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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이번에 새로 개발한 신형 병기다. 산으로 둘러쌓인 성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단스가 한스에게 보여준 것은 평범해 보이는 후드가 달린 검은색의 망토였다.
그는 망토와 세트인듯한 링을 손목과 발목에 장착하여 망토에 달린 갈고리들을
그곳에 걸었다. 팔을 펼치자 망토는 거대한 날개 같은 형상을 이루었다.
"이런 식으로 팔다리를 편 채 높은 곳에서 활강하여 떨어지는 것이다. 꽤 많은 실험대상자가 갈려 나갔지만 올해 겨우 실용화할 수 있었지"
"이럴 수가.."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하늘을 서던 아일랜드는 부분적으로나마 정복하게 된 것이다.
아렌델의 병사들은 설마 하늘을 통해서 적이 침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이거라면..
한스는 기쁜 내색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맘에 안드는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을 입고 침투하는 것인가? 하지만 중간에 요격당하거나 조정에 실패해 낙사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한다. 내일 코로나의 병력이 얼마나 올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이끌고 오시는 오백의 정예병 중
삼백 명만 에렌델 왕궁에 침투할 수 있다면 전쟁은 그날로 끝날 테니까"
한 벌을 챙겨 천막 밖으로 나서며 한스는 말했다.
"어이없게 죽지 않으려면 나도 연습을 좀 해놔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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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의 포성은 한밤중이 되도록 끊이지 않았다.
수척의 전열함이 포신이 달궈질 때까지 빙벽에 포탄을 발사했지만, 빙벽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포성의 메아리를 들으며 한스는 아렌델을 내려다보았다.
아렌델의 왕궁은 외곽에 켜진 불빛을 제외하고는 암흑 속에 휩싸여 있었다.
달도 구름 속에 가려진 터라 침투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망토의 갈고리를 양손에 달린 고리에 끼운 후 한스는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무시무시한 낙하속도에 힙겹게 눈을 뜨며 한스는 양팔과 다리를 쭉 펼쳤다. 그러자 공기를 한껏 받은 망토가 부풀면서 낙하속도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망토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났지만, 다행히 포성에 가려져 보초들에게 들리지는 않으리라, 팔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낙하지점을
고른 한스는 양팔과 양다리를 배 쪽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망토에 내장되어 있던 또 하나의 천이 공기를 받아 터져나가며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
무사히 착지한 한스는 망토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초병들은 그가 침입한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성 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안나와 함께 노래를 불렀던 성탑의 문을 잡고 한참을 서 있던 한스는 조심스럽게 성안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병력이 빙벽 근처로 이동해 있는지 왕궁은 조용했다. 안나와 이야기했던 발코니, 안나와 함께 몰래 걸었던 복도, 안나를 가두고 나왔던 방..
하나 둘 씩 스쳐가며 한스는 엘사 여왕의 방을 찾았다. 혼란스러운 마음과 다르게 한스의 몸은 조용한 걸음걸이로 사람들 눈에 들키지 않고 손쉽게 방까지 올 수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그녀의 방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시녀가 없는 것을 확인한 한스는 여왕의 방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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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지요."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따라오며 애절하게 말하는 겔다에게 엘사는 주머니에 든 초콜렛을 보여주며 민망한 듯 미소 지었다.
"사실 아까 초콜렛을 너무 많이 먹어서 입맛이 없는 것 뿐이에요. 겔다 지금은 먹는 것 보단 쉬고 싶네요."
마지못해 물러나는 겔다를 뒤로 하며 엘사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푹신한 소파에 누워 고개를 젖혔다.
하루 종일 걸어다녀서 그런지 온 몸이 노곤노곤한게 금방이라도 잠이 들어버릴거 같았다.
"이제 시작이야 엘사, 정신 똑바로 차리자!"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쉬는 엘사의 목덜미에 차가운 감촉이 와 닿았다. 차가운 감촉?
"헉!"
"소리 내지마. 엘사 여왕"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엘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자신에게 칼을 겨눈 사람을 찾았다.
"한스..?"
엘사의 목덜미에 단검을 겨눈 채 한스는 속삭였다.
"할 말이 있어서 왔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의 칼날은 어찌할 순 없을 거야. 그러니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들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엘사의 행동에 한스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어느새 방안의 온도는 싸늘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내일 서던 아일랜드와 코로나의 정예병력이 심야에 습격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침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형 병기를 이용해
하늘로부터 침공할 거야."
"하늘이라고요?"
"그래. 서던 아일랜드는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특수한 망토를 제작했다. 그것을 이용해 침입할 예정이고."
잠시 말을 멈춘 한스는 이내 결심을 한 듯 말했다.
"내일 밤. 나는 라푼젤 공주를 구출하고 우리의 숙영지에 불을 지를 것이다. 불빛을 확인한다면 엘사 여왕, 당신이 직접 그곳에 나타나 나의 아버지를
막아줘. 내가 할 말은 이게 다다"
엘사의 목덜미를 겨누던 단검을 거두며 한스는 일어섰다.
아렌델 왕국군의 복장을 한 한스의 모습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엘사는 말했다.
"왜죠? 왜 이제와서 우리 아렌델을 지켜주려는 거죠?"
"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
"내가 이대로 당신을 보내주지 않는다면요?"
"상관없다, 그렇게 되어도 내 목적은 달성한 거니까.."
"한스, 당신은 안나를 사랑하나요?"
문으로 향하려던 한스는 엘사의 다음 말에 굳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엘사를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자신에게 고정된 엘사의 파란 눈동자는 어두운 방안에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말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거렸다. 소파를 짚으며 간신히 자리에 버티고 선 한스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을하는거야..?"
"올라프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그 문은 잠겨있지 않았었다는 것을.."
"그게.. 뭐 어쨌다는거지?"
"당신이 더 잘 알텐데요?"
"..닥쳐!"
자신을 바라보는 엘사의 눈길을 피해 한스는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입 밖으로 내뱉어선 안되는 그의 속마음이 비명을 질렀다.
더 이상 말하지마. 애써 죽인 감정을 되살리지 마. 그녀를 떠올리게 하지마.
제발.. 그냥 날 보내줘.
'저 여자의 말을 들을 필요 없어, 무시하고 그냥 걸어나가자.'
하지만 한스의 다리는 여전히 주인의 명령을 배반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는 뱀 앞의 놓인 개구리처럼 떨고 있었다.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엘사의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온몸을 으스러뜨릴 듯 휘감아왔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거 알고 있어요."
"닥치라고!!"
"말해봐요."
한스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쓰러지듯 엘사의 맞은편 소파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단검을 내려놓고 어느새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장갑을 떨리는 손으로 벗으며 그는 말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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