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으로 끄적인 글 옮긴거라 디씨체 아님)
(고들삐홓의 명짤)




나는 빈말로도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꽂힌 노래는 어떻게든 구해서 질릴 때까지 들었다. 천 번이든 이천 번이든.
그것은 음악감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편집증에 가까웠다.

2000년 가을, 아직 학생이었을 때.
임재범을 처음 알았다.

생애 처음으로 가요를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

단순히 좋다거나, 누가 부른 거지? 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의식조차 하고 있지 않은 이상이,
고작 4분이란 시간 동안 현실에서 구현화되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런 게 있을 리 없는데
실제로 봐버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기분.

그건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몇 안 되는 기적 중 하나였다.

나는 책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그 사람\'이 이미 죽었거나 
너무 나이가 들었을 때 좋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런 내가, 임재범이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직 사십도 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흔한 말이지만, 같은 시대에 태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뒷얘기는 뻔하다.

2000년 겨울, 베스트앨범 메모리즈를 끝으로 잠적.
2004년에 5집을 들고 나온 후에 다시 잠적.
이후 가뭄에 콩나듯 드라마 OST 불러주시고 콘서트 하시고
2010년에 활동이 좀 왕성해졌다 싶더니 2011년 5월 나가수 등장.

11년간 애를 태우더니 1년 동안, 특히 5월 한 달 동안은 롤러코스터를 태우고 내려주질 않더라.

128MB MP3를 사용하던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임재범의 노래는 MP3를 떠난 적은 없었다.

12년간 다른 가수의 음악을 좋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존재 자체를 경이롭다고 생각한 것은 임재범이 유일하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을 그의 노래에 위로받았는지 모른다.

혹자는 말한다.

임재범은 퇴물이다. 그의 기량은 전성기 시절의 반의 반도 안 된다.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재능을 허비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반박할 생각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런 게 중요하다면 다른 가수를 빨면 된다.
드물긴 해도 젊고 재능있는 가수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게는 임재범뿐이다.

나는 다른 능력자들처럼 임재범의 음악인생을 분석하거나,
그의 보컬능력을 분석할만한 음악적 지식은 없다.

불세출의 천재, 전무후무한 가수, 탈아시아급, 이런 표현도 오글거려서 못 쓴다.

하지만 내게는 유일무이한 가수 맞다. 

여담이지만, \'어떤 영화가 가장 좋아?\'라는 지극히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헤맨 기억이 있다.

좋은 영화가 너무 많은 탓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손에 보석을 가득 쥐고도 가장 반짝이는 보석이 뭔지는 모르는 바보처럼.

\'가수 중에서 누가 가장 좋아?\'라는 질문에는 0.1초만에 대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후기) 지금에서야 느낀 건데 존트 오글거리는구나ㄷㄷㄷ
그래도 내 진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