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기억나지 않는 꿈. 무슨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난밤 마신 술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더 문제다.

아무래도 라면이다. 내 몸은 지금 염분과 수분과 당분, 그리고 비타민 B군을 원한다.

고맙게도 라면은 이 네 가지를 충족한다.

냄비에 말린 표고버섯을 잘라 넣는다. 육수용 철망 안에 자른 다시마를 욱여넣는다.

전자레인지에 캐나다산 냉동 우삼겹과 냉동 파 몇 쪼가리를 접시에 담아 넣고 2분간 돌린다.

동절기다. 물이 끓기 전에 전자레인지가 멈춘다. 소기름에 번들거리는 갈색 소고기와 흐물텅거리는 파 몇 조각이 나를 반긴다.

사실 냉동실에서 나와야 될 친구는 또 있지만 그것은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두자.

물이 끓는다.

건표고가 끓는 물 속에서 통통하게 오른 살점을 자랑한다.

집에 있는 라면들 중 구미가 당기는 라면을 뜯고, 다시마가 든 철망을 건져낸다.

건더기스프를 넣는다.

분말스프를 넣는다.

부엌의 찬장을 연다.

20여년 간 많이 외면당해 기분이 안좋아진 미원이나 다시다를 1/2 티스푼 분량 추가한다.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깨질듯한 숙취의 해소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친구도 잊지 말자.

싱크대 모서리로 껍질을 깬 달걀을 넣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절대로 달걀을 젓가락으로 젓지 않는 것이다.

이제서야 면이 들어간다.

반으로 쪼갠 둥근면... 아니 네모난 면이라도 상관없다.

바닥에 깔린 계란이 퍼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금씩 저어 준다.

그리고 고명으로 아까 전자레인지에 돌렸던 소고기와 파를 면 위에 얹는다.

우지가 들어갔던 시절의 라면이 기억나는 세대는 아니지만 접시에 남은 소기름을 살짝 띄우는 것도 잊지 말기.

면이 8할쯤 익었을 때면,

마지막으로 냉장고 한켠에 굴러다니던 청양고추를 썰어넣고

고춧가루나 후춧가루를 톡톡 뿌린다.

면이 9할쯤 익었을 때 건져낸다.

냄비받침 하나를 꺼내 키보드 왼쪽에 놓고, 검은 사기그릇을 키보드 밑에 둔다.

재생의 시작이다.

먹을 만큼의 면과 국물을 덜어내 굳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다.

스며든다.

독소를 씻어준다는 오만가지 건강식품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면 한 그릇이 이리도 감사하다.

불어터진 면발 몇 가닥을 남긴 채

냉동실에 얼려둔 밥이나 햇반을 꺼내어 유사 국밥으로 2차를 시작한다.

이 또한 즐거움.

야갤, 싱벙갤, 그리고 면갤. 기타 등등.

이 공간에 함께 접속한 누군가는 나와 같이 라면을 먹고 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도 누군가는 라면을 먹고 있을 것이다.

그 라면이 한강이든, 컵라면이든, 눈물과 콧물이 섞인 상태든 간에 응원의 메시지를.

어느덧 텅 비어버린 냄비를 설거지하며

부푼 뱃가죽과 달리 가슴에는 조금의 허전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