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델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주변 모든 산은 얼어붙었고 북쪽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도 크리스토프는 오큰의 상점으로 가 필요한 것을 몇 개 구하러 스벤과 함께 달렸다. 주변은 살갗이 아리도록 추워 그의 팔을 괴롭혔다. 스벤은 전혀 추위를 모르는 것처럼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크리스토프의 옆에는 안나가 앉아있었다.

"그런데 오늘 뭐 사러 가는 거야?"

안나의 목소리는 추위에 떠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밝았다. 사실 그녀는 썰매에 둔 크리스토프의 옷가지 몇 개를 자기 몸에 걸치고서 있었기 때문에 괜찮은 듯 보였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썰매를 멈추지도 못하고 달리느라 생각보다 강한 맞바람에 힘들어했다.

"뭘 사려고 가는 게 아니라, 오큰한테 맡겨둔 것 찾으려고 가는 거야."

안나는 금세 '도대체 언제 그런 일이 있었어?' 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론 크리스토프는 뒤에 앉은 안나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다.

"오큰이랑 요즘도 자주 만나?"

"따지고 보면 오큰이 우리 만나게 해 준 사람 아냐? 그 후로 우리가 어떻게 지냈겠어?"

크리스토프는 달리느라 너무 힘드니 말을 자제해 달라고 손짓하며 다시 달렸다. 안나도 이번엔 다시 묻지 않기로 하고 대신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그곳엔 새벽하늘의 노란 빛 따뜻한 달이 커다랗게 떠 있었다. 안나는 그 달빛이 맘에 무척 들었다. 최근에 그런 큰 달을 본 적이 없었다.

"와 저 달 진짜 예쁘지 않아?"

안나는 순간적으로 살짝 웃으며 스스로 말을 멈췄다. 다시 말 걸지 않겠다고 하고는 금세 또 걸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요즘 그녀에게 크리스토프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한 것이어서 같이 있는 때면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나도 요즘은 연말을 맞아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생겼기 때문에 둘이 자주 만날 시간은 없었다.

오큰의 상점에 둘이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크리스토프의 손이 다 얼어붙은 직후였다. 그는 거의 울부짖으며 '문 닫음, 다음에 다시 오세요.'라는 입구의 간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안나는 손으로 따뜻하게 그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괜찮아. 손 잠깐 이리 줘봐."

크리스토프가 손을 내밀자 안나는 두 손을 쫙 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크리스토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조금 이렇게 있다가 가자."

크리스토프의 커다란 손을 안나의 작은 손이 다 감싸지는 못했지만, 그 온기만큼은 그의 손 넘어서 모든 몸에 전달되었다. 그것은 한겨울 아렌델의 흔한 풍경이었다. 그들의 흔한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