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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전쟁 2부 13-14.txt

Neb(116.123) 2014.02.28 11: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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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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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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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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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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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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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체통도 잊어버리고 경박스럽게 소리를 내지르고 만 여왕님은 북받쳐 오른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주변을 의식하며 슬금슬금 팔을 내렸다. 주위를 힐끔거리던 엘사의 눈이 낄낄대며 그녀에게로 걸어오는 카이를 발견하자 얼굴에 옅은 홍조가 번졌고, 그것을 본 그는 더욱 커지려는 웃음소리를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녀의 곁으로 가 옆자리에 서서 여왕의 마법이 만들어낸 장관을 보면서 감탄했다.


“앞으로 여왕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못하겠군요.” 


“칭찬 고마워요, 카이.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사실 저도 자신이 별로 없었어요.”


엘사가 설핏 웃으며 대답하자 카이는 배신감으로 가득 찬 표정을 과장되게 지어보였고 그녀는 결국 킥킥하는 약한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쨌든 성공했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잖아요? 하, 이젠 정말 정전 협상만 남았네요.”


“뭐, 어떻게 보면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아직 서던 제도 왕을 생포해야한다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저길 봐요, 카이. 저들은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함포도 쏘지 못해요. 제가 이 근처에 머물면서 다가오는 서던 제도 배들을 족족 얼려 버리며 원해에 나가있던 우리 배들을 불러와 여기를 빙 둘러 포위해버린다면, 저들은 굶어죽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할 수 없다고요.”


먼 곳에 얼어붙은 서던 제도 전투함을 유심히 바라보던 카이는 얼음이 배의 선체까지도 뒤덮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이제는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끝났군요. 종전을 축하드립니-” “여왕님! 함대 중앙 방향으로부터 이쪽으로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그녀는 카이의 말을 가로막은 선장의 보고에 얼굴을 갸웃하며 그의 옆으로 걸어가 단안경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항복을 위해 보낸 사절인가요?”


“그런 것 치고는 조금 이상합니다. 그, 제가 썰매 비슷한 것을 봤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한 명이 그걸 타고 오고 있습니다.”


엘사가 단안경을 들어 눈가에 가져다대고 다른 쪽 눈을 꾹 감은 뒤 선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돌렸다. 손을 서툴게 움직이며 이리저리 단안경을 움직이던 그녀의 볼록하게 왜곡된 시야 안에 작은 보트처럼 생긴 썰매위에 앉은 사람이 손에 든 이상한 작대기를 스키폴처럼 이용해 빙판을 지치며 이쪽 방향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아직 완전히 걷혀지지는 않은 안개 너머로 어물거렸다. 그는 아래쪽 끝이 뾰족하고 반대쪽 끝은 노처럼 펑퍼짐한 그 이상한 작대기를 든 손을 열심히 놀리며 미끄러져오다가 빙판의 끝에 다다르자 작대기를 바닥에 내리찍어 잠깐 멈춰 서고는, 품에서 장갑으로 보이는 뭔가를 꺼내 주섬주섬 왼손에 씌운 뒤에 그 손으로 빙판 바닥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빙판이 움푹 파이며 사방으로 금이 갈라지고 다량의 수증기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멀리에서도 충분히 크게 들리는 빠드득하는 파열음이 그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엘사의 귓속에 울리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경악으로 커진 눈으로 계속 그를 관찰했다. 주변의 빙판이 순식간에 붕괴되어 흩어지고 그 밑으로 드러난 수면으로 썰매가 뚝 떨어지자 그것은 작은 보트로 변신해 물 위를 동동 떠다녔다. 그 위의 사람은 막대기를 거꾸로 잡은 뒤 왼손으로는 옆의 빙판바닥을 계속 두들기면서 다른 쪽 손에 쥔 막대기를 노처럼 저어 경계를 따라 계속 이동했고, 연속적인 파열음이 바다 위에 울려 퍼지며 바닷물이 그의 이동경로를 따라 흘러들어가며 거대한 빙판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갔다. 계속 휘둘러지는 그의 왼손 근처로 희미한 붉은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본 엘사의 뇌리에 그녀의 침실에 침입자가 들어왔던 그날 밤에 봤던 붉게 빛나는 검은 장갑을 낀 왼손이 스쳐지나갔다. 그 장갑, 서던 제도에서 나온 것이었어.



“여왕님?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것이 맞다면 당장 후퇴하거나 저걸 막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자 엘사는 단안경을 눈에서 떼며 감았던 한쪽 눈꺼풀을 도로 들어올렸다. 썰매보트가 빙판 모서리를 돌아다니면서 저지르고 있는 파괴행위는 육안으로도 매우 잘 보일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맙소사, 맙소사!”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박살나 흩어지는 얼음덩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선장이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 생각에도 그냥 달아나야 할 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도망치면?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앞으로 있을 함대전에서 수천명을 죽이고 결국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그녀는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면서 고개를 돌려 선장을 향해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배를 저쪽에 가까이 댄 다음에 깨진 빙판을 복구하면서 저 보트? 썰매? 어쨌든 저걸 따라가 안에 탄 사람을 잡아버리면-”


그때 파열음이 훨씬 더 크게, 훨씬 더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고 엘사는 말을 멈추고 숨을 삼킨 뒤 다시 단안경을 눈가에 대고 안개 속을 향해 돌렸다. 수십 개의 썰매가 희뿌연 물안개를 헤집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빙판을 박살내고 있었다. 안개가 점점 더 옅어지고, 빙판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날수록, 썰매의 숫자도 점점 더 늘어나 마침내 그 숫자가 세 자릿수가 되기에 이르렀다. 수백 개의 썰매들이 내달리며 광활한 빙판을 순식간에 해체하는 것을 아연하게 바라보던 엘사의 눈에 어떤 사람이 썰매도 타지 않고 조각난 빙판 사이를 뛰어다니며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선 뒤, 품에서 화려한 색의 수기 두 개를 꺼내 뒤를 향해 민첩하게 흔들어대는 것이 보였다. 문득 불안해진 그녀는 선장에게 단안경을 넘겨주고 그 사람이 있는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저쪽에 깃발을 흔드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는지 아시겠어요?”


“저건 함선 간 의사전달에 사용되는 수기입니다. 지금은, 음, 어떤 곳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향, 거리, 그리고 지금 있는 곳의 풍속, 풍향까지 알려주고 있는데, 이건 마치…” 선장은 단안경에서 눈을 떼고 핏기가 가셔 창백해진 얼굴로 여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포각 계산이라도 하려는 것 같군요.”


그때 안개 속에서 수백 차례의 섬광이 일렬로 번뜩이며 시야 아득히 펼쳐진 안개를 샛노란 불빛으로 온통 물들이자 선장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목청껏 외쳤다. “포격이다-!!” 나이 많은 베테랑 선원들이 가장 빨리 반응해 몸을 갑판 바닥에 바짝 대고 엎드리고 나서 경험이 적은 청년과 소년들이 놀람으로 뻣뻣해진 몸을 엉거주춤 움직이며 자세를 낮췄다. 그동안 엘사는 재빨리 팔을 앞으로 뻗고 손바닥을 펴고 하얗고 눈부신 빛무리를 앞으로 뿜어내 자신이 즉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두껍고 단단한 방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밑으로 미처 제어하지 못한 힘들이 새어나오며 얇은 얼음막을 주변의 갑판 위로 퍼트렸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동안 정적이 흘렀다.



곧 갈기갈기 찢겨나간 공기가 울부짖는 비명소리와 수십여 발의 적중탄이 방벽을 두드려 깨며 내는 날카로움과 둔중함이 섞인 파열음, 그리고 수없이 많은 빗나간 탄환들이 해수면 위를 세차게 때리며 나는 폭포소리의 뒤로 거의 천여 문에 달하는 숫자의 컬버린 대포가 멀리서부터 쏘아보낸 은은한 포성이 따라와 한데 뒤섞여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울려오는 것 같은 거대하고 소름끼치는 굉음을 이루어 작달막한 스쿠너와 그 위에 탄 사람들을 세차게 뒤흔들자 엘사는 몸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팔을 뻗은 그 자세 그대로 갑판 위에서 비틀거렸다. 포격과 굉음은 마치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계속 이어졌고, 공황에 빠진 그녀의 정신은 스트레스로 미쳐버리기 직전까지 갔다.


스쿠너 위의 사람들에게는 수십 년같이 느껴졌을 수십 초간의 일제사격이 끝나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엘사의 풀렸던 동공이 도로 수축하며 그녀의 앞에 아직 건재한 방벽이 보였다. 그 장면이 온몸의 힘이 풀려 다리를 덜덜 떠는 그녀를 어느 정도는 안심시켰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어께를 건드렸고 엘사는 화들짝 놀라 다리에 힘이 쭉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카이의 얼굴이 그녀의 시야를 채우며 나타나 뭐라고 소리쳤지만 잔뜩 먹먹해진데다 이명까지 윙윙대는 그녀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한 음절 한 음절 끊어서 소리치는 카이의 입술을 보며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일지 유추했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도망친다고? 이제 겨우 해냈다 싶었는데, 결국엔 함대전이 벌어지고 나는 괴물이 될 거라고? 번쩍하고 정신이 돌아온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 선수부 방향을 바라보았다. 선장이 갑판 위를 뛰어다니며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선원들이 마스트 위로 기어 올라가 돛을 펼치고 있었다. 엘사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빽 질렀다. 


“멈춰요-!! 당장-!!”


함미 가까이에 있는 몇몇 선원들의 움직임이 멈췄지만 메인마스트 위로 올라가 돛을 펴는 선원들이나 선수부에서 로프를 당기는 선원들은 그것을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배를 움직일 준비를 했다. 갑작스레 몸에 힘이 돌아온 그녀는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뛰어가려 했지만 뒤에서 카이가 그녀의 허리만큼이나 굵은 팔로 엘사를 감싸 안아 몸을 단단히 붙들어버렸다. 그는 품에서 벗어나려 마구 발버둥치는 엘사의 귓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서서히 청력이 돌아오는 그녀의 귀에 카이의 외침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 - 금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전부 죽습니다! 이건 이미 실패했습니다!”


“당장 놔요!! 저딴 것들은 벽으로 전부 막아버리면 그만이야!! 이렇게 그냥 포기해버릴 수는 없다고요!!”


“저것들을 상대로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기더라도 싸우는 동안 빠른 배들이 따로 떨어져 나와서! 먼저 아렌델로 가버릴 겁니다! 그럼 전부 끝장나는 겁니다! 저쪽이 아니라! 우리가요!”


카이는 엘사의 몸을 한 팔로 단단히 감싸 안은 채 버둥대며 이리저리 하얀 빛을 쏘아대는 그녀의 손목을 자신의 손으로 꽉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갑판 아래로 통하는 계단으로 그녀를 질질 끌고 갔다. 그러자 상반신을 꼼짝도 못하게 된 엘사는 발을 들었다가 내리찍어 카이의 뒤편에 얼음 걸림돌을 만들었고 그녀를 붙든 채 뒤로 걸어가던 카이가 그것에 발이 걸려 품 안의 엘사와 함께 자빠졌다. 순간 카이의 팔에 힘이 약해진 것을 느낀 엘사는 그를 뿌리치고 일어난 뒤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내는 소음으로 가득한 갑판을 지나 선장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지금 당장 배를 멈춰요-!!”


그러자 선장이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싫습니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친 거 아냐? “여왕으로써 명령합니다-!! 당장 배를 멈춰요-!!”


“저는 여왕님을 제 배 위에서 돌아가시게 놔두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 눈 멀었어요-!? 방금도 무사했잖아요-!! 저딴 포탄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요-!!”


“그럼 빙판을 박살내던 그 썰매인간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놈들이 작은 배 타고 쫒아 와서 접현전을 벌이면 막을 방법이 있습니까-!? 여왕님 마법도 안 통하는 인간들 수백 명이 몰려들면 무슨 수로 이기실 겁니까-!!”


엘사는 그것의 실체를 안다. 그건 전신을 덮는 갑옷도 아닌 그냥 장갑일 뿐이다. 다른 신체 부위를 날카로운 창 같은 것으로 공격한다면- 잠깐, 그러면 사람이 죽잖아. -이러면 의미가 없다. 애초에 인명을 희생시키기 싫어서 시작한 작전인데 사람을 죽여 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그냥 장갑이라 하더라도, 그걸 착용한 사람 수백 명이 몰려들어 공격한다면 과연 그걸 이길 수 있을까? 그녀는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한 명한테도 죽을 뻔 했었는데, 수백 명이 달려든다고? 하지만 지금 도망치면 안 되는데. 


엘사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선장은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첫 번째 포격이 지나간 지 5분도 더 지났을 것이다. 두세 번쯤은 더 날아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아직까지 아무런 낌새도 없다. 그는 황급히 배 뒤쪽 방향을 보기 위해 함미 갑판으로 뛰어올라갔다. 어떻게든 배를 멈추고 싶었던 엘사는 그를 쫒아가며 계속 말했다. “제가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어요! 그건 그냥 손에 끼는 장갑인데-” 그런 그들의 눈에 배가 움직여 약간 멀어진 방벽이 가려주지 못하는 각도의 방향에서 다시 수많은 섬광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엘사는 입을 닫고 손을 뻗어 멀어져서 사각이 생긴 방벽을 더 크고 두껍게 만들기 시작했고 선장은 고개를 돌려 다시 “포격이다-!!” 라고 외쳤다. 한 번 포격을 막아본 그녀는 전보다 침착했고, 저편에서 쏘아진 포탄이 방벽까지 도달하는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이 엘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날아오는 쇠공 따위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그 장갑은 어떻게 하지? 이젠 얼려서 막을 수도 없고, 방법이 없나? 아냐, 분명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엘사, 너는 반드시 그걸 생각해내야만-



방벽이 갑자기 부서져 버리고 첫 번째 포탄이 찢어지는 파공성과 함께 엘사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쫒아 함미 갑판 위로 올라온 카이가 엘사의 몸을 덮쳐 바닥으로 쓰러트리고 그녀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듯 웅크리자 그 위로 수많은 포탄과 박살난 얼음 방벽의 파편들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기겁한 엘사는 고막을 미친 듯이 두들겨대는 소음에 괴로워하면서도 방벽을 다시 만들어 배를 지키기 위해 카이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배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수십 초간 진동한 뒤 포격이 끝나고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그녀를 꽉 안고 있던 카이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자 그녀는 얼른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일어나 귓속을 세차게 울려대는 이명에 아미를 찌푸리면서 배를 둘러보았다. 


먼저 잔뜩 얻어맞은 메인마스트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청거리는 것이 보이고 그 밑으로 어느새 일어선 선원들이 포탄구멍이 숭숭 뚫린 갑판 위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선장은 그 사이를 누비며 그들에게 뭐라고 마구 소리치고 있었으며 그의 발밑으로 흥건하게 흐르는 부상자들의 피가 그녀를 현기증 나게 만들었다. 


불안불안하던 마스트가 끝내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자 엘사는 황급히 손을 휘둘러 얼음으로 그것을 보수했다. 그때 뭔가가 발 옆을 툭 치는 감각에 그곳을 내려다보자 갑판 위를 굴러다니는 라운드 포탄의 모습이 보였다. 그 표면에는 희미한 붉은 빛을 주변에 흩뿌리는 문자가 새겨진 작은 가죽조각들이 납으로 용접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식겁한 엘사가 급히 뒷걸음치자 어느새 다가온 선장이 뒤에서부터 그녀의 어께를 붙잡고 몸을 돌려세운 뒤 뭐라고 외쳤다. 하지만 청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그녀는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잘 안 들려요-!!” 그녀가 외치자 선장이 그녀가 자신의 입모양을 알아볼 수 있게끔 음절을 끊어서 천천히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아요-!!” 그러자 선장이 손으로 그녀의 복부를 가리켰다. 고개를 숙여 그곳을 보자 청록색의 두꺼운 옷이 피로 잔뜩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급히 피에 젖은 부위를 더듬어 보았지만 자신이 부상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카이에 퍼뜩 생각이 미친 그녀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카이가 있던 곳을 보았다. 


어른 팔뚝 크기 정도의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그의 등 정중앙에 꽂혀 있었고 그곳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와 선미 갑판 위를 서서히 덮어가고 있었다. 가슴에 어떤 날카로운 것이 박힌 것만 같은 느낌이 든 엘사는 한달음에 그에게로 달려가 무릎을 꿇은 뒤 자신의 팔로 그의 넓은 어깨를 감싸며 귓가를 향해 평생 동안 자신을 돌봐줬던 충직한 집사의 이름을 외쳤다. “카이! 카이! 움직여!” 하지만 엘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실성한 듯이 카이의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제발 죽지 마-!!”



그러나 차갑게 식어가던 그의 몸은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14.



옅은 안개 속 바다 위에는 간헐적으로 들리는 파열음과 잘게 산산조각난 빙판의 파편들이 부유하는 가운데 서던 제도의 전열함 수십 척이 거대한 산맥처럼 그 육중한 거체를 일렬로 죽 늘어세워 위풍당당한 기세를 주변에 과시하고 있었다. 그 산맥의 고봉에 해당할 메인마스트 꼭대기에 매달린 수병의 손에 의해 흔들리는 수기를 보던 제독은 고개를 뒤로 돌려 미즌마스트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왕에게 보고했다.


“전 함대 사격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아직 사거리 안쪽에 있나보지?”


“간당간당하게 걸쳐 있긴 합니다만, 쏘면 적어도 몇 발 정도는 맞을 겁니다. 계속 포격합니까?” 


“아니, 됐다. 그냥 여기 뒷수습이나 하고 잠시 정비한 뒤에 가던 그대로 가자.”


그 옆에서 함장의 말에 무미건조한 태도로 대답하던 왕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간스 태자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추적하지 않는 겁니까?”


“지금 함대 상황이 엉망진창이지 않느냐. 일단 정비를 하는 것이 좋다.”


“콜벳 이하 빠른 배만을 추려서 추적하면 됩니다. 아직 빙판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주력함들은 여기 갇혀있지만 모든 아군 함선이 동결당했던 것은 아닙니다. 원거리에서 초계하던 슬루프와 콜벳들을 모아서 적함을 추적한다면-” 


“그러면 마녀가 본대에서 따로 떨어진 그 작은 조각배들을 잡아먹고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도망가겠지.”


“아직 분명 기회는 있습니다! 운신이 자유로운 함선들에 그 장갑을 용접한 포탄들을  보급한 뒤에 쫓게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계속 떠들어라. 네가 뭐라고 하던 단 한 척의 배도 저 마녀를 쫓아갈 일은 없을 테니.”


간스는 답답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저 배에는 엘사 여왕이 있고, 우리는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녀를 제거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걸 그냥 흘려보내버린다면 그녀는 다음부터는 장갑에 대한 대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로 올 것입니다. 포탄에 용접해 붙인답시고 이미 많은 수량을 소모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모조리 무용지물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아깝지도 않습니까? 그런 희귀한 물건이 무더기로 묻혀 있는 유적은 절대로 흔하지는 않을 텐데요?”


“그 물건은 아직도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마녀가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한다 하더라도, 지금 반스와 한스가 가지고 오고 있을 물건만 있다면 큰 상관이 없다. 그들이 데려온 마법사는 참 재미있는 물건들을 만드는 재주가 있더군.”


`그래서 전쟁을 끝내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전쟁은 언제든지 이겨버릴 수 있지만, 아직 당신이 만족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참으로 역겨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간스는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야 했다. 그때 제독이 왕의 명령에 어떤 의문도 표하지 않고 정비명령을 함대에 하달하는 것이 보이자 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전부 인명을 무슨 파리 목숨처럼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참아야 한다. 그는 아직 13명의 왕자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의 대체품은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그러나 그가 왕좌에 앉게 되는 날, 모든 쓰레기들이 자신의 죄값을 치르리라.


“폐하, 리버풀 후작이 뭔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독의 말을 들은 왕이 시선을 돌리자 그의 눈에 리버풀 후작의 전열함과 그 위에서 발광하듯 이쪽을 향해 팔을 흔들어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은 자기의사표현을 독특하게 하는 버릇이 있군 그래.”


“천재일우의 기회가 눈앞에서 날아가고 있는데 당연히 미칠 지경이겠지요. 제가 그의 입장이라도 저럴 것 같습니다. 아,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지 수기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단독, 소함대, 추적, 적함이라는군요. 그러니까 자기 배들만 추려서라도 적함을 추적하겠다는 말 같습니다.”


“그냥 닥치고 그 자리에 박혀서 구경이나 하라고 해라.”


곧 제독이 뒤를 향해 큰 소리로 신호를 보내라 말하고, 기함의 신호를 전달받은 후작이 전보다 더 난폭하게 사지를 휘둘러대다가 결국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현측에 매달린 보트를 타고 서서히 수면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곧 후작씩이나 되는 귀족이 일반 수부들과 함께 노를 저어대는 진귀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더욱 신기한 건, 보트에 탄 그 어느 수부들보다 그 귀족이 가장 열심히 노를 저어댄다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한심한 눈초리로 보던 왕은 하인에게 모기를 때려잡으라고 하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저거 쏴버려.”


곧 포수들이 함수의 대구경 카로네이드 포에 들러붙어 서서히 포구 방향을 보트 쪽으로 향하게 하고, 장약과 포탄을 그 안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후작은 설마 진짜로 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잠깐 멈춰 섰다가 다시 노를 저어 다가오기 시작했지만 포수가 각도기를 들이대며 포각을 맞춰 배를 정조준하자 잽싸게 보트에서 뛰어내려 개헤엄을 치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 했다. 곧 포성과 함께 사람 머리 크기 두 배는 훌쩍 넘길 크기의 거대한 철구가 쏘아져 날아가 보트를 박살내고 거기에 휘말린 후작과 수부들이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허우적대며 다시 수면 위로 나타난 뒤, 결국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자기 배로 헤엄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인 왕은 자신에게 유쾌한 기분을 선사해준 대포를 칭찬했다. “화끈해서 좋구만. 징징이들을 혼내주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로군.” 그는 정신없이 오던 방향과는 반대로 헤엄쳐 도망가는 후작과 그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박살난 보트의 파편들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마녀가 탄 배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적함은 분명 침몰하지 않았다고 했지?”


“예. 원래 요즘 배는 좀 두들겨 맞아도 잘 안 가라앉습니다. 내부가 난장판이 되고 승무원들이 거의 다 죽어버려도 잘만 떠다니지요.”


왕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피해를 입었을 것 같나?”


제독은 잠시 속으로 뭔가를 계산하더니 곧 자신이 아는 것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쏜 대포의 수는 굉장히 많기는 했습니다만, 이 거리에서의 포격은 사실 명중탄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첫 번째 포격을 마법으로 막아냈다고 하니 결국 좀 더 멀어진 두 번째 포격 때만 피해를 입었을 텐데, 많이 맞아봤자 서른 발 가량일 겁니다. 거기에다 목표물이 작은 상선이라고 했으니까 아마 많아야 수십 명 죽고 갑판에 구멍 몇 개 뚫리고 말 겁니다. 정말 운이 없다면 마스트나 러더를 잃었겠지만, 멀쩡히 도망가는 것을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난데없이 그게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진 제독은 왕에게 물었다.


“후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기 멀쩡히 살아 수영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 배에 타고 있을 마녀를 말하는 거다. 아직 죽으면 안 되지. 앞으로 그녀가 해줘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


비축분 끗.


요 다음부터는 천천히 연재될 예정;; 미안;;



그리고 내 이런 똥필력으로 쓴 글이라도 읽어주고 댓글 달아주고 재밌다고 박수쳐주는 형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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