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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 문학] 겨울이 지나고

엘사앤안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3.22 00:37:56
조회 650 추천 26 댓글 8
														

“오늘 그래도 좋은 하루였지?”


안나의 말은 조금은 외로운 느낌도 감돌았다. 그래도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분명히 힘이 있는 말이었기에. 듣는 그녀의 언니도 처진 눈이 아니었다. 깊고 맑은 동생에 대한 우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탱해주는 그 끈을 잡고서.


“그러니까 내일도 조심해서 다녀.”


엘사는 안나의 다리 한쪽을 가리키며 부러진 그곳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만지려던 손은 흠칫 놀라며 뒤로 한 번 잡아당겨 졌다. 어루만져주는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쳐버린 상처, 선명하게 다친 자국이 드러나고 있었다.


“조금은 힘내자.”


엘사는 그 말을 남기고도 방을 나가지 않았다. 어느새 창밖 안나의 공간 너머에는 달빛이 비쳐 들어오며 그녀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엘사도 느낄 수 있었다. 안나가 달빛을 느낀다는 것을.


안나는 순간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은 채 언니의 손을 맞잡았다. 잡은 두 자매의 손이 약간 떨렸다. 그리고 엘사는 서둘러 일어나 바로 옆 탁자에서 약을 조금 꺼내 주었다.


“괜찮을 거야.”


안나는 몇 번의 기침을 남기고 조용히 그 약을 바라보았다. 목에서는 피인지 침인지 알 수 없지만 액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긁혀가는 연약한 속은 상처가 나서 말에 드러날 정도였다.


“약간 일어서 봐.”


안나는 몸을 약간 일으켜 앉은 자세로 만들었다. 엘사는 평소에 늘 하던 것처럼 안나에게 약을 나누어주었다. 받아 목으로 넘기는 안나의 몸이 떨렸다. 상처를 스쳐 그녀의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 그래도 정말 괜찮은걸.”


무슨 말인지 엘사는 잘 생각하지 못하다가 안나가 대답해주고는 깨달았다.


“그때 얼음 성 가보았던 거.”


어느새 창밖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꽃이 피는 아침의 향기가 새벽의 고요한 적막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겨울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 그렇지.”


안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오히려 슬픈 쪽은 엘사였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으니까. 어제든 내일이든 그냥 그런 채로 잊었다면 살 수가 없었을 텐데.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어.”


엘사는 조용히 안나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하얀색의 겨울을 간직한 머리카락은 여전히 부드러워 넘실거렸다.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게 풍성한 머리카락이었다.


“오늘은 일찍 잘래?”


엘사는 어떻게 알았는지 안나의 마음을 듣고 먼저 물어주었다.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엘사에게 손 인사를 했다. 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꼭 잡고 지긋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침대 위 누워있는 그녀의 몸이 어떻게 되었든 그 눈빛이 다르지 않았다. 다섯 살 그 시절의 눈빛과도 같았다.


“잘 자.”


동시에 내뱉은 그 말은 조금 뒤 엘사의 문을 닫는 소리에 가려졌다. 안나는 언니가 나가는 것을 끝까지 본 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침대에서 닿는 탁자 위의 액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액자의 작은 그림 속에는 금발의 젊은 청년이 활짝 웃으며 역시 젊은 여자를 안아 들고 있었다.


안나의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 손을 들어 액자와 그림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청년은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그대로였다. 안나가 이 땅에서 최근 마지막으로 본 그 얼굴은 어느새 언젠가의 기억이었다.


“얼음 그렇게 좋아하니까 얼음 성에 갔던 그 날 후회하지 않겠지?”


그리고 안나는 과거를 떠올려보았다. 크리스토프의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음에도 드러났다.


‘얼음은 내 인생이야!’


그것이 언제 들은 것인지 생각해보던 안나는 처음 언니와 크리스토프가 만나러 가던 그 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크리스토프는 이후 다시 얼음 성을 찾아갔던 그 날보다 훨씬 건장한 모습이었다. 체격도, 체력도.


“하룻밤에 생각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니까.”


안나는 도로 그림이 담긴 작은 액자를 손바닥에서 들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창문 밖에서는 겨울이 끝났음을 알리는 봄바람이 휘몰아쳤다. 그것을 닫혀있음에도 느끼는 안나였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안나의 마음에도 들어왔다. 크리스토프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추억이 떠오르고 어린 시절의 일이 모두 생각났다.


“언젠가 또 만나잖아.”


그리고 안나는 이불을 덮고 그 속에 들어가 누웠다. 덮는 그녀의 손은 많은 주름이 자리 잡아 연륜이 녹아있었고, 문밖에서는 신하들의 몇 마디 말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여왕의 후계자가 없으니 큰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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