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루트 - 1
8월 28일
인천
↕ 17시간 / 10,185km
마드리드
비행기에서 러시아로 된 스타워즈 로그원을 보고 있었다. 스톰트루퍼 모양 랜턴을 내 방에 그대로 두고 왔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떠날 때는 더 이상 필요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짐을 괜찮게 꾸린 것 같았는데, 한국에서 멀어질 수록 잊고 있었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랜턴은 두고 오길 잘한 것 같았다. 여자친구가 준 선물이기도 했고, 잃어버리거나 해서 다시 한국에 돌아갔을때 스톰트루퍼가 주는 내 방의 데코를 망치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러시아어는 정말 단 한 단어조차 모르겠다. 로그원은 극장에서도 두번을 봤는데도 언어가 이러니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옷을 잃어버렸다. 경유지인 모스크바 날씨를 확인하고 가방에서 꺼내 손에 들고 통화를 하다가, 탑승을 하러 가며 의자에 두고 왔던 모양이었다. 공항 직원은 액땜하신 거라며 위로해줬다. 웃으며 아 그런거냐고 대답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멘트가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액땜 치고는 좀 비싼 감이 있다. 우선 빌바오쯤까지만 걸어보고 그 다음에 외투를 새로 사던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으니까. 챙겨온 반팔티 두개론 얼어 뒤질날이 올 것이다.
모스크바의 공항 바로 옆이라는 붉은 광장에도 들려보고 싶었지만 처음 겪는 장거리 비행때문에 컨디션도 컨디션이고, 뭣보다 이륙이 지연됐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입국했다가 다시 돌아오기엔 시간이 널널하지 않았다. 그냥 한시라도 빨리 목적지인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예약해둔 공항 근처의 호텔에 가고 싶었다. 물론 여행 자체의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고,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땅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라까지도 가보고 싶었다.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33일이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일단은 당분간 오늘만 수습해가며 여행하기로 했다. 공항과 호텔에서의 오늘, 출발지점인 이룬에서의 또 다른 오늘,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의 오늘들만.
8월 29일
마드리드
↕ 5시간 / 361km
이룬
누가봐도 순례자처럼 생겼나보다. 어제 마드리드에 도착해 공항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카미노에 갔다왔느냐고 물어봤었다. 이제 막 시작했다고 대답했다. 그 아저씨는 그라나다부터 친구들과 함께 걸었다고 했다.
호텔 밖으로 나왔을땐 아직 어두웠다. 로비에 부탁해서 직원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공항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룬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어제부터 하루 종일 이동만 했다. 호텔엔 치약도 없어서 양치질도 못했다. 인천에서 보안검색을 거칠때 치약, 로션 등이 걸려서 전부 버리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룬에 도착했을때 알베르게 앞의 슈퍼마켓에서 전부 다시 샀다. 클렌징폼이 스페인어로 뭔지 한참을 찾아야 했다. 비누는 젖고 쎄면백이 전부 더러워지니까 되도록 안쓰려고 머리를 굴렸다.
북부로 올라 갈수록 날씨가 심상치 않기에 확인해보니 이룬엔 한바탕 비가 왔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번 주 내내 바스크 지방에 비가 오는 모양이다.
오늘만 수습이 안된다...
막상 이룬에 도착해보니 날씨가 좋다 못해 완벽했다. 바람도 시원했고, 땅도 적당히 젖어 있었다. 지도를 보니 알베르게는 터미널에서 200m정도의 직진 거리인 것 같았다. 스페인의 알베르게들은 물론이고 상점들은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를 다 끝내고서야 정각에만 문을 열었다. 다른 순례객들과 알베르게 앞에서 2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아마 이룬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은 얼마 안되는 것 같았다. 젖어있는 우비를 말리는 사람도 있었고, 신발을 벗고 지친 발을 쉬게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대부분 생장이나 바욘에서부터 온 사람들인것 같았다. 짐을 길게 줄세운 곳에 내 배낭을 내려 놓자 옆에 있던 배가 나온 아저씨가 내게 인사했다. 올라. 처음으로 다른 순례객들과 나눈 인사 였다.
아시아인은 나밖에 없다. 분명 사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들은 제각각이지만 전부 외국인뿐이었다. 생각해봤는데 여기선 내가 외국인이어씀 ㅋㅋ
하다못해 20대로 보이는 사람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없었다. 사실 북쪽길은 대부분 순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카미노에 다시 올때 찾는 루트라고 들었다. 몇번의 False Alarm 끝에 알베르게가 문을 열었다. 짐을 풀고 나와서 공원을 좀 걷다가 알베르게 근처 코너의 바에서 맥주와 햄 샌드위치를 먹었다. 바 이름이 길가였다.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바 이름이다.
8월 30일
이룬
↕ 9시간 / 27km
산 세바스티안
이룬에서 7시 반에 출발했다. 꽤 이른 시각이었다. 30분 정도를 포장된 도로를 지나서 산의 초입으로 들어가 내가 떠나온 마을을 내려다보며 작은 쉼터에서 쉬었다. 내가 꽤나 늦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앞서 간줄 알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그 쉼터로 모여들어 앉아서 휴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베르게에서 무슨 생각을, 어떤 기분으로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카미노에서 보내는 첫날의 순례길의 이정표들을 볼때마다 새삼 환기가 된다.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길 한가운데에서 내가 맞는 길을 걷고 있는건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할때 쯤마다 화살표들이 나타났다.
산 너머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룬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멀어졌고, 바람에 바다 내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빅토르 휴고의 집이라는 기념비 앞에서 뱃삯으로 70센트정도를 내고 20초 거리의 건넛마을로 가는 조그마한 배를 탔다. 멀리서 커다른 크루즈가 이 항구 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뱃길에서 조금 먼 곳에서는 사람들이 수영을 하며 이른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휴식을 취할때마다 로밍을 잠깐씩 키고 알베르게를 고르며 걸었다. 가격, 조식 여부, 와이파이, 지금부터의 거리들을 고려하며 한 사립 알베르게를 정했다. 그 호스텔로 들어가는 표지판을 본 것 같은데 카미노를 따라 걷다보니 지나쳐온 것 같아서 다시 뒤돌아서 언덕을 올라갔다. 예상대로 그 알베르게는 카미노와의 갈림길 끝에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해서 서둘러 들어갔더니 만석이라고 했다. 어쩔수 없이 다시 카미노로 돌아와서 우비를 입고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워서 걷기 시작했다. 비까지 다시 오기 시작하니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분명 내 방에만 있을땐 비 오는게 좋았었던게 생각났다. 비올땐 씩씩거리면서 걸어서 사진 업슴 ㅋㅋ
카미노를 따라 2km쯤을 더 걸으니 공립 알베르게가 보였다. 호스피탈레로 옆에 금발의 젊은 여자가 앉아서 에스파냐어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로 통역을 해주고 있었다. 침상을 배정받고 담배를 피러 밖에 나가니 퇴근(?)하던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락붕이답게 고개 숙이고 모르는 척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산 세바스티안은 정말 미친듯이 비가 퍼붓고 있었다. 한 장발의 남자가 이 비를 뚫고 담배를 피우겠다며 용맹스럽게 문 밖으로 나갔다가 단 2초만에 홀딱 젖은 채로 다시 알베르게의 로비로 돌아왔다. 내일 카미노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당장 배가 고팠기에 생각할 것도 없이 우비를 뒤집어 쓰고 간단한 요기를 위해 뛰었다.
-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루트 - 28월 31일
산 세바스티안
↕ 10시간 / 21.5km
사라우츠
카미노에서 보내는 두번째 날. 거리 상으론 오늘이 어제보다 적게 걸었고, 중간에 오리오에서 점심을 먹고
남은 거리를 여유롭게 걸었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그만큼 피로감이 덜했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산 세바스티안에서 출발함과 동시에 또 다시 퍼붓기 시작했다.
우비를 사실상 계속 입고 걸었다.
이헬로의 끝자락에서야 날씨가 괜찮아지더니, 오리오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하늘이 맑아졌다.
어제 산 세바스티안의 알베르게에서 침대 아래의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이름은 케빈이고 딸이 한국에 5년정도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도 몇번 서울에 왔었다고 했다.
이후에도, 그러니까 오늘 카미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동행인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줬다.
아마 캐나다에서부터 같이 온 사람들인것 같았다.
오늘은 호텔에서 묵겠다는 생각에 목적지인 사라우츠에 가까워질수록 정말 자주 쉬었고 여유가 생겼다
그런 여유 덕분에 '스페인의 점심시간'인 2시~4시경에 도착한 오리오의 레스토랑에 들렀을 때에도 테라스에 앉아있던 케빈 아조씨와 만났다.
케빈이 먼저 날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립 스테이크와 샐러드, 블루베리 케이크를 먹고 화이트 와인과 카페 콘 레체를 마신 후에 다시 카미노를 걷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처음 먹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짰다.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괴생물체
오리오에서 벗어날 즈음에 앞쪽에서 누군가 길을 헤매는 것 같아 눈이 마주쳤을때 이리로 건너오라고 손짓했다.
카미노는 가끔씩 차도에 나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차가 오는 방향을 보며 걷기 위해
건너편 도로에서 걷고 있었어서 이정표를 보지 못해 길을 연신 묻고 핸드폰으로 지도를 확인하고 있었던것 같았다.
이비자 출신의 이 아저씨는 하루에 40km정도를 걷는다고 했다.
파리에서부터 걷기 시작했고, 오늘은 내 목적지보다 좀 더 먼 도시인 수마야까지가 오늘의 코스라고 했다.
40km씩이나 걷다보니 20km는 슈퍼이지라고 했다. 처음엔 뭐하는 터프가이인가 싶었는데
이후에 나도 하루에 40km씩 걷게될 줄은 이땐 모르고 있었다.
걷는 동안 북한에 대한 이야기나 슈퍼이지맨이 이비자 출신이다보니 일렉음악에 대한 얘기들을 비롯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데드마우스나 뭐 아비치 이런 애들 얘기를 했는데 난 XX나 제임스 블레이크같은 애들이 더 좋다고 했다.
난 밴드를 했었다고 얘기했고 이미 내 음악취향에 대해 설명했던 터라 슈퍼이지맨이 당연히 그렇겠지 www 했다.
제임스 블레이크가 누군지 몰라했기에 내 폰에 앨범이 있었다면 들려줬겠지만
그냥 영국산 딥하우스 비슷한 노래를 만드는 뮤지션이라고 말해줬다.
사라우츠에 도착할 즈음 풍경 좋은 벤치에 앉아서 함께 담배를 피웠다.
스페인은 자그마하게라도 쉼터를 정말 잘해놨다. 어디가 풍경이 기가 막힌 포인트인지 잘 집어낸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곳이 사라우츠다.
슈퍼이지맨과는 조금 더 걷다가 만난 마을의 표지판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호텔 앞에서 헤어졌다.
호텔(위 사진과는 관계 없음)을 찾다가 봐둔 슈퍼마켓에 들어가 내일 먹을 식량들과 물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해변가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샐러드와 연어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렇게 힘이 들거나 하진 않은것 같았는데 발가락에 작은 물집이 하나 잡혀있었다.
반창고를 붙이고 잠들었다.
9월 1일
사라우츠
↕ 10시간 / 21km
데바
호텔에서 꽤 괜찮게 묵었다.
느지막히 10시에 출발해서 도시를 벗어날때쯤에 왼손 약지가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호텔 화장실에 반지를 두고 온게 확실했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호텔로 향했다.
반지는 되찾았지만 시간은 11시가 다 되었고, 늦은 시간 때문인지 몰라도 카미노를 걷는 동안 다른 순례자를 얼마 보지 못했다.
해안가를 끼고 잘 포장된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고 있을때 빌바오 출신의 순례객과 얘기를 나눴다.
자신은 일 때문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진 가지 못하지만, 내년 여름에 나머지를 걸어 완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집이 카미노를 끼고 있다며 빌바오를 거치느냐고, 나는 산티아고까지 가느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려보였다.
얼마 후 도착한 수마야에서 조개 요리와 보카디요를 먹었다.
비싸긴 했지만 유럽까지 와서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해산물이 유명한 스페인에서 꽤나 괜찮은 요리를 먹었다고 생각했다.
배고파서 제일 먼저 눈에 띈 레스토랑에 들어온 것 치고는 웨이터도 친절했고 와인도 좋았다.
이제는 점심시간 무렵에 도착할 마을을 고려해서 끼니를 챙길 생각을 하기로 했다.
먹는 만큼의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잠시간 앉아서 뭔가를 먹고 나면 새삼 나머지 여로를 걸어갈 힘이 생긴다.
날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었고, 목적지인 데바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만난 도시에서 묵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냥 데바까지 걷고 싶었다.
8시가 다 돼서야 기차역의 바로 옆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카미노에 두번 왔던 내 친구가 아주 좋았다고 한 곳이었다.
시설도 여태껏 본 알베르게 중 제일 좋은 편이었고
친구의 말처럼 호스피탈레로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누군가 반갑게 인사하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봤다.
자기는 데이빗이라고 한다며, 만나서 반갑다고 했다. 카미노를 걷다보면 또 만날 것이 분명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시작점 부근에서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면 끝까지 어딘가에서 재회한다.
얼굴을 기억할만도 한데 딱 한번밖에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C. Santiago라고 적힌 분홍색 손바닥 액세서리?를 준 사람이었다.
페레그리노냐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하자 갑자기 그 액세서리를 줬었다.
나중에 보니 왠만한 순례자는 전부 색만 다른 이 펜던트인지 뭔지를 갖고 있었다.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반가웠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면
모두들 인상착의가 정확히 일치하는 한 키 큰 남자에게서 받았다고 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남자와 액세서리는 순례자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줬었다.
아마 난 이 부근에서 그 액세서리를 받았던것 같다.
가볍게 쉰 뒤에 근처의 바로 맥주와 함께 뭘 좀 먹으러 나갔다.
해진 후의 추위때문에 인천에서 잃어버린 내 바람막이가 생각났다.
괜찮은 옷을 살만큼 큰 도시인 빌바오는 3일 정도 남았고, 광장에서 시위 비슷한걸 하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바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못찍었다.
그러고보면 카미노를 걷다 보면 모르는 캠페인? 독립?스러운 표식들이 굉장히 많았다.
바에서 또르띠야와 맥주를 먹었다. 바텐더가 유머러스하고 괜찮았다.
여기 바텐더들은 어떤 사람들은 무뚝뚝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유쾌하고 전부 사람 좋다.
무뚝뚝한 사람들조차도 나갈 때는 아디오스! 부엔카미노! 하며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후에 카미노에서 만난 폴란드인 친구와 함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한 바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충전하려고 물어보니 여기선 니가 원하는거 다 해도 된다는 말에
우와아악하며 우리끼리 스페인 사람들의 인성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9월 2일
데바
↕ 10시간, 22km
마르키나
카미노는 계속해서 산을 거쳐서 펼쳐져 있었다.
비도 몇방울씩인가 떨어졌지만 우비를 쓰진 않고 가방에만 레인커버를 씌우고 모자를 쓰고 걸었다.
걷는 내내 쏜애플의 가사가 생각났다.
"아직까진 싫어하는 게 좋아하는 것보다 더 많지만
비가 그친 뒤에 부는 바람은 좋아한다 생각해"
잠깐 쉬고 있을때 케빈 아조씨와 만났고
산 세바스티안에서 폭풍을 뚫고 담배를 피러 가던 장발의 남자인
체코에서 온 마르틴과도 만나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눴다.
만국 공통의 낙서 양식
언덕 위에 있는 교회에서 잠시 쉬고있을때 다른 순례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내 신발을 보고 뭔 시바 미래에서 왔느냐고 물어봤다. K2 자체도 처음 보는 브랜드라며
한국 브랜드라서 자기가 몰랐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고어텍스에 신발끈을 따로 묶지 않는 다이얼 방식이었으니 괴상하게 볼만도 했다.
길을 걷다가 풀려버린 끈을 묶고싶지 않아서 한 선택이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며 염소들과 바다를 구경하고 있을때
어제 데바의 알베르게에서 인사를 나눴던 데이빗과 일행 두명도 이 교회에 도착했다.
이 부근에서는 물을 떠마시면 안된다고 얘기해줬다.
이때는 데이빗이 어디서 온지 몰랐지만 데이빗은 이 곳 스페인 출신이었다.
마르키나에 도착하기 전까진 마지막이라는 바에서 커피와 초리소로 된 보카디요를 먹었다.
바에 들어가서 테라스에 배낭을 내려놓으니 데이빗과 함께 있던 프랑스 출신의 여자가
내게 같이 앉자고 담배를 피우며 졸라 시크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ㅋㅋ 좋다 지금간다 기다려라 하고 주문을 하고 왔는데 다른 남자가 앉아서 이미 자리가 없었다.
그 여자는 괜찮다고, 저기 넓은 테이블이 있으니 우리가 옮기겠다고 했다.
혼자 석재의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데이빗이 어딜 갔다 왔는지 날 발견하고
이리 오라며, 같이 앉자고 했다. 좋긴 한데 좁고, 너희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고 하니
니가 안오면 내가 간다며 커피잔을 들고 세명이 우르르 쫓아왔다.
프랑스 여자는 올리비아였고, 그 세명의 일행 중에는 데이빗이 한명 더 있었다.
이태리 출신인데, 보통 다비데라고 불렀다.
다비데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얼마 후까지 내가 북한 사람일까봐 경계했었다.
다같이 앉아서 쉬며 내게 어째서 카미노에 왔는지에 대해서 물어봤고,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데이빗이 내가 좆되는 서바이버인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나 맥주 주문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는 올라랑 부엔 카미노밖에 못했다.
근데도 잘 돌아댕겼다.
나는 조금 더 쉬길 원해서 세명이 먼저 일어났다.
떠날때까지 데이빗이 이따 보자며 반갑게 인사해줬다.
오른쪽만 보면 항상 보이던 풍경이 바다에서 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난 서쪽을 향하고 있었고, 북쪽엔 스페인 지방들의 만을 거쳐서 대서양이 펼쳐져 있었다.
어 아닌가? 저거 바단가??
카미노 중간에서 가판대를 발견했었다.
보를 깔아둔 탁자 위에 빵과 음료를 올려두고 가격을 써놓았었다.
1유로를 동전 바구니에 넣고 캔으로 된 오렌지 쥬스를 배낭에 넣어서 가려는데
앞집에서 나온 꼬맹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서툰 영어로 천천히 말하는걸 들어보니 아마도 테이블 위에 있던거 말고
냉장고에 차가운게 있다고 하는것 같았다.
하도 귀여워서 웃으면서 그렇냐고, 그럼 그게 좋겠다고 얘기했더니
쪼르르 다시 뛰어들어갔다가 또 쪼르르 뛰어나와서 내게 차가운 캔을 건냈다.
그라시아스 하며 다시 카미노를 걷기 시작했다.
쓰다듬어주고 싶었는데 똥양인이 손대면 울까봐 그러진 못했다.
걷다보면 물도 미지근해져서 힘들었는데 그 로린이 덕분에 카미노가 견딜만 했었다.
산을 오르는건 아직 몇일 안된 순례자인 나로썬 잦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자주 쉬었지만
어째 오늘은 어제보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아마도 5시쯤??
마르키나의 알베르게에 들어가자 호스피탈레로가 내게 운이 좋다며 딱 침대가 하나 남았다고 얘기했다.
호스피탈레로가 내게 화장실과 샤워실, 내 침대를 알려주고 있을때 두명의 데이빗과 올리비아를 다시 만났다.
나는 혼자서 근처 레스토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순례자 메뉴라고 적힌걸 발견했었기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맛은 별로 없었지만 에피타이저-본요리-디저트, 물이나 와인 한병 구성이고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해서 좋았다.
오늘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빨래를 했다.
이제 제법 인사와 다른 순례자들이 익숙해졌었다.
빨래를 널고 있을때 첫날에 내게 인사했던 배 나온 아저씨와 마르틴과도 만나서
서로 말은 안통하는데 자기 나름대로들 농담을 한다며 시시덕거렸다.
기가 막힌 광경이었는지 올리비아가 옆에 와서 구경했다.
-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루트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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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루트 - 10, El Fin
출처: 락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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