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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발키리13

묵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4.24 21: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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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EM1iU



'틈이 없어.'


 경기가 시작되고 1분여간 안나와 오큰은 서로 쳐다보기만 할 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움직이지 못하는 쪽은 안나였다. 오큰은 사람좋은 미소를 띄며 어서 들어오라는 듯 목검을 내리뜨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안나가 느끼는 압박감은 처음 겪는 수준의 것이었다. 빈틈은 있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도 보인다. 하지만 그곳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덫이라도 쳐놓은 것처럼.  단순한 대치에도 불과하고 격렬한 운동을 한 것처럼 가면 아래의 안나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대로 가면 10분은 커녕 단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지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 불길한 예감이 안나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수 만은 없는 법. 안나는 자세를 낮추며 검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을 박차고 허리를 한껏 숙여 지면을 스치듯이 쇄도하는 안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큰은 아까의 경기처럼 검을 양손으로 치켜들어 안나를 향해 내려쳤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일반적인 목검보다 거대한 검날이 안나의 머리를 향했지만 안나는 쇄도를 멈추고 몸을 틀어 검날을 피하고 그 기세를 이용해 몸을 한바퀴 돌려 오큰의 무릎 뒤쪽을 향해 강력한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큰의 검날이 바닥을 치는 소리도, 안나의 발차기가 오큰의 무릎을 가격하는 소리도.


 목표가 되었던 왼쪽 발을 가볍게 들어 안나의 발차기를 피한 오큰은 왼발을 강하게 내딛으며 허리를 뒤틀어  경기장 바닥에서 아주 조금 떨어져 있던 검을 안나의 가슴께를 향해 휘둘렀다. 재빨리 뒤로 몸을 날리며 검을 들어 막았지만 안나의 가벼운 몸은 총격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다행히 오큰의 공격을 거스르지 않고 먼저 힘의 진행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기에 검이 부러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손목이 시큰거렸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오큰에 손에 들린 목검은 이미 목검이라고 불릴 만한 수준의 물건이 아니었다. 무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철퇴나 다름 없었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착지한 안나가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달려든 오큰은 연달아 검을 들어 내리쳤다. 간발의 차로 몸을 틀어 오큰의 공격을 피하던 안나는 간신히 기회를 잡고 비스듬히 검을 들어 오큰의 공격을 받아 흘렸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오큰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고 그 순간 훤히 드러난 오큰의 옆구리를 향해 안나는 있는 힘껏 무릎을 날렸다. 그러나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를 기대했던 안나의 예상과 달리 두툼한 지방과 근육으로 뒤덮힌 오큰의 옆구리를 가격한 안나의 무릎은 오큰의 늑골에까지 닿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불시의 공격을 당한 오큰은 처음으로 뒤로 물러서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다지 강한 타격을 받은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유검(柳劍)을 배웠군?"


"그래요. 당신의 무식하기만 한 힘은 통하지 않는다고요!"


숨을 몰아쉬며 대답하는 안나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오큰은 검을 움켜잡고 천천히 안나를 향해 걸어오면 입을 열었다.


"유검은 참 좋은 기교지, 자신보다 강한 상대의 힘을 받아내거나 흘려서 공격의 기회를 삼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너의 어설픈 유검으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유검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강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


 말을 끝냄과 동시에 달려든 오큰은 아까와 똑같이 검을 안나를 향해 내려쳤다. 그런 오큰의 공격에 똑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내려던 안나는 자신의 선택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을 잡은 손이 굽혀지고 무릎이 바닥에 쳐박혔다. 무릎에 가해진 강력한 충격과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흐르는 격통에 안나가 멈칫 한 사이 거대한 오큰의 발이 안나의 복부를 강타했다. 마치 대포가 발사되는것처럼 튕겨져 나간 안나는 낙법도 하지 못하고 경기장 바닥에 널부러졌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하고 막히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들면서 몸에 힘이 풀렸다. 한 동안 바닥에 누워있던 안나는 제멋대로 부들부들거리는 팔 다리를 겨우 움직여 일어난 뒤 간신히 침을 삼키며 검을 들었다. 가격당하는 순간 혀를 깨물어서 그런지 입안에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가면 아래로 피와 침이 뒤섞인 액체가 경기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었나?"


 오큰의 행동을 보면서 바넬로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순하지만 너무나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경기시간은 단 10분. 그전까지 오큰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몸놀림이 많고 체력이 딸리는 안나는 결국 오큰의 검 앞에 쓰러지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지만 그건 둘의 수준이 맞을 때의 이야기. 오큰은 자신에게 가장 맞는 방법으로 안나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바넬로피의 눈 앞에 간신히 일어나 오큰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안나의 모습이 들어왔다. 과연 안나가 오큰의 강함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중에 성장 할 수 있을까?


"오? 일어나는구만?"


 천천히 다가오며 올라가는 오큰의 검날이 안나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까와는 다른 감정이 안나의 몸을 스멀스멀 휘감아왔다. 피하지 못하면 아까의 고통을 다시 맛보게 된다는 두려움이 안나의 발을 묶고 움직임을 뻣뻣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쳐 오는 검을 가까스로 피한 안나는 뒤로 훌쩍 뛰어 오큰에게서 멀어졌다. 도망치면 안된다고 외치는 머리와 달리 몸은 정직했다. 안나의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도망치면 안돼, 언니를 지켜야 돼, 언니를..' 수 없이 되뇌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끔찍한 고통은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검술대회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다는 마음이 머릿속에서 차올랐다. 


"겁먹었군, 움직임이 뻣뻣해졌어."


 어느새 다가온 오큰의 검이 이번엔 횡으로 휘둘러졌다.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했지만 완벽히 피하진 못했는지 동그랗게 묶여있던 머리가 풀리며 밝은 갈색 머리가 흐드러졌다. 재빨리 물러나 산발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오큰에게 검을 겨눴지만 검끝이 떨리고 있었다. 무서웠다. 이번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끔찍한 고통이 덮칠지도 모른다. 포기하고 싶다. 검술 얼마 배우지도 못한 초보가 준결승까지 간 것만으로도 대단한게 아닐까? 이정도로도 언니는 기뻐할거야!


 하지만  안나는 검을 놓을 수 없었다. 언니를 위해서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무언가가 안나가 검을 단단히 움켜쥐게 만들었다. 이대로 포기해버린다면 영영 자신은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안나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그 마음이 자신을 잠식해가던 공포를 조금씩 밀어냈다. 흔들리던 안나의 눈동자가 조금씩 평정을 되찾았다. 때마침 안나의 눈동자에 저 멀리 관람석에 위치한 엘사의 모습이 맺혔다. 가면 사이로 보는 거라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지만 고개를 쭉 내밀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언니의 사파이어 색 푸른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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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먹기는 누가 겁을 먹어!"


내리치는 오큰의 검을 받으며 안나는 외쳤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만 아까보다는 작은 소리였다. 손목에 가해지는 충격도 등줄기를 타오르는 고통도 그대로였지만 안나는 무릎꿇지 않았다. 발을 들어 발꿈치로 오큰의 무릎을 가격한 안나는 비틀거리는 오큰에게서 벗어나며 목검으로 오큰의 손목을 가격했다. 안나의 반격에 정통으로 손목을 맞은 오큰은 손목을 털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발칙한 고양이는 포기하지않고 다시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빨리 끝내야.."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이번엔 안나가 먼저 오큰에게 달려들었다. 채찍처럼 휘어져오는 날카로운 검격이 오큰의 목줄기를 노렸다. 고개를 틀어 검격을 피했지만 살짝 스쳤는지 오큰의 목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뻣뻣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매섭게 몰아치는 안나의 공격에 맞서 오큰은 검을 휘둘렀다. 공방은 한 동안 이어졌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 대신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관중들도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승부에 응원하는 것도 잊고 집중해 두 검객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한동안 공방을 주고받던 오큰은 다시 한번 검을 들어올렸다. 세차게 내려치는 검날을 안나는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나무와 나무와 부딪히는 소리가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일부러 힘을 조절해 균형을 잃는 것을 방지한 오큰이 다시 한번 안나의 복부를 향해 발길질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안나도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누르고 있는 오큰의 검을 쳐내고 제자리에서 뛴 안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오큰의 종아리에 두 다리를 가져다댔다. 오큰의 발차기를 두 다리로 받아낸 안나가 마치 새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안나가 착지함과 동시에 남은 경기 시간이 1분 남았다는 알림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마음이 급해진 오큰은 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함성을 지르며 안나에게 쇄도했다. 쿵쾅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오큰을 향해 검을 들어올리면서 안나는 침을 삼켰다. 이제 남은 힘은 거의 없었다. 오큰의 공격을 쉼없이 받아낸 안나의 근육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해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특훈의 마지막처럼. 안나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낑낑거리며 자신의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을 들고온 바넬로피가 안나에게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며 검을 휘둘렀을때 아예 검에 눌려 바닥에 엎어졌던 날이 생각났다. 그 후로 계속해서 연습했지만 성공한 날은 단 하루였다. 계속된 연습에 결국 몸살에 걸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던 날. 보통같으면 사정이 사정이니만큼 훈련을 쉬었던 바넬로피가 이 훈련만은 해야 한다며 억지로 끌고 나왔던 날. 안나는 처음으로 완벽하게 검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상대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부드럽게..

조그많게 중얼거리며 안나는 눈앞에 쇄도하는 오큰의 검을 받았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는 전혀 울려퍼지지 않았다. 균형을 잃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오큰의 모습이 천천히 다가왔다. 안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허리를 뒤틀어 오큰의 관자놀이를 향해 무릎을 날렸다. 


---


전투신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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