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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대회광탈작] 안냥이의 보은

아렌델열목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8.14 02: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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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하는 소리와 함께 아렌델의 말괄량이 공주의 하루가 시작됬다.

시계가 어느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그녀의 아침은 보통 사람에 비해 상당히 늦게 시작된 셈이다.

잽싸게 세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성의 뜰로 뛰어나갔다. 여름에는 푸른 잔디로 덮이고 겨울에는 흰 눈으로 덮이는 그 곳은 안나가 하루 중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엘사에게는 이제 여왕이라는 새로운 직책이 주어졌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언니의 역할은 자주 해 줄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나는 이 곳에서 주로 샌드위치를 먹거나, 누워서 초콜릿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실 강아지로 따지자면 비글 같은, 조금 지나치게 활발한 성격의 안나에게는 이런 똑같은 일상이 너무나 지루했다.


뜰에서 혼자 초콜릿을 먹던 안나는 초콜릿을 조금 더 챙겨 나오기 위해 자신의 방에 돌아갔다가 문득 창문으로 크리스토프가 얼음을 가득 실은 썰매를 타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안나는 드디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기뻐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크리스토프는 썰매를 타고 달려 오면서 썰매 위에 자신의 키만큼이나 높게 쌓인 얼음들이 잘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그 바람에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마차 앞으로 지나가던 고양이 한마리를 보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안나는 그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고양이 쪽으로 달려갔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었다가 분명히 죽을거야'라는 생각이 안나의 머리속에 번개같이 스쳐지나갔고 안나는 순간적으로 달려가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썰매는 바로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가 서 있던 곳 위로 빠르게 지나갔다. 안나는 다음 순간 닥쳐올 고통을 생각하며 눈을 감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하지만 도로 옆 장식을 목적으로 만들어둔 덤불 위로 떨어진 덕분에 나뭇가지에 조금 긁힌 것 외에는 그다지 큰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보답은 꼭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없는 와중에 낮고 점잖아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아까 그 고양이가 두 발로 서서 안나를 보고 있었다.

 

"응? 나...보고 하는 말이야? 그..그래 알았어" 안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어느새 그 고양이는 안나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안나, 괜찮아요?" 그제서야 크리스토프가 뛰어왔다.
"네, 괜찮아요." 안나는 애써 팔에 난 상처를 가리며 괜찮은 척 했지만 상처에 손이 닿자 밀려오는 고통에 신음을 토할 수 밖에 없었다.
"팔에 상처가... 잠시만요." 크리스토프는 썰매에서 붕대를 가져와 안나의 팔에 감아주었다.
"고마워요, 크리스토프." 안나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고맙긴요, 얼음 장사꾼들은 위험한 상황에 자주 빠져서 언제나 위험에 대비해야 하거든요." 크리스토프가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었다.
"아 참, 근데 아까 왜 그런 거에요?"
"썰매 바로 앞에 고양이가 있었거든요..."

"아 맞다! 말을 했어요!"

"네?"
"그 고양이... 말을 했다구요! 보답하러 온다고까지 했는데..."
"에이, 잘못 들은 거겠죠.." 크리스토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난 분명히 들었는데...' 안나는 크리스토프의 시큰둥한 반응에 약간은 실망한 듯 했다.

안나와 잠시 동안의 시간을 보낸 크리스토프까지 다시 썰매를 타고 일하러 나가버리자 안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엘사와 만날 수 있는 몇 없는 시간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엘사, 오늘은 말이야..." 라는 말부터 시작되는 안나의 수다는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끝날 줄을 몰랐다.
오늘은 낮에 고양이를 구해 주었다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 그리고 언니, 그 고양이 말을 했어."
"에이 뭐야, 전에도 그러더니..." 엘사가 웃으며 말했다.
"전에? 언제?"
"왜, 우리 어렸을때 있잖아, 네가 주인 없는 고양이한테 초콜릿 줬던 날이었지 아마?"
"아 그때! 생각날것같아. 그때 고양이가 나한테 먹을걸 좀 달라고 했었거든. 너무 불쌍해보여서 몇개 줬었지..."
그때 엘사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안나,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야."
"그렇지만... 나한텐... 들렸었어!" 안나는 누구보다도 진지했지만 싸늘한 엘사의 반응에 곧 시무룩해졌다.

"그럼... 실례할게.."

 

안나는 시무룩해져서 방으로 돌아왔다. 언니가 나한테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었잖아..
바깥은 어느새 어둠이 드리워서 상당히 깜깜했다. 안나는 침대에 누웠고 곧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안나는 창 밖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수의 고양이들이 마치 사람처럼 줄을 맞춰 두발로 서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렌델 군대가 행진하는 것 같았다.
행렬 가운데의 살찐 고양이 주위로 경호원으로 보이는 듯한 검은 고양이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앞뒤로는 많은 수의 고양이들이 랜턴과 깃발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랜턴에서 나오는 빛이 상당히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 불빛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이것 봐! 역시 아까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었어!" 안나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안나에게 밤시간의 외출은 금지되어있어서 혹시나 카이나 겔다에게 걸렸다가는 잔소리를 무진장 들을게 분명했다. 그래서 안나는 최대한 조용히 방문을 열었고 그러자 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경비병이 눈에 띄었다.
벽에 기대 서서 침을 질질 흘리며 졸고 있는 경비병 사이로 뒷쿰치를 들고 조심조심 걸어서 밖으로 나간 안나는 마침내 고양이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 계셨군요. 보답 목록입니다옹." 행렬의 제일 앞에 서 있던 고양이가 둘둘 말린 파피루스를 건네며 말했다. 말투가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때 가운데에서 부채질을 받으며 살찐 고양이가 말했다.
"흠흠, 우리 아들의 목숨을 구해준게 너였구나옹. 먼저 내 소개를 하도록 하겠다옹. 나는 고양이 왕국의 왕중의 왕 고양왕이다옹. 그러는 너는 이름이 뭐냐옹?"


"안..안나라고 해요." 안나가 대답했다.

"너를 우리 왕국에 초대할테니 내 며느리가 되는게 어떻겠는가옹?"
"그건 좀... 이미 결혼 상대가 있어서요..." 안나가 말꼬리를 흐리며 거부의사를 나타내자 고양왕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다음에 다시 모시러 오겠다옹! 보답이 마음에 들길 바란다옹!"  아까 행렬의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고양이가 말했다. 눈이 가늘고 상당히 귀엽게 생긴 고양이였다.
"내일부터 행복한 일들이 많이많이 생길것이다옹!" 그 한마디와 함께 고양이들은 성 밖으로 일제히 걸어나갔다. 처음에 들어올때 그러했듯 줄을 맞추어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듯 했지만 아직 해가 뜰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은 듯 했다. 안나는 아무도 모르게 다시 자신의 방 안으로 돌아가서는 아까 고양이한테서 받은 파피루스를 펼쳐보았다. 하지만 알수 없는 문자가 암호처럼 흩어져 있는 기호들을 안나는 해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안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안나는 파피루스를 침대 밑 깊숙히 밀어넣고는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안나! 안나!" 다음 날 엘사의 다급한 부름에 안나는 잠에서 깼다.
"응... 왜?" 안나가 비몽사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성 뒤뜰에 말이야..."

 

엘사의 말을 듣고 뜰로 나간 안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어젯까지만 해도 잡초 하나 없던 잔디밭이 고양이풀들로 가득 차 버린 것이다.
거의 안나 키의 절반만한 고양이풀들 때문에 안나는 지금 현재로서는 잔디밭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서있던 안나에게 두번째 시련이 닥쳐오는데 바로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너나 할것 없이 안나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설마!' 안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자신의 옷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개박하 향기가 났다. 고양이들이 개박하 향기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것을 안나는 책에서 봐서 알고 있었다.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안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그 후 안나는 앞뒤 가릴것 없이 소리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사실 안나는 평소에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는 그런 안나에게도 약간의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안나는 고양이들한테 쫓기며 뜰을 몇바퀴 돌다가 엉겁결에 성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고양이들도 뒤이어 들어왔다. 그 후 성 안이 난장판이 됬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안나가 아껴 먹고 있던 코로나에서 수입된 고급 초콜릿 상자 안에서 갑자기 쥐들이 쏟아져나왔다.
안나는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러자 쥐들은 아까 들어온 고양이들과 엉켜서 아렌델 성이 축조된 이후 최악의 난장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언제나 천진한 안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울고 싶었다.

 

갖은 고생 끝에 고양이들과 쥐들을 밖으로 내보낸 성 안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한쪽에서는 꽃병이 깨져서 안에 들어있던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벽에 걸린 큼지막한 액자도 여지없이 두동강 나 있었다. 온갖 접시며 컵들의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시녀들은 그것을 허둥지둥 치우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안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지친 듯 했다. 체력 하나는 자신있어하던 안나였지만 고양이들 앞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안나는 터벅터벅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안나는 혼란스러웠다. 대관식 날 엘사가 혼란스럽다고 했을 때 엘사의 기분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건 전혀 행복하지 않아! 뭐 그래도 평소보다는 재밌긴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한게 나여서 차라리 다행이야. 엘사 언니였으면 또 온 세상을 얼려버렸을걸? 나 뭐래니."

안나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혼자 중얼거렸다. 너무 지쳐서였는지 말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다.
정신없긴 했지만 뭐 나름 재미있는 하루였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물론 자신에게만. 겔다를 비롯한 시녀들이 그 난장판을 정리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안봐도 뻔했다. 그래서 안나는 오늘밤 고양이들에게 제대로 따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것도 고양이들이 찾아올때의 이야기이지만.
평소같지 않게 깊은 생각을 하던 안나는 창문 밖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어제 그 고양이들 중 주황색 털을 가지고 있던 한 마리가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행히 그 고양이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그 고양이를 본다면 이상하게 볼 것이 뻔했기에 안나는 급히 그 고양이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왔다.

안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너!!"
"보...보답은 마음에 드셨습니까옹?"
"마음에 들기는! 너때문에 오늘 성이 난장판이 됬잖아! 아니지.. 아.. 미안해. 너희는 좋은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한 건데... 내가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괜찮습니다옹. 뭐 마음에 안드셨다니 어쩔수 없지옹. 하지만 저희 고양이들은 보답을 하지 않고서는 살수가 없지옹. 오늘 밤에 다른 보답을 들고 찾아뵙겠다옹! 기대해도 좋으시다옹"
그 말과 함께 고양이는 뒤로 돌아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가!" 안나가 속삭이듯 재빨리 일러 주었다.

하지만 안나가 당부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고양이가 두 발로 걸어다녀!"

 

아렌델 해안의 아름다운 수평선 너머로 어느새 해는 지고 밤이 찾아왔다. 안나는 저녁도 먹지 않은채 방안에서 초조하게 고양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11시 12시... 시간은 점점 가고 있었지만 고양이들은커녕 쥐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창밖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때 저 멀리서 드디어 불빛이 보였다. 고양이들이 들고다니던 호롱불의 불빛이었다.

 

"드디어 왔다!! 아니 잠깐. 또 아까처럼 이상한 일들만 일어나면 어떡하지... 일단 나가봐야겠다."
안나는 한참 기뻐하다가 멈춰서서 잠시 걱정을 했다. 안그래도 요즘 그 겨울왕국 사건 때문에 아렌델의 민심이 썩 좋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이상한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진다면 언니의 지지율은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해. 안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런 깊은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안나는 문을 빼꼼 열었다. 어두컴컴한 복도에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안심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안나 공주님!!!"

 

등뒤에서 들려오는 불같은 호통소리에 안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겔다가 서 있었다. 겔다는 평소때보다 훨씬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모습에 안나는 겁에 질려 어찌할줄 모르고 있었다.

"그...그게 말이에요... 화...화장실이 급해서" 안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급히 변명을 했다.
"제가 화장실은 잠자기 전에 미리 다녀오시라고 몇번을 말씀드렸습니까! 공주님 같이 고귀한 아가씨들은 한밤중에 돌아다니지 않는 법입니다!" 안나가 예상한 바와 같이 잔소리가 쏟아져내렸다.

"죄송해요... 제가 미리 갔다왔어야 하는건데.." 안나는 이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다음에는 꼭 자기 전에 가도록 할게요." 안나는 겔다에게 여러번 잔소리를 들음으로써 겔다가 잔소리를 빨리 끝내게 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다.
겔다는 항상 먼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나면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안나가 어릴 때 부터 그랬다. 하지만 상당히 약삭빠른 안나와 달리 그런 면에서 약간 둔감한 엘사는 그것을 안나가 말해준 후에야 알아차렸다.

 

"그럼 알겠습니다. 급하시다니 어쩔 수 없지요. 화장실에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또 모든 행동을 하실 때 공주님께서는 이 나라의 공주라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겔다는 안나의 방을 떠났고 겔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겔다가 이렇게 순찰을 돌고 있다는 것은 안나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또 다시 겔다에게 들킬 경우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안나는 정말로 조심해야만 했다.

화장실이 1층에 있다는 것은 안나에게 있어서 큰 호재였다. 하지만 혹여 성 밖에 나가있는 자신을 겔다가 본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안나는 일단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게 중앙 계단을 따라 1층으로 천천히 최대한 조용히 내려왔다. 불과 수 미터 앞 정문에 고양이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화장실은 그곳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필이면.." 안나는 제자리에 서서 한참을 갈등하다가 마침내 주위를 살피고는 성밖으로 냅다 뛰었다. 한참 뛰어가다 뒤를 돌아보자 겔다가 중앙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헉!'
겔다가 안나를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안나는 공포에 질려 무조건 숨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몸을 날렸다.

 

'풀썩'

 

안나가 몸을 던진 곳은 고양이풀이 무성히 자라 있는 성의 뜰이었다. 뜰이 고양이풀로 무성히 덮혀 있지 않았으면 분명 안나는 겔다에게 들켜서 태어난 이래로 최고로 많은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으리라.
안나는 처음으로 고양이들에게 고맙다고 느꼈다.

'아참 이럴때가 아니지.' 안나는 겔다가 어디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맙소사. 그녀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안나가 풀 위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겔다는 점점 안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고 안나의 심장도 점점 쪼그라들었다.

 

겔다가 성의 뜰로 들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고양이 두 마리가 고양이풀 군락을 뚫고 겔다 앞으로 튀어나왔다.
"에구머니나!" 겔다는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평소의 항상 똑부러지던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거의 모든 시간 자신에게 엄했던 겔다에게 이런 면도 있었다니.. 안나는 그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뭐야, 고양이잖아. 그럼 아까 그 소리도 고양이였나 보군." 겔다는 뒤돌아 성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달려가던 안나를 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안녕하셨습니까옹?" 안나가 미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이었다.
"저희 작전 마음에 드셨습니까옹?" 옆을 돌아보자 그 많은 고양이들이 고양이풀 군락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안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너희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 겔다한테 죽었을지도 몰라." 안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약간 눈물을 글썽이는 것 같기도 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옹! 룬 왕자님을 구해주신 은인에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옹!" 낮에 봤던 그 주황색 고양이였다.

"잠깐만, 근데 이게 보답인건 아니지...?" 안나가 설마 하며 물었다.
"물론이다옹! 고양이들의 보답은 더 화끈하다옹! 그래서 말인데옹... 혹시나 원하는 보답 같은거 있으시냐옹?" 방금 그 고양이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안나는 턱을 괴고 한참을 생각했다. 바닷바람에 고양이풀이 조금씩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고양이들도 안나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별똥별이 지표로 빛을 발하며 떨어진 순간, 안나가 뭔가 떠오른 듯 활짝 웃으며 그 주황색 고양이에게 물었다.

"혹시... 이런 것도 가능하니? 과거로 돌아간다던가..." 안나가 말했다.
"물론이다옹! 지금 고양이들을 뭘로 보는 거냐옹!" 주황색 고양이가 자신만만하게 얘기는 했지만 사실 믿음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고양이들의 마법은 사람의 것보다 약해서 하루가 지나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옹." 주황색 고양이가 설명했다.

"괜찮아, 그 정도면 충분해. 지금 바로 보내줄 수 있어?" 안나가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건 좀 곤란..." 주황색 고양이가 당황하며 대답하던 그때 누군가 끼어들었다.
"물론, 갈 수 있소." 약간 노란색 털을 가진 기품 있어 보이는 고양이였다. 보통의 고양이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는 점과 멋진 턱시도를 입고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 왕국에서 마법은 고양왕님만이 쓸 수 있지 않냐옹? 아니 잠깐.. 넌?"
"그래, 난 고양이 왕국 고양이가 아냐. 저 멀리서 고양이 사무소를 운영하며 살고 있지. 아 그리고." 그 고양이가 안나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훔베르트 폰 지킹겐이라고 합니다. 바론이라고 불러 주세요."

 

안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딱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 그리고 난 안나야. 그런데 네가 정말 나를 과거로 돌려보내 줄수 있다는거야?"

"물론이야 안나, 돌아가고자 하는 시점이 언제지?" 바론이 말을 놓으며 말했다.

"그 때 그날. 13년 전에 내가 마법을 맞았던......" 안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 때문이었다.
"흑흑 그때 내가 조금만 조심했었더라도... 엘사 언니는.. 흑흑..." 이내 안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겔다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그리고 그런 안나를 바론은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안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있어. 하지만 아까 이 고양이가 말했듯이 24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어. 넌 이것보다 더 좋은 보답을 요구할 수도 있어. 그래도 가고 싶어?" 바론이 안나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말했다.

 

"아니, 내가 원하는 보답은 이거야 이거 하나면 되. 지금 바로 그때로 가고 싶어 바론. 어서 보내줘." 안나의 표정에 드러난 비장함을 본 바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전에 준비과정이 있어." 그 말과 함께 바론은 지팡이로 땅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무성한 고양이풀 때문에 상당히 그리기가 힘들 텐데도 바론은 전혀 그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멈추지 않고 그렸다.
"이건 마법진이라는 건데 마법을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수 있지. 하지만 내 마법진은 다른 이의 것보다 조금 더 특별한 나만의 스페셜 브랜드야." 바론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완성된 마법진을 보고 안나는 엘사가 떠올랐다. 평소 엘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지각색의 도형들을 그린 뒤, 자나 컴퍼스 등을 이용하여 길이와 넓이를 구하며 자기 방식대로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다. 특히 엘사는 한 기준점을 잡았을 때 그 양쪽이 대칭이 되는 도형을 좋아했다. 그래서 안나는 엘사에게 마법진을 보여주면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안나, 완성됬어. 이쪽으로 와." 바론이 손을 흔들었고 곧 안나도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안나, 과거로 가기 전에 주의할 점을 알려줄게. 과거로 출발하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네 눈 앞으로 쭉 펼쳐질거야 하지만 절대로 그 안의 사람이나 물건을 만져서는 안되. 하지만 13년 전 그 날에 도착하면 만져도 되니까 안심해. 내 마력은 아직 약해서 한 사람까지만 과거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난 따라갈 수 없어.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지?"

 

"물론이야!"

안나의 대답을 들은 바론은 자신의 지팡이를 마법진의 중앙에 세우고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끝나자 마법진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안나는 마치 자신의 눈 앞으로 매우 밝은 빛이 비추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부셔서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나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더니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엘사의 방 안. 그리고 곧 청소년 시절의 엘사가 안나 눈앞에 나타났다. 엘사는 혼자 방안에 앉아 있었는데 한참을 남몰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엘사는 그 상태로 졸면서 혼자 잠꼬대를 했다.

 

"안나를 다치게 해서는 안되.. 안나를 나로부터 보호해야 해.."

안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자신도 모르게 엘사를 따뜻하게 안아주려고 했지만 바론의 충고를 떠올리며 애써 참아냈다.

'엘사 언니는 나를 다시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저렇게 일부로 나를 피해왔던 거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하지만 언니는 바보야, 나는 단지 같이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언니의 마법이 두렵지 않았는데...'
그런 엘사의 모습을 보며 안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이번엔 조금 더 어린 엘사가 책상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밖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지만 엘사는 그것이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그때 누군가가 엘사의 방문에 노크를 했다.

 

'똑, 똑똑 똑, 똑'

"같이 눈사람 만들래?" 안나 자신의 어릴적 목소리였다.
"제발 좀 나와봐, 같이 놀자. 나혼자 심심해! 밖에 눈도 오는데.."

그 말을 들은 엘사는 밝아진 표정으로 웃으며 문 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 이내 표정이 어두워진 엘사는 울면서 다시 책상쪽으로 걸어가며 벽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저리가 안나..."  그때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은 단지 엘사가 자신을 싫어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엘사가 자신을 피해왔던 이유를 알게 된 안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입고 있던 옷이 눈물로 젖어가고 있는 줄도 몰랐다.

 

오랜 시간 여행 끝에 안나는 13년 전 그날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자신의 방 안이었고 캄캄한 밤이었다.
"그래. 내가 5살때는 내 방안이 이랬었지.." 침대 위에 누워서 건너편의 거울을 보던 안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몸이 작아져 있었다.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안나는 서둘러 옷장 안에 있던 자신이 어릴 적에 입던 잠옷으로 갈아입고 방문을 빼꼼 열었다. 아까처럼 겔다에게 또 다시 들켜서는 안되니까. 하지만 문 앞과 뒤를 모두 잘 살펴본 결과 겔다는 보이지 않았다.
안심한 안나는 바로 건너편에 있던 엘사의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엘사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프슷, 엘사! 엘사! 엘사! 일어나! 일어나!" 안나는 엘사를 깨우기 시작했다.

"안나, 다시 자러 가." 엘사는 귀찮은듯 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며 말했다.

"안되, 하늘님이 일어나셨어. 그래서 나도 일어났구, 그러니까 놀아야지!"

"너 혼자 놀아!" 엘사는 안나를 침대 밑으로 밀어 떨어뜨리며 말했다. 다행히 바닥에 푹신한 카펫이 깔려져 있었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안나는 엘사에게 한쪽 눈을 감으며 말했고 그러자 엘사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안나는 엘사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그 언제보다도 행복했다. 할수만 있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나는 엘사의 손을 잡고 계단으로 잡아끌었다.

"어서! 어서!" 안나가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쉿!" 엘사가 연신 손을 입에 갖다 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않고 안나는 달려갔다. 엘사와 함께라면 겔다의 꾸중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둘은 무도회장에 도착했다.
"마법 해봐! 마법 해봐!" 안나의 성화에 못 이긴 엘사는 마치 찰흙으로 공을 만들듯 손에 기를 모아 위쪽으로 날렸고 그것은 마치 무도회장에 눈이 오는듯 작은 눈 결정이 되어 무도회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완전 멋져!" 안나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이거 잘봐!" 엘사는 땅에 발을 '쿵'하고 디뎠다. 그러자 무도회장의 바닥에 얼음이 마치 스케이트장처럼 쫙 깔렸다. 엘사의 마법은 다시 봐도 정말 아름다웠다.

 

그 이후 엘사와 안나는 눈사람을 만들고, 미끄럼을 타며 놀았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안나가 이번에는 위험한 장난은 자제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끼익' 그때 무도회장 문이 열렸다. 국왕과 왕비였다.

"엘사! 안나!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런 늦은 시간에!" 국왕은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고 옆에서 왕비가 말리고 있었다.
"저 그게..." 엘사가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왕비가 화내는 국왕의 등을 아주 세게 꼬집으며 엘사, 안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자 그만하면 됬어, 엘사, 안나. 이제 자러 가야지?"

"네.." 엘사와 안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엘사는 무도회장의 눈을 마법으로 없애기 시작했고 곧 무도회장은 정리되었다.
엘사와 안나는 국왕과 왕비의 뒤를 따라 터벅터벅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운 후 눈을 붙였다.
국왕은 엘사와 안나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아까 왕비에게 꼬집힌 곳이 많이 아팠는지 한참동안 등을 어루만졌다.

---

다음날 아침,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뜬 안나는 바로 엘사의 방에 갔지만 엘사는 그곳에 없었다.
'엘사는 어디로 간거지?' 궁금해진 안나는 지난 밤 놀았던 무도회장으로 갔고 그곳에서는 엘사가 국왕에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국왕의 옆에는 겔다가 서 있었는데 13년 후의 모습과는 달리 날씬하고 얼굴도 예뻤다. 안나는 그 모습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약간 놀랐다.

그 모습을 본 안나가 무도회장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국왕은 할말을 다 했는지 안나가 있는 문과 반대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그제야 안나는 무도회장으로 들어갔다.

"어젯밤 또 사고를 치셨다면서요? 국왕폐하께서 두 공주님에게 성 청소를 시키라고 저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겔다가 말했다.
안나는 두 손으로 양쪽 뺨을 누르며 절규하는 것으로 자신이 느끼는 절망감을 표현했다. 뭐든지 복잡한 것은 싫어하는 안나에게 청소는 너무도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역시 두 공주님께서 성 전체를 청소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저도 도와는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겔다!" 엘사와 안나의 표정이 훨씬 편해진듯 보였다. 특히 안나는 겔다가 저번에 고양이들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을 매우 빠르게 정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겔다는 엘사와 안나에게 걸레 2개를 내밀며 말했다.

"자 그럼 이곳 무도회장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걸레를 빨아서 이렇게 벽면을 닦으시면 됩니다."
겔다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이제 궁에 들어온지도 거의 10년차가 다 되가는 베테랑인 겔다는 이정도 쯤이야 라는 표정을 지으며 걸레의 물기를 짰다.


두 꼬마 공주는 걸레를 들고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엘사는 '걸레를 빤다'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안나, 걸레를 빤다는게 무슨 말일까?"

"언니도 참, 그건 말이야 이렇게 걸레를 물로 적시고 비누칠을 한 다음 다시 물로 헹구고 물기를 쭉 짜는거야!" 몸은 5살이지만 마음은 18살 그대로인 안나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구나, 고마워. 근데 그건 어떻게 안 거야? 나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아 그거... 겔..겔다한테 들은 적이 있어." 안나는 급히 얼버무렸다. 그리고 다행히 엘사도 더이상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엘사와 안나는 낑낑대며 걸레를 빨아 무도회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래도 두 공주가 어리다보니 물기를 제대로 짜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둘이 걸어간 경로를 떨어진 똑똑 떨어진 물방울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엘사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안나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물기가 잔뜩 묻어 있는 두 손으로 엘사의 얼굴을 주물럭거리고는 잽싸게 내뺐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겔다가 가만히 있을리 만무했다. 두 장난꾸러기 공주는 꼼짝없이 오랜 시간동안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안나의 얼굴에는 조용하게 미안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듯 신나게 무도회장의 벽면을 청소했다. 아직 키가 작은 어린 공주님들에게 높은 곳을 닦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사실 엘사와 안나가 닦을 수 있는 범위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겔다가 해야만 했는데 매우 힘들어 보였다.

한참이 지나고,

 

"자... 이제 화장실입니다."

아직 쌩쌩해 보이는 두 공주와는 달리 겔다는 몹시 지쳐 보였다. 그 넓은 무도회장을 거의 혼자 청소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이렇게 대걸레를 빤 뒤 바닥을 닦으시면 됩니다."
겔다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당히 지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꼬마 공주도 그것을 알았는지 더 열심히 청소했다. 대걸레가 약간 무거울 만도 한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바닥을 닦는 공주들을 보며
겔다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웠다. 불과 몇 십 분만에 두 말괄량이는 화장실 바닥을 거의 완벽하게 청소했고 마치 바닥에서 광채가 나는 듯 했다.

"잘 하셨습니다." 겔다의 칭찬에 엘사와 안나도 미소를 지었다.

 

엘사와 안나 그리고 겔다는 성 안 그밖의 다른 구역들도 청소를 했지만 그곳들은 대부분 깨끗하게 정돈이 잘 되어 있어서 세 사람이 크게 할 일은 없었다.

 

"드디어 끝났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가 보셔도 좋습니다."
"겔다도 수고하셨어요!"

 

두 공주는 마침내 청소에서 해방되었다. 바깥을 보니 낮이라 하기도 밤이라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엘사는 자신의 방 안에서 종이에 여러가지 도형들을 그리며 놀고 있었고 안나는 과거의 성을 돌아보며 추억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엘사의 대관식날 자신이 탔던 지붕에 설치된 그네, 갤러리에 전시된 가지각색의 그림들, 뜰에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까지 모두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것이었다.

 

"우와.. 정말 달라진게 하나도 없어.. 엘사가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만 빼면.." 안나는 감탄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안나는 그 길로 엘사의 방으로 갔다. 엘사는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엄청난 양의 종이더미가 쌓여 있었다.
안나가 엘사를 부르며 다가가자 엘사는 당황한 듯 황급히 손으로 종이를 가렸다.

"언니, 뭐 그리는 거야?" 안나가 물었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참, 안나, 너도 한번 그려 보지 않을래?" 엘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안나는 속으로 이 언니가 또 무언가 숨기는 게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엘사는 정말 표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안나는 엘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엘사가 내민 종이에 바론이 그렸었던 마법진을 그렸다. 중간중간 생각나지 않는 부분은 자기의 느낌대로 그렸다.

 

"짠! 완성!" 안나가 완성된 그림을 엘사에게 보여주자 엘사는 놀라워하며 말했다.

"완벽해.. 이거야 말로 완벽한 도형이야 안나.. 어쩜 이렇게 좌우대칭이 맞으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지?"

 

그때 엘사가 안나의 그림을 보고 방심하던 틈을 타 안나는 엘사가 손으로 가리고 있던 그림을 낚아채가려했다.

"안나, 안되!" 엘사는 종이를 잡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손이 미끄러지고 말았고 그 반동으로 안나 또한 뒤로 넘어지며 종이를 놓치는 바람에 종이는 날아가서 커다란 장롱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엘사는 처음엔 아쉬워했지만 이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안나는 엘사의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대체 뭐였을까? 뭐였길래 언니가 저렇게 숨겼던 거지? 안나는 아쉬워하며 방으로 돌아갔고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살짝 장롱 틈 밖으로 삐져나온 종이에는 안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안나의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어느덧 자야할 시간이 다가왔다. 안나는 엘사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의 반나절동안 청소만 한다고 엘사언니랑 별로 놀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언니랑 단 둘이 시간을 보냈네. 아, 돌아가면 바론한테 꼭 고맙다고 인사해야겠다.'

안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꿈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요 근래의 표정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안나는 꿈속에서 또다시 엘사를 보았다 마치 과거로 올 때처럼. 하지만 꿈 속의 엘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이 옆에 함께 있었다. 장난치며, 함께 초콜릿을 먹으며, 때로는 같이 야단도 들으며.
꿈속의 엘사는 결코 울지 않았다. 언제나 웃는 표정을 띄고 있었다.

.
.
.

 

안나는 문득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채 6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고 밖을 보니 아직 여명이 시작되지 않은 채 깜깜했다. 몸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한참을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던 안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성의 부엌으로 갔다. 그러고는 찻주전자와 찻잎을 가져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겔다에게 어렸을 때 배웠던 방법을 찬찬히 되짚어가며 안나는 차를 끓이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성 안은 향기로운 차 냄새로 가득 찼다.

 

차가 거의 완성되가던 즈음 깨어난 엘사는 향기에 이끌려 부엌으로 가서는 그곳에서 혼자 차를 끓이고 있는 안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안나! 어쩐 일이니!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그냥.. 가끔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언니랑 둘이 시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아! 그나저나 내가 끓인 차 마셔볼래? 나만의 스페셜 브랜드야. 맛은 장담 못하지만." 안나는 엘사에게 찻잔을 건넸다.

 

엘사는 안나가 건넨 찻잔을 홀짝이고는 말했다.

 

"향이 좋네."

 

해가 떠오르자 크리스토프가 마차를 끌고 나가는 소리가 성내 식당으로 들려왔고 엘사와 안나는 찻잔을 들고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뜰에는 무성하게 자라 있던 고양이풀 대신 다시 푸른 잔디밭이 뒤덮여 있었고 찬장 안에는 안나가 엘사 몰래 숨겨둔 코로나산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차 마시기를 마친 두 자매는 뜰을 산책했다. 쏟아지는 햇빛이 안 그래도 빛나는 두 사람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정말 눈부시게도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

보기 편하라고 문장 좀 다듬고 결말이 너무 아닌 것 같아서 바꿨어. 이것도 급조해서 그다지 나은 결말은 아니지만

전에 썼던 결말은 여왕님이 세상을 얼려버리는 일이 아예 역사에서 사라져버리는 건데, 그때는 시간없어서 막쓴다고 썼는데 심사평들 보니까 좀 아닌 것 같아서 바꿨어. 크리스토프가 진짜 병풍이 되어버리는것도 좀 그렇고.. 그래서 일단 '겨울왕국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이지만 그 원인이 안나에게 마법으로 상처를 입히고 마법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발생한다는 걸로 약간 바꿨어. 뭐 가령 예를 들자면 대관식날 위즐타운이 여왕님에게 심각하게 모욕감을 줬다거나 한-스가 처음부터 본심을 드러냈다던가 뭐 그런 이유에서.

 

일단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지브리의 작품 '고양이의 보은'을 보고 나서 필받은 작가가 이 내용을 프로즌에 접합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었는데 초중반부 쓰고 있을 때 여름방학 문학대회 참가자를 신청받길래 신청하고 신청기간 안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그래서 퇴고를 제대로 못하고 제출했어. 광탈할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광탈하니까 좀 아쉽다

제목 보고 기여운 안냥이가 등장할거라고 기대한 갤러들한테는 미안해ㅠ 처음 딱 떠오르는 제목이 저것밖에 없어서 저걸로 한거야

그리고 내가 지브리를 엄청 좋아해서 지브리X프로즌 작품들을 많이 구상해봤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 가구야 공주 이야기, 이웃집 토토로 이정도까지는 프로즌 세계관에 맞춰서 갈수 있을 것 같아서 몇가지는 지금 쓰고 있어. 다음 문학대회가 있다면 그때 제출할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

 

지금 이 글 일고 있는 갤러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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