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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에 대한 새로운평가(횽들은 아는 내용일꺼야.새내기를 위해 참자)

아쳐형님만세 2005.03.15 21:17:49
조회 453 추천 0 댓글 2


1997년 논문 〈고종황제의 암약설 비판〉으로 ‘고종 다시 보기’를 시도한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57)의 얘기다. 이 교수가 최근 그동안 연구성과를 집성한 단행본 〈고종시대의 재조명〉을 내놨다. 고 종 시대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서술한 서장과 9편의 논문으로 구성 된 〈고종시대의 재조명〉은 그동안 국 민이 가졌던 일반적 역사 인 식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 그득하다. ▲고종 암군설을 비판하고 ▲갑신정변의 허위성과 임오군란 당시 청 군 출병의 진상을 규명하며 ▲국기 제정과 도시 개조사업, 항일 정보 기관 제국 익문사 창설 등 고종의 근대화 치적을 밝히는 글이 대표 적 인 예다. 물론 이들 내용은 한국 근대사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만큼이나 당시 굴절된 역사에 대한 ‘미화’로 비쳐 질 위험성도 담고 있다. 기존 학계나 일반인들 사이에선 서로 처한 시대적 상황이 다른 영·정조 때와 고 종을 대비시킨 평가라든가, 20세기를 앞두고 절대군주제를 지 향한 고종의 시대착오적인 개혁에 대한 비 판적 주장들이 여전히 만만 치 않기 때문이다. -고종시대를 재조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 고종시대를 파악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하고 싶었다. 양요와 쇄국, 개항, 갑신정변, 아관 파천 등 일본 침략주의의 시혜론적 관점에서 서술된 근대사의 흐름은 국민 사이에 패배주의적 역사인식 을 조장해왔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반성 차원을 넘어 자기 비하나 자 괴감만 심화될 뿐 긍정적 역사 창출 이 어렵다.” -고종을 개명군주로 바라보고 있다. 근거는 무엇인가. “국기 제정을 비롯해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문물 소개서 등 3,000여 종 4만여 권의 중국서적을 사들여 근 대화 자산으로 활용하려 했다. 외국기자들 전언을 살펴보면, 고종의 해외정세 분석은 결코 세상 물 정 모 르는 수준이 아니다. 그 예로 러일전쟁을 정확히 예견했고, 당 시 무기 구입계약 등을 통해 중립국을 추 진한 점을 들 수 있다.” -고종은 격변기를 헤쳐나갈 만한 정치력이 있었나. “일본 왕에게 제출된 ‘한국 특파대사 이등방문 복병서’에 따르면 을사조약에 대한 고종의 반대는 완강 했다. 조인을 위한 첫 단계인 전 권공사를 임명해 달라는 일본의 요구에 고종이 끝까지 응하지 않은 것으 로 되어 있고, 궁내부 대신을 통해 2∼3일만 결정을 미뤄줄 것을 요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한테 ‘외교권의 형식 만이라도 남겨달라’고 요구한 것의 핵심은 해외여론 호소를 위해 외국 공 사제를 남겨두려는 것이었다. 그 뒤 을사조약 무효를 국제적 으로 호소한 노력은 이런 고종의 외교전략 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종은 약소국 군주로서 열강 침략세력의 상호 견제를 통해 독립을 지키려 했 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 주도의 3국 간섭으 로 기세가 꺾이는 것을 본 고종의 아관파천 단행은 민비 시해 등 최 악의 상황에서 나름대로 주도면밀한 판단이었다.” -고종 재위기간은 쇄국과 개국을 축으로 내홍으로 점철된 듯하다. “고종이 1873년 친정에 나선 이래 1876년 개항을 단행한 다음 1880 년 개화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비록 1882년 임오군란에서 1896년 러 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에 이르기까지 15년간은 국왕 중심 의 개화정책이 중국·일본 등 외세의 견제로 방해를 받았던 ‘낭비의 세월’이었지만 나름대로 개화정책 을 꾸준히 추진했다. 때 문에 이 시기 정치사를 민씨 외척세도의 시기로 규정하는 종래 해석 은 잘못됐다 고 본다.” -을사조약 이후 퇴위하기까지 고종은 그야말로 허수아비에 불과하지 않았나. “아니다. 일본 침략 등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통신사를 가장한 ‘제국익문사’란 황제 직속 정보기관을 비밀리에 운영했다. 이 기관은 표면적으로 매일 사보를 발간해 국민이 보도록 하 고 국가의 긴요한 서적도 인쇄하는 현대판 통신사 기능을 담당했 지만 내면적으로는 국가 정보기관 역할 을 수행했다. 요원들은 주로 정부 고관과 한성 주재 외국 공관원들의 동정, 국사범과 외국인들의 간첩행 위, 학교·종교·사회단체의 반국가적 행위 등을 탐지했는데 한성과 지방은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에 서까지 활동했다. 규정집 내용 가운데 일본인과 일본기관을 지칭한 사항이 10개 항에 달해 이 들의 활동 이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을 저지하는 데 맞춰졌다. 특히 강 제 퇴위 당하기 전까지 고종이 전개한 을사조 약 무효화운동을 집중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학혁명 당시 고종은 청군의 출병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 데. “청군의 출병은 농민군의 봉기에 겁을 먹은 고종이 자진해 요청한 게 아니라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주둔하며 내정에 간섭했던 위 안스카이(袁世凱)의 강요에 따른 것이다. 고종은 당시 결코 반(反)농 민적 인 입장에 서 있지 않았다. 고종은 백성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 미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신들이 고종을 비판하고 있었다.”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을 해프닝으로 평가했다. 근거는 무엇인 가. “김옥균·박영효·홍성범 등 주로 한성 사대부 출신으로 구성된 주 도세력은 개화의 선각자일는지는 모 르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호 기가 지나친 나머지 대사를 무모하게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국가에 큰 짐 을 안겨줬다. 뜻은 좋지만 방법이나 과정 자체도 이미 반개혁적 이다.” (이 교수는 주도세력인 김옥균 일파가 ‘일사래위(日使來衛)’, 즉 일 본 공사는 궁궐로 들어와 국왕을 호위하라는 고종의 어서(御書)를 위 조한 점을 밝혀냈다.) -독립협회의 일부 민권운동을 독립협회 친일분자들이 주도했다는 주 장도 이채롭다. “고종이 왕정을 정상화해 본격적인 개혁을 시도한 기간은 아관파천 을 계기로 다음해 대한제국을 수립 해 광무개혁을 시도하다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좌절된 8년간이다. 특히 이 기간에 일어난 독 립협회의 의회 개설운동이나 관민공동회, 만민공동회 등 민권운동은 광무개혁의 성과에 놀란 일제가 협 회 지도부의 일부 친일파를 사주 해 일으킨 소요다.” (이 교수의 주장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의 민권운동을 능동적인 개혁 과 독립운동의 큰 줄기로 해석한 신 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나 강 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등 학계 중진들이 내세운 학설과 크게 배치되 는 부분이어서 격론이 예상된다.) -고종의 ‘암약론’이 출현한 배경은 무엇인가. “일제는 대한제국이 1897년 광무개혁을 통해 자력 근대화의 가능성 을 강하게 보이자 이에 위기감을 느 껴 고종의 무능설(‘暗’)을 유포 하기 시작했다. 그 뒤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을 계기로 일제가 고 종 을 강제 퇴위시키는 과정에서 공식 제기했고, 1910년 강제 병합을 하고 나서 고종의 치적을 매장할 목적 으로 자국의 문필가와 학자들 을 동원해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구세력 다툼에서 우왕좌왕하는 나약 한 군 주(‘弱’)란 허위를 보태 조직적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이제 무능하다는 평가 아래 삭제된 고종 의 근대화 노력과 외교전략 을 복권시켜야 한다.” --------------------------------------------------------------------------------------- 솔직히 우리 근대사 가르치는 교수가 고종 옹호하길래. 내가 금송아지 이야기 해주더니 그 자금으로 개화를 위해 추진했다고 하던게 그말이 이것인지 미슷훼리....... 이 말 반박 할 수 있는 형 없어. 다음 주에 나도 교수한테 반박한번 해보게 (학점은 안나오겠지만) 교대다니니까 F만 면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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