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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 "위서 아니다"

마왕 2006.12.05 17:46:13
조회 332 추천 0 댓글 2


지금 우리들의 상고시대를 기록하고 있는 몇 종류의 책이 이러한 위서 시비에 휘말려 있다. "환단고기"가 그 대표격이다. "환단고기"는 과거에 여러 사람들이 지은 것을 모아서 계연수(桂延壽)라는 사람이 다시 편찬한 뒤 1911년에 처음 간행했던 기록인데 그 구성은 대개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단군시대 이전을 다루는 "삼성기(三聖記)이고, 둘째는 단군시대의 연대기인 "단군세기(檀君世記)"이며, 셋째는 단군계의 한 갈래인 북부여의 연대기인 "북부여기(北夫餘記)"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단군시대 이전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평론적 연대기를 기록하고 있는 "태백일사(太白逸史)"이다. 이들 책이 위서 시비에 말려든 것은 우리 상고사가 공백지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기록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담고 있는 내용은 중국의 "사기"나 "상서"에서 보이는 내용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연대기와 함께 중국 한족에 대한 조선족의 우월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동양사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이 책들은 곧 위서 시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마침내 상당한 편견과 선입견에 의해 위서라는 판결 쪽이 현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문헌을 두루 그리고 깊이 연구하지 못한 젊은 연구자들에 의해 그런 입장이 정설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필자는 같은 젊은이로서 가끔 "환단고기"를 이용하여 상고사를 설명하는 처지인지라 그 진위 문제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다. 아니 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서는 더 이상 이 작업을 진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 그러나 전통적이고 복잡한 방법을 들추어 시비를 밝히는 것은 이 책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다만 그것을 위서로 규정하는 학자들의 표준적인 견해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참과 거짓을 판별해 보고자 한다. 한국 역사 연구회 고대사 분과에서 지은 "한국 고대사 산책"의 다섯번째 주제는 "환단고기 믿을 수 있나"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 서적이 위서임을 주장하는 표준적인 견해들이 두루 나타나고 있다. 첫째, "1923년 중국 낙양에서 남생(南生 : 연개소문의 아들)의 묘지명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이 "환단고기"에 나오는데 그것은 "환단고기"가 1923년 이후에 지어진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1923년 이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는 주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만약 남생의 묘지명이 1980년도에 발견되었다면 환단고기는 1980년 이후에나 지어진 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환단고기가 1949년에 조작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틀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같은 사례가 있다. 대진국(대진국 : 발해는 자기 스스로를 발해라고 부른 적이 없으며, 항상 대진국이라고 불렀다)의 문제(文帝: 중국측 사서에서는 문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므로 문제라고 하는 것이 옳다)인 대흠무(大欽武)연호가 대흥(大興)이었는데 이 사실은 정효(貞孝)공주의 묘비가 발견된 1980년 이후에야 알려졌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는 이미 대흠무의 연호가 대흥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태백일사"는 1980년 이후에 조작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러한 사실은 환단고기가 다른 기록들과 달리 독자적으로 귀중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증명할 따름이다. 실제로 1920년에 간행된 책 가운데도 계연수라는 사람이 편찬 발간한 "환단고기"에 들어 있는 천부경을 인용한 경우가 있다. ------------------------------------------------------------ [돋보기] "정신철학 통편" 1920년 북경 정신철학사에서 전병훈이 펴낸 책으로 원래 제목은 "정신심리도덕정치철학통편"이었다. 이책에는 계연수가 천부경을 입수한 경위가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즉,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 동굴 석벽에서 천부경을 보고 1917년 탁본을 뜬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책에서는 그가 약초를 캐내기 위해 영변의 백산(白山)으로 들어갔다가 천부경을 구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묘향산과 백산이 같은 곳임은 "영변군지"가 입증하고 있기 때문에 기록의 차이는 문자의 차이일 뿐이다. ------------------------------------------------------------ 전병훈이라는 분이 저술한 "정신철학 통편(精神哲學 通編, 1920년 간행)인데 명문당에서 근래(1983년)에 영인본으로 간행한 적도 있다.물론 이것은 1949년 조작설을 전면 부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둘째, "문화"라는 말이 Culture라는 개념으로 쓰인 것은 근래의 일인데, "환단고기"에서 쓰이는 문화라는 개념이 그와 같기 때문에 위서라고 규정짓는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문화라는 표현이 과거에도 "문치교화(文治敎化)라는 개념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과거에도 문화라는 말이 실제로 오늘날의 개념과 확연하게 구분되어 쓰인 것은 아니었다. 그와같이 엄격하게 구분하여 사용한 경우는 골수 성리학자들과 그들이 편찬한 문헌에 지나지 않았다. 또 "전세계" 라든가 "민중"이라는 말도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말이지 근대에 들어 만들어진 말은 아니다. 심지어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 ~ 846)는 자신의 시제목으로 "상인처세계(上人處世界)"라는 말을 썼고,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국어(國語) 월어(越語)"에서도 "민중"이라는 용어가 인민대중의 약자로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청나라의 시조와 관련된 영고탑(寧古塔)이란 지명이 "환단고기"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위서 시비의 좋은 빌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단 하나 밖에 없다는 선입견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동일한 지명이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번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낙양(洛陽)이라는 지명만 하더라도 하나가 아니다. 황하의 중류에 있는 중국의 고도 가운데도 낙양이 있으며, 경상도 상주도 그 옛 이름이 낙양이었음을 구태여 예로 들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아울러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요사(遼史)"에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비판자들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환단고기"의 경우 몇몇 부분은 명백히 편찬자인 계연수가 추가로 서술한 곳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부분은 독립운동가이며 단재 신채호 등과도 친밀했던 계연수의 입장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단재 신채호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부분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용어를 자신의 시대에 맞추어 개작했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환단고기를 위서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위서라고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은 그 기록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는 "조대기(朝代記)"등의 문헌이 전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희귀한 책들을 찾아 모으라고 명령을 내린 조선 세조 때나 성종 때, 명령에 따라 수집한 희귀본 20여종 가운데 "조대기"라는 책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조선왕조실록"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이 그 당시에는 상당히 많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록들은 성종 이후 이름을 감추고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성리학에 의한 학문 세계의 순화 작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이나 세조가 불교를 숭배한다고 목숨까지 내걸고 반대하던 성리학의 천박한 추종자들이 성리학 이외의 기록과 그 기록의 내용을 배타적으로 거부하였던 것이다. 흔히 "도가의 역사서"라고 불리는 이 같은 기록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상황에서 사라지거나 개인 소장가의 장농 깊숙한 곳에 묻히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이론적 라이벌이었던 윤휴(尹휴, 1617 ~ 1680)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정치파동의 계기가 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주자와 소중화사상을 배격하고 단군 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이들 기록이야 어찌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고대사 산책"의 해당 주제 필자는 특별히 숨길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반문한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나찌의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지하활동을 하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게 "너희들은 어째서 숨어서 활동을 하느냐?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무모함이 이 비판자의 주장속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지나칠 수 없다. 사실상 현재 제기된 "환단고기"에 대한 위서 주장은 가상의 논리를 가지고 시비를 붙자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적 자료와 고문헌을 엄밀히 검토해서 비판한 것이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된 송찬식(전 국민대)씨는 대종교의 교리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위서 시비를 걸었고, 박광용(성심여대)씨는 기독교 사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시비를 걸었으며, 이기백(한림대)씨는 청동기 시대 국가이론을 근거로 시비를 걸었다. 아직도 위서를 주장하는 견해에는 이런 개념 싸움에 그치는 유치함이 가시지 않고 있다. 어떤 문헌을 위서라고 비판하는 것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엄청난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지 않다면, 이런 류의 시비는 그만두고, 역사적 자료를 중심으로 깊이 있고 분명한 근거를 내걸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박광용씨의 경우 기마종족 연맹의 과거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의 내용이 일제의 "대동아 공영권" 옹호와 연결된다고 하는 주장["역사비평" 10] 까지 내걸고 있으니 이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의 경우, 모든 기마종족을 같은 동포라고 하는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며, 실제 그 시대의 현실이 그와 같았으므로 외형상 대동아 공영권과 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단고기 등의 내용은 평등한 민족(종족)연맹을 강조하는 것이지 결코 어느 종족의 패권주의적 식민체제를 가리키지 않는다. 참으로 하나의 지식이 역사에 대한 편견과 무지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그런 논쟁이라면 어떤 비판에도 이 기록의 진실됨이 손상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과 함께 나름대로 엄밀한 분석을 거쳐 필자는 이 기록을 사용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현실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그것을 사실 규명의 주요한 자료로 채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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