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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대회 중편3 탈락작] 빛과 꿈모바일에서 작성

AN-LELUJA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8.26 00:24:52
조회 635 추천 25 댓글 5

파도가 몰아친다.




거센 파도 소리와, 파도 소리에 묻혀가는 선원의 목소리가


빳빳하게 팽창된 내 귓속 고막을 건드리는 모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생이 마지막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육감적으로 느껴졌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 조차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미 절망적인 상황으로 죽어갔던 정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전히 나에게서 살아있는 육감이 이젠 신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라고 나에게 계속 메세지를 날리고 있었다.


누구의 정보도, 내가 객관적으로 본 사실도 아닌 나의 육감이 나에게 마지막 보답-내 신체를 사용한 보답을 하려는 듯


내게 미리 예견해주는 나의 비참하고 쓸쓸한 마지막이 한편의 초상화가 되고, 한편의 상상이 되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폐...폐하...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뗏목이라도 타시는 것이"




낑낑거리며 어떻게든 배를 만져 배를 살려보라는 부질없는 짓거리를 한 젊은 선원도


이제는 배를 버리고 탈출하라고 나에게 간절한 외침을 외친다.  


그 간절한 외침의 한 음절, 한 음절들이 본능적으로 머리에서 점점 줄어들어가는 무수히 많은 숫자로 번역되어


그 숫자가 나에게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카운트 다운으로 느껴졌을 때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인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 밖에는 되지 않았다.


요르문간드*가 바닷속에서 요동치는 힘이 그대로 전달되듯 이 배를 부서트리려 거세게 몰아붇이는 커다란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커다란 돗대를 맞은 부인의 아름다운 이마에 흐르는 피가, 부서진 유리 조각을 짚어 찢어진 부인의 아름다운 손을 보며


나는 이렇게 되도록 부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이제는 부인을 지켜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같이 들었다.


그 생각이 순간 큰 파도의 충격으로 인해 뱃조각의 파편이 그녀 쪽으로 튀었을 때, 나는 그 파편보다 빨리 그녀를 감싸안고 바닥을 굴렀다.


아마도 아까 들은 두 가지 생각중 후자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였다.


그 일로 다행히 그녀는 파편을 맞지 않았지만 그녀를 살린 대신 온몸으로 배의 파편을 막아낸 댓가는 가혹했다.


등에는 큰 멍과 상처가 수많이 났지만, 나는 찢어진 그녀의 손을 보며 고통을 참으려 했다.  지금 아픈건 나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상처와 멍들이 죽음 직전에 발생하는 그 미칠듯한 흥분을 느끼는 나에게 아무 고통도 주지 못하자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이제 지금까지 달려왔던 인생의 마지막을 느꼈다.


이젠 작은 나라의 왕으로써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인가.


살고 싶다는 욕망이 변형되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바뀌었고


그 의무감이 딸들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뒤바껴 머릿속에서 모두 뒤섞인 뒤,


변형되고 쓸데없는 상상이 되어 내 머릿속에 있는 해안가로 요르문간드가 치는 파도가 불어닥치듯 물밀듯이 몰려온다.




"위즐톤의 증기선이였다면... 이 풍랑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마지막 희망도 산산히 부서진 상황에서 그저 가망없는 상상만 지속할 즈음, 부인이 찢어진 손으로 부인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 엘사와... 안나는 잘 있겠죠...?"


"잘 있겠지...? 앗 그렇고 아프지는 않소?"


"괜찮아요."




---




"왕위 계승서열 1위는 자동적으로 엘사 공주가..."




전 세계 지도를 보아하면, 유럽은 엄청나게 작다.


저기 멀리 인도와 러시아를 국경으로 삼는 청나라의 크기만 해도 우리 유럽 전체를 뒤덮을 정도이고,


저기 아프리카 대륙이나, 광활한 시베리아를 차지한 러시아 등...


내 딸 엘사는 그런 큰 곳들을 하나같이 모두 제치고 우리는 대륙들 중 제일 좁고 작디 작은 유럽,


그 작은 땅 중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살기 별로 좋지도 않은 북유럽과, 그 척박한 북유럽 땅의


일부만을 차지하고 있는 '별 볼것 없는 무역국가' 아렌델에서 태어났다.


옆은 전세계를 호령하는 위즐톤, 남쪽에는 이 위즐톤과 만고의 숙적인 서던 아일, 그리고 조용한 중앙 유로파의 강자였던 코로나 까지


하나같이 자신들의 강력함 혹은 부강함을 뽐내고 있었을 때, 우리 아렌델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자랑거리라고 한다면 강력한 해군과 부강한 경제였으나 이런것으로는 저 강력한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부족했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쨋든 엘사는 그런 작은 나라의 왕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당시 왕, 그녀의 아버지였던 나는 엘사가 태어났을 때 무척이나 좋아했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보위를 잇건 뭘 하건 그녀는 나에게서 나온 첫번째 혈육이였기 때문에, 그 본능적 기쁨은 당연히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기쁨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있어서 태어남이란


이미 일련의 시련들을 겪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몸이 찹니다.  송구스럽지만 생명이 위험할 가능성이 높사옵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하지만 궁중 의사들이 기쁨과 감동에 젖어 있는 내게 하는 말이라는 것은 내 딸이 곧 죽을 것 같으니, 죽을 것을 염두해 두라는 말이였다.


어이가 없었다.  방금 태어난 아이가 곧 죽을 것 같다니.  


그때 처음으로 때로는 진실이 거짓보다 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었다.


갓 태어난 내 딸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되지 않다는 것에 어이가 없어 이틀 밤낯을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정신이 나간채 그냥 날려버렸다.  그리고 혹여나 산후조리에 힘들어 할 부인에게 병이 도질까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고생고생해서 10달동안 뱃속에서 잘 키우고, 그 뒤에 다시 힘들게 수시간의 산통을 치르며 낳은 아이가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어찌 남편된 자가, 그리고 이 아이의 아버지가 된 자가 갓 아이를 나은 부인에게 할 수 있는가.


그 즈음의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태어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작은 아이는 차가운 몸이 따뜻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시녀들이 전할 때 마다 나는 하릴없이 서랍 안에 있는 상복의 옷감 조각을 만지작 거렸다.


아마도 아이가 죽으면 상복을 입어야 했기에 그 재질에 좀더 친숙해지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사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그 아이를


살릴 생각보다도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어찌 그리 매정했는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을 가르쳐 줘야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런 희망을 가지기는 커녕 무의식중에 그 아이가 죽기만을 바랬을 수도 있었다.  


어쨋든 그 아이는 "엘사"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녀를 특별히 엘사 라고 붇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생각이 나지 않아 부인에게 잠시 물어봤는데 부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엘사가 어떨까요?" 라고 답변해서


아이 이름이 엘사가 된 것일 뿐이였다.


아마도 원래 태어날 때 부터 이름을 받아야 하지만 부인은 산후조리로 정신이 나갈 지경이였고


나는 의사들의 무시무시한 통보에 며칠동안 밤을 지새우며 정신이 나간 것 처럼 살았을 뿐이기에 그 아이는 이름조차 받지 못한 채 지냈다.  


결국 왕실이 마비된 듯 한 며칠의 시간동안 이 작은 아이는 어른들의 "걱정"이란 이름이 붇은 욕심 덕분에


며칠의 시간을 그저 이름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공주"라는 호칭으로 불려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걱정으로 가득찼던 나와는 달리 아이는 죽음의 경고도 가뿐히 넘긴 채 백일을 지나가더니, 1년 뒤 첫 생일을 맞았다.


나는 그때까지 아이의 몸이 계속 차가웠기에 안심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의사들의 경고가 틀린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가슴 속으로 크게 다행이구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건강한 공주님이십니다."




엘사의 3번째 생일이 지날 무렵에, 그리고 이제 아이가 조그마한 입을 벌려 재잘재잘 말을 할 때 쯤 부인은 한 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대신들과 왕실 종친, 친척들 까지도 보위를 이을 왕자를 원했지만 아이는 안타깝게(?)도


또 다시 여자아이였기에 아무래도 여자가 태어난것이라 그런지 축하 멘트또한 생각보다 짧고 간결했다.


대우 역시 첫째 엘사에 비해서 약간은 부실한 느낌 또한 드는것이 기분탓 만은 아니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엘사는 "단명할 운명"이라는 것 때문에 태어났을 때 부터 좋은 소리를 듣고 자라지를 못했고


안나는 단지 "공주"라는 이유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삶을 아마도 시작했을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내 딸들로 태어난 것 만으로도 태어날 때 부터 좋은 말을 듣지 못한 딸아이들에게 점점 미안해져 갔다.


만약 내 딸들이 아닌 평민의 자식이였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최소한 보위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아무리 여자아이가 태어났어도 최소한 나의 자식으로 태어났을 때 보다는 여러 사람들에게 축복받을 수 있었을 삶이였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의 두번째 아이는 딸로 결정이 났고, 우리는 그녀에게 "안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첫째 엘사가 태어났을 때는, 몸이 차가워지는 증상 덕에 이름을 짓는 것보다 장례를 준비하는게 더 먼저 준비했다고 할 정도로


의사들과 신하, 그리고 부인하고 싶지만 나까지 그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때문에 아이의 이름은 며칠이 되어서야


정해졌고, 이 징크스를 아는 부인과 나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에게 이름을 붇여 주었다.


아마도 이 이름 역시 부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걸 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해서 지어준 이름이였을 것이다.


어려서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다르게 몸이 조금 찬 것만 제외하면 건강하게 자라준 엘사와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게 태어난 안나는


그렇게 남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첫째가 아니라고 바라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었다.


사실 안나는 엘사에 비해 모든 면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2등 공주의 비애(費哀)였을 지도 모른다.


왕위 계승권 순위로는 2위인 높은 혈족이였으나 그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굴레는 그녀를 항상 모든 것에서 먼저가 아닌


2등으로 밀어내 버렸다.  항상 그녀에게는 "2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붇었고, 모든 면이 언니 엘사와 비교되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사람을 가지고 줄을 세우는 것으로도 모잘라서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로 언니와 모든 것을 비교하다니!


하지만 힘 약한 국왕으로써는 음성적으로 터져나오는 그 발언들을 잠재우기 힘들었고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내가 그들과 동화되어 안나를 이미 2등으로 취급하고 있었는 듯 싶었다.  


무의식 중에 엘사와 안나를 1등과 2등으로 줄을 세웠고, 안나는 언제나 그런 면에서 2등이였다.


게다가 엘사는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아 상당수의 관심은 갓난아이인 안나보다도 엘사에게 쏠려 있었기에


아마도 안나가 이미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었다면 심히 불만을 느낄수도 있는 점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딸들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지,


잔인하게도 나 역시 처음의 마음과는 다르게 무의식적으로 항상 둘을 1등과 2등으로 나누어 줄을 세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둘을 왜 그렇게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엘사는 우리가 가지지 않은 특별한 능력을 "희귀한 병"으로 치부하며 차별했고, 안나는 2등 공주라며 차별했다.


결국 나는 둘 다 차별한것이다!  둘 모두를 감싸주어야 할 아버지가, 부모가 딸 하나는 난치병이라며 내치고, 딸 하나는 둘째라며 내쳤다.


그렇게 했을 당시만 해도 당연한 듯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둘을 차별했을까.


왜 그렇게 둘을 차별했을까?


난치병이여서?


단지 둘째여서?




--




"여보 괜찮아요?"




배 한 구석에 기댄 부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시 잠겼던 나를 보고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제서야 한심한 생각에서 벗어난 내가 부인의 질문을 듣고 잠시 빠졌던 그 옛날의 상상을 다시 머릿속으로 접어두고 부인의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인의 얼굴이 있다.  예쁜 부인의 얼굴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부인 얼굴과 눈을 마주쳤다.


부인과 눈을 마주치자 쓸데없이 민망해진 나는 애써 부인의 눈을 피하며 아까 찢어졌던 부인의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의 손은 아직도 피가 많이 났다.  걱정을 받아야 할 쪽은 자신임에도 불과하고 그녀는 자신의 손 얘기를 하는 대신


내 걱정을 먼저 했다.  아마 내가 새로 태어나도 이런 여자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




"지혈을 해야겠는데..."




나는 지혈을 해야겠다며 잠시 혼잣말을 한 뒤 입고있던 옷을 찢어 부인의 손목에 묶었다.


원래는 가장 먼저 보인 제복 외투를 찢으려 했으나, 제복 외투가 무척 두꺼운 나머지 외투를 벗어던지고 속에 있는 셔츠를 찢었다.


셔츠를 찢으려고 벗어던진 제복 외투가 갑판 위에 형편없이 굴러다니며


반짝거리며 가슴에 달려있던 여러개의 훈장이 지금은 그저 쓸모없는 금속 쪼가리가 되어 버린 모습을 보니,


이제는 바다 위에서 생을 마감한 뒤 세상에서 내던져질 내 모습과 같아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씁쓸했다.


씁쓸한 느낌이 머리를 넘어서 입까지 멤돌자 부인이 내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부인이 날 보고 웃었다.  남편을 걱정하는 듯 한 아름다운 미소.  


세상에 더러운 티끌이라곤 하나도 묻지 않았을 듯한 그 깨끗해 보이는 순백의 미소는 오랜만에 본...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미소랄까.




"손은 괜찮아요."


"피가 많이 나잖소."


"이깟 피 조금 나면 어떻다고..."


"안되요.  지혈을 해야 하오."


"참..."




그 웃음을 본 나는 지금까지 딸들에게 잘 해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휩싸여


살아나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대로 다가올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꼭 죽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써나, 한 나라의 국왕으로써나 자질이 정말 없는 사람인 것이다.


돌아가면 처리해야 할 정사들이 산더미고, 사랑해야 할 우리 국민이 있음에도, 나는 어찌 나 하나의 목숨을 나 하나의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 가벼이 여기는가.


아렌델엔 엘사가 있다.  안나가 있다.  카이가 있고, 시종들이 있다.  그리고 이 넷을 전부 포함한 우리 국민이 있다.


내 목숨은 내것만이 아니다.  내 목숨에는 바로 옆에 있는 내 부인의 몫도 있고, 내 엘사와 안나의 몫도 있으며,


우리 국민들의 몫 까지 있는데 나는 어찌 허무하게 여기서 죽어가야 하는가.


서둘러 셔츠 왼팔을 길게 찢어 부인의 팔뚝에 묶어 일차적 지혈을 하고, 형편없이 찢겨진 내 왼팔 셔츠를 보자


이젠 내가 어디 지중해 앞바다를 누비는 중동 해적놈인지, 아니면 어디 국왕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젠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꾀죄죄한 몰골이라고 생각되니, 굳이 멋있게 죽고 싶다는 마지막의 자존심 조차 사라졌다.




"끄응차."




소리를 내며 오랜만은 아니지만 배가 반토막이 난 상황에서는 처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동안 쭈그린 자세를 잡고있던 탓인지


오랜만에 일어나니, 몸을 일으키면서 나는 뼈마디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내 귀를 심하게 거슬렸다.


그래도 이 소리가 나는걸 보니 아직은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무언가 이상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 방법을 찾으러 난간 너머를 바라보았다.




"..."




그렇지만 살아남으려고 일으킨 몸에서, 그리고 그 몸 위에 달려있는 머리에서, 그 머리 앞쪽에 달려있는 눈에서 확인한 정보는 하나였다.


"내가 죽는다는"것.


풍랑은 거셌고, 탈출할 수 있는 뗏목은 이미 부딪쳐 쪼개진지 오래였다.  거센 파도에 부딫혀 산산히 부서져 형태가 없어졌다.


뗏목을 타도 살기 힘든 마당에... 이미 끝난것이다.


내가 멍청했다.


정말로 멍청했다.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신에게 호소하듯 괜사리 누군가를 이유로 대며 구차하게 살려고 했던 한 인간이였다.


정말로 그들은 내가 필요할까?  왕가의 자식인 내 딸들은 내가 없어도 먹고살 걱정은 커녕 사회 최상류층으로 언제나 살아갈 것이고


백성과 대신들도 당분간은 마음이 아프겠지만 곧 빠르게 정상화 되어 엘사를 여왕으로 모시며 살아갈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정상화 될 것이고, 오히려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저 구차하게 살고 싶은 하나의 인간이 타인을 이유로 대며 살아가려고 발버둥 친 것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제기랄."




쓸데없는 감정에 휩싸인 나는 입에서 담아지지도 않던 욕설을 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되뇌이며 무언가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엘사, 안나. 우린 빛이였고 꿈이였단다.




햇빛이 널리 비출땐


서서히 들어와 너희와 함께 있지만


사라져 버릴땐 슬그머니 없어져버려야 하니까.


밤이 오지 않는다면 너희는 모르니까 말이지.




언제 그 빛이 사라졌는지.




우리는 너희를 비춘 하나의 빛이였고 꿈이였단다.


꿈이란 꿈이 다하고 나면 흔적을 남겨서는 안되는 법이지.


꿈꾼 자의 얼굴에 희미한 한 줄기 빛 말고는 말이다.




세상에 부모만큼 무념무상(無念無想)한 것도 없는 법이란다.


평소에는 잘 해줘도


혼낼 땐 따끔하게 혼내야 하고


떠날 땐 손을 흔들어야 하며


인간으로써의 생을 마칠 땐


아무리 끊기 힘들고 깊은 관계여도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훌훌 하늘로 가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죽음에 의한 이별은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니."




거센 파도에 의해 반파되어 표류하는 배 위에, 그리고 그 배 위에 쓰러진 돗대 위에 힘든 듯 기대어 앉아 있던 아크다르가,


찢어진 부인의 손을 잡으며 즉흥으로 생각난 그의 시 한편을 읊었다.


부인이 보기에는 평소에 갖고 있는 수많은 책 한권 보지 않는이가 죽을때가 다 되어서 의미없는 시 한편을 짓자


그가 읊는 시를 듣다가 어이가 없어 웃긴 듯 그에게 살짝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왕은 웃음을 보인 부인의 얼굴과


부인의 피로 얼룩진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본 뒤에 부인에게 물었다.




"뭐가 그리 웃기오?"


"평소에 책 한권 보지 않던 이가 갑자기 죽을때 되니 뭔 시는 시에요."


"사람은 언제나 죽을 때가 되면 말이오.  평소에 하지 않았던 것, 그러나 마음 속에 묻어놓았던 것을 하나씩은 해보는 법이지."


"옛날부터 시 쓰고 싶었어요?"


"항상 그랬소."




인생의 마지막 대화일지도 모르는 대화를 나누는 두 부부가


죽음이란 거대한 재앙 앞에서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했던


풋풋하고 아름다운 신혼의 분위기로 돌아간 이 두 부부에게


수십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강한 파도가 다가왔다.


--


폰갤질 수정때문에 후기멘트가 바뀌네 나중엔 후기멘트도 메모장에 같이써야지

이번엔 정말로 대충쓴 문학이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게 더 높이 올라간다면 창자가 찢어진건 아마 저였을 겁니다.  솔직히 제가 웬만해선 제 작품에 대한 폄하를 하지 않습니다만 이번엔 정말로 출품한 작품 치고 꼼꼼히 쓰지도 보지도 않았죠.


사실 전작 "소녀여 울지 마오"(기억하는사람 있으려나?)에 비해 필력이야 계속 썼으니 발전은 할 테지만 노력은 2/3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약간 크리스토프의 카리스마 위주의 전작은 쓸때 상당히 껄끄러웠고 진행방식도 드라마성 진행이라 글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그런것도 감안한다면)

그랬겠지만 출품작 치고는 정말 노력을 안한 작품인데 여기까지 올라오네요.  저는 제 노력에 비해 상당히 과분한 평가 같아서 만족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뭔가 좀더 길고 잘 쓸걸 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장르를 바꾸고 주요 스토리 뼈대를 한번 갈아 치운것도 있고...


하튼 얼마 안남은 문학대회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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