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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파괴한 사탄숭배 기독교

ㅇㅇ(77.111) 2024.02.13 13:52:36
조회 154 추천 0 댓글 0


의 십자군 전쟁은 ?


여기에 잘설명.



- 카자리아 왕국 돌궐제국

- 십자군 원정과 동서교역로 단절

- 대항해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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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D3TNNn1WmL0

 




[ 십자군 원정과 동서교역의 단절, 대항해 시대와 해적 ]


저자 미국인사이드tv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D3TNNn1WmL0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원전 8세기에서 11세기에 존재했던 유대 왕국 카자리아에 대해 아마도 구독자님들은 대부분 잘 아시겠지만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카자리아는 당시 중부, 유럽, 러시아, 남부 그리고 코카서스 등지를 지배했던 유대왕국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자르 왕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거나 들어본 적이 있더라도 음모론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류 학자들조차도 이 카자르 왕국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모두 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자르 왕국의 물리적 증거는 거의 모두 파괴되거나 억압되어 현대 학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실증적 증거는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8세기에서 12세기에 수십 명의 기독교 및 이슬람 학자들이 그 존재에 대해 저술했으며, 19세기 말 카이로 제니자에서 발견된 25만 개의 파편 중 일부가 마침내 공개되어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적인 증거가 밝혀졌습니다.

또한 카자리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도 많이 다른 왕국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악한 아슈케나지의 온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사악했던 나라는 없으며, 특정 국가가 선이냐 악이냐는 단순히 그 국가의 경쟁국에서 보는 상대적인 관점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민족은 5천 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나라였던 것처럼 묘사되고, 일본은 뼈속까지 나쁜 나라였던 것처럼 묘사되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우리와 DNA가 같은 북한은 어떻게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악한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한 신비로운 미스터리가 생기게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와 민족은 다양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집합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선과 악과 함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도 적절하지 못한 시각일 것입니다.

서구 역사가들은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를 문명의 시대로 보고, 그 이전의 시대를 야만의 시대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카자리아의 역사를 축적해 가다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카자리아가 존재했던 시기는 중국의 당나라와 송나라, 그리고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에 해당합니다.

당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시아와 유럽 간의 교역이 활발했으며, 그것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무역로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가 바로 카자리아입니다.

역사학자 피에르 보드리는 카자리아에 대해 매우 관용적인 국가로서 모든 종교가 공존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 충돌 이론은 특정 작가의 이론일 뿐입니다.

적어도 십자군 원정 이전까지는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 불교, 그리고 유교는 서로 공존하며 번영했던 역사가 더 많습니다.


서기 578년 곡투르크 제국도는 우리말로 돌궐 제국은 몽골에서 유라시아를 거쳐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 제국은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이전에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간의 관계를 중재하는 데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돌고래 주요 화가들은 서기 200년 한나라의 붕괴로 혼란에 빠진 실크로드 회랑의 옛 무역로를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586년 네 번째 통치자 파스파르 카간이 사망한 후 각 파벌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고, 내전이 발발하여 결국 제국은 동부와 서부로 나뉘게 됩니다.

이는 중국의 수나라의 이간책에 의한 것으로, 돌궐제국은 서돌궐 제국과 동돌궐 제국으로 분열됩니다.

그러던 중 618년 중국에는 당나라라는 강력한 제국이 등장합니다.

630년 동돌궐은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당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지만 설연타의 반란으로 멸망합니다.

훗날 돌궐 제2제국이 건국되었지만 위구르 카간국에 의해 다시 멸망합니다.


서돌골은 서기 643년 당태종에게 패합니다. 668년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도 멸망합니다.


카자리아는 7세기 중반에 서돌거리 당태종에게 패배한 후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643년 승리로 당나라 황제는 모든 투르크인을 통치하는 최고 권위자인 택리카간이 되었습니다.

유교는 트로크 세계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새로 독립한 서쪽의 트로크인들은 카자리아의 중앙집권적 정부를 빠르게 수립했습니다.


카자리아는 동쪽의 위구르 영토에서 서쪽 크림반도까지 육로를 통해 동서로 이어지는 스텝 실크로드의 주요 경로와 카스피에와 흑해로 흘러드는 드니페르강, 동강 볼가강을 따라 수출입로가 있는 실크로드의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카자리아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중앙 러시아를 거쳐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볼가강을 따라 중요한 남북 교역로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베네치아가 이슬람과 벌인 전쟁으로 인해 지중해 무역이 불가능해졌고, 기독교인이나 이슬람 상인들이 서로의 영토를 통과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자리아를 통과하는 교역론은 매우 중요했고, 무역에 있어 유대인의 역할은 필수 불가결했습니다.

서기 750년 카자리아 왕조는 유대교로 개종합니다.

이는 사실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무역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자리아가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터키인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서기 750년경 유대교로 개종하기 전에 카자리아 왕국은 유교적인 국가였습니다.

샤머니즘도 있었지만 유교 원리는 카자리아 투르크인들의 핵심 철학이었습니다.

둘째, 당나라가 건국된 기원 618년에 처음으로 기록된 유대인 유입이 발생하면서 당시 당나라에는 유대인이 비정상적으로 많았습니다.

당나라 황제가 한 나라 멸망 이후 끊어진 실크로드 무역로를 되살리면서 불교, 힌두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중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고유의 관습과 종교적 신념을 지킬 수 있었으며, 한족과 동등한 권리와 배우를 누렸습니다.

그들은 차별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셋째, 새로운 실크로드 루트를 개척한 초기 단계의 주요 그룹은 유대인 라드안 상인들이었습니다.


9세기 지리학자 이븐 쿠루다베에 따르면 당시 유럽과 중국을 연결하는 4개의 라다나이트 무역로가 있었다고 합니다.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이동하는 가장 활발했던 주요 통로는 대초원 실크로드였으며 대부분 카자리아가 관할했습니다.

카자리아는 관용과 개방성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이는 왕과 왕실은 유대교로 개종하였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기독교인 무슬림, 이교도가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바스 왕조는 카자리아와의 동맹을 맺고 함께 실크로드와 유교 르네상스를 보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는 유럽, 중동, 중국이 모두 학문의 발전과 번영을 누리면서 유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서로 공존했던 시대였습니다.

또한 아바스 왕조는 유교의 천명 원칙, 즉 지도자의 통치권은 자연의 법칙과 공동선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만 유효하다는 원칙에 따라 통치하였고, 이 시기는 이슬람 황금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는 수세기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반유대 정책을 종식시키고 유대인에게 그 시대에는 전례가 없는 토지 소유권을 부여했습니다.

유럽의 샤를마뉴와 중동의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라시드는 통치 개념을 공유했습니다.

바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흐디와 그의 아들 하룬 알라시드, 손자 알마무니 인문주의적 리더십 아래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 학자들이 모여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고대 작품을 번역하고 천문학, 문학, 의학, 공학을 연구하는 학문의 르네상스가 펼쳐졌습니다.

중국에서도 당나라 통치 300년 동안 예술은 새로운 경지에 올랐고, 이백과 두보 등 위대한 시인과 화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문화의 르네상스가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는 곧 끝나게 됩니다.



당나라와 아바스 칼리프국은 영토와 경제적 이익을 놓고 경쟁관계가 형성됩니다.

결국 서기 751년 고구려 유민 출신인 당나라 절도사이자 원정군 사령관인 고선지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가 탈라스에서 아바스 왕조의 군대와 충돌하게 됩니다.

이에 아바스 왕조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방어군은 오늘날 키르기스탄의 탈라스 강 유역 전투에서 승리하여 고선지의 서역 진출을 막습니다.

탈라스 전투에 이어서 서기 755년 중국의 당왕조는 안사의 난이라는 내전으로 난장판이 됐습니다.

이는 실크로드의 해체를 위협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당 왕조는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고, 실크로드는 이전과 같은 활기를 잃었습니다.


샤를마뉴가 죽은 후 프랑크 왕국은 전쟁과 파벌, 분열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비슷한 시기 이슬람 제국은 곧 내외부의 불화에 빠졌습니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카자르 왕국도 멸망합니다. 서기 969년 오늘날 러시아의 전신인 KF 루스의 침략으로 카자리아가 약화되고 궁극적으로 멸망합니다.

20세기 후반 제노아와 베네치아가 모든 동서무역로를 장악하면서 유대인들은 카자리아에서 단절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10세기에 카자르 왕국이 멸망한 이후 왜 유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황금기 흔적은 모두 파괴되었을까요?

그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이후에 역사에서 다소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됩니다. 십자군 전쟁이 동서교역의 붕괴에 미친 영향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장기적으로 동서교역의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5년 베니스와 울트라모테네 교황청은 이슬람에 대항하는 첫 번째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세계를 전쟁판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라다나이트 유대인들이 구축한 모든 무역로와 인프라가 십자군에 의해 전쟁에 사용되었고, 결국 유럽에서의 무역로는 파괴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무역로를 따라 심각한 파괴와 혼란을 야기하는 전쟁으로 특징 지어졌습니다.

무역 거점과 인프라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어 상인들이 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로 인해 동양과 서양 간의 상품 흐름이 중단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공동체 간의 관계를 긴장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무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긴장과 적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십자군의 혼란기에 새로운 단체가 탄생합니다. 시토 수도회의 전략가 베르나르드 클레르보는 바포메트 숭배자들로 기사단을 설립하고 기독교 용병 교단의 체제를 확립하여 은행 운영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이후 수세기 동안 기독교대, 무슬림, 유대인 간 종교적 대립과 폭력적 갈등의 새로운 시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기사단은 12세기 초에 창설된 중세 기독교 군대입니다.

공식적인 목적은 십자군 전쟁 당시 성지를 여행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사단의 부와 권력이 커졌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대한 집착과 성배, 신화에 대한 집착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글로벌 위기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프리메이슨과 정치적 시오니즘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십자군 전쟁 이전 비잔틴 제국은 실크로드와 지중해 무역 네트워크의 핵심 연결고리였습니다.

1204년 4차 십자군 전쟁으로 콘스탄티노플이 약탈당하면서 비잔틴 제국은 약화되었고, 동서 무역의 중개자 역할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 대신 십자군 전쟁은 주로 베니스와 제노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설립을 통해 새로운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베니스와 제노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파괴된 육로를 우회하는 해상 무역로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대항의 시대로 이어져 유럽은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물론 역사 교과서에서는 십자군 원정에 의해 동서교역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서구 역사가들 중 일부는 동서교역의 단절은 이슬람 제국의 확장 때문이며, 이 때문에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실상은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칼리프 왕조는 동서양 간의 무역을 촉진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는 무역을 위한 통일된 정치적 틀을 제공했고, 상인들은 여러 작은 국가를 거치지 않고 하나의 제국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무역 물류를 단순화하고 상인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모험을 떠나도록 장려했습니다.

이슬람 제국은 또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를 위한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이슬람 제국은 학문과 학문의 중심지로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텍스트는 물론 인도와 중국의 작품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이러한 지식 교류는 실크로드를 통해 연결된 여러 문명 간의 과학, 수학, 철학적 사상의 전달을 촉진했습니다.


주류 역사에서는 또한 실크로드가 쇠퇴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항해 기술과 해상 운송 기술의 발전이라고 주장합니다.

항해 기술의 발달로 육상 실크로드가 쇠퇴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과 전쟁으로 육상 실크로드가 파괴되어 해상 운송이 발전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서구 매체에서는 당시 육상 실크로드를 이슬람 도적대들이 난무하는 위험한 곳으로 묘사합니다.

15세기 후반에 시작된 대항의 시대에 유럽 열강은 고되고 위험한 육로 실크로드를 우회하여 아시아로 향하는 더 효율적인 해상 항로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책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 페르디난드 마젤란 등의 공을 부각시키며 역사 수업에서는 이들의 이름을 외워야 합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해상 교역로가 개척되고 세계는 더욱 풍요롭고 안전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다에도 해적이 득시글거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다수가 영국을 본거지로 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육상 실크로드가 위험해졌을 수도 있지만, 영국 해적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해상 교역도 결코 안전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영국 입장에서는 바다가 더 안전했겠죠.


영국 해적은 역사상 여러 시기에 걸쳐 무역과 상거래를 방해했습니다.

해적은 특정 국적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영국 해적은 주로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의 해적의 황금기에 활동했습니다.

해적의 활동은 무역과 상업에 여러 가지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 해적들은 기존 무역로를 따라 이동하는 상선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해적들은 이러한 선박을 나포하여 화물을 압수하고 때로는 선원과 승객을 포로로 잡기도 했습니다.

상선에 대한 약탈로 인해 상품과 자원이 손실되었으며 공급망이 단절되어 피해 지역에서 물품 부족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손실은 다른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급망 단절과 인플레이션 뭔가 오늘날에 일어나는 일들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해적 대신 바이러스가 그런 일을 해줬다는 차이점이 있긴 합니다.

해적은 주요 무역로가 교차하는 카리브해, 인도양, 대서양과 같은 전략적 위치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해적의 존재는 이러한 경로를 방해하여 무역선은 우회해야 했고, 이는 지연과 비용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상인과 선주들은 화물과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값비싼 보험에 가입해야 했으며, 그로 인한 추가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상품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단지 해적의 존재만으로도 공포와 불확실성의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무역 활동이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공포와 불확실성의 조성으로 인한 경기 침체 이 역시 뭔가 오늘날에 일어나는 일과 대접이 되지 않습니까?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던 17세기와 18세기는 해적이 난무했으며, 해적은 문명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유산입니다.

적어도 그 시기는 아바스 왕조가 카자리아와의 동맹을 맺고 실크로드를 보호하던 시절보다는 무역의 리스크가 높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문명의 시대가 시작되고 그 이전은 야만의 시대로 보는 일부 서구 역사가들의 시각은 왜곡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시청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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