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보다 차에 둔 것을 마저 읽을 겸, 버릴 겸 가져오면 나는 아빠가 보고난걸 스포츠면 기사만 꼼꼼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스포츠서울인데 부산쪽에 뿌려지는 신문지라 그런가 첫면에는 항상 롯데 소식이 적혀있었다. 되게 상투적인 표현들. 예를 들어 롯데는 항상 거인이라는 표현을 썼고, 해태는 호랑이, 삼성 사자 등등.. 헤드라인체로 \'거인, 갈길 바쁜 사자 잡고 2연승\' 뭐 그런 제목이 있고 그 밑에 더 큰 볼드체로 그날의 수훈선수. 주형광 몇승, 박지철 쾌조의 피칭, 호세 마해영 박정태 조경환 등등... 아 박찬호 나올때는 박찬호나 박세리가 1면에.

99년까지. 그리고 언젠가 박정태가 30경기 넘게 연속 안타였던가. 하여튼 잘 나갈때는 매일 야구 기사를 봤다. 월드컵때 잠깐을 제외하고, 순서는 항상 야구, 그리고 프로축구, 농구, 해외스포츠/레저, 그 다음 면엔 바둑이 나오는데 바둑은 안보니 여기서부터는 연예기사를 슬슬 넘기면서 티비 편성표를 찾는다. 오늘의 편성표, 화제의 프로그램.. 뒤에 만화를 보고 숨은그림찾기, 아빠가 비워둔 가로세로퍼즐을 보고 나서 신문 쌓아두는 곳에 갔다놓는다.

한때는 그렇게 자주 봤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신문지면에 거인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가 꾸준히 나오기 시작했다. 지고, 또 지고. 감독님이 죽었다고 한다. 항상 스포츠서울 2면에는( 메이저리그나 골프같은 특별한 기삿거리가 있지 않으면) 전날 경기결과가 스코어보드 형식으로 실려있었고, 각 구단의 동향이 실려있었다. 이긴날은 흰 동그라미에 승, 진날은 까만 동그라미에 흰 글씨로 패 라고 쓰여있어 최근 추세를 알 수 있게 해놨다. 롯데는 점점 까만 동그라미가 늘고 있었다. 스코어보드 형식의 경기결과에는, 요즘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관중 숫자도 표시돼있었다. 사직구장 관중은 몇천명, 심할때는 몇백까지 떨어졌다. 몇십도 본거같긴 한데, 봐서 기억하는건지, 그렇다고 하니까 봤었다고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땐 그렇게 대수롭지 않았다. 야구의 몰락에 맞춰서 축구도 몰락하고 있었다. 팀명을 부산 아이파크로 바꿨다는 축구팀은 성적이 예전만큼 신통치 않았고, 그래도 수원에 이어 전통의 강호였던 성적은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니 축구면의 소식도 어두워져갔다. 농구도 한때는 잘나가고 있었다. 원년에 동양 오리온스, sbs 스타즈, 원주 나래 같은 팀들이 있었지만 강호는 역시 현대 걸리버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였다. 그러나 김영만-강동희-허재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더니 농구 기사도 어두워져갔고, 언젠가 부산에서 구단을 뜬다나 하는 소식을 봤던 것 같다.

내방에서 야구중계를 듣고 싶어서 용돈을 모아서 산 노란 라디오가 있었는데, 어느새 호세도 없고, 마해영도 없고, 박석진도 없고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타석에 조경환이 들어섰다는 것이 \'혹시 뭔가 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나마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임재철같은 선수도 없어지고, 조경환도 타순이 하나씩 내려가더니 더는 들을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아빠도 스포츠신문을 사오는 일이 없었고, 나도 야구중계를 듣지 않게 됐다. 그 다음해도 그 다음해도 봄이되면 혹시나 하고 라디오를 들었지만 여름이 채 오기 전에 듣지 않게 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