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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대공자 1. 쫓겨나다.

다정독서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6.16 09:27:37
조회 227 추천 0 댓글 3

긴 잠에서 깨어나 제일 힘든 건 식후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상단을 통해 서역상인들에게 입수한 커피가루에 우유와 당분을 맞춰서 먹어보기도 했지만, 저 철관음 "상아"가 완벽한 비율을 맞춘 커피조차, 늘 금색봉투를 뜯어, 종이컵 3/4 지점까지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맥심 골드모카를 따라잡지 못했다.


내가 겪은 7년은 정말 그냥 긴 꿈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꿈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은 내게 신문물과 문화에 대한 강렬한 충격과 깨인 생각을 가져다 줬지만, 내게서 남궁세가 대공자라는 자릴 뺐었다. 지금 난, 두 달 전의 씩씩하고 패기 넘치는 무공광인 소검광 남궁혁이 아닌, 그저 뜻이 꺾인 많은 실패자들 중 하나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 지금의 상황도 영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니긴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아 이젠 로템 11시 섬멀티처럼 되어버렸지만, 아직 대공자전인 풍현각을 지키고 있으며, 날 빅뱅이나 동방신기만큼 따르는 200여명의 시비들의 추앙도 받고 있는 등, 무가에서 기혈이 막혀 반폐인이 된 사람의 생활치고는 상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입맛이 변해 꿈을 꾸기 전, 그렇게 즐겼던 벽라춘의 은은한 산뜻함도 철관음의 묵직한 달콤함도, 용정차의 화려한 맛도, 금색 커피믹스의 망상을 넘지 못하고 밍밍한 물이 되어버렸다는 것 정도일까?

안휘의 잠들어 있는 잠룡, 남궁세가는 지금 대 변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저 아이 내 전담시비인 앵앵이 있다. 남궁세가 시비연합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제 스무살의 앵앵은 그야말로 떠오르는 신진세력의 아이콘이다.

나를 따르는 무리인 광풍현회의 총무기도 한 그녀는 지금 시키지도 않은 커피타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사실 차를 타는 일은 굉장한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 정제되지 않은 커피는 썼고, 당분과 우유를 많이 넣어서 너무 달았다. 진한 것만이 좋다고 생각해서일까. 철관음 상아가 좀 그리웠다.


철관음 상아는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떠오른 차 타기의 달인이다.

내 딱딱해진 표정을 보고 앵앵은 실망했던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내가 풍현각에 머무를 수 있는 것도 막강한 실력자로 떠오른 앵앵이 덕분인데.


"대공자님, 맛이 없으세요?"

"아니야, 괜찮아. 좀 짙어서. 다음엔 뜨거운 물을 조금 더 탔으면 좋겠네. 그래도 맛있다."

"상아언니더러 한 잔 더 타오라고 할까요. 금방 불러올 수 있는데요."

"아니야, 나 아니라도 언제나 그렇게 바쁜 아이를. 커피가루도 얼마 안 남았고."

"전 왜 이렇게 재능이 없죠."

“그래, 내가 보기에도 넌 차엔 맞지 않는 것 같아.”

“미워요!”


울음을 왕하고 터뜨리고 돌아서 뛰쳐나가는 앵앵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녀와 난 이 정도의 장난은 쳐도 될 만큼 전우애가 있다. 앵앵은 내가 일곱 살 때 내 전담시비로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벌써 15년이니 이젠 시비라는 생각보다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이란 생각이 먼저 들어서 괜히 보면 장난을 치게 된다. 자기가 모시는 윗전에게 미워요라니 신선하다.

그리고 저렇게 마음 약해보여도 앵앵이는 강단이 있다. 꿈에서 깨어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앵앵이에게 독립적인 사고를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늘 상전들과 선배시비들에게 의존해 왔던 앵앵이를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만들기 위해서 난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한글을 가르치는 것도 그 일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처음에는 진서를 가르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개인전담 시비라고 해서 하루 종일 탱자탱자 놀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모자라서 한글을 가르쳤다. 앎에 대한 포한이 있던 앵앵이는 고작 두달만에 읽고 쓰기가 자유로운 경지에 올라 나를 놀라게 했다.

식자층이 된 일은 앵앵이에게 굉장한 자긍심과 자존심을 가져다 줬다. 그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재미삼아 이야기해 줬던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낀 앵앵이는 장장 일 년에 걸친 투쟁 끝에 일개 시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쟁의와 단결을 통한 노동운동의 방법을 가르친 것은 나였지만, 사실 현대사회의 노동쟁의 투쟁을 지금 대명천지에, 그것도 시비 두엇의 목숨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생각하는 무림세가에서 이만한 조직을 이끌고 행동한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와 추진력으론 해 낼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그녀는 영리했고, 지혜로웠다.

크음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곧 앵앵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공자님. 가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거라.”

아버지가 웬일이지. 돌아올 땐 못난 자식의 생환에 눈물을 쏟으셨던 분이지만, 기혈이 뒤엉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아시곤, 바로 날 내치셨던 분인데…….


“공자님. 차를 올릴까요?”

“그러려무나. 가주님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그저 세가의 방식대로 다과를 차려오너라.”

“예. 공자님.”

내 처소엔 신기한 물건들이 많다. 잠에서 깨어나 꿈의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 만든 물품들이 하나하나 방을 채우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연필이나 딱딱하게 만든 당과사이에 생크림을 발라 만든 수제 샌드과자를 얻기 위해 드나드는 장로들이 있을 정도였다.


거의 일년만에 보는 아버지는 그대로셨다. 뇌룡검제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큰 몸에 건물에 비해 방이 작은 풍현각이 꽉 차보였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것이 내공을 잃은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받거라.”

아버지가 내게 준 것은 금장식이 딸린 작은 열쇄였다.


“장로회의에서 결정을 했다. 풍현각은 소가주전이다. 이미 소가주의 지위를 잃은 네가 언제까지나 여기를 쓸 수 없지 않느냐. 내일부턴 명륜전을 사용하거라.”

명륜전이라니, 드디어 떨거지가 되어버린 건가? 명륜전은 2류 식객들의 처소다. 강호의 일급무사만 되어도 백련각으로 모셔지는데, 세가의 장자인 나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은 오일에 한 번씩 열리는 오일회의 강의가 있는 날이다. 풍현각 옆 연무장에서 야외 강의를 하려고 만들어 놓은 올바른 조직관리론이라는 소책자를 집어든 아버지가 날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 이게 그 네가 만들어 냈다는 소문의 문자냐? 간단해 보이기는 하다만은 네 놈도 사내라면 좀 더 큰 뜻을 품어야 할게야. 뇌룡검제의 장자가 하나 가치 없는 시비들과 시시덕 거리다니. 어디 가서 얼굴을 들지 못할 이야기다.”

“예. 조심하겠습니다. 다만, 명륜전으로 옮겨도 저 아이는 같이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하도록 해라. 종이에겐 내가 설명하겠다.”


남궁종은 내가 소가주직에서 퇴출된 후 새로 소가주 직에 오른 내 이복동생이다. 이부인도 한 번 찾아가 봬야 하는데. 배려가 부족했다. 야심만만한 종이와는 다르게 이부인은 세가의 둘째 부인으로 품행에 어긋남이 없고 후덕하다. 어머니를 일찍 잃은 내겐 친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다.

“무슨 시비의 이동에 남궁세가의 가주까지 나서십니까?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앵앵이가 조신하게 차린 다과상을 들고 들어왔다. 잔을 들어 차를 마시는데, 극상의 철관음이다. 매사에 신중한 앵앵이 답지 않은 실수다. 아버지는 대번에 얼굴이 흐려졌다. 가주전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고급품이라는 것을 한 모금을 마신 후 바로 아셨던 것이다.


“운종로의 벽제상단을 맡아볼 생각이 있느냐? 그나마 네가 아랫 사람들은 잘 단속하는 모양이구나. 남궁세가의 가주보다 좋은 차를 마시는 걸 보면 말이다. 쓸모가 없는 책은 버려지는 법이다. 네가 내 핏줄을 타고 태어났다고 언제까지 칩거생활로 세월을 좀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일하지 않는 자 먹을 필요가 없는 법이다.”

“3개월만 몸을 더 추스른 뒤, 제가 할 일을 결정하겠습니다. 그 때 가서도 제가 쓸모없다 생각하신다면 세가에서 내 보내셔도 따르겠습니다.”


“그래. 몸은 좀 괜찮느냐?”

“좋아지고 있습니다. 의약전 수석시비 초선이의 말로는 기혈이 꼬인 것을 조금씩 풀어가고 있다하니, 이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 정도의 삶은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구나. 난 이만 나가 보마. 길은 하나가 아니다. 무가의 자식이라고 누구나 절정고수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다. 넌 검신의 손자이자 이 뇌룡검제의 장자다. 보중하거라.”


부모의 정은 언제나 못난 자식에게 쏠리는 것인가. 뜨거운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가슴에서 한숨을 토해내듯 인사를 올렸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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