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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무기 개발에 대해. ㅇㅇ햏에게.

뷁하 2005.03.16 03:25:37
조회 508 추천 0 댓글 5


소햏은 역갤에서 논지도 얼마 안됐으니 남들 무시하고 훈수두는 경향이 있는 고정닉 유저가 아니므로 걱정마시오. 다만 소햏 말하는 방식의 뉘앙스가 불편하게 들려도 미래의 법관으로서의 넓은 도량으로 가볍게 넘어가주시기 바라오. 적어도 소햏은 패배니 논파니 하는 건 듣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식으로 무성의하게 단어를 사용하진 않을테니 소햏 글의 요점을 이해하시는데 크게 문제없을 것이오. 소햏 본성이 원래 이렇다오. ---------------------------------------------------------- 귀햏의 의견에 모두 딴지 걸 생각은 없소만, 무기개발에 관해 몇가지 소햏의 어줍잖은 지식으로 반박 좀 해보겟소. 우선 고려말은 엄청난 혼돈의 시기요. 귀햏은 고려말 화포개발한 게 무슨 평화시 개발한 거라고 착각하시는 듯한데, 최무선 위인전만 읽어보셨어도 이에 대한 반박은 충분히 할 수 있소이다. 최무선이 왜 화포를 만들고 어떻게 썼는지는 어린이 위인전에도 잘 나와있소. 소햏이 요략해보겠소. -최무선이 살던 시기에는 전란이 들끓고 도적이 날뛰며 왜구들이 우리나라 백성들을 괴롭히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왜구들에 의한 피해는 매우 극심했습니다. 최무선은 자나깨나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왜구들로부터 이 나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 고심했습니다. "그래. 화약이다. 화약을 이용해서 화포를 만들면 저 나쁜 왜구 놈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야." 허나 우리나라는 그때까지 화포를 제조할 줄 몰랐습니다. 최무선은 중국으로부터 화약제조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중략 드디어 최무선은 자신이 개발한 화포를 탑재한 선단을 이끌고 왜구들을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때부터 왜구들은 화포의 위력에 겁을 내어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린이 최무선 위인전만 읽어도 당시 고려말 시대상황과 화약과 화포의 제조에 대한 필요성과 개발동기, 문제의식 등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소. 왜구는 정규군이 아니라고 하셨소만, 물론 도적떼이긴 하나 별 것 아닌 도적떼가 아니었소. 일단 병사들의 개인적인 전투력[즉 백병전 능력]은 나라가 강하든 약하든 그다지 상관없었고 다만 얼마나 악착같고[즉 거친 환경에서 자랐다는 뜻] 경험이 많냐가 중요하오. 그리고 왜구들의 도보 백병전 능력은 동아시아에서 발군의 실력. 그리고 규모에 관한 문제.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 그의 친병 수는 대략 1천5백. 기록상으로 적의 수는 그의 열배라고 했으니, 대략 1만이 넘는 왜구가 내륙 깊숙히 까지 들어왔다고 보면 되오. 도적떼이긴 하지만 무슨 임꺽정같은 수준이 아닌 거요. 참고로 고려말에는 이런 왜구에 의한 피해가 너무 극심해서 해안가에서부터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까지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지정하게 되오. 모래사장에서부터 방풍용소나무 건너 논밭 지나 산 넘어 3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는 위험지대란 말이오. 그리고 침략횟수. 연도 1350년부터 1379년까지 34, 38,112로 증가추세. 그리고 최무선이 화포를 처음 사용한 1380년에서부터 1389년까지 가장 높은 수치인 122. 고려가 1392년에 망하고, 이때부터 횟수가 69, 50, 10, 18로 줄어들면서 1439년에 가면 7로 줄어드오. 고려말은 충분히 무기개발동기와 문제의식이 팽배했던, 전란과 혼돈의 시기였소. 이걸로 귀햏이 평화시에 무기개발에 대한 근거로 든 것 중 하나인 고려말 시기 왜구에 대한 화포개발은 충분히 반박될 수 있소.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의 동기도 분명하고, 격퇴해야 할 상대인 왜구는 결코 녹록치 않은 적이었소. 그리고 세종시대의 화포개발은, ㅇㄹ햏은 왜구에 대항한 것이라고 했지만 소햏의 의견으로는, 그것보단 여진족을 상대하기 위한 목적이 더욱 크게 생각되오. 당시 세종은 4군6진을 개척하고 함경도 이북지방을 정벌하려 했기 때문에 마찰을 거쳐야 할 여진족과의 전투를 좀더 용이하게 이끌기 위해 화포개발을 시키오. 세종도 화포개발이 필요했다고[그것도 수비적인 목적이 아니라 정벌을 위해서] 느꼈던 것이고, 이건 전쟁을 위한 준비였소. 그리고 실제로 몇 신작들은 전투에서 꽤 짭짤한 재미를 봤던 것으로 알고 있소. 그리고 무기개발은 전쟁으로 인해 주로 발달하는 건 사실이오. 평화시에 무기개발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현재 같이 휴전상태라 곧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을 대비해서 만드는 것이고, 장기적인 목적이라곤 해도 거진 십수년 앞을 내다본 게 보통이오. 대부분은 전국시대처럼 유럽이나 일본같이 치고박고 싸우고 잠깐 쉬자! 해서 쉬었다가 또 싸우고 하면서 무기가 발전하는 게 보통이오. 이 나라들은 항상 전쟁이 언제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개발에 여념이 없소. 역사상 평화시대에 1백년이 넘는 미래를 내다보고 무기개발하는 나라는 없소. 냉전도 끝나고 싸울 적도 없다는 미국조차 무기 개발하는 이유가 돈이 되기 때문이오.[그래봤자 걸프전이나 월남전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중동에서 그 지.랄인가...] 이건 귀햏이 말하는 평화시 무기개발에 대한 예로 들만한 것이 아니니 패스. 그리고 이제 조선의 처지로 눈을 돌려보겠소. 조선은 고려말에 시작해서 세종시대에 박차를 가한 무기개발은 물론, 국력도 전체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라 이에 맞물려 주변의 적들[여진같은 북방유목민족과 남방의 왜구]보다 무력으로 월등한 위치에 서게 되오. 이때 쌓아올린 차이는 정말 크다고 할 수 밖에 없소. 특히 대형화포의 경우는 몇백년이 지난 임진왜란 때 쓰면서도 위력이 통할 정도였으니, 오히려 조선만큼 미래를 내다보고 만든 나라도 없을 것이오.[그게 애초부터 의도했던 바였든 아니었든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소이다.] 무엇보다 조선의 주적인 여진과 왜구의 기술력이 무척 후진적이었으므로, 종래의 무력기술만으로 이를 제압하는 게 충분해졌소. 여기서 뭔가를 더 개발할 필요성은 당연히 줄어들고, 당시 조선이 무기 팔아서 돈 챙기는 그런 나라는 아니었으므로 쓸데없이 돈만 많이 들어가는 군수산업에서 손 떼는 건 당연하오. 오히려 건국초기인지라 나라를 안정시키고 다른 산업에 예산을 들이는 게 당연히 효율적. 게다가 비싼 무기 개발하는 것보다야 회유정책이나 이간정책으로 이민족을 다스리는 게 전쟁예방차원에서 훨씬 좋았소. 조선전기의 무기개발에 관한 처지는 이랬소이다. 간간히 벌어진 개발도 여진족 토벌이나 왜구 퇴치를 위한, 다분히 전투적인 목적을 위한 개발이었고, 그때그때마다 필요성을 느껴서 만들도록 했었소. 그리고 중기에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판옥선을 비롯한 무기가 몇가지 개발되었고, 그 후에는 운도 없게도, 화포와 철갑옷을 입수하고 체제를 정비한[이때부터 조선과 여진족의 무력차이가 줄어들게 되오.] 후금한테 관광을 당하게 되오. 자, 이제 문제의 효종시대로 오면, 효종은 북벌이라 하여서 이쪽 계열에 큰 관심을 갖고있었고 그의 원 목적대로 쓰이진 못했지만 귀햏이 태클을 건 무기개발[이라기 보단 무기보유와 전투능력 향상이라 할까...군사력이라 하겠소...]은 좀 다르게도 성과를 거두게 되오. 이에 대한 성과를 확인해볼 수 있는 게 바로 제1차, 제2차 나선정벌이오. 이에 관해선 밑에 게시물의 리플에서 다뤄졌으므로 생략하겠소. 다시 말해, 귀햏이 예송논쟁하면서 태클을 걸었던 효종시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조선이 효종의 의지 아래 꾸준히 군사력을 향상시키려 노력했던 시대였던 것이고 그 수준향상에 대한 결과물은 나선정벌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오. 소햏은 이로써 귀햏이 태클의 예로 들었던 것들을 소햏이 알고있는 조선의 시대상황과 무기개발의 동기와 과정, 그리고 결과물로 귀햏이 가장 처음 리플을 달았던,  <ㅇㅇ  미친 광기의 시대.. 예법연구하는시간에 화포개량이나 연구할것이지. 221.150.38.104 2005/03/15 x> 라는 귀햏의 전체적인 이 주장에 반박을 해보았소. 그리고 다른 문제. 전쟁시의 무기개발과 평화시의 무기개발. 평화시에도 무기개발은 할 수 있으나, 전쟁시의 무기개발이 압도적이오. 평화시의 무기개발이라고 해봤자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잠깐 쉬자! 해서 휴전시에 하거나 장기적인 목적도 대부분 십수년 정도를 내다보는 정도이기 때문에, 귀햏이 원하는 것처럼 백년을 넘어 내다보고 '의도해서' 개발하는 경우는 인류역사상 없소이다. 효종시대에 잠깐 반짝하고 영정조 시대 조선의 르네상스도 정조가 일찍 죽으면서[조선은 왕권이나 신권의 균형이 잡혀있었고 정조때는 이 관계가 긴장되었던 사태였기 때문에, 그의 생사여부가 큰 영향을 갖게 되어있소. 조선왕조 역사를 보면 왕이 일찍 죽는 게 정국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잘 알 수있소. 비단 정조뿐만이 아니오. 왕권의 중심인 그가, 그것도 개혁의지가 넘치는 철인군주가 급사한 거요. 그것도 타살설이 크다는...]흐물흐물하게 마무리를 짓고 세도정치로 넘어가게 되오. 귀햏은 베이스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소햏이 보기엔 또다른 베이스를 마련해가는 시기에 일이 터진 것이오. 아마 건국초기와는 다른 의미의, 하지만 그만큼의 안정적인 체제확립의 필요성이 팽배했을 거라고 소햏은 보오. 혹은 조선전기 세조 때처럼 문종의 짧은 죽음으로 인한 정세의 변화처럼 정종의 죽음으로 정권을 잡은 게 세조같은 다른 군주가 아니라 외척들이란 게 다른 것 같소. 그리고 이런 시기에 개혁의 중심점[군주]가 급사하면 상황은 어찌 되겠소? 조선이 갖었던 가능성에 대해서 예의나 따지는 광기의 시대라면서 화포개발이나 했을 것이지, 하고 빈정거리지 마시오. 오히려 자체적으로 혼자서 이렇게 까지 버텨온 조선이 가상할 정도요. 그 시대를 연구하는데 오늘날의 시각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당시 상황의 시선을 염두해두고 왜 그렇게 됐나를 고민하는 건 당연하오. 그걸 가지고 그렇게 상대적으로 모든 걸 따지면 뭐가 잘못됐고 아닌지를 알 수 있겠냐, 라는 사고방식은 그만두시는 게 좋을 듯 하오. 귀햏이 원하는 건 단순히 유럽이나 일본같은 방식으로 발전했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잖소. 그러한 기준을 맞춰두면 당연히 조선의 처지가 그에 맞지 않은데 그것도 바른 평가라 할 수 있겠소? 결과적으론 조선이 망했으므로 그 처지와 길이 당시 시대를 주도하던 세력에 미치지 못했으니 아쉽기 그지없소만, 우리가 얻어야 할 가르침은 단순히 화포를 개발했어야 한다, 라든가 그런 게 아니오. 미래를 대비한다고 역사를 공부한다지만 그건 무척 단편적인 말이고 표면대로 해석하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으니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너무 간단하게 해답을 요구하는 위험한 연구방식이 돼버리오. 역사는 일단 과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거를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소햏은 먼저 생각하오. 단편적인 역사 사건의 나열과 대략적인 정황만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보단, 우선 심층있게 그 시대 사람들의 관점과 입장이 되어보여 우리 인류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파고들어 연구하고 공부하고 이해하여[그것이 오늘날에 보기엔 심히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곤 해도] 가능성을 점쳐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조선의 정치가들은 과거에 이런 전례가 있고 이런 일이 있으니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가볍고 단편적으로 제안하곤 했지만, 세종대왕께선 선현의 지혜에서 모든 정책을 마련하더라도 왜 그랬고 이렇게 하면 어찌 되고 저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모두 대조해보고 옛날에는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고 성과는 있었는가, 성과는 없었더라도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사례로는 어떻게 됐을까? 같은 것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는 왜 판이한 성과가 나왔는가? 그 이유가 생겨난 근본적인 차이는 또 무엇인가?  등등 이런 것을 공부하시고 연구하시면서 자신과 같은 방식을 신하들에게도 요구했고 끝내 조선을 발전시키실 수 있었던 것이오. 그렇게까진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세종대왕의 이런 자세가 역사를 공부하여 현세에 적용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보오. ------------ 나가볼 일이 생겨서 이따 돌아와서 답글 확인하겠소. 없다면 뻘쭘;;;  여긴 낮, 오후 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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