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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백제본기 22대 문주왕~29대 법왕

타이기록보유자 2007.01.07 1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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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문주왕<文周王 475~477 재위기간 2년> 문주왕['文周'를 '汶州'로도 쓴다.]은 개로왕의 아들이다. 처음에 비유왕이 죽고 개로가 왕위를 이었을 때 문주가 그를 보좌하여 직위가 상좌평에 이르렀다. 개로 재위 21년에 고구려가 침입하여 한성을 포위하였다. 개로가 성을 막고 굳게 수비하면서 문주를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토록 하였다. 그는 구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왔다. 고구려 군사는 비록 물러갔으나 성이 파괴되고 왕이 붕어하여서 문주가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격은 우유부단하였으나, 또한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백성들도 그를 사랑하였다. 겨울 10월,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2년 봄 2월, 대두산성을 수축하고 이곳으로 한강 이북의 민가를 옮겼다. 3월, 송 나라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려 하였으나 고구려가 길을 막았으므로 되돌아왔다. 여름 4월, 탐라국에서 토산물을 바쳐오자 왕이 기뻐하여 그 사신을 은솔로 임명하였다. 가을 8월, 해구를 병관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3년 봄 2월, 궁실을 중수하였다. 여름 4월, 왕의 아우 곤지를 내신 좌평으로 임명하고, 맏아들 삼근을 태자로 책봉하였다. 5월, 검은 용이 웅진에 나타났다. 가을 7월, 내신 좌평 곤지가 사망하였다. 4년 가을 8월, 병관 좌평 해구가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여, 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며, 임금을 경시하였으나 왕이 이를 제어하지 못하였다. 9월, 왕이 사냥하기 위하여 나갔다가 외부에서 묵었는데, 해구가 도적으로 하여금 그를 해치게 하여, 왕이 마침내 붕어하였다. 제23대 삼근왕<三斤王 477~499 재위기간 2년> 삼근왕[혹은 임걸이라고도 한다.]은 문주왕의 맏아들이다. 왕이 붕어하자 왕위를 이었으니, 나이 13세였다. 군사 임무와 나라 정사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좌평 해구에게 맡겼다. 2년 봄, 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과 함께 무리를 모아 대두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좌평 진남에게 명령하여 군사 2천 명으로 토벌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다시 덕솔 진로에게 명하여 정예 군사 5백 명을 거느리고 해구를 공격하여 죽이게 했다.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그의 처자들을 체포하여 웅진 시장에서 목을 베었다. 3월 초하루 기유일에 일식이 있었다. 3년,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들었다. 가을 9월, 대두성을 두곡으로 옮겼다. 겨울 11월, 왕이 붕어하였다. 제24대 동성왕<東城王 479~501 재위기간 22년> 동성왕의 이름은 모대[혹은 마모라고도 한다.]이니, 문주왕의 아우 곤지의 아들이다. 담력이 대단히 컸으며,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 삼근왕이 붕어하자 왕위에 올랐다. 4년 봄 정월, 진로를 병관 좌평으로 임명하고, 서울과 지방의 군사에 관한 일을 겸하여 맡게 하였다. 가을 9월, 말갈이 한산성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3백여 호를 포로로 잡아 돌아갔다. 겨울 10월, 큰 눈이 한 길 넘게 내렸다. 5년 봄, 왕이 사냥하기 위하여 한산성에 이르러 군사와 백성들을 위무하고 열흘만에 돌아왔다. 여름 4월, 웅진 북쪽에서 사냥하다가 신기한 사슴을 잡았다. 6년 가을 7월, 내법 좌평 사 약사를 남제에 보내 조공하려 했으나, 약사가 서해에서 고구려 군사와 조우하여 가지 못하였다. 7년 여름 5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8년 봄 2월, 백가를 위사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가을 7월, 궁실을 중수하고 우두성을 쌓았다. 겨울 10월, 대궐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하였다. 10년, 위 나라가 우리를 침공하였으나 우리 군사가 그들을 물리쳤다. 11년 가을, 크게 풍년이 들었다. 남해의 어촌 사람이 두 이삭이 하나로 합쳐진 벼를 바쳤다. 겨울 10월, 왕이 제단을 만들어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11월, 왕이 남당에서 군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12년 가을 7월, 나이가 15세 이상인 북부 사람들을 징발하여 사현과 이산 두 성을 쌓았다. 9월, 왕이 나라 서쪽 사비 벌판에서 사냥하였고 연돌을 달솔로 임명하였다. 겨울 11월, 물이 얼지 않았다. 13년 여름 6월, 웅천물이 불어서 서울에서 2백여 호가 떠내려 가고 물에 잠겼다. 가을 7월, 백성들이 굶주려 신라로 도망간 자가 6백여 호나 되었다. 14년 봄 3월, 눈이 내렸다. 여름 4월, 큰 바람이 불어와 나무가 뽑혔다. 겨울 10월, 왕이 우명곡에서 사냥하면서 직접 사슴을 쏘아 맞혔다. 15년 봄 3월,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요청하니 신라왕이 이찬 비지의 딸을 시집보냈다. 16년 가을 7월, 고구려와 신라가 살수 벌판에서 싸웠는데 신라가 이기지 못하고 견아성으로 퇴각하여 방어하고 있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포위되었다. 왕이 군사 3천 명을 보내 구원하자 포위가 풀렸다. 17년 여름 5월 초하루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8월, 고구려가 치양성을 포위하자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 왕이 장군 덕지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니 고구려 군사가 물러갔다. 19년 여름 5월, 병관 좌평 진로가 사망하자 달솔 연돌을 병관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여름 6월, 큰 비가 내려 백성들의 가옥이 유실되고 무너졌다. 20년, 웅진교를 가설하였다. 가을 7월, 사정성을 쌓고 한솔 비타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8월, 왕이 탐라에서 공납과 조세를 바치지 않는다 하여 그를 직접 치려고 무진주에 이르니 탐라에서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중지하였다.[탐라는 곧 탐모라이다.] 21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서 , 도적이 많이 생기자 신하들이 창고를 풀어 구제하자고 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한산 사람들 중에 고구려로 도망간 자가 2천 명이나 되었다. 겨울 10월,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22년 봄, 대궐 동쪽에 임류각을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길이었다. 또한 연못을 파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간관들이 이에 항의하여 글을 올렸으나 듣지 않고 다시 간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대궐 문을 닫아 버렸다. 여름 4월, 왕이 우두성에서 사냥하다가 비와 우박을 만나서 중지하였다. 5월, 가물었다. 왕이 측근들과 함께 임류각에서 잔치를 베풀며 밤새도록 실컷 즐겼다. 23년 봄 정월, 서울에서 노파가 여우로 둔갑하여 사라졌다. 남산에서 호랑이 두 마리가 싸웠는데 잡지 못하였다. 3월, 서리가 내려 보리를 해쳤다. 여름 5월부터 가을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7월, 탄현에 목책을 세워 신라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8월, 가림성을 쌓고 위사 좌평 백가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사비 동쪽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11월, 왕이 웅천 북쪽 벌판과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였는데 큰 눈에 길이 막혀 마포촌에서 묵었다. 이전에 왕이 백가로 하여금 가림성을 지키게 하였을 때 백가는 가기를 원하지 않아 병을 핑계로 퇴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왕은 이를 승락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백가는 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 때에 와서 백가가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러서 12월에 이르러 왕이 붕어하니 시호를 동성왕이라 하였다. 제25대 무령왕<武寧王 501~523 재위기간 22년>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혹은 융이라고도 한다.]이니 모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신장이 8척이오,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 모대왕이 재위 23년에 붕어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봄 정월, 좌평 백가가 가림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에 가서 한솔 해명을 시켜 공격하게 하였다. 백가가 나와서 항복하자 왕이 백가의 목을 베어 백강에 던졌다. 겨울 11월, 달솔 우영을 보내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수곡성을 습격하게 하였다. 2년 봄, 백성들이 굶주렸고 또 전염병이 돌았다. 겨울 11월,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변경을 침공하였다. 3년 가을 9월, 말갈이 마수책을 소각하고 고목성으로 진공하여 오자 왕이 군사 5천 명을 보내 이들을 물리쳤다. 겨울, 물이 얼지 않았다. 6년, 봄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3월부터 5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서 시냇물과 연못물이 말랐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다. 가을 7월, 말갈이 침입하여 고목성을 격파하고 6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갔다. 7년 여름 5월, 고목성 남쪽에 두 개의 목책을 세우고 또 장령성을 쌓아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겨울 10월, 고구려 장수 고로가 말갈과 짜고 한성을 치기 위하여 횡악 아래에 와서 진을 치니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그들을 물리쳤다. 10년 봄 정월, 명령을 내려 제방을 튼튼히 하고 서울과 지방의 무직자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였다. 12년 가을 9월, 고구려가 가불성을 습격하여 빼앗고, 다시 군사를 옮겨 원산성을 격파하니 죽이거나 약탈하여 간 것이 매우 많았다. 왕이 용감한 기병 3천 명을 거느리고 위천 북쪽에 나가 싸우니 고구려 병사들이 왕의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업수이 여겨 진을 치지 않았으므로 왕이 기발한 작전을 써서 기습을 하여 크게 무찔렀다. 16년 봄 3월 초하루 무진일에 일식이 있었다. 21년 여름 5월, 홍수가 났다. 가을 8월,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치자 백성들이 굶주려 신라로 도망 간 자가 9백 호였다. 22년 가을 9월, 왕이 호산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겨울 10월, 지진이 났다. 23년 봄 2월, 왕이 한성으로 가서 좌평 인우와 달솔 사오 등에게 명령하여 15세 이상 되는 한수 이북 주, 군의 백성들을 징발하여 쌍현성을 쌓게 하였다. 3월, 왕이 한성에서 돌아왔다. 여름 5월, 왕이 붕어하였다.시호를 무령이라 하였다. 제26대 성왕<聖王 523~554 재위기간 31년> 성왕의 이름은 명농이니 무령왕의 아들이다.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함에 결단성이 있었다. 무령왕이 붕어하고 왕위에 오르자 백성들이 성왕이라고 불렀다. 가을 8월, 고구려 군사가 패수에 이르자 왕이 좌장 지충에게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주어 출전케 하니 그가 적을 물리쳤다. 3년 봄 2월, 신라와 서로 예방하였다. 4년 겨울 10월, 웅진성을 수축하고 사정책을 세웠다. 7년 겨울 10월, 고구려왕 흥안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하여 북쪽 변경 혈성을 함락시켰다. 왕이 좌평 연모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오곡 벌판에서 항전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사망자가 2천여 명이었다. 10년 가을 7월 갑진에 별이 비오듯 떨어졌다. 12년 여름 4월 정묘에 형혹성이 남두 성좌를 범하였다. 16년 봄, 도읍을 사비[소부리라고도 한다.]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하였다. 18년 가을 9월, 왕이 장군 연회에게 명령하여 고구려의 우산성을 치게 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19년, 왕이 양 나라에 표문을 올려 [모시(毛詩)] 박사와 열반(涅槃) 등의 의미를 풀이한 책과 기술자, 화가 등을 보내 주기를 요청하니, 양 나라에서 이를 허락하였다. 25년 봄 정월 초하루 기해일에 일식이 있었다. 26년 봄 정월, 고구려왕 평성이 예와 공모하여 한수 이북의 독산성을 공격해왔다.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 주진을 시켜 갑병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은 밤낮으로 행군하여 독산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고구려 군사들과 일전을 벌려 크게 이겼다. 27년 봄 정월 경신에 흰 무지개가 해를 가로 질렀다. 겨울 10월, 왕이 양 나라 서울에 반란이 일어났음을 알지 못하고 사신을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 사신이 그곳에 이르러 성과 대궐이 황폐하고 허물어진 것을 보고 모두들 대궐 단문 밖에서 소리내어 울었는데, 행인들이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후경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들을 투옥하였다. 그후 그들은 후경의 난이 평정된 뒤에야 비로소 귀국하였다. 28년 봄 정월, 왕이 장군 달기를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도살성을 공격케 하여 이를 함락시켰다. 3월, 고구려 군사가 금현성을 포위했다. 31년 가을 7월, 신라가 동북 변경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다. 겨울 10월, 왕의 딸이 신라에 시집갔다. 32년 가을 7월, 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성이라 하였다. 제27대 위덕왕<威德王 554~598 재위기간 44년> 위덕왕은 이름이 창이니 성왕의 맏아들이다. 성왕이 재위 32년에 붕어하자 그가 왕위를 이었다. 원년,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대대적으로 군사를 동원하여 웅천성을 침공하였다가 패하고 돌아갔다. 6년, 여름 5월 초하루 병진일에 일식이 있었다. 8년, 가을 7월에 왕이 군사를 보내 신라의 변경을 침공하였다가 신라군의 반격으로 패하였다. 사망자가 1천여 명이었다. 19년,가을 9월 초하루 경자일에 일식이 있었다. 24년, 겨울 10월, 신라 서부 변경의 주, 군을 공격하였는데, 신라의 이찬 세종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격파시켰다. 26년, 겨울 10월, 혜성이 하늘에 뻗었다가 20일만에 사라졌다. 지진이 발생하였다. 36년, 수 나라가 진 나라를 평정하였다. 전함 한 척이 탐모라국으로 표류하여 왔다. 그 배가 돌아가게 되어 국경을 통과할 때, 왕이 물자를 풍성하게 주어 귀국케 하고, 사신을 보내 진 나라를 평정한 것을 축하하는 표문을 올렸다. 수 나라 고조가 이를 훌륭히 여겨 조서를 내려 말했다. "백제왕이 진 나라를 평정하였다는 말을 듣자 멀리서 사신을 보내 표문을 바쳤다. 왕래가 지극히 어려운 지역이니, 만약 풍랑이라도 만나면 사람이 상하고 재물을 잃게 될 것이다. 백제왕의 마음이 순박하고 지극한 것은 내가 이미 깊이 알고 있다. 거리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얼굴을 대하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하필 자주 사신을 보내어 서로 대면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후로는 해마다 조공하지 말 것이며 나도 사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니 왕은 그리 알 것이다." 39년, 가을 7월 그믐 임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41년, 겨울 11월 계미에 혜성이 각성과 항성 성좌에 나타났다. 45년, 가을 9월, 왕은 수 나라가 요동 전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바치고, 군사의 향도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년에 고구려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신하로서의 예절을 갖추지 않았기에 장군들로 하여금 그들을 토벌케 하였는데, 고원의 신하들이 겁을 내며 잘못을 시인하기에 내가 이미 용서하였으니 그들을 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 사신을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그 일을 모두 알고 군사를 보내 우리 국경을 침략하였다. 겨울 12월, 왕이 붕어하였다. 군신들이 의논하여 시호를 위덕이라 하였다. 제28대 혜왕<惠王 598~599 재위기간 1년> 혜왕의 이름은 계이니 명왕의 둘째 아들이다. 창왕이 붕어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2년, 왕이 붕어하였다. 시호를 혜라고 하였다. 제29대 법왕<法王 599~600 재위기간 1년 > 법왕의 이름은 선[혹은 효순이라고도 한다.]이니 혜왕의 맏아들이다. 혜왕이 붕어하자 아들 선이 왕위를 이었다.[[수서]에는 선을 창왕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겨울 12월, 살생을 금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놓아 주고, 고기잡고 사냥하는 도구들을 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2년, 봄 정월에 왕흥사를 창립하고 중 30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큰 가뭄이 들어 왕이 칠악사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다. 여름 5월, 왕이 붕어하였다. 시호를 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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