는 이에 진심으로 화내며 정체불명의 목소리에게 꾸짖었다.

 “감히, 선비에게 예의도 없이 오만방자하게 떠드니 참으로 무례하구나! 내 네놈을 당장 호되게 혼꾸녕을 내줄 것이야!”

 “하, 해볼 테면 해보라지! 어디 내가 두려워할 거 같으냐? 그러면 이 군수의 몸은 더욱더 망가지게 될 것이야.”

 “내 그리 두진 않겠다!”


 영보는 더욱 기세를 발휘하여 그 정체불명의 목소리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네놈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보자꾸나!’


 영보는 그의 기세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군수의 몸을 이곳저곳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근원을 찾아낸 영보는 눈을 번쩍 뜨며 생각했다.


 ‘심장! 심장이구나!’


 “하하, 그의 심장을 파괴할 셈인가? 그런데 어쩌나, 그가 죽으면 너는 분명 군수를 살해한 죄로 죽게 될 것이야.”

 목소리는 영보에게 비아냥대며 말했다.


 “상관없다! 네놈이 살아서 활개치고 다니는 것보다야 낫겠지.”

 “뭐, 뭐라고!?”

 목소리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좋아, 간다!”

 영보는 기세로 커다란 주먹의 형상을 만들어 심장을 마구 내리치기 시작했다.


 “크억, 크어억!”


 한편 현실에서는 군수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방 밖에 모인 관졸들 중 하나가 얘기했다.


 “잠깐 기다리게, 의원이 시술이 고통스러울 거라 했어.”

 “하지만 저건 완전 사람 죽이는 소리가 아닙니까요!”

 “좀만 기다려 보게, 내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질 것이야.”

 현령이 다급하게 대답하였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현령이 초조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 군수의 몸속,


 “네가 미쳤구나! 군수를 죽이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내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뭐 안 좋은 거라도 있는 건가?”

 “이, 이런 미친놈!”

 목소리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네놈! 좋다, 내 심장 밖에 나와서 싸워주마!”

 목소리가 심장 밖으로 나오며 말하였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시는 군.”

 “흥, 참으로 저돌적인 놈이구나. 내 그 용기가 언제까지 가나 보자”

 마침내 목소리가 정체를 드러내며 말하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형태가 매우 검어서 마치 어둠을 힘껏 뭉친 것과도 같았다.

 그 기괴하게 뭉친 어둠이 뒤틀린 목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대체 심장을 치면 내가 죽을 거라는 것을 어찌 알았지?”

 “그게 궁금한가?”

 영보가 대답했다.


 “그렇다! 네놈은 어찌 무당만이 쓸 수 있는 심장의 연결을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몰랐다.”

 “뭐라고!?”

 “몰랐다. 그냥 심장을 쳐서 네놈을 없앤 뒤에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다.”

 “이, 이런 미친!”

 기괴한 어둠은 놀라 욕을 내뱉었다.


 “참으로 당돌한 녀석이구나. 군자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불만이라도 있나?”

 “대체 사람을 죽일 생각까지 하는 녀석이 어떻게 군자가 될 수 있단 말이냐.”

 “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옳지 못한 행동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심지어 내 목숨도 버릴 것이다.”

 “참 대단한 녀석이로구나.”

 어둠은 질렸다는 듯이 말하였다.

 대체 저런 녀석은 뭐란 말인가?

 군자에 걸맞지도 않은 군자, 그러나 분명히 군자는 맞아보였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죽을 운명이니 말이야.’

 어둠은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언제 덤빌 테냐?”

 영보가 기다릴 수 없어 근질거리다는 듯이 말하였다.


 “흐흐, 군자답지 않게 싸움을 좋아하나 보군. 좋아, 내 당장 싸워주지!”

 이 말과 함께, 어둠은 사방으로 어둠의 기질을 퍼뜨려 그 위세를 내보였다.


 “나와 싸우게 된 걸 후회하게 해주마!”

 “좋아, 덤벼라!”

 영보도 그의 기세를 퍼뜨리며 호기롭게 대답하였다.


 “어둠이여 퍼져라!”

 군수의 몸 구석구석, 어둠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영보 또한 그의 기세를 퍼뜨렸다.


 “심통성정(心統性情)!,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과하니, 성은 곧 주체요, 그 작용은 정이로다. 그 둘은 하나이며 둘이니 성은 곧 중(中)이요, 천하의 큰 근본이로다!”

 영보가 그의 기세를 퍼뜨리며 외쳤다.


 “성이 모두 고르게 발현되어 기율이 들어맞는 상태가 화(和)이니, 곧 천하에 두루 미치는 도(道)이로다!”


 그렇게, 그들의 치열한 싸움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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