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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전쟁 2부 25 (2/2).txt

Neb(111.206) 2014.03.22 16:14:00
조회 1472 추천 20 댓글 10

요번편 길이가 너무 갈어서 잘라서 올렸으니 전반부를 먼저 봐주세여 

25 - 1/2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830374




25 - 2/2


“이제 네 말을 들을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고, 나는 입이 매우 무거운 사람이란다. 이래 봬도 족장이라서 할 말 안 할 말 구분은 할 줄 알거든. 그러니 안심하고 말해보렴."


“음,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소녀가 여전히 우물쭈물하며 말을 망설이자, 그녀를 지켜보던 파비는 한 차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네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는 대충 짐작이 간단다. 네 아버지께서 성문을 봉쇄할 거라고 하셨을 때부터 네게 이런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왔었거든.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가 껄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누구나 겪는 일이란다. 단지, 다른 사람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하나씩 풀어나가는 문제들을 너는 한꺼번에 겪게 된 것뿐이야."


“아니에요, 그냥, 이건 저나 파비 할아버지가 뭘 한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서…."


“그런 고민은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마음이 정말 많이 편해진단다. 굳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더라도, 덜 아파지면 좋지 않겠니?"


안나는 입을 닫고 침묵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 분이 지나고 내서야 갑자기 입을 열어 불쑥 말했다. 


“…세상엔 왜 이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을까요? 아니, 원래 사람들은 다 나쁜가요?"


파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음? 그게 정확히 어떤 사람을 말하는-." “나쁜 사람들만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이상한 사람들도 많아요. 제게 왜 이런저런 이상한 걸 끊임없이 요구하는 거죠? 이유를 물어보면, 제가 그들로부터 뭔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저는 달라고 한 적 없었거든요? 왜 자기들 멋대로 주고 저한테 원하는 걸 요구하는 거죠? 제가 무슨 기계인가요? 뭔가를 집어넣으면 그들이 요구하는 걸 뱉어내는, 그런?" “잠깐 진정하렴. 하나씩 물어봐야-" “아니, 정말 웃긴 게, 거의 모든 사람이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데, 정작 자기가 하는 짓거리는 별로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그럴 거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요? 자기 자신을 욕하는, 일종의 정신적 자해 같은 건가요!? "


한 번 말문이 터진 소녀의 입에서는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기 힘든 갖가지 의문들이 쏟아져나왔고, 그녀가 점점 더 흥분함에 따라 그녀의 말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그걸 멈추기는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한 파비는 그냥 당분간은 입을 닫고 조용히 듣기만 하기로 했다.  


“아니, 그리고 자꾸 눈치껏 알아서 하라고 하던데,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요! 딱히 말 못할 상황도 아니었는데, 그럴 거면 입은 왜 달려있대요!? 더 웃긴 작자들도 있는데, 단지 제가 공주라서 절 싫어하는 인간들이에요! 제가 공주라서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사실 공주라서 딱히 좋은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렇게 시기하는 걸까요!? 뭔가 뜯어먹을 게 없을까 제 주변만 빙빙 돌면서 손이 닳도록 아첨하는 역겨운 인간들도 있지요! 쉬운 말 놔두고 일부러 어려운 말만 쓰면서 자기 잘났다는 걸 남들에게 알려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인간들도 있고요! 왜 인생을 그렇게 사는 걸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편 가르기를 왜 이렇게 좋아하나요!? 그냥 다 같이 잘 지내면 좋잖아요? 아니, 무슨 거창한 사상이나 커다란 이득 같은 게 있으면 모르겠는데, 쪼그만 티파티에서도 너는 누구 편, 나는 누구 편, 이렇게 지들끼리 편을 갈라서 싸워요!! 대놓고 막 욕하고 때리고 이러지는 않지만, 차라리 그러는 게 훨씬 더 나을 정도로 비열하고 더러운 짓거리들을 하더라고요!! 그러지 말라고, 다 같이 잘 지내자고 하니까 뒤에서 저보고 위선자라고 욕을 해요!!


아니, 그래도 그때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어요. 적어도 누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알아볼 수 있었고, 이런 사람한테는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걸 천천히 배우고 그걸 그대로 하기만 했으면 됐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녀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은 뒤, 황당하다는 듯 외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이번엔 정치인들이랑 있게 되니까, 이번엔 누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부터를 철저하게 숨기거나, 원래 성격과 다른 성격인 척을 해대더라고요! 아니 그 전에, 그게 가면인지 사실 진짜인건지부터가 헷갈려서 미쳐버리겠어요!! 게다가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싶은 말이랑 전혀 상관없는 말들만 늘어놓는데, 신기하게 자기들끼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다 알아먹어요! 난 도대체 그게 어떻게 그 뜻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모르겠다고 하면 바보 취급당할 게 뻔히 보여서 묻지도 못하겠고, 못 알아들으면 결국 그것대로 바보라고 생각할 텐데, 그러면 결국 이러든 저러든 바보 되는 거잖아요!!


한스 보고 정말 세상에 저렇게 나쁘고 교활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사실 그 자식은 그냥 이도 저도 아닌 멍청이였어요! 모두가 다 한스보다 백만 배는 더 똑똑하고, 백만 배는 더 교활하더라고요!! 정말 그것들 때문에 미쳐버리겠어서, 정말 돌아버릴 것 같고 너무 화나고 짜증 나고 정말 누군가 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서, 가끔 엘사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분해하다 못해 이젠 울먹이기 시작한 안나가 훌쩍거리며 입을 멈추자, 파비가 타이밍 좋게 그녀에게 손수건 하나를 내밀었고, 그녀는 그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든 뒤 팽 하고 한번 코를 푼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갈 때마다 언니는 항상 짜증 나고 피곤해서 거의 뭐 죽으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그야 여왕이시니까,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래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뭔가 위로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기분 안 나쁜 척하면서 좀 밝은 얘기를 꺼내도 그냥 무시당하기만 해서, 크리스토프나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뭔가, 그래요,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했어요. 너무 싫었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엘사의, 국정이나 뭐, 다른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 상대가 돼주려고 찾아갔었어요. 그런데, 전 진짜 엄청 고민하고 노력했는데, 그런 저보고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진짜 너무 울컥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까지 막 내뱉었는데, 좀 지나고 나니까 어, 이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싶어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도망가 버리고, 나중에 다시 사과하려고 방으로 찾아가니까, 이번엔 엘사는 칼을 맞아서 죽기 직전이었고, 웬 괴상한 남자가 방 안에 터져 죽어 있었어요!! 이건 또 대체 무슨 미친 상황이래요!?


어쨌든, 그러고 나서, 정말 이런 생각 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엘사가 아파서 누워 있으니까 자주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좀 좋았어요. 아니, 사실 무지 좋았어요. 그런데 나랑 같이 있을 때도 항상 나랏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바라는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중대한 위기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전 정말, 조금의 관심만, 아주 조금만 절 신경 써줬으면 했는데, 동생이 가진 문제 같은 사소한 것 따위는 엘사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나 봐요! 게다가 다 나으니깐 바로 배 타고 다른 데로 휙 가버리더라고요! 그것도 카이까지 같이 데리고요!


정말 너무 서운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엘사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들 테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내가 이해해야지 하면서 공부나 하려고 하는데, 누가 갑자기 저를 정치판에다 쑤셔넣었어요! 맙소사, 그것도 실무직에, 꽤나 높은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고깝게 보는 방식으로! 다들 저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데, 정작 저랑 뭔가 직접 말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뭐 변명하거나 할 수도 없고, 일은 진짜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일주일 안에 적응 끝내라 그러고,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도, 그래도 딱 한 명 외무관이라고, 제 편이 돼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정말 너무나 다행이었어요. 다 지나갈 거라 그래주고, 못하면 위로해주고, 가끔 잘하면 칭찬도 해 주고…. 점점 괜찮아져 가는데, 그러다가, 그러다가 엘사가 돌아왔는데, 마, 맙소사,"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던 안나는 갑자기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카이가 죽어버렸어요-!! 태어날 때부터 쭉 같이 살았던 사람인데, 그냥 갑자기 시체가 돼버렸어요!! 그런데, 정말 너무 슬퍼서 미쳐버리겠는데도, 엘사는, 거의 엘사 때문에 죽은 건데도, 미안하다고 하지도 위로해주지도 않고 그냥 도망가버리고!! 그런데, 하하, 그 다음 날은 더 심하더라고요. 우리 어릴 때부터 같이 살았던, 바로 그 카이가 죽었는데, 아주 멀쩡한 얼굴로 회의장에 매우 침착하게 납시더니, 회의 내내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그냥 사뿐히 무시하고, 신하들한테 그게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주절대시는데, 하하하, 정말 속으로 웃음밖에 안 나오던데요? 미친 거 아니에요? 진짜 머리가 완전 뒤집어져서,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방으로 찾아갔지요. 그래도 정말 험한 말은 꾹꾹 참으면서 차분히 말하려는데, 하, 또 무시당했어요. 그래서 터져버렸어요. 정확히 뭐가 어떻게 터졌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터져버렸어요. 정신을 차리니까, 엘사는 울고 있고, 나는 미쳐있고, 아, 그러려던 게 아닌데,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도망쳐서 내 방으로 가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해보니까, 그때서야 알겠더라고요.


저는, 변해버린 거예요. 그것도 제가 그렇게 싫어하던, 그런 사람들처럼…. 이젠 저 자신이 너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정말, 으흐으으…."


그녀는 터져 나온 울음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슬픔으로 일그러진 눈가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흐느끼기만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그 모든 것들을 조용히 듣고 있던 파비는 조용히 식탁 위로 기어올라간 뒤, 안나 쪽으로 건너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작달막한 트롤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던 소녀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뒤, 늙은 트롤은 포옹을 풀고 나서 어디에선가 손수건을 하나 더 가져와 그녀에게 내밀었고, 안나는 계속 훌쩍이면서도 그것을 받아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천천히 닦아냈다. 그러자 그런 그녀를 보던 늙은 트롤이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괜찮다, 안나. 무서워할 건 전혀 없단다. 너는 당연히 겪어야 할 일들을 겪고 있는 것뿐이야."


눈물을 한 번 더 쓱쓱 훔쳐낸 안나는 아직 물기가 어려있는 목소리로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음, 일단 내 말을 들어보려무나. 저기 쌓인 책들이 보이니?"


안나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젖은 눈을 끔뻑이며 파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동굴 안쪽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책들이 보였다.


“어떤 착한 사람들이 공짜로 나눠 주고 간 것들인데, 거기에는 제법 오래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도 처음 듣는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쓰여 있더구나. 그 이야기들 중 지금의 너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자기 나름의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지. 리먼 제국에 사는 하펜쇼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인데, 그가 쓴 책에 아주 재미있는 우화 하나가 적혀있었단다.


바람 부는 어느 겨울날 밤의 깊은 산 속, 고슴도치 한 마리가 추위에 몸을 벌벌 떨면서 따뜻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단다. 그러다가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다른 고슴도치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고, 그 두 마리의 고슴도치는 나무뿌리가 얽힌 곳에 낙엽이 덮여 만들어진 작은 보금자리에 같이 들어가서 서로 체온을 나누기로 했지. 


그 안에서 그들은 온기를 찾아 서로에게로 가까이 갔단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몸은 점점 더 따뜻해졌고, 그들은 계속 서로에게 다가갔어.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날카로운 어떤 것에 찔려 아픔을 느낀 뒤 다시 서로에게서 멀어졌지.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만 거야. 그러나 거리가 멀어지자 그들은 다시 추위에 벌벌 떨게 되었고, 그 두 마리의 고슴도치는 서로의 가시에 찔리면서도 최대한 서로 가까이 갔지. 그리고 너무 아파서 다시 떨어지고, 추워져서 다시 다가가기를 반복하면서 가장 적당한 거리를 찾아내었단다."


잠시 말을 멈춘 파비가 안나를 유심히 바라보자, 물기 어린 눈을 연신 깜빡이며 뭔가 알듯 말듯 헷갈리다는 표정을 짓는 소녀의 얼굴이 트롤의 맑은 눈에 비쳤다. 파비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한 차례 피식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리먼 제국의 철학자가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그 고슴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더구나. 가까이 다가가면 생각의 차이라는 가시에 상처 입고, 멀리 떨어지면 외로움이라는 추위에 벌벌 떨게 되지. 그래서 사람은 가시에 찔리고, 추위에 떨면서 천천히 자신에게 알맞은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깨닫게 된단다.


세상엔 나쁜 사람도 이상한 사람도 없이 그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란다. 네가 입었던 상처들은 단순한 인식이 아닌 깊은 공감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겪은 것들이야. 물론 오랫동안 성 안에만 갇혀 외롭게 추위에 벌벌 떨었을 네가 사람의 온기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추위를 조금만 더 참으며 한 발짝 떨어져서 그저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려무나. 그러다 보면 너에게 맞는 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게다."


“하, 하지만, 정말 나쁜 사람들이 있는 걸요? 그 아까 말했던 외무관, 보르그 그놈은 절 파, 팔아넘겨 죽이려고까지 했어요! 저한테 정말 잘 해줘서 믿었었는데, 제 앞에서는 항상 친절했었는데, 뒤로는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요! 그게 나쁜 게 아니면 대체 뭔데요?"


“나쁘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른 거란다. 네게 나빠 보이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 있지. 그 어느 누구도 어떤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단다. 내가 그 사람을 잘 몰라서 확실히 뭐라 말하기는 뭐하다만은, 그래도 그 사람 나름의 사정이라는 게 있지 않겠니?"


안나는 찻잔 속의 찻물 위에 둥둥 뜬 채로 천천히 회전하는 하얀 꽃을 멍하니 보면서 생각했고, 파비는 그런 그녀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작은 입술이 열리며 소녀의 가는 목소리가 동굴 안을 다시 울렸다.


“…좋아요. 그들이 아무리 나쁜 사람들이더라도, 그냥 다른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어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요? 그 사람들처럼 돼버린 저는요? 심지어 저는 엘사가 상처받는 걸 기뻐하기까지 했었다고요! 저 자신이 너무나 역겹게 느껴지는데, 이렇게 변해버린 저는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무슨 이중인격자도 아닌데, 제가 저 자신이랑 다르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건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단다. 다행하게도, 지금은 네 심장이 아닌 머리에만 가시가 박혀 있거든."


안나가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하자, 파비는 킬킬 웃으며 첨언했다.


“사람의 마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단다. 네가 항상 생각하고 사는 머릿속에 있는 마음과,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는 심장에 있는 마음이지. 그리고 사람의 마음 속에 박혀있는 날카로운 가시들을 빼내는 것은 마법을 치유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단다. 심장에 박혔다면 빼내기가 아주 어려웠겠지만, 머리는 그리 어렵지 않아서, 내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바로 빼낼 수 있으니까, 겉으로 보이는 네 성격이 변했다고 해서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단다. 사실, 그걸 변했다고 해야 하는지도 별로 확실치가 않구나. 겉껍질이 아닌 진실된 너를 이루는 심장 속 마음은 아직 다치지 않았으니까."


“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가 다친 거랑 제가 변한 거랑은 대체 무슨 상관이죠? 원래 저는 제가 상처입었다고 해서 남들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상처주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었다고요!"


“지금 네가 그렇게 남들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가시에 상처 입은 네 마음이 자기 가시를 세워서 자신을 지키기 시작하는 거란다. 아직은 서툴러서 원하지 않는 때에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너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숱한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많이 배운 뒤에는 네가 원할 때 가시를 세워 네게 상처를 주려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을 게다. 그러니 그 가시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그것 역시 네 마음의 소중한 일부니까."


소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엘사를 상처입히며 기뻐하던 그 음습한 욕망이 자기 자신의 일부니까 소중히 하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안나가 그런 생각을 하자, 그녀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어낸 파비가 느긋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안나, 너는 착하게 자란 아이니, 지금 당장은 그 가시가 네게는 굉장히 추해 보일 수도 있단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 말을 깨닫게 될 거야.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뒀다가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만 가끔 꺼내보거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하지만 네가 원래 갖고 있던 그 가시를 뽑아내려 하지는 마려무나.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힘까지 같이 뽑아내 버리는 행위란다."


솔직히 별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살았고 현명하기로 소문난 파비가 저렇게 말해버리면, 그녀로서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내 말을 깨닫게 될 거야'라니, 그런 말은 너무 치사하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약간 분한 표정을 짓는 안나를 본 파비는 얼굴에는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띤 채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가시를 네 마음대로 휘두르고 다녀도 된다는 것은 아니란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가시를 휘두르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가시나 너 자신의 가시가 네 심장 안에 박혀버릴 테고, 그렇게 되면 너는 그 가시에 휘둘려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그러면 대체 그걸 쓰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그것을 필요할 때만 휘두르되, 네 심장 속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 된단다."


“그 심장 속 마음이 뭔지조차 모르는데, 뭘 어떻게 노력해야 하죠?"


“평소에 잘 떠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알기 어렵다는 건 아니란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네 경우에는 오히려 아주 쉽지. 네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니?"


안나의 머릿속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갖가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복도에서 뛰놀기, 그림과 대화하기, 난간 타고 계단 내려가기, 초콜릿 등등. 내가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걸까? 아니다. 그녀는 이미 무언가를 위해 한 번 삶을 포기한 적이 있다. 엘사. 그녀는 언니를 생각했다. 그녀에게 엘사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엘사,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엘사에요."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바로 네 심장 속 마음이란다. 봐라, 전혀 어렵지 않지? 심장 속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무언가에 휘둘릴 때 붙잡을 것이 없어 속절없이 변해 버리곤 하지만, 너는 그들과 다르단다. 네가 가시에 휘둘릴 때 엘사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면, 그 마음이 네 중심이 되어 변화로부터 너를 지켜줄 게다."


안나의 머릿속에 사랑해 마지않는 엘사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녀의 마음속에 따뜻한 감정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곧 언니와의 수많은 갈등이 생각나면서 온기가 퍼져나가던 마음을 차갑게 식혀 버렸다. 안나를 귀찮아하던 엘사, 안나를 무시하던 엘사, 카이가 죽었는데도 태연히 국정을 보던 엘사, 안나보다 나랏일을 더 먼저 생각하던 엘사 등 안나가 너무나도 싫어하던 모습의 수많은 엘사들이 머릿속에 나타나는 동시에, 그런 엘사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며 마구 상처입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안나는 다시 절망에 빠져 버렸다.


“…제겐 그것도 너무 힘든 일이에요, 파비 할아버지. 언니는 저랑 너무나, 정말 너무나 많이 달라서…. 제가 계속 세상에서 언니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시 울먹이며 침울한 어조로 말하는 안나를 보면서 고심하던 파비는 갑자기 테이블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린 뒤, 동굴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그를 따라 굴러왔던 커다란 눈덩이로 걸어가며 말했다. 


“역시 이걸 꺼내오기로 한 건 잘한 일 같구나. 그 문제에는 이게 제법 많은 도움이 될 게다."


훌쩍이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쳐내던 안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파비와 그 커다란 눈덩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 눈덩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희미한 푸른 빛을 발하는 문자들이 적힌 종이들을 하나씩 떼어내던 파비는 마지막 종이 하나만을 남겨둔 뒤 그 종이 위에 한 손을 얹고 나직한 목소리로 고대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 종이에 적혀있던 문자의 푸른 빛이 일순 강해져 동굴 안을 환하게 밝히더니, 잠시 후 눈덩이가 박살나며 눈가루가 사방으로 튀는 것과 동시에 안나의 귀에 익숙한 명랑한 목소리가 동굴 안을 크게 울렸다.


“내가 돌아왔다!!"


“올라프!?"


“오, 안나? 정말 오랜만이야! 너무너무 반가워!"


눈덩이 안에서 튀어나온 작달막한 3단 몸통 눈사람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와 의자에 앉은 소녀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고, 곧 안나의 배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며 그녀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커헉," 의자와 함께 동굴 바닥에 나동그라진 안나는 통증으로 얼굴을 시뻘겋게 달구며 배를 붙잡고 괴로워했고, 그 사태의 원흉인 올라프는 얼굴을 그녀의 가슴에 파묻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따뜻한 체온을 만끽하다가,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안나의 상태를 파악하고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미안, 정말 미안해, 안나! 내가 좀 너무했지? 지금 상태가 좀 적응이 안 돼서 그래!"


“아으, 으, 괘, 괜찮아, 올라프! 하하, 힘이 많이 세졌는데?"


비틀거리면서도 올라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난 안나는 쓰러진 의자를 다시 일으켜 세워 식탁으로 가져가며 올라프에게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다시 보니까 정말 너무 반갑긴 한데, 왜 계속 여기에 있었던 거야? 크리스토프는 네가 이미 멀쩡해졌다고 말하던데, 계속 안 와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혹시 몸이 다 낫지 않았었던 거야?"


“아니야! 아니야! 몸은 말짱했었는데, 그냥 여기서 뭘 더할 게 있어서 그랬어!"


“할 거라니? 여기에서 대체 뭘?"


“으음, 좀 더 쓸모 있어지는 거랄까? 봐! 나 이제 무지 딱딱하고 무지 빠르고 무지 힘 세!"


그렇게 말한 올라프가 몸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가 어디서 커다란 돌덩이를 들고 돌아와서는, 그 가느다란 나뭇가지 손으로 힘차게 돌을 내려치자 굉음과 함께 돌이 산산조각났다. 나뭇가지가 암석을 까부수는 그 기적적인 광경을 본 안나는 경악으로 입을 쩍 벌렸고, 그런 그녀의 귀로 웃음기를 띤 늙은 트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올라프가 역시 자기도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세지고 싶다고 말하더구나. 그래서 내가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저 녀석의 몸을 살펴보니 곳곳에 이것저것 더해볼 여지가 있었지.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살짝 손봐줬는데, 저 녀석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참 다행이구나."

 

안나에게 그의 말소리가 들리자 조금 전에 그에게 엘사에 관해 물어봤던 것이 생각났고, 그러자 지금 자신에게 올라프를 보여준 파비의 의도가 궁금해진 그녀는 그에게 질문했다.


“어, 그러니까 그 올라프가 세진 거랑 제가 엘사랑 다시 사이좋아질 수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죠?"


“올라프의 힘이 세진 게 아닌, 올라프 자체가 바로 그 대답이란다."


안나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인자한 미소를 짓는 파비와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멍청하게 눈만 끔뻑거리는 올라프를 번갈아 보며 그 말이 무슨 뜻일지 한동안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어,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으음, 뭐, 그러면 그냥 말로 풀어서 설명해 주마. 일단 다시 자리에 앉도록 하자."


파비는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고, 그것을 들은 안나와 올라프는 테이블로 와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올라프가 찻잔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흰 꽃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꽃이네? 먹으면 되는 거야? 맛있어 보인다." “어, 그거 먹는 거 아냐, 올라프." “응? 그럼 왜 그걸로 수프를 끓였어, 안나?" “그건 수프가 아니라, 일종의 차인데, 어, 그 꽃에서 물을 빼서 마시는 거야." “왜 복잡하게 그런 짓을 해? 그냥 씹어먹으면 되잖아." “그건, 음, 너 주스랑 커피가 뭔지는 알지? 너 그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잖아? 그거랑 비슷한 거야. 그냥 꽃만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잠깐, 뭐지? 내가 왜 이걸 설명하고 있지?"


올라프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안나는 다시 파비를 돌아보며 원래 하던 말을 계속 하려고 했다.


“어, 어쨌든, 그 설명해주겠다고 하셨던 걸 말씀해주세요."


“킬킬, 재밌어보이는데 계속 하지 그러니?"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니잖아요! 전 심각하다고요!"


안나를 보고 낄낄대며 웃던 파비는 그녀가 정색을 하고 나서야 설명을 시작했다.


“뭐, 그래. 그러면 말로나마 대충 풀어서 설명해주마. 내가 올라프를 보여준 건 너희 자매가 과거에는 친하게 지냈었다는 것을 상기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란다. 그때나 지금이나 너희가 서로 다른 건 변함이 없는데, 왜 지금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 한참 전에 어릴 때를 말하는 거라면, 그때는 사실 서로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았었어요." 


“뭐, 그때가 아니더라도, 올라프 말을 들어보면 여름날의 그 사건 이후에도 너희는 한동안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하던데."


“그건, 그때는 아직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잘 몰랐었을 때니까요!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여러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엘사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제게 문제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냥 그때처럼 지낼 수만은 없어요."


“누구 한 명에게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너희 둘 다 문제가 조금씩 있는 거란다. 뭐, 모든 사람은 조금씩 부족한 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지. 다들 가지고 있는 단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그래도, 나는 확신한단다. 너희 자매의 그 부족한 점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 아주-"


파비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계속 말했다.


“-약간의 사랑만 있으면 말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서로 붙어있기만 하렴."


안나는 이런 말을 어디서 들어본 적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냥 붙어있기만 한다고 해서 엘사나 제가 변할 것 같지는 않은걸요? 저번만 해도, 엘사는 날 계속 무시했었고, 저는 막 미쳐서…. 막 그렇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전 저 자신이 싫어져서 죽고 싶어져버릴지도 모른다고요…."


“지금 나는 너 자신이나 엘사를 바꾸라고 하는 건 아니란다. 왜냐면 사람의 심장 속 진짜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저 말하려고 하는 건, 사랑은 아주 이상하고도 강력한 힘이라는 거란다. 사람들은 흥분하거나, 무서워지거나, 화나게 되면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하지. 그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그때, 너희가 조금의 사랑만 서로에게 보여준다면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단다. 왜냐면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거든.


뭐, 어떻게 보면 너희 둘 다 부족한 점이 조금씩 있어서 다행이구나. 부족한 점이 있는 사람만이 다른 부족한 점이 있는 사람을 고칠 수 있으니까."


파비가 말을 마친 뒤, 안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고심했지만, 다른 문제가 자꾸 그녀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아무리 생각해도 단지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러려면 일단 서로 붙어 있어야 하잖아요? 만약, 정말 만약에 엘사가 저와 좀 더 비슷한 언니였다면 모르겠지만, 엘사와 저는 너무나도 많이 다르다고요. 가까이 가면, 그걸 가시에 찔린다고 하나요? 어쨌든 자꾸 그런 일이 일어나서 너무 아픈 걸요…."


그 말을 들은 파비가 대답을 떠올리려 고심하고 있자,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올라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 안나? 이건 단순히 내 생각이긴 한데, 내가 그거에 대해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저번에 말했었잖아?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녹아줄 수 있다고 말야. 너도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서는 녹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파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낄낄 웃으며 아직 헷갈리는 표정의 안나를 향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올라프가 바로 맞는 말을 한 것 같구나, 안나. 생각이 다른 사람과 정도 이상으로 가까이 붙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것을 감내해야 한단다. 일단 아픔을 참으며 다가서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다 보면, 그 고통도 언젠가는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단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너희가 서로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게다."


그제서야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은 안나를 본 파비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안나는 그 뒤에도 한참동안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계속 이런저런 생각을 했고, 지루해서 몸이 근질거리던 올라프가 결국 자기 앞에 있는 찻잔 안의 꽃을 집어들어서 입안에 털어 넣었다가 괴성과 함께 뱉어낸 뒤, 밖으로 나가 입에 눈을 한 입 담고 왔을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입을 열어 다시 말을 꺼냈다.


“어, 음, 감사해요, 파비 할아버지. 뭔가가 알 것 같아요. 사실 완전히 다 알게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그런, 음, 어쨌든 다른 것들은 제가 앞으로 이것저것 겪으면서 깨달아야 하겠죠? 흐으- 일단 가서 언니한테 사, 사과부터 해야겠어요. 맞죠?"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하는 게 맞겠지. 그리고 자매간에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기엔 아주 적절한 화제같기도 하구나."


“어, 그런데, 제가 진짜, 엄청, 너무나 심한 말을 해버렸었는데 대체 뭘 어, 어떻게 사과해야 하죠? 이거 진짜 감도 안 잡히는데…. 안녕! 저번엔 너무 미안했어! 뭐 이렇게 쾌활하게? 아니면 무릎 꿇고 막 간절하게 미안! 내가 죽일 년이야! 흐어어엉, 하고 울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건 어때요? 아니면, 어-"


말꼬리를 흐리던 안나가 혼자 사과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자,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구경하던 파비는 잠시 기다렸다가 스리슬쩍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내가 비록 너희 자매를 자주 보지는 못했다만, 알면 알수록 둘이 닮았으면서도 참 다르기도 하구나. 너는 겉은 부드럽지만 같지만 심지가 강하고, 엘사는 겉은 딱딱하지만 그 안쪽은 약한 걸 보면 말이다."


“어라? 엘사가 얼마나 마음이 강한데요? 이번만 해도, 정말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을 해치는 일을 결국 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던데, 으, 저도 엘사가 그렇게 되는 건 너무나 싫기도 하고, 사실 엘사 성격에 그런 건 절대로 못 할 거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음,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번에 듣기로는…. 그, 처, 처형을, 음, 역시 사람 죽는 일은 말하고 싶지가- 어? 왜 그러세요?"


언니에 대해 한참 떠들던 안나는 파비의 표정이 매우 심각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말을 잠깐 멈춘 뒤 그 이유를 물어보았고, 파비는 황급한 어조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엘사가 사람을 해치기로 했나? 자기 자신의 의지로?"


“아, 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전쟁이…."


“전쟁이라고? 그러면 엘사가 자기 힘으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단 말이냐?"


“아뇨! 아뇨, 아직은요…. 하지만 일단, 음, 이미 한 명을 주, 죽이기도 했고, 음-"


“이미 죽였다니, 구체적으로 좀 말해주렴."


“어, 불행한 사고랄지, 전에 어떤 사람이 성에 몰래 들어와서 엘사를 해치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어쩔 수 없이-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엘사가 살려면 말예요. 그리고 그것 말고, 음, 직접 주, 죽인 건 아니지만 이번에 사람 한 명이 엘사 명령으로 그, 처, 처형을 당한 것 같아요."


늙은 트롤은 의자에서 풀쩍 뛰어내린 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동굴 안을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이건 아니야. 선왕께서 얼마나 많이 노력하셨는데, 그녀들이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고통받았는데, 결국 그 일이 일어난다고? 그녀의 마법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그는 그러다가 갑자기 몸을 안나 쪽으로 돌리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안나, 지금 엘사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단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을 해치는 일은 자기 심장에 대못을 박는 일이나 다름없단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직은 늦지 않은 것 같지만, 전쟁 동안 그녀가 여러 사람을 해치게 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말 거야. 선왕께서 그녀의 심장 주위에 둘러놓았던 단단한 벽이 무너지고, 마음 가장 깊숙한, 어두운 곳에서 무시무시한 냉기가 새어나와 그녀의 심장을 완전히 얼려 버릴 게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 그랬다간 그녀의 안에서 나온 폭풍이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지도 몰라." 


“어, 잠깐, 뭐라고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어서 말해주렴. 그녀가 언제 또 사람을 해치게 될 것 같으냐?" “-어, 글쎄요? 오늘이, 4일이니까 아마 내일 서던 제도 함대를 막으러 출항한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시간이 없구나. 지금 당장 그녀에게로 가거라. 이미 자기 의지로 사람을 죽였다니, 그녀의 심장은 지금도 얼어붙는 중일 게다!"


다급하게 말하던 늙은 트롤이 안나의 옷깃을 잡고 문 쪽으로 잡아끌기 시작하자,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파비 할아버지가 이렇게 서두를 정도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올라프가 따라왔고, “어, 어? 무슨 일이야? 안나, 같이 가!" 밖으로 나온 파비는 목청껏 소리높여 크리스토프를 불렀다. 곧 그가 순록 한 마리와 함께 뛰어오자, 파비가 급히 말했다.


“안나를 에렌델로 데려가거라.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서두르도록 하고!"


“어, 갑자기 왜요?"


“지금 시간이 촉박해서 다 설명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어쨌든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일단 따라 나오긴 했지만, 안나는 아직도 뭐가 뭔지를 모르겠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파비 할아버지? 왜 제가 에렌델로 가야 하는데요?"


“가서 엘사의 심장을 녹이고,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그 미친 짓을 그만두게 해야 한단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 중인데-" “일단 가서 네 언니와 진중히 대화를 나눠 보거라! 그러면 알게 될 게야!" “무, 무슨 마음의 문제인가요? 그러면 파비 할아버지도 같이-" “이건 머리의 문제가 아닌 심장의 문제라서 나는 도움을 줄 수 없단다! 오직 진정한 사랑을 담은 행동만이 얼어붙은 심장을 녹일 수 있으니까!" “어, 어? 그 엘사가 저번에 저한테 했었던 그거요?"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어서 가거라, 어서!"


파비가 계속 밀어대는 통에 안나는 결국 크리스토프와 함께 스벤의 등 위로 올랐고, 곧 어리둥절한 표정의 두 사람과 순록 한 마리,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달리는 눈사람 하나가 쏜살같이 튀어가 밤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서서 그쪽을 바라보던 늙은 트롤은 한숨을 푹 내쉰 뒤, 간절한 어조로 혼잣말했다.


“제발, 너무 늦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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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으씻-팔 존나 오글오글;;;;


존나 긴데 재미는 없고 존나 오그라들기만 하네 씻-팔


난 역시 이런 글 적는 재주는 없는 듯 그래도 전개상 없으면 이상해져서 뺄 수도 없고 싯팔




일단 언어와 사투리에 대해. 저번에 내가 첨언에다가 언어 설정에 대해 짤막하게 쓴 거 있지? 그거랑 똑같음. 저쪽 중부어 동남쪽 사투리는 한국어 동남 방언, 중부어 북쪽 사투리는 한국어 서북 방언 이런식으로 표현한 거고... 근데 정작 나는 서울사람이라 틀린 데가 많을 것 같긴 함... 그래도 좀 봐주셈. 









그리고 화차의 경우에는.... 사실 저 시기 서양놈들이 저런 형식의 화차를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트럴 전통차라고 생각해 주세여.









그리고 안나의 성격에 관한 첨언. 근데 이거 너무 길다; 


게다가 안나를 음, 약간 모자란 사람 취급하고 있어서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사실 세상 어떤 사람이든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그리고 그게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그 선량하고 발랄한 안나는 없었을 거야. 나도 안나 존나 좋아함! 안나-후-아크바르!


그래도 이런 게 불편한 형들은 부디 읽지 말아주길.



우리 안나찡이 무려 13년간을 갇혀 산 건 다들 알 거야. 13년이야, 13년. 2년만 더하면 올드보이 주인공이 처박힌 거랑 똑같은 시간임. 게다가 그 시간은 유년기 + 청소년기 였어... 물론 장례식 때 나온 걸 보면 아예 못 나오진 않았던 것 같지만, 그래도 fftf때 말하는 거나 뭐 무도회때 대사를 보면 거의 못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지. 아무리 안나가 긍정적인 성격에다 멘탈이 갑이라고 해도, 과연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


원작중에서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겼지만 뭔가 성격장애의 징후가 좀 보이긴 했제. 이리저리 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한-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될듯. 원작에서는 그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이후에는 제법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거라 생각했음.


어떻게 될까 궁금해져서 예전에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 봤었는데, 허, 역시 이게 비전공자가 섣불리 시도할 건 아니었는지 나온 결과물이 존나 엉망친창이더라고... 애초에 심리학 쪽은, 특히 성격/사회/발달심리학 쪽은 진짜 아는 게 그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맷 리들리가 썼던 진화심리학 교양서에 짤막한 개요만 나왔던 피아제식 인지발달이론밖에 없거든... 내가... 그 양반 이론도 교육같은 후천적 요인이 배제됐다고 욕좀 먹던데 아는 게 이것 뿐이니 이거라도 써야지 뭐, 하고 했는데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불완전한 툴 하나만 갖고 한 거라 오류가 존내 많을 듯 한데 이런 거 잘 아는 형들이 댓글로 그런 것들 좀 지적해주길 바람. 




일단 안나는 5-18세를 갇혀서 살았제? 무려 전조작기의 직관사고기 + 구체적조작기 + 형식적조작기의 처음 6년 동안이나 사회로부터 격리당했다 이거제. 비록 이런 발달 자체는 대가리가 크면 알아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주변 사물이나 여러 개념들을 인지하면서 하는 ‘새로운 경험 - 동화 - 불평형 - 조절 - 평형'을 반복하면서 도식을 조직화 하는 걸 얼마나 능숙하고 빠르게 하는지는 한참 인식이 발달할 그 시기에 반복학습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게다가, 특히 보통 그 나이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은 정말 복잡하기 그지 없을텐데, 안나가 13년 동안 접촉한 사람들이라곤 마미 대디 집사 하녀 그리고 사실상 거의 보지도 못한 엘사 뿐이잖아? ‘대부분의 사람 - 착해요! 나한테 잘 해줘요!' 이런 도식을 갖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잖아? 엘사야 책을 많이 읽었다니 간접경험을 통해서라도 나름 정교한 도식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무식쟁이 비글 안나는 그럴 수 있을 리 없을걸. 


크리스토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낮선 사람을 어느정도는 경계하는 거나, 머쉬멜로한테 잇이스 낫 나이스 투 쓰로우 피플! 이러는 거랑, 나중에 통수를 친 한-스한테 말하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이라는 개념은 있는 듯 하지만, 애초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한-스를 완전히 덜컥 믿었다는 것 자체가 안나가 어떤 사람의 성질을 판단할 때 참고할 머릿속 도식이 존나 조잡하다는 의미겠지. 뭐, 좋게 말하면 그냥 존나 순진한 거고.


그렇기 때문에,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외부사회와 접촉하게 된다면 도식이 급변하는 것과 동시에 심각한 불평형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을 테고, 그러면 성격이 안 변할 수가 없지. 엘사처럼 그 두부같은 성격을 계속 유지시킬 트라우마가 대가리 속 깊이 박혀있는 것도 아니니까, 성격이 어떤 식으로든 변할 듯. 소심해지든, 능글맞아지든, 차가워지든, 딱딱해지든 어떻게든 말야. 나는 그 뭐시기냐, 머쉬멜로한테 눈덩이 던지면서 개기는 장면이랑 마지막에 한-스가 뒤통수 후려갈겼을 때 한-스를 대하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는 안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좀 공격적으로 변할 거라 생각했던 거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선량하고 순수하고 발랄한 원작 성격 그대로 유지되는 게 더 이상허지 않나?



여기까지가 원작에 나온 걸로 추측한 안나의 정신상태고, 이 다음은 이 픽에서 보여준 안나의 행동에 대한 부가설명이야.



일단 저 위에서 설명한 안나같은 사람이 갑자기 덜컥 사회에 나와부렀다 생각해 봐. 스트레스 존나 받겠지? 일단 정계나 사교계같은 복잡한 동네를 피해다니더라도, 공주가 이제 체통을 좀 지켰으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제. 안나의 비글끼를 생각해 보면 이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별로 겪어보지 못했을 거 같은데, 그러면 그런 사람들을 처음 접하게 된 안나는 일단 자기 기존 도식에 동화를 시도해 보지만 불평형 상태가 될 거야. 그럼 조절을 해야 하는데,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들을 조절해 본 경험이 적은 안나는 그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겠지. 


하지만 안나가 그러든 말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왕족으로서의 이런저런 의무들이 자꾸 안나를 쫒아다니면서 괴롭힐 거야. 행사 참석이나, 사교계 데뷔 같은 것들은 잠시간은 어리다는 핑계로 피해다닐 수 있겠지만 영원히 그러지는 못할 거고, 그러면서 안나는 온갖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겠지. 모두가 안나에게 호감을 갖는 일은 당연히 있을 수 없고, 적대적인 사람, 이용해먹으려는 사람, 이유 없는 악의, 파벌, 그리고 그 대가리와 쫄다구, 혼자 노는 회색분자 등등등 전에는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개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런 개념을 자기 도식에 적용하는 것부터가 서투른 안나는 조절에서 자꾸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존나 심한 불평형 상태에 따른 스트레스로 돌아버릴 지경이 될 거야. 


거기에 만약 누군가 그녀를 정치판에, 그것도 안 좋은 시선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낙하산 인사로 집어넣는다면? 그냥 말 그대로 미쳐버리겠지.


그런데 그때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한, 그런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어버렸어. 안나의 스트레스는 이제 더 심해질 수도 없는 수준이 돼버리고, 이걸 어떻게든 발산해야 할 그녀의 정신은 방어기제로서 작용할 수 있는 뭔가를 미친 듯이 찾아헤메게 되겠지. 그런데 그때 엘사가 안나의 도식을 벗어난 행동을 보여. 그것도 심각하게 벗어난 행동을. 막타를 친 거야. 마침 스트레스를 발산할 곳을 찾고 있었던 안나는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준 모든 대상을 막타를 친 엘사로 치환해서 그간 쌓였던 감정을 죄다 쏟아내게 돼. 안나가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진 말자. 픽서 어퍼에 가사로도 나왔었잖아. 스트레스로 돌아버린 인간은 얼마든지 나쁜 짓을 할 수가 있다고. 


근데 다들 생각하듯이 안나는 도저히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잖아? 안나도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 왔을 거야. 근데 그런 일을 저질러 버렸지. 그러고 나니까 이젠 자기가 자기 도식에서 벗어나 버린거야. 자아정체성을 잃어버린 거지. 그러다 또 자기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배신을, 그것도 안나를 사지로 집어던지려는 짓거리를 하려 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믿지 못하게 된 안나는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병풍한테 달려간 거야.


후 여기까지가 2부 22까지임. 역시 존나 어설프다; 사실 인지발달이론을 저런 식으로 써도 되는지도도 잘 모르겠고 씨바..심리랑 성격고증이 제일 어려운 거 가터... 내가 잘 모르기도 하고.... 아무나 어서 지적질좀; 그리고 요 다음은 소설에 나온 대로.


그리고 혹시 이거 보는 사람들 중 심리학도 형들 있으면 이것 좀 알려주세여.


먼저, 일단 저 위에 써놓은 것 자체가 조절과 조직화 과정 자체에 숙련도가 있다는 가정 하에 쓴 건데, 그게 가능함? 그러니까 반복학습과 경험을 통해 그런걸 더 잘하게 되기도 함? 특히 인식발달이 한참 이루어질 때인 1-3단계 동안 말야.


그리고 전에 뭔가 써먹을 툴이 없을까 하고 영문위키 뒤지다가 발견한 건데, 안나한테는 사람들이 Vygotsky의 ZPD 설명할 때 말하는 scaffolding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엄청 부족할 수밖에 없지? 그 scaffolding은 선생 뿐만 아니라 경쟁력있는 또래 애들한테도 습득할 수 있다던데, 걔한테는 또래가 없었잖아. 만약 그렇다면, 그 scaffolding들에 대한 경험의 부재가 안나의 인식능력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 아니면 그건 피아제 4단 변신이랑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임?


그리고 안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내가 무식해서 그런지 정확히 어떤 거인지를 모르겠다. 언니한테 버림받은 경험 + 유년기랑 청소년기 내내 격리당한 경험이 촉발할 수 있는 것들 중 안나의 사람 쉽게 믿고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인데다 아무나 한 사람 붙잡고 애정을 갈구하는 저 증상에 해당하는 병리학적 진단명이 있음?










고슴도치 딜레마에 관해. 처음 영화관서 1회차 여왕님 영접했을 때 레인디얼즈 아 배러댄 피플 딱 들으니까 생각난 게 바로 쇼펜하우어랑 고슴도치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애새끼들 보는 영화인데 주둥이 몇번 놀려서 젊은이 여럿 자살시킨 그런 놈 사상을 집어넣을까 긴가민가 하기는 했음. 근데 끝에 도온- 겟더 프로스트바잇 바아-잇 이러더라고 씨발; 이거 딱 고슴도치 딜레마잖아; 근데 팬픽에서 아무도 이걸 안 써먹더라고? 고슴도치 딜레마 이거 존나 유명한 건데도 말야. 그래서 내가 써먹음. 그리고 마침 쇼펜하우어가 딱 그 시기 사람이기도 하잖냐! 그래서 걔에 해당하는 가상 인물도 하나 만들어버림.


근데 저걸 왜 트럴이 말하냐며는, 픽서어퍼에 히스 아이솔레이션 이스 컨퍼메이션옵히스 데퍼레이션 포 휴먼 헠스! 라는 가사가 있잖냐. 저거 들으면 왠지 병풍의 그 생각이 트럴들한테서 온 거 같지 않음? 그래서 그렇게 함. 



 









원작중 머리와 심장, 그리고 썸 피플 아 워쓰 멜팅 포 의 해석에 대해. 뭐 이건 사람마다 다 갈리기 마련인데, 나는 그냥 저렇게 느껴서 그냥 저렇게 적어놓은거임... 이건 진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므로 태클은 자제좀.











어 씨스터 모어 라잌 미 떡밥에 대해. 내가 진짜 이런 갈등을 존내 좋아하는데, 나중에서야 이게 원래 후로즌에 있다가 갈려나가버렸다는 걸 알고서는 진짜 존내 느무 아쉬웠음. 사실 그런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는 했잖아? 아웃테이크된 랖투숏 같은 거 빼더라도, 렛잇고에 나오는 대사들이나 픽서어퍼에 나오는 대사들에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제. 그리고 원작에서도 안나랑 엘사랑 자라온 배경이나 성격이 저렇게 많이 다른데, 그쪽 문제가 해결되는 건 영화에 안 나오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중에 그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것 같은거야. 따로 나온 그 동화책에는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게 나오긴 하지만, 그 동화책 스토리가 영화랑 안 맞는 부분이 많더라고. 그래서 그건 원작이랑 따로 놓고 보기로 하고, 그쪽 떡밥을 요 픽에 살짝 집어넣었음.












전쟁물을 표방허는 주제에 전투는 거의 안 나오고 씹노잼 대화랑 설명만 계속하네여. 내 필력이 좋았으면 글 속에 다 녹여내버리면 될텐데 씨바 내가 똥손이라 표현이 제대로 안 되니까......



끝으로 이젠 설익은 내 개똥철학까지 섞여들어간 이런 잡문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도 참아주며 오늘도 읽어주시는 형들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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