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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마즈까? 2005.03.14 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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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발상지는 우리나라이다 홍익인간 광명이세 Ⅰ. 서 론 본편에서는 지나족에게 뺏겼던 유학을 찾는 문제를 다루려한다. 그러므로 특히 주자학자들은 정신을 한층 가다듬고 본편을 읽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한국 사람인가? 아니면 지나족인가를 분명히 확인한 다음 본편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 외에 제 민족의 역사서와 사상서를 몇권이나 읽었는지를 반성하고 본편을 읽어주기 바란다. 인간은 원래 객관적이 못된다. 곧 파란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사물이 파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사물이 빨갛게 보이며, 무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사물이 사실대로 보인다. 그와 같은 이치를 이해한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반성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곧 주자학 제일주의와 지나중심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러한 입장에서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여 양자를 비교하여 보라. 그러면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우리민족의 지손(支孫)이요,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도 신선도의 한 가닥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이 우리민족에 의해서 비롯되었고, 한자(漢字)도 우리민족에 의해서 창제되기 시작하였다. {주역(周易)}이 우리민족에 의해서 비롯되었고,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을 비롯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가 우리민족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 인(仁)사상은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요, 오상오륜(五常五倫)은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덕목이었다. 곧 유교의 원류가 우리나라의 신선도로서 유교 자체가 곧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었다. 지나족의 이상세계이며 중국문화의 발상지라는 신비의 곤륜산(崑崙山), 산의 조종이라는 곤륜산도 우리나라의 백두산이었다. 이러한 학설은 근세조선 때라면 사문난적(斯門亂賊)이라 하여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며, 현재에도 제 나라의 역사와 사상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를 우러러 받드는 일부 골수 주자학자들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 하여 무시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제 나라의 역사와 사상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대다수 유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연구자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초보적인 연구로서 완성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비판을 기다린다. Ⅱ. 유교는 우리나라에서 기원되었다 1. 지나문화의 발상지인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1) 곤륜산은 어떤 산인가? 지나인들은 곤륜산(崑崙山)을 지나문화의 발상지, 지나인의 정신적 고향, 지상선경, 산의 조종으로 믿는다. 그러면서도 곤륜산맥이 지나대륙 서쪽에 있음으로써 곤륜산도 곤륜산맥의 어디에 있을 것이라 막연히 추정할뿐 그 위치가 신비속에 가려져 있다. 마치 불교에서 설산과 바다가 지금까지 신비속에 가려 있었듯이 곤륜산도 지금까지 신비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곤륜산은 어떤 산인가? 곤륜산의 성립요건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참고문헌은 학원출판공사의 {학원세계대백과사전}, 동아출판사의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 이희승의 {국어대사전}, 불교의 {석가방지} 등이다. 이들 서적에 의하면 곤륜산의 성립요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곤륜산은 그 정상에 아름다운 못이 있다. 그 못을 당(唐)나라에서는 아나타답다라 하고, 불교 명칭으로는 아뇩달지라 한다. 2) 못의 3면이 비등한데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人面像)이다. 3) 곤륜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못의 북쪽에 큰 폭포가 있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4) 곤륜산은 3층으로 되어있다. 5) 곤륜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6) 곤륜산은 불사약이 나는 곳이다. 7) 곤륜산은 아름다운 옥(玉)이 나는 곳이다. 8) 곤륜산에 서왕모(西王母)에 대한 전설이 있다. 9) 곤륜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 곤륜산의 성립요건이 이상 외에도 많으나 대체로 생략하고 위에 제시한 요건에 한정해서 곤륜산이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가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2) 곤륜산은 지나대륙에 없다. 지나대륙의 서쪽에 곤륜산맥이 있는데 거기에 곤륜산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위에 제시한 요건을 갖춘 그러한 곤륜산이 곤륜산맥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지구상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산을 모두 같은 산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곤륜산맥 가운데 어느 산의 정상에도 강하의 원천인 아름다운 못(호수)이 있다는 기록을 본바 없고,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해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산상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에 있는 티티카호(湖)와 소련의 레닌그라드 근처에 있는 라도카호(湖)라 하여 곤륜산맥 가운데 어느 산의 정상에도 큰 못(호수)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이는 곧 지나 서쪽 곤륜산맥에 곤륜산이 없음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함경도에 함경산맥이 있으나 거기에 함경산이 없는 것과 같은 격이며, 인도 부부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으나 거기에 히말라야산이 없는 것과 같은 격이다. 동아출판사의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에도 곤륜산은 중국의 곤륜산맥과는 아무런 상관이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3)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그러면 곤륜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석가방지}에 곤륜산을 곧 설산이라 했고, 설산이 백두산이라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백두산의 특수성을 곤륜산의 성립요건에 대입시켜 보기로 한다. 1) 곤륜산의 정상에 아름다운 못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의 정상에도 형형색색의 병풍석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못인 천지가 있다. 2) 곤륜산 정상의 못이 그 모형에 있어서 3면이 비등하나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그런데 백두산 천지의 모형도 3면이 비등하고 북은 넓고 남은 좁아 인면상이다. 3) 곤륜산은 하수의 원천으로서 못의 북쪽으로 큰 폭포가 흐르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그런데 백두산도 하수의 원천으로서 천지의 북쪽으로 큰 폭포인 천지폭포가 흐르고 4방으로 4대하가 흐른다. 4) 곤륜산이 3층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도 3층으로 되어있고, 실제 답사하여 보거나 사진을 보아도 3층이다. 5) 곤륜산에 신선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백두산에도 한웅·한검·자부선인 등 신선이 살았으므로 백두산 일대를 신시(神市) 또는 신주(神州)라 한다. 6) 곤륜산에서 불사약이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부도지}에 의하면 백두산에서도 삼근영초(三根靈草)인 산삼(山蔘)이 나고 이를 불사약이라 하였다. 7) 곤륜산에서 아름다운 옥이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부도지}에 의하면 백두산에서도 7색보옥(七色寶玉))이 생산되었다고 하였다. 8) 곤륜산에 서왕모에 대한 전설이 있다. 그런데 백두산에도 서왕모에 대한 전설이 있다. 9) 곤륜산은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백두산을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보면 일본열도는 좌청룡, 지나대륙은 우백호에 해당되며, 남북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대륙은 외백호에 해당되고, 시베리아 대륙은 현무, 오세아니아주는 주작에 해당되어 백두산이 비교적 지구에서 가장 중심인데, 세계지리학회에서 위성사진을 근거로 백두산을 지구의 중심이라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우리민족사 연구에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백두산이 곤륜산의 성립요건과 부합일치된다. 이는 백두산이 곧 곤륜산이고, 곤륜산이 곧 백두산임을 의미한다. 백두산 토착민들도 백두산을 곤륜산이라 하였다. 청(淸)나라의 제4대 강희제(康熙帝)도 지나의 태산(泰山)은 물론 한국·지나·만주의 모든 산이 백두산에서 뻗어나간 지맥임을 주장했다. 즉 곤륜산이 모든 산의 조종인데, 백두산이 모든 산의 조종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문화와 유교가 곤륜산에서 기원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기원되었다는 이론이 성립되고, 공맹의 유교가 우리나라 신선도에서 기원되었다는 사실이 제1차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유교의 창시자는 우리민족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문화의 개조(開祖)는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이다. 이들 삼황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복희는 배달국 태우의한웅(太虞儀桓雄)의 막내아들로서 동이족이다. 복희가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부사년(傅斯年) 등 중국학자들도 인정한다. 신농(神農)씨는 소전(少典)의 아들이다. 소전은 고시(高矢)씨의 방계(傍系) 후손이다. 고시씨는 농경을 맡은 단군왕검의 직속 신하이다. 그러므로 신농씨 역시 동이족인 것이다. 오늘날 강(姜)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황제 헌원 역시 소전(少典)의 별파로서 동이족이다. 그래서 {초사:楚詞}에 "황제는 백민태생(白民胎生)이고 원래 동이족이라"고 하였다. 삼황 다음 유학은 누구에 의해서 전승되었는가? {중용}을 보면 "중니(仲尼:孔子의 字)는 요순(堯舜)의 도를 조술하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법도를 헌장으로 하였다"고 했다. 또한 유학의 계통을 당(唐)나라 시대의 한자(韓子)는 {맹자집주} 서설에서 "요(堯)임금은 인의(仁義)의 도(道)를 순(舜)임금에게 전하고, 순임금은 이것을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에게 전하고, 우임금은 이것을 은(殷)나라의 탕(湯)임금에게 전하고, 탕임금은 이것을 주(周)나라의 문(文)·무(武)·주공(周公)에게 전하고, 문·무·주공은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맹자)에게 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보면 복희·신농·황제 다음, 중국문화와 유학은 요임금과 순임금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이들은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사기}에 의하면 요임금은 황제 헌원의 5세손으로 동이족이다. 요임금이 동이족이란 것은 안호상과 최동 등 여러 학자들이 여러 전거를 들면서 주장한다. 또한, {맹자}를 보면 순임금의 출생지·거주지·사망지가 모두 동이지방임을 밝히면서 순임금도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사계의 모든 학자들이 공인한다. 유학을 집대성한 공자는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공자는 은(殷) 왕실과 송(宋) 왕실의 후손이다. 은왕실과 송왕실은 동이계이다. 그러므로 공자 역시 동이계이다. 이상과 같이 중국문화와 유학을 개창한 개조가 모두 동이족이다. 여기에서 우리민족은 동아문화의 개창자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고, 공맹의 유교는 우리민족의 신선도에서 갈려나간 신선도의 지류라는 사실이 제2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3. 한자의 창제는 우리민족에서 비롯되었다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유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이는 한자가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루어진 추정이다. 그러면 한자를 어느 민족이 먼저 창제하기 시작했는가? 다시 말하면 한문의 사용문제가 아니라 한자의 기원문제이다. 이는 마치 영어는 영국어이지만 영어를 표기하는 알파벳(Alphabet)의 기원은 영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페니키아문자 또는 그리스문자에 있다고 하듯, 한문은 지나어이지만 한문을 표기하는 문자 곧 한자의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한자는 중국을 위시로 하여 한국·일본·동남아 등 아시아권 일원에서 거의 쓰여지고 있다. 그 제작도 동양 각국에서 이루어져 한자는 동방문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자의 기원에 대한 기록을 보면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신시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에 우서(雨書)가 있었으며, 치우에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 용서(龍書)가 있었다. 단군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러한 글자와 글이 백산·흑수·청구 등 구려(九黎)의 지역에서 널리 쓰여졌다"고 하였다. 또 이어서 "부여인(扶餘人) 왕문(王文)은 처음에 전(篆)을 번거롭게 만들었으나 점점 그 획을 생략하여 새로이 부예(符隸;예서의 서체)를 만들어 그것을 썼다. 진(秦) 때에 정막(程邈)이 숙신(肅愼)에 봉사하여 한수(漢水)에서 왕문의 예법(隸法)을 얻었다. 또 그 획을 가지고 약간 바꾼 것이 지금의 팔분체(八分體)이다. 진(晉) 때에 왕차중(王次仲)이 또 해서(楷書)를 만들었는데 차중은 왕문의 원예(遠裔)이다. 지금 문자의 기원을 궁구하여 보면 다 신시의 유법이며 지금의 한자 역시 그 지류를 이은 것이 분명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 제3세 단군 가륵(嘉勒) 2년조를 보아도 상형표의(象形表意)의 진서(眞書) 곧 한자(漢字)가 있었다 하고, 단군왕검이 처음으로 나라를 세울 때도 국호를 한자로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이는 단군왕검 시대에도 한자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이 한자와 더불어 전래됐을 것이라는 추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사학계에서는 위의 기록을 믿으려 아니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통설에 따라 한자의 유래를 따져보기로 한다. 그러면 한자의 창제설에 어떤 것이 있는가?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3천 5백년 전 은(殷)나라의 한 때 도읍지였던 안양(安陽)에서 발견된 갑골문자가 한자로 발전되었을 것이라는 갑골문자 발달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 창힐(蒼?) 등 어느 개인이 한자를 창제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1) 갑골문과 한자의 기원 갑골문이란 점을 치는데 사용됐던 문자로서 거북의 등딱지인 귀갑(龜甲)이나 소와 말의 어깨뼈에 새겨진 문자를 말한다. 이 문자는 1899년 왕의영(王懿榮)과 유악(劉?) 등에 의하여 발견된 후 많은 연구에 의하여 은(殷)나라의 것임이 밝혀졌고, 은나라는 B.C. 17세기 경에서 B.C. 11세기 중반까지 지나 황하유역에 존재하였던 나라이다. 그러면 은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은나라는 상(尙)나라라고도 한다. 상나라의 시조는 설(契)이다. 설의 아버지는 제곡고신(帝嘗高辛)이다. 제곡고신의 할아버지는 소호금천(少昊金天)이다. 소호금천은 황제 헌원의 맏아들이다. 황제 헌원은 동이족이다. 이래서 은민족은 우리민족과 같이 백의를 입었고, 천신제를 지냈으며, 수골에 의하여 점을 치고, 순장제도(殉葬制度)였으며, 시조의 탄생설이 난생설(卵生說)로서 은왕실과 은민족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즉 은민족은 우리민족과 동일계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또한 단군조선 시대에도 이미 한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갑골문 역시 동이족의 본거지인 동부지방에서 서쪽으로 전승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지나에서 우리민족 사회로 전래됐을 것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2) 한자의 창제와 우리민족 한자의 창제설에 어느 개인을 두고 말할 때는 ?복희설 ?창힐설 ?주양설(朱襄說) ?저송(沮誦)·창힐설(蒼?說) ?범(梵)·거려(?廬)·창힐설(蒼?說) 등이 있다. 이 다섯 가지 설을 비교하여 보면 가장 공통적인 학설이 창힐설이다. 그래서 창힐을 한자의 최초 창제자로 꼽는다. 그러면 창힐(蒼?;倉?)은 어느 시대 사람이며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 창힐은 상고시대의 황제(黃帝)이다. ? 창힐은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이다. 이들 두 가지 설 가운데 어느 설이 정확한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창힐이 황제라 할 경우 황제는 동이족이므로 창힐은 동이족이다. 또한 황제의 사관이라 할 경우, 황제는 동이족이므로 창힐 역시 동이족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창힐과 고신(高辛) 역시 다 치우의 묘예(苗裔)다"하였는데 치우는 동이족이다. 그러므로 창힐은 어떻게 보든 동이족이다. 여기에서 한자의 지나족 창제설은 두번째로 부정된다. 3) 한자의 상형과 우리민족 이상과 같이 한자의 기원이 동이족 곧 우리민족에 있었다면 한자의 제작원리인 한자의 상형(象形) 역시 자연적인 현상 외에 우리민족의 생활과 그 습속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명지대학교의 진태하(陳泰夏)교수는 한자의 형성과정에 우리민족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자료를 제시하여 국내 언어학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진태하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근거를 몇가지 소개한다. 첫째, '집가(家)'자는 집면(?)자 안에 '사람인(人)'자가 들어가 있어야 당연한데 '돼지시(豕)'자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집가(家)자는 집 안에 돼지를 키웠던 민족, 즉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글자라는 것이다. 둘째, '날일(日)'자는 해 모양을 상징한 문자이다. 그렇다면 해와 같이 둥글게 그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해 안에 까마귀 그림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이 문자를 만든 민족은 금까마귀 신화를 가진 민족이다. '날일(日)'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수만년 전부터 그러한 신화를 전하여 오는 민족은 한민족 밖에 없다. 그러므로 '날일(日)'자 역시 우리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셋째, 지나에서는 종자를 나타낼 때 '씨(氏)'라고 쓰지 않는다. '씨(氏)'는 그런 의미도 아니다. 오직 성씨만을 '씨(氏)'라고 한다. 그런데도 성씨를 나타낼 때 쓰는 '씨(氏)'자는 씨앗에서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는 모습에서 나왔다. 지나족이 이 문자를 만들었다면 종자를 '씨(氏)'라고 표현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씨(氏)'는 종자와 성씨 모두에 사용된다. 따라서 '씨(氏)'자 역시 한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이다. 진태하 교수는 이상과 같이 근거를 제시하면서 한자(漢字)라는 명칭은 옳지 않으며, 고대 한민족의 글이라는 "옛한글 혹은 동방문자(東方文字)"라고 불러야 옳다고 하였다. 진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특히 한민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여야 할 시점이다.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도 만들었고,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일은 한민족의 큰 자랑이다"라고 강조한다. 4) 한자의 반절음은 우리민족 중심이다 한자는 자형(字形)·자음(字音)·자의(字義)의 3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자음을 표기하는 발음부호를 반절음(反切音)이라 한다. 반절음은 한자(漢字)로써 한자의 자음(字音)을 표기한 일자일음(一字一音)의 발음부호로써 한자를 창제한 민족의 발음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반절음과 일치되거나 가깝게 발음하는 민족이 한자의 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나족의 발음과 우리민족의 발음 가운데 어느 민족의 발음이 반절음과 일치되거나 가까운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백두산(白頭山)을 예로 들면, 백(白)의 반절음은 박맥절(薄陌切)로서 원음이 '백'이다. 지나족의 발음은 '바이(bai)'인데, 우리민족의 발음은 '백'이다. 두(頭)의 반절음은 도후절(徒侯切)로서 원음이 '두'이다. 지나족의 발음은 '또우(tou)'인데, 우리민족의 발음은 '두'이다. 산(山)의 반절음은 사한절(師閒切)로서 원음이 '산'이다. 지나족의 발음도 '산(shan)'인데, 우리민족의 발음도 '산'이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의 발음은 반절음과 일치하고, 지나족의 발음은 반절음과 틀리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한자의 발음은 원래 일자일음(一字一音)인데 지나족의 발음은 일자이음(一字二音)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임승국은 한자 53,525자의 발음부호인 반음절이 모두 우리말 기준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동이계가 황하문명의 주인공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고 하였다. 이를 보아도 한자의 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자의 발생기원을 탐색하여 보면 그것은 우리민족에서 먼저 발원되었다. 그러나 {단군세기}를 보면 "상형표의(象形表意)의 한자(眞書)가 있었으나 서로 뜻이 통하지 못하고, 국가 사이에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움으로써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우리민족은 한자를 먼저 창제하였으나 그 난해성으로 인하여 고대에 이미 그 사용을 포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지나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에 걸쳐 한자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글자 수가 늘어나면서 한자(漢字)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한자가 마치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와 더불어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Ⅲ. 유교사상과 우리민족의 신선도 1. 주역은 신선도의 경전이다 {주역}은 유교의 기본경전으로서 8괘(八卦)와 64괘(六十四卦) 그리고 이를 설명한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8괘는 천지만물이 회통하는 이치 곧 천지인삼재지리(天地人三才之理)와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가는 이치 곧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을 기본원리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64괘는 8괘를 더욱 발전시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돌아가는 이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괘사는 괘의 총체적 뜻을 설명한 것이고, 효사는 육효(六爻)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1) 역(易)은 동이족에서 비롯되었다.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역(易)에는 환역(桓易)과 희역(羲易) 그리고 금역(今易)이 있다. 희역은 복희의 역을 의미한다. {태백일사} 신시본기를 보면, 복희가 어느날 꿈에 "삼신(三神)이 몸에 강령하여 만리를 통철하게 되고 인하여 삼신산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천하(天河;지금의 송화강)에서 괘도를 얻었는데 삼절(三絶;┏陰爻) 삼연(三連;?陽爻)하여 위치를 바꾸면서 그 이치를 궁구하면 묘하게도 삼극(三極)을 품고 있어 변화가 무궁하였다"고 하였다. 즉 괘도를 복희가 천하에서 얻었다고 하였다. 이는 복희가 괘도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전승되고 있던 것을 복희가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기전} 상편을 보면, "환국을 이어서 한웅씨가 일어나 괘(卦)를 그리어 미래를 알고 괘상을 잡아 신통력을 부렸다"고 하여 한웅천황에게서 역(易)이 비롯되고 있다. 신시본기에도 황제중경(黃帝中經)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의 근본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이라 하여 {주역}의 근본원리인 음양오행사상이 신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상 {한단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기원되고 복희에 와서 좀더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의 저작에 대하여 학설이 각각이다. 일반적인 학설을 소개하면 제1설로는 8괘와 64괘를 모두 복희씨가 저작하였다는 위(魏)의 왕필설(王弼說)이 있고, 제2설로는 8괘는 복희씨가 저작하고, 64괘와 괘효사(卦爻辭)는 문왕이 저작하였다는 사마천설(司馬遷說)이 있다. 여기에서 제2설이 통설로 되고 있다. 그 이유를 보면 복희씨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8괘 창안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복희씨는 동이족이며 좁게는 우리민족이다. 우리민족은 3국시대 이후만하여도 931회의 외침을 당하였다고 한다. 외침을 당할 때마다 사료가 소실되었고 멸실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민족에게는 사료가 없을 수 밖에 없고, 사료가 없으니 상고시대의 인물이 전설적인 인물로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료가 없다거나 전설적인 인물이라 하여 복희씨의 64괘 창제설을 부정함은 모순인 것이다. 더욱이 위에서 밝혔듯이 복희씨에 의하여 괘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 외에 한웅천황에 의하여 그려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므로 역은 한웅천황에 의하여 비롯되고 복희와 문왕에 의하여 더욱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 역(易)은 날일(日)자와 달월(月)자의 회의문자인 바꿀역(易)자이다. 곧 역이란 해와 달이 바뀌고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런데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을 보면 "역은 천지(天地)에 준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하였고, 계사상전 제2장에는 "육효(六爻)의 움직임은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의 지극한 이치를 표현한 것이라"하였다. 또한 "그런 까닭에 역의 이치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이 하늘과 땅 두 현상을 낳고, 하늘과 땅은 태양·태음·소양·소음의 4상을 낳고, 그런 까닭에 법의 현상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변하고 통하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역과 신선도의 동일성을 지적하면, 첫째, 신선도의 일기(一氣)와 {주역}의 태극은 같은 뜻을 지닌다. 둘째, 신선도와 주역은 모두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와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을 발생원리로 한다. 셋째, 신선도의 숭배대상은 하나님인데, {주역}에서도 숭배의 대상이 하나님이다. 넷째, 신선도는 순환론인데, {주역} 역시 순환론이다. 이와 같이 {주역}과 신선도의 기본사상이 동일하다. 여기에 괘(卦)가 한웅천황과 복희에 의하여 기원되었다는 것을 아울러 생각하면 {주역}은 원래 동이족의 사상이며 신선도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2. 홍범구주는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란 첫째, 오행(五行). 둘째, 경용오사(敬用五事). 셋째, 농용팔정(農用八政). 넷째, 협용오기(協用五紀). 다섯째, 건용황극(建用皇極). 여섯째, 예용삼덕(乂用三德). 일곱째, 명용계의(明用稽疑). 여덟째, 염용서징(念用庶徵). 아홉째, 향용오복 위용육극(嚮用五福 威用六極)이다. 이를 부연한 것이 유교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홍범구주는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인 황제중경지서(黃帝中經之書)가 태자 부루(扶婁)에게서 나와서 우(虞)의 사공(우임금)에게 전하여지고 후에 다시 주왕(紂王)에게 기자(箕子)가 진술한 것이 홍범(洪範)이 되었으니 바로 그것이 황제중경(黃帝中經) 오행치수(五行治水)의 설(說)인 즉 대개 그 학문의 근원은 신시(神市) 구정균전(邱井均田)의 유법(遺法)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즉 지나에 전승된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신시(神市)에서 연원되었다는 것이다. 신채호 역시 여러 전거를 들면서 말하기를 {상서:尙書}에 "홍범(洪範)은 하우씨(夏禹氏)가 전하는 바라" 하였고, {오월춘추;吳越春秋}에 "하우씨가 치수(治水)할 때에 현토사자(玄?使者)로부터 중경(中經)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 "단군 태자 부루(扶婁)가 하우(夏禹)씨를 도산(塗山)에서 보았다"고 하였으므로 이 세 가지 사실을 고찰하여 볼 때, 기자(箕子)의 홍범(洪範)은 곧 부루의 중경(中經)을 강술한 것이라 하였다. 아울러 {한서(漢書)}에 거북이가 문자를 지고 낙수(洛水)에서 나오므로 우(禹)가 홍범을 연(演)하였다 하나, 그것은 망증(妄證)이라 하였다. 3. 인사상은 우리민족의 사상이다 인(仁)자는 사람인(人)변에 두이(二)자로서 천·지·인(天地人)의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그래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고, 유학의 핵심사상을 이루어 사서(四書)의 하나인 {논어}에만도 인(仁)에 대한 말씀이 무려 50여회나 나타난다. 그러면 인사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의 무엇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첫째, 고대에 있어서 인(仁)과 인(人)과 이(夷)는 같은 의미로 쓰였다. 즉 인(仁)은 동이족을 의미하였다. 중국의 학자 노간(勞幹)도 말하기를 "우리들이 동방 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는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람인(人)자와 어질인(仁)자는 동이족에서 나온 동이족을 의미하였다는 것이다. {설문}에도 어질인(仁)자는 오랑캐이(夷)자의 고자(古字)라 하였다. 둘째,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동방을 이(夷)라 한다. 말을 어질게 하고 인생을 즐기며, 만물이 땅에 근본하여 태어난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이치로써 다스리니 군자들이 사는 불사지국에 이르렀다 하고, {신이경;神異經} 동황경(東荒經)에도 동방 사람들은 항상 공손히 앉아 서로 거스르지 않으며 서로 칭찬은 하되 서로 헐뜯지 않고 남의 환란을 보면 몸을 던져 죽어도 구제하니 이를 일컬어 착함이라 하였다. 또한 중국 고서 {이아;爾雅}에 "구이는 동방에 사는데 동방은 해돋이 땅으로 태평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질다. 땅의 정기가 그러한 때문이다고 하여 땅의 정기로 인하여 동이족은 원래 어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인(仁)은 동이족의 성격을 의미한다. 셋째, 인(仁)은 도·불·유 삼교의 근원사상이다. {최문창후전집} "지증화상비명병서"에 의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방위에 따라 나누니 동방에 짝한 바가 仁이다. 인은 道·佛·儒 三敎를 일으켰으니 정역에 드러낸 이름이 불(佛)이다. 인심(仁心)이 곧 불(佛)이며, 불목(佛目)은 능인(能仁)의 법칙이라"하였다. 즉 인(仁)은 동방사상인데 인사상에서 도·불·유 삼교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사상은 신선사상이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제1편에서 상설하였다. 4. 제례의 기원은 우리민족에 있다 지나의 유교에 상제(上帝)와 조상신을 모시는 제례풍속이 있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 유래되고 있는가? 이것 역시 지금까지 서술한 바에 의히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제 그 유래를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자. {서경} 우서를 보면 순(舜)임금이 제위(帝位)에 오르자 상제(上帝)와 육종(六宗)과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두루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규원사화}에 의하면 "음력 10월에 제천하던 것이 만세의 풍속이 되니, 그것이 동방 특유의 성대한 제전이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순이 제위에 올랐을 때 상제께 제사를 올리고 육종(六宗)에 제사를 지내며 차례로 산천제신(山川諸神)에게 두루 제사하니 이는 일찍이 순(舜) 이전에는 없던 일로 이 역시 동방에서 제천보본하는 의식과 산악하천(山嶽河川)이나 해양소택(海洋沼澤)에 봉명하는 사상에 근원한 것이다"라고 하여 10월의 소도제천의식에서 제사풍속이 연원되었고, 지나의 제례풍속도 이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도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이 모든 것을 하나로 규합하는 서물(庶物)의 원의(原義)인 즉, 천하구환(天下九桓)의 예락(禮樂)이 곧 삼신고제(三神古祭)의 풍속이 아니고 무엇이리요"하여 모든 예의법속이 삼신사상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족의 제례풍속 역시 우리나라에서 지나족 사회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Ⅳ. 오륜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다.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사상(五倫思想)도 지나의 유교에 뺏겨 지나족에 의하여 창안된 외래사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그러한 인식을 떨쳐버리고 오륜사상이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임을 논증하려 한다. 그러한 논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첫째, 오륜사상이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되었다는 종래의 관념이 부정되어야 하며. 둘째, 오륜사상이 동이족에서, 좁게는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 시대에 발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야 하고. 셋째,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면 오륜사상이 오늘날 공맹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사상이며 신선도의 덕목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하에서 위의 세 가지 문제를 순서대로 하나씩 밝혀나가기로 한다. 1. 오륜은 지나족의 창작이 아니다. {동몽선습}에 의하면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이 귀한 것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맹자}에 이르기를(孟子曰) 부자유친(父子有親)하며 군신유의(君臣有義)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하시니 사람으로서 오상(五常)을 알지 못하면 금수에 가까워짐이 먼데 있지 않으니라" 하였다. 이 원문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오륜사상이 맹자에 의해서 창작되고 가르쳐진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맹자} 등문공장구(상)에 기록되기를 "사람의 도리에 있어서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며, 안일하게 지내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까워지기 쉽나니 성인(聖人)이 이를 근심하여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이 그것이다"하였다. 이를 보면 {동문선습}에서 말하는 {맹자}는 사람이 아니라 책자이며, 오륜사상은 맹자에 의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고대의 성인(聖人)과 설(契)로 올라간다. 그러면 그 성인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중국에서 성인이라면 공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공자는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설 보다 약 1천 8백여년 뒤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유학을 집대성(集大成)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이 될 수 없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누구인가? 공자께서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밝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문왕과 무왕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인가? 문왕과 무왕도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천여년이나 후대의 인물이라는 것은 사계의 학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이라 할 수 없다. 또한 공자께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을 조술하였다 했다. 그러면 이들이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인가? 그렇다 그들이 바로 설(契)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 아니면 순임금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서경} 요전(堯典)이나 {논어} 요왈편(堯曰篇) 등 기타 요임금에 대한 기록을 보면 어디에도 요임금이 설(契)과 더불어 오륜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서경} 우서 순전을 보면 거기에 {맹자}의 기록과 일치되는 대목이 있다. 즉 "임금(舜임금)이 말하기를 설(契)이여! 백성들이 화친하지 않으며 오품(五品)을 따르지 않고 있소. 그대를 사도(司徒)에 임명하니 오교(五敎)의 가르침을 삼가 펴서 너그럽게 하기 바라오" 하였고, 그 주(註)에 오품(五品)이란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의 다섯을 가리키는 위계적 등급이라 하였다. 오교(五敎)는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임이 당연한 이치라 하였다. 그렇다면 {맹자}에서 말하는 성인은 순임금이 틀림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표(7)과 같이 {맹자}의 기록을 {서경}의 기록에 대입시킬 경우 서로 일치되기 때문이다. 도표(7) {맹자}와 {서경}의 기록 비교맹자의 기록 聖 人 설(契) 司徒 五倫 서경의 기록 舜임금 설(契) 司徒 五敎 즉 {맹자}에 성인이 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 오륜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하고, {서경}에는 순임금이 설을 사도에 임명하여 오교(五敎)를 가르치도록 하였다 하였으므로 {맹자}의 성인은 곧 순임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순임금과 설은 지나족이 아니다. 따라서 오륜(五倫)사상은 지나족에 의하여 창제된 것이 아니라고 거의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오륜의 발상지는 배달국이다. 순임금과 설(契)이 지나족이 아니라면 어느 민족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규명하여 보자. {맹자} 이루장구 하(離婁章句 下)에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낳고, 부하(負夏)로 옮겼다가 명조(鳴條)에서 운명하였으니 동이인(東夷人)이라 하고, 그 주(註)에 제풍·부하·명조는 모두 지명일 뿐더러 동이족이 다스리던 곳이라 하였다. 즉 {맹자}에는 순임금의 출생지·거주지·사망지가 모두 동이지방이라는 증거를 들면서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순임금을 동이인이라 하였다. 또한 {단기고사}에 의해도 순임금은 단군왕검의 중신인 고시(高矢)의 형 고수(高未)의 아들이다. 그리고 안호상을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이 중국의 고서를 전거로 들면서 설(契) 역시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이 전거나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지나족에게 처음으로 오륜사상을 보급한 순임금과 설(契)이 동이족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동이족 사회라는 것을 말한다. 국내고서인 {단기고사}에 의해도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그 이전 배달국에 이미 있었다. 즉 {단기고사} 제1세 단제 왕검편에 단군왕검께서 수두교를 창설하시고, 중신(重臣)인 신우(神佑)에게 명하여 백성에게 오륜을 가르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오륜의 성립이 단군조선 시대에 있었고 신선도(수두교)와 함께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신선도는 단군왕검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한웅천황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므로 오륜의 성립은 한웅조인 배달국 시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태백일사} 마한세가(상)에 유중유일(惟中惟一)의 도(道)는 아비가 되어서는 마땅히 효도하고, 임금이 되어서는 마땅히 충성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존경하고, 형제가 되어서는 마땅히 서로 사랑하고, 노소(老少)는 마땅히 차례가 있고, 벗은 마땅히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의 고서에도 오륜사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를 보아도 오륜사상의 성립연원이 우리민족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3. 오륜은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닌다. 오륜사상이 단군조선 또는 배달국에서 성립된 우리 민족의 고유덕목이라면 신선도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 즉 三倫이 三神사상에서, 五戒가 五帝사상에서 발원되었다면 오륜은 五行사상에서 발원되어야 한다. 우선 오륜과 오행의 공통점을 지적하면. 첫째, 오행이란 만유의 존재현상이 木·火·土·金·水의 다섯 가지로 동정변화하면서 돌아가는 자연법칙을 의미한다. 그런데 五倫의 倫은 사람인(人)자와 둥글륜(侖)자의 회의문자로서 오륜은 인간관계가 부자·부부·붕우·군신·장유로 돌아가는 예법을 의미한다. 즉 오행이 자연법칙이라면, 오륜은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둘째, 오행은 지전(地轉)에서 생기고, 지전은 태양과 지구의 인력에서 생긴다. 즉, 오행은 태양과 지구의 쌍무관계에서 생긴다. 그런데 오륜의 부자유친은 부자자효(父慈子孝)로, 군신유의는 군인신충(君仁臣忠)으로, 부부유별은 부화부순(夫和婦順)으로, 장유유서는 장혜유순(長惠幼順)으로, 붕우유신은 상교이신(相交以信)으로 풀이 된다. 즉 오륜 역시 상부상조하는 쌍무관계이다. 이와 같은 공통점으로만 보아도 오륜사상이 신선도의 오행사상에서 나온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하에서 오행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오행과 오륜과의 연관성을 밝힌다. 이해의 편의상 일반적인 순서를 바꿔 설명한다. ① 土 : 토는 흙이다. 흙은 농토로 쓰면 농토가 되고, 집을 지으면 집터가 되며, 겨울이 되면 습토가 되고 여름이 되면 초토가 되어 때와 장소에 순응할 뿐이다. 그뿐인가? 모든 생물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흙은 생명의 보금자리이며 생활의 근본이다. 흙의 그러한 성격으로 토(土)는 방위로 말하면 동·서·남·북의 중앙으로서 사방(四方)에 모두 관련을 지니는가 하면, 계절로 말해도 장하(長夏)로서 사계(四季)의 중앙이다. 그 덕목으로 말하면 부자·부부·붕우·군신·장유는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로 하는 덕목이 토에 해당한다. 그러한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상(五常) 중 신(信)이며, 오륜 중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신(信)이다. 신은 진실(眞實)·불기(不欺)·무망(無妄)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은 토를 상징한다. ② 木 : 목은 물질로 볼 때 나무를 뜻한다. 나무는 습도와 온도 등 적절한 조건에 해당되는 시기가 되면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뻗어나간다. 이는 하나의 출발이다. 이를 계절에 비유하면 그것은 봄(春)이며, 방위에 비유하면 해가 처음으로 떠오르는 동방이다. 사업에 비유하면 시작이다. 인생에 비유하면 그것은 유년기에 해당되는데, 어린 자녀를 교육시키고 양육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仁)과 친절(親)이다. 사랑과 친절은 오상(仁·義·禮·智·信) 중 인(仁)이며, 오륜 중 부자유친의 친(親)이다. 그래서 인(仁)과 친(親)은 오행(五行) 중 木에 해당된다. ③ 火 : 화는 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불이다. 불은 빛과 열을 발산한다. 이는 계절로 말하면 여름(夏)에 해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남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번성기이며 성장위주의 시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한창 뻗어나가는 청년기로서 그 감정으로 볼 때는 가장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시기이며, 태도로 볼 때는 의기양양하고 투쟁적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예절이며, 남녀 간에는 분별이다. 이는 오상(五常) 중 예(禮)이며, 五倫 중 부부유별 또는 남녀유별의 별(別)이다. 이래서 예(禮)와 별(別)은 火에 해당된다. ④ 金 : 금은 쇠붙이로서 단단하면서도 빛난다. 그래서 금은 완성으로 접어든 단계를 상징한다. 火가 양적 성장기라면 금은 질적 성숙기이다. 이를 계절에 비유하면, 그것은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秋)에 해당되며, 방위로 말하면 황혼이 깃든 서방에 해당된다. 사업으로 말하면 성장위주에서 공익사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40∼50대의 장년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여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어떠한 상량적 계산이나 불의(不義)와 타협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의지와 투철한 가치관 그리고 인도주의 정신이 요청된다. 그러한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의로움(義)이다. 의로움은 五常 중 의(義)이며 오륜중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의(義)이다. 이래서 의(義)는 오행 중 금에 해당된다. ⑤ 水 : 수는 물이다. 물은 생물의 생장과 발육에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북방에서 찬바람과 함께 몰아닥치는 찬이슬과 눈보라는 생물을 말라 죽게 한다. 그런 때가 되면 웬만한 동물은 땅속에서 잠을 자게 되고, 씨앗이나 뿌리도 땅속에서 잠을 자며, 내년을 기다린다. 이는 계절로 볼 때 겨울(冬)이며 방위로는 북방에 해당된다. 즉 외형적으로는 소멸하였지만 내적으로는 다음 단계를 위하여 응고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인생으로 볼 때, 유년기·청년기·장년기를 거친 노년기에 해당된다. 노년기는 지나온 사회적 경험과 축적된 지혜를 정리하여 후예를 양성하고 사회에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를 정리(序)하면서 지혜(智)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五常 중 지(智)이며, 五倫 중 장유유서의 서(序)이다. 이래서 지(智)와 서(序)는 수(水)에 해당된다. 이상과 같이 오륜의 기본사상이 모두 신선도의 오행사상과 일치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륜이 지나족에 의하여 체계화되었다거나 창제되었다는 기록도 없었고, 오히려 지나족에게 오륜사상을 전한 순임금과 설(契)이 모두 동이족이었고, 단군조선 사회에도 오륜사상이 있었다. 따라서 오륜이 오늘날 공맹유교의 중심덕목이라 하더라도 그 성립연원이 단군왕검 시대 또는 그 이전 한웅천황 시대로 볼 수 있고, 오륜사상은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며 신선도의 고유덕목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Ⅴ.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요약 정리하면 1) 지나인의 정신적 고향이며 지나문화의 발상지라는 신비의 곤륜산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다. 2) 유교가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集大成)되었다 하더라도 그 유래를 찾아 올라가면 복희·신농·황제·요임금·순임금으로 소급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동이족이다. 3) 한자의 전래와 더불어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그런데 한자의 창제기원 역시 동이족에 있었다. 4) 지나의 고대문화는 음양오행사상을 비롯해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음양오행사상과 홍범구주는 단군조선에서 지나로 전승되었다. 5) 유교의 기본경전은 {주역}이다. {주역}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주역}은 동이족에 의해서 비로소 창제되기 시작하였다. 6) 유교의 기본사상은 인(仁)사상이다. 그런데 인은 원래 동이족과 그 성격 및 그 사상을 의미한다. 7) 유교의 기본덕목이 오륜인데, 오륜은 원래 신선도의 덕목이었다. 8) 기타 사상에 있어서 숭배의 대상·우주관·발생원리·제례의식·종교적 목적이 신선도와 동일하였다. 9) 유교사상을 지나족이 최초로 설파하였다는 기록도 없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생각하여 볼 때, 지나의 유교는 비록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되고 체계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원류는 우리나라의 신선도로서 그 유파라 아니할 수 없고, 이제 유교는 발상지인 조국으로 되돌아온 격이라 할 수 있다. 곧 유교는 원래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는 송(宋)나라와 명(明)나라에 걸쳐 정이천(程伊川)·정명도(程明道)·주희(朱熹)에 의하여 지나족 중심의 주자학으로 변질되었다. 그러한 사상을 고려말엽에 수입한 이래, 근세조선은 5백년 동안 국시로 하여 정치·종교·교육의 기반으로 삼았다. 지금의 대학에 해당되는 성균관이나, 지금의 중등교육에 해당되는 향교에 나가면 한국 사람으로서 지나족인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 5성과 공자의 제자 10철 및 72제자 그리고 송나라의 6현에게 절을 하여야 했고, 지나의 역사인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 등 삼사(三史)와 지나의 종교서적이며 사상서인 논어·맹자·대학·중용·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등 사서오경(四書五經)과 그밖에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배워야 하였다. 사회적으로 관혼상제도 지나의 풍속을 따라야 하였다. 그러면서도 제 민족의 조상인 한인·한웅·한검의 삼성(三聖)을 모신 사당은 평양 구월산의 한쪽 구석에 방치하여 한 왕조에 한번 돌아볼까 말까 할 정도였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일체 가르치지 않았으며, 국가고시인 과거시험 과목에도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과목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근세조선 시대의 우리민족은 지나의 삼대(夏·殷·周) 역사는 이를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한(고조선의 마한·진한·변한) 역사는 전혀 몰랐다.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잘 알면서도 제 민족의 삼신오제(三神五帝)는 전혀 몰랐다. 또한 지나의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줄줄 외우면서도 제 민족의 배달성전(삼화경)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이를 부끄럽게 생각치도 않았다. 그러한 것이 근세조선의 사회적 풍토였다. 좀 가혹한 표현을 쓰면 근세조선 500년은 지나의 사상적 식민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외래종교 신자인 주자학자들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었고, 고유의 토속신앙을 지키는 서민들은 노예였고 하인이었다. 그래서 서민을 노예처럼 하인처럼 혹사하고 착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수차에 걸쳐 민란이 일어났고, 드디어는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외세가 개입하면서 나라마저 송두리채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근세조선 때의 지나풍 대신 오늘날은 미국 중심의 서구풍으로 바뀌었고, 주자학 대신 서양종교로 바뀌었을 뿐 근세조선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서 유교도와 더불어 반성하여야 할 문제점을 몇가지 꼬집고자 한다. 첫째, {주역}을 해설한 계사상전의 천존지비(天尊地卑) 이론과 이를 계승한 정주학의 이존기비(理尊氣卑) 이론이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이냐의 문제, 그러한 이론을 국가에 적용시켜 다른 나라인 지나를 대국(大國)·부국(父國)·중국(中國)·중화(中華)라 받들고, 제 나라를 스스로 소국(小國)·자국(子國)·이적(夷狄)·소중화(小中華)라 천시하여 서민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었던 행위, 또한 이존기비이론을 자기민족에 적용시켜 관존민비(官尊民卑)·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만들어내어 서민을 천민으로, 나약한 여성을 비열한 인간으로 취급하여 혹사하고 착취를 예사로 하였던 행위가 과연 옳았던 일인가? 둘째, 우리민족은 지나족이 아니다. 지나족과 다른 역사와 사상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므로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을 배우기 전에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그런데 근세조선 시대에는 지나의 주자학을 국시로 함으로써 지나족의 역사와 사상만을 가르쳤고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은 하찮은 것으로 묵살되었고, 오히려 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고 배우면 이를 사문난적이라 하여 매도하였다. 그러한 교육환경에서 어떻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겠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제 민족의 사상서인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가르치고 있는가? 정주학이 이 나라에 전래된 것이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 민족을 위해서 전래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유교의 사서오경과 더불어 제 민족의 성전도 함께 가르쳐야 옳은 일이 아닌가? 셋째, 주자학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향교는 누구의 땅에 누구를 위하여 누가 세웠는가? 한국땅에 한민족을 위해서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의 노력과 재력으로 세운 것이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지금도 누구를 모시고 누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가? 지나족인 공자·맹자 등 五聖과 十哲과 七十二弟子 그리고 宋나라의 六賢을 모시고 거기에 한국 사람이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들 지나인들은 한인·한웅·한검에 비유하면 까마득한 후배이며 손님이다. 그런데 주인과 선배를 물리치고 후배인 손님이 선배처럼 또 주인처럼 대우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 할아버지와 제 할머니를 무시하고, 남의 할아버지와 남의 할머니에게 절을 하도록 시키면서 부모조상에게 효도하라는 격이 아닌가? 또 성균관이나 향교의 집례관인 주자학자들은 지나의 하수인격이 아닌가? 그것이 과연 공자와 맹자가 바라고 윤리도덕에 부합되는 일인가? 이는 주객전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참으로 상식 밖의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 종교의식 아래서 어떻게 민족적 주체의식이 나오겠는가? 민족적 주체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애국애족심은 나오겠는가?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탓하기에 앞서 기성 종교인들의 가치관이 전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아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전체 민족이 깊이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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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1 그러고 보니 히데요시가 임란 때 직접 조선에 건너 오겠다고 했던데 말이오... [6] 황금성의 05.03.27 754 0
6780 고분시대 일본의 여러 건물 복원 모형 [1] ??? 05.03.27 446 0
6778 나치당 새로운 돌진 제6화 <하츠부르크 뒤통수> [2] 송태조조광윤 05.03.27 449 0
6776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 v1.01 [48] 할일없음 05.03.27 1545 0
6775 일본 고대 갑주 이미지. [12] 송태조조광윤 05.03.27 1533 0
6774 승자총통과 같은 소형 총통류의 운용법 [23] KaTyUsHa 05.03.27 684 0
6772 갑옷의 지존! -고구려 갑옷- [19] ??? 05.03.27 1547 0
6771 두정갑의 등장과 사용시기는? [27] 뷁하 05.03.27 941 0
6770 불란서가 들고간 직지심경인가?? 이거 왜 안돌려줘요?? [25] 위풍당당 05.03.27 901 0
6769 임진왜란의 주력군 [33] 후럭 05.03.27 1439 0
6768 7세기 한반도 3국과 왜국의 모습 [2] 7세기 05.03.27 728 0
6767 임란 직후 조선 사신이 본 일본의 모습 [12] 사마시 05.03.27 1375 1
6766 경상 좌병사 박진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오. [5] 지나가는 나그네 05.03.27 7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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