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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부적절한 단편 한 편

이카에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3.12 23: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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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소설이고, 이거 쓰느라 한달 걸렸는데
학교 교지에 냈다가 퇴짜맞았다.
내 재능을 몰라주는 햏들이 많아 슬펐던 적이 있었다.



=====================


 

역전(驛前)




  당연한 말이겠지만, 겨울의 밤거리는 몹시 추웠다.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은 날씨였으나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서 몸의 구석구석으로 파고 드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따뜻하게 입고 나올걸 하고 생각했다. 사위는 이미 어둑어둑해진지 오래여서 추위는 더해 가는데 가벼운 차림에다 대충 걸친 윈드브레이커는 겨울의 변덕스러운 심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돌아가 옷을 갈아 입기에는 귀찮고, 또한 -가장 중요한 사실이지만- 두터운 재킷이나 코트는 옷장 깊숙한 곳에 처박혀서 지난 일년 동안의 공백을 드러내듯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추위, 살을 에이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깜빡이는 네온사인이 구름에 가리워진 달 대신 밤거리를 농밀한 색채로 물들이고 있었고, 딱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연인들은 경박하지만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찬 공기를 들이마셨고, 경적을 울리며 난폭하게 질주하는 버스, 매캐한 연기와 함께 군밤과 군고구마를 굽는 냄새도 났다. 그리고 신발 끝만 바라보며 묵묵히 걷고 있는 나라는 인간도 이 인파에 휩쓸려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배가 고파졌다. 낮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나는 하루 온종일 흰 여백을 쏘아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으니 허기라는 놈은 위장을 정복한 것도 모자라  전진하여 내 몸 전체를 휘감았다.

별 수 없이 근처의 포장 마차에 들어가서 오뎅 천원어치를 사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왔다. 뱃속을 맴도는 오뎅국물과 훅 끼쳐오는 포장마차의 온기가 몸을 녹였지만 밖으로 나오니 다시 추웠다.

나는 집을 나와 두번째로 춥다고 생각했으며 처음으로 이 거리를 쏘다니는 것에 대한 강한 회의를 느꼈다.

그렇지만 나오려고 결정한 데는 나름대로의 필요와 목적이 있었으니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생각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어느덧 좁은 거리를 벗어나 사거리에 이르렀다. 육교에 올랐다. 아래에는 액셀러레이터 힘껏 밟아대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차들이 지나가, 쌔액쌔액 하는 파공음이 났다.

나도 나이도 있고 하니 슬슬 면허 따고 차도 사야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며 살 수는 없지.

만원 지하철과 앉을 자리 없는 버스에 오른 승객은 얼마나 처량한가.

하지만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내 소득은 제자리 걸음이니 목돈이라고는 모일 날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딜레마가 아닐까?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육교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사거리를 건너 오니 바로 역 앞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서 그런지 이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넘쳐났고 건물은 아무데나 불쑥불쑥 솟아 올라 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천천히 걸었다. 걸음걸이를 빨리 하면 할수록 숨은 더욱 가빠질 것이고 그러면 차가운 겨울의 공기는 칼날처럼 폐부를 찔러 댈 것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가기 싫었다. 하지만 역에 가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억지 섞인 발걸음이나마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도를 터덜터덜 내려가 아래에 이르렀다. 이젠 거의 밤이나 마찬가지라 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지만 지하도를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은 꾸준히 보였다. 설마 하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나는 기운이 탁 풀렸다.

무표정하고 권태로운 얼굴을 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한 구석에는 싸구려 시계나 지갑을 늘어놓고 물건을 흔들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노점상들만 보였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고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고 따라서 나는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모처럼의 결심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 구석에는 안도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에게 딱 질색인 일을 하러 왔었으니까.

두 번째로 고백하자면, 나는 소심한 남자라는 것이다.

  나는 황급히 지하도를 빠져나왔다. 문득, 원인 모를 피로함을 느꼈다. 천장에 달려있는 수은등의 덕으로 지하도는 창백한 색상이긴 했지만 매우 밝았는데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어두컴컴해져 눈이 멍해지는 듯했다.

눈앞에 형광색의 물체가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눈이 피로해져서 그런가, 나는 눈두덩을 쓱쓱 문지르며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윈드브레이커의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었다.

자아, 천천히 걸어가는 거다. 아까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이다. 추위에 손이 곱아서 주머니에 넣은 채로 쥐었다 폈다 했지만 얼어버린 듯 감각이 없었다. 아마 입가와 뺨도 도화빛으로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추워질 때마다 항상 그랬으니까.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이 나이에 사춘기 소년처럼 발그레해져 있으면 엄청나게 우스운 꼴을 연출하는 셈이 된다.

여전히 사람들은 거리에 그득했고 무엇이 그리 바쁜건지 정신없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왜 내 눈에 비치는 사람들은 모두 목적없이 방황하는 것 처럼 보이는가?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죽어 버려 이 자식아!"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길 한가운데에 두 남녀가 있는데, 여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멍하니 서 있는 남자에게 핸드백을 휘두르며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남자는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를 금방 짐작했다. 젊은 남녀가 싸우고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연애 문제일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남자가 결별이라도 선언한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나는 별안간 유쾌해졌다. 크게 웃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재미있다는 듯 갈 길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었다.

  "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여자는 눈물이 말라버린 듯 꺽꺽거리며 힘빠진 주먹을 들어올렸다.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는 좌중의 시선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자 문득 정신을 차렸는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로 주위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저항할 줄 알았지만 그대로 비칠비칠 끌려갈 뿐이었다. 좌중의 열렬한 관심은 이내 식어버리고

  "에이 시시하다."

  "그러게 재미없네."

한 마디씩 하면서 빠르게 흩어졌다.

나도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눈물에 화장이 번져서 조금 이상한 꼴이 되어 있었지만 여자는 분명 상당한 미인이었고 입은 옷도 고급으로 보였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왜 울린 것인가? 여러가지로 추측해 보았지만 이 역시 결론지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저들처럼 여자와 히히덕거리며 거리를 쏘다니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올랐다. 어두컴컴하고 우중충한 지금의 생활과는 달리 그때는 모든 것이 밝고 화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 나에게 닥쳐오는, 두뇌가 터질 듯한 고통의 시간은 내가 택한 이 길에 대한 지독한 회의감으로 변질됐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내왔다.

나는 몹시 우울해졌다. 내 처지를 자각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그나마 마음먹고 나온 거리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 꼴이 우습게 생각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걷는 나는 주변의 풍광(風光)이 변하는 것도 알지 못했고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황망한 가운데 정신을 차린 것은 육교 앞에서였다. 나는 육교 난간에 기대서서 하늘을 보았다.

시꺼먼 하늘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눈싸움을 하듯 하늘을 째려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낮과는 달리 마치 검은 솜사탕 같아서, 흑설탕으로 만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솜사탕을 떠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내 기분과는 달리 솜사탕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입 안에 연기처럼 녹아 없어질 때의 아쉬움이나, 혀에 남아있는 달짝지근한 느낌 같은 것들. 한 줌의 설탕만으로도 내 머리만큼이나 부풀어 오르는 그것은 어린시절의 연금술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나서 계단을 올라갔다. 더 이상 자학할 기운도 없었고 춥고 배고팠기 때문에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조금 걸은 다음, 아래로 내려온 나는 두 남자를 보았다. 그들은 육교 기둥 안쪽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정말 사람이 맞았다. 나는 어쩔까 망설였지만 이미 결론은 나 있었다. 헛수고만 하고 집에 돌아가기는 싫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두 남자는 분명 홈리스(Homeless)나 노숙자로 보였다.

추레한 옷차림에 며칠 씻지 못한 듯한 몰골 -봉두난발에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박스를 무더기로 가져와 방풍벽까지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내가 다가서자 그들은 경계하는 빛을 띄었다. 그러나 별로 위험한 인물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는지 나를 쓱 보고 말 뿐이었다. 둘 중, 안쪽에 있는 사내는 옆의 남자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 손에는 소주병을 들고 나발을 불며 마시고 있었고 연신 바닥을 어루만지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옆의 남자는 그나마 남루하긴 했지만 얼굴에는 생기가 넘치고 있었고 나를 보고 씩 웃기까지 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저기,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두 남자의 반응은 처음엔 시큰둥했다. 소주 사내는 소주만 마시고 있었고, 옆의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 가까이 가서 옆에 털썩 앉았다. 바닥은 차갑고 딱딱했다. 남자쪽을 보니, 그는 이쪽을 흘끔거리며 보고 있다.

이 사람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대략 사십대 전후반으로 보이지만, 수염도 깎지 않고 최소한의 몸치장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니 그보다 젊을 수도 있겠다. 보는 관점에 따라 나이가 달라 보였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데?"

내가 조용히 있자, 오히려 남자가 은근하게 물어왔다. 관심 없는 척 했지만 자신도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좀 무례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한 문장으로 풀어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의 얼굴에 더욱 의문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걸 알아서 뭣에 쓰려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저는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노숙자에 대한 소설을 쓰려는데 영 떠오르는 게 없어서 얘기를 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나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대단한 거 아닌가?"

  "대단하긴요, 만년 낙선 작가라서 이 모양 이 꼴인 겁니다."

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후회했다. 이런 얘기까지는 할 필요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입이 싼 녀석이었나? 남자는 흥미가 생긴 듯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지. 별 것도 아닌데."

남자는 자신의 불우한 신세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남자는 원래 공사장 인부로 막노동에는 잔뼈가 굵었다고 했다. 전국의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젊음을 소비했다.

  "결혼은요?"

  "못했어.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인가 난 중늙은이가 되어 있어서."

그런 종류의 일은 몸을 망치기 딱 좋았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해진 데다가, 일하던 도중 허리를 다친 남자는 공사장 막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남자는 힘들게 번 돈을 쓰잘데기 없는 곳에 쓰는 것을 즐겼었다. 마지막 남은 한 푼의 돈까지도 갉아먹는 술과 도박이라는 놈에다가. 덕분에 십수년간 노동한 대가는 그를 조그만 구멍가게의 주인으로 만드는 정도 이외의 일은 할 수 없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좋았지. 조그만 동네니까 근처에 잡화점은 내 가게 뿐이었고 단골도 늘고."

남자는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더러운 손으로 담배의 흰 부분을 잡으니 금방 꼬질꼬질해졌다. 불을 붙이고 남자는 말했다.

  "그런데 근방에 커다란 마트가 하나 생기더라고. 때마침 마트 붐이 일던 시절이라 그런 촌구석까지 파고든거다. 상대가 될 리가 없지. 단골들은 다 그곳으로 몰려가고 내 가게는 파리만 꼬였어."

  "그래서 관뒀나요?"

  "흥, 나도 오기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구. 끝까지 버티면서 그 공룡같은 놈들한테 대항했어. 하지만 상대가 될 턱이 있나. 재고가 남아 돌아도 나는 어떻게든 물건을 들여다 가게에 진열했고 마트에서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싼 물건을 엄청나게 풀어대고. 1년을 그렇게 보냈는데 난 남은게 없었어. 다 처분하고 이 도시로 올라왔지. 할 일이 있나 하고."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차분했다. 흡사 남의 얘기를 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 담겨있는 비애랄까 회한랄까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힘든 일은 다시 할 수 없어. 따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이러고 죽치고 있는 거지. 아니, 자네 그렇게 불쌍하다는 듯이 볼 필요는 없는데…"

  "죄, 죄송합니다."

  "지금 생활도 할 만하니까.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무료급식으로 때우고 밤에는 춥지만 견딜만 해."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남자의 일대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나는 시선을 소주병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로 돌렸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소주가 다 떨어지자 이쪽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당신, 부탁 하나만 하겠소."

탁한 음성이었다. 가래 끓는 소리도 났다. 흐릿한 동공이 나를 보고 있었다.

  "소주……한병만 사다 주시오. 돈은 드릴테니."

소주 사내는 어쩐지 처량해 보였다. 술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당사자에게 좋은 선택이 아니며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괴롭게 하는 것이다.  

하긴, 저 몰골로 슈퍼나 편의점에 들어갔다가는 말도 걸기 전에 주인이 쫓아 낼 것이다. 그러니 초면인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겠지.

나는 어쩔까 망설였지만 얼떨결에 돈을 받아버린 터라 선심을 쓰기로 했다.

근처의 편의점에 들려서 소주 두 병과 안주 겸 해서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물론 소주 사내가 준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지갑을 털어 돈을 냈다.

그 남자가 괜한 친절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먹어 버리지. 나도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니까.

  육교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와 그들이 했던 대화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박스들만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때마침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고 "서라!" 하는 호통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순경이었다. 붉게 빛나는 전투봉을 쥐고 어둠에 드러나지 않는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내가 육교 저편으로 뛰고 있었다. 남자와 소주 사내는 이미 도망친 듯했다. 소주 사내는 이미 만취해 있을 터인데 무사히 피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나는 허탈해져 육교 기둥에 몸을 기댔다. 잘만 하면 소주 사내에게 그가 노숙자가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사라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닐 봉지에 든 소주병을 딸그락 거리며 힘없는 발걸음을 계속했다.

노숙자의 시시껄렁한 이야기 따위 들을 게 뭔가. 겨우 소재를 하나 잡았다고 좋아한 것은 나의 오판임이 분명하다.

기승전결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도 없는 것 따위야. 그런 짜여지지도 않은 플롯 같은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노트북에 써 놓은 소설 몇 줄을 다 지워버리리라, 그리고 다시는 노숙자에 관한 소설 따위는 쓰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계속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내 코를 내리쳤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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