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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델 이야기 - 꽃밭에서

엘사앤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9.10 18:03:37
조회 453 추천 13 댓글 5
														

그 날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가득 쏟아져 내린 하루였다. 어찌나 따뜻했던지 잠에서 깨었을 때는 내 잠옷도 뜨거워져 있었다. 뜨거워진 잠옷과 이불이 내 몸을 가득 덮고 있었기에 온몸이 무척 더웠다. 이제 정말 여름이구나, 아침부터 격하게 실감이 들었다. 서둘러 이불을 손으로 들어 치웠다. 여름이면 나는 활동적인 사람이 된다. 물론 내가 활동적이지 않을 때를 찾기는 어렵겠지만, 여름은 내게 고향 같은 계절이다. 내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하고 사방이 뜨거워지는 게 정말 맘에 든다. 그렇게 이불을 치우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는 순간, 침대 밑에서 누군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짠!"

언니였다. 지난번에 내 생일 날 이렇게 나를 깨운 이후로 언니는 아침마다 같은 행동을 했다. 어렸을 때 매일 내가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언니가 그게 썩 맘에 들었나 보다. 맘에 들지 않았으면 언니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잘 잤어?"

나도 살짝 웃으며 언니에게 되물었다.

"그럼. 오늘도 당연히 잘 잤지. 그리고 오늘까지 너를 위한 특별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지?"

"지금까지 뭐 했더라? 마시멜로 데려오기, 눈송이 축제 가기, 같이 빵 만들기, 근처 섬으로 소풍 가기? 또 뭐가 있었지?"

언니는 내가 빼먹은 두 가지 일을 상기시켜주었다.

"얼음 성 다시 가보기, 부서진 오큰네 오두막 고쳐주기. 이것들도 했지. 생일에 내가 아파서 못 해준 것들 만회하는 의미로! 오늘도 네가 좋아할 만한 것을 준비했어."

나는 언니가 미안하다며 매일 그것들을 해주어서 매우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언니가 지칠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언니에게 조금 쉬는 게 어떠냐고 먼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언니는 도저히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언니 조금 힘들지 않아? 매일 아주 고마운데 너무 걱정돼."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덜 활동적인 걸 할 거야. 올라프랑 크리스토프랑 다 데려가서 꽃 구경하고 쉬자."

꽃을 구경하는 데에 힘이 많이 들지는 않을 테니 이것은 언니에게도 꽤 괜찮은 일 같았다.

"그거 정말 좋다. 그러면 지금 당장 출발할 거야?"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 크리스토프랑 올라프 부르러 갈게."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내 방을 나갔다. 그들의 방은 내 방 바로 왼쪽에 있어서 멀지 않았다. 내 바로 반대편에는 언니의 방이 있고, 우리가 쓰는 2층에는 그렇게 방 세 개와 식탁밖에는 없다. 요즘 올라프와 크리스토프는 방을 같이 쓴다. 크리스토프가 올라프를 워낙 좋아하고 잘 지내서 그렇게 쓰게 되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다음 천천히 방문을 열고 밖에 나가자 그곳엔 이미 크리스토프와 올라프, 엘사 언니가 준비를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 다 했어? 빨리 나가자. 아침부터 거기서 먹을 거야. 올라프가 전에 여름을 보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거 기억나지? 그때 꼭 우리랑 같이 동산 위에서 샌드위치 먹고 싶다고 했잖아. 오늘 그것도 할 거야."

크리스토프가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 오늘은 올라프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네?"

내가 말했다. 아까부터 올라프는 기뻐서 주체를 못 하겠다는 듯 계속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 그러면 내려갈까?"

언니가 말했고 우리는 모두 복도를 가로질러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원형으로 쭉 내려가다 보니 1층 복도에 스벤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벤!"

크리스토프가 서둘러 스벤에게 향했다. 그는 우선 스벤의 발바닥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스벤의 발은 무척 깨끗했다. 크리스토프가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깨끗해?"

그러자 스벤은 앞발을 하나 들고는 자기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물에 젖은 수건을 들고 팔짱을 낀 신하 몇 명이 서 있었다.

"너 성안 들어온다고 저분들한테 닦아달라고 했어?"

스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언니가 신하들에게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힘드셨어요?"

"이게 우리 일인데요, 뭐. 스벤이 갑자기 들어오겠다고 해서 빨리 발을 닦고 들여보냈어요."

크리스토프는 서둘러 스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우리도 그를 따라 나갔다.


"다음부턴 성안에는 들어오면 안 돼. 나 보고 싶으면 부르면 바로 갈게."

크리스토프가 스벤에게 한마디 했다. 스벤은 약간 풀이 죽은 모양새였다.

"대신 오늘 꽃밭에 같이 가서 놀 거야. 엄청나게 넓으니까 막 뛰어다녀도 돼. 마을 안에선 사람들 많아서 어디 다니기도 힘들었잖아?"

곧바로 스벤은 혀까지 내밀며 기뻐했다. 이럴 때 보면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스벤도 대동하고 햇살 내리쬐는 아렌델 마을을 걸어갔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은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마을 곳곳에 핀 꽃들, 싱그러운 나무들, 지저귀는 수많은 새! 내가 여름을 사랑하는 모든 이유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날씨 정말 좋지 않아?"

내가 묻자 크리스토프가 대답했다.

"나는 약간 더운 것 같아."

언니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나도 오늘은 조금 더운 것 같다. 난 사실 겨울이 더 좋아."

"겨울은 언니의 계절이니까."

언니가 그 말을 듣고 살짝 웃었다. 언니는 자주 웃지는 않아도 이렇게 가끔 웃을 땐 참 귀엽다. 본인은 귀엽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내 눈엔 그렇다. 아렌델 마을 사람들도 모두 동의할 것이다.


날씨 이야기, 언니의 귀여움에 관한 논쟁, 올라프의 당근 사랑 등 여러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마을 경계쯤에 있는 동산에 도착했다. 동산 위엔 여름에도 활짝 피는 수많은 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미처럼 빨간 꽃들, 해바라기처럼 노란 꽃들, 그 밖에도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꽃들이 나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와!"

우리는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웠는지 새삼 다시 알게 됐다. 아렌델 마을 경계선쯤에 있어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 조금 더 자주 찾아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올해 봄엔 다섯 번 이상 이곳을 오기는 했다. 하지만 한두 달 못보다 다시 보는 이곳의 풍경은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안나야, 여기가 이렇게 예뻤었나?"

"나도 새삼 놀랍다."

그 후로 우리는 아침도 까맣게 있고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들도 매우 아름다웠고 하늘은 예쁜 구름으로 가득했다. 언니는 꽃을 몇 개 꺾어 나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예쁘지?"

그래서 나도 몇 개 꺾어서 언니에게 주었다. 언니의 초록색 여름 드레스에는 내가 준 꽃들 몇 개가 추가로 장식되었다.

"드레스가 더 예뻐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언니도 동의하는 듯했다. 한편, 저 멀리 에선 스벤과 올라프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만 우리처럼 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동산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

"더 달려봐!"

올라프는 계속 스벤 등 뒤에 타서 달려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스벤도 기분이 좋은지 계속 달렸다. 크리스토프는 그저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다가 가끔 한 마디씩 하는 게 전부였다.

"조심해. 너무 빠르게 달리지 마."

그러나 스벤은 별로 그런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크리스토프도 이런 곳에서 사고가 날 위험은 적다는 걸 아는지 자주 주의를 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올라프가 하고 싶은 게 있을 텐데."

언니가 말했다.

"맞다! 올라프가 매일 이야기하던 그거 해야지!"

내가 뒤늦게 생각이 나서 외쳤다. 올라프가 멀리서 그 소리를 듣고 단숨에 달려왔다. 얼마나 간절한지 생각나자마자 숨도 안 쉬고 달려온 듯했다.

"빨리 여기에 천을 깔아서 자리를 준비하고 먹을 준비하자! 나는 행복한 여름 눈사람!"

올라프는 순식간에 바구니에서 앉을 천과 샌드위치를 꺼내며 준비를 했다. 얼마나 들떴는지 시종일관 방방 뛰었다.

"조금 천천히 해도 돼."

언니가 약간 진정시키려 했지만, 올라프는 그저 들떠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우리를 앉히며 이렇게 말했다.

"여름날에 다 같이 샌드위치 먹는 게 내 꿈이었는데 드디어 이루어졌어!"

심지어 비장하기까지 한 그 말에 우리는 모두 흐뭇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올라프가 건네주는 샌드위치를 받으며 동산을 바라보았다.

"정말 예쁘지?"

언니가 물었다. 다들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런 모습에 누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꽃들, 나비들, 햇빛, 불어오는 바람, 모든 게 다 예쁘다."

언니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저 모두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한 손엔 샌드위치를 하나씩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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