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정동하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정동하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개념글 리스트
1/3
- 예쁜 여자랑 데이트 하는 남자에 대한 시선 . jpg GoldenTiger
- 한강대교 위 호텔, 7월부터 오픈.jpg ㅇㅇ
- 남편하고 싸운 인티녀.jpg ㅇㅇ
- 여자아이 봉득칠과 선택.manhwa 냐앜
- (스압)알파남의 삶 ㅋㅋ
- 뉴진스 블라 겜라운지 펌 배갤러
- 수리온 문서, KF-21 설계도 판매"텔레그램 군.국정원.경찰 합동수사 실시간기자
- 러시아가 북한에게 S-400/500 미사일 기술을 준 정황이 포착 KC-46A
- MIDNIGHT 쇼케이스 리뷰 마케
- (스압) 현재 군대 비하로 난리난 광고영상 주갤러
- 원지가 일본 여행에서 느낀 점...jpg 설윤아기
- 아이폰 팔아서 집 산 여성...jpg 감돌
- 로스쿨 없애야 한다는 현강 1타강사 싱붕이
- (스압) 도박과 폭력을 멈출 수 없는 초2 아들 금쪽이..jpg 감돌
- 뉴진스 때문에 폭주하는 게이머들 ㅅㅂㅋㅋ ㅇㅇ
파키스탄, 코란 훼손했다며 경찰서 부수고 살해... 시체도 불태워
파키스탄에서 코란을 훼손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관광객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함 지난 20일 밤 경찰서가 화염에 뒤덮여있음 연기가 쉴새없이 치솟아 마치 지옥같은 풍경임 화마가 덮친 흔적은 처참하고 소방관들은 아침까지 화재를 진압해야 했음 파키스탄 북서부 인기 관광지 마이단에서 현지시각 20일 밤, 무슬림 폭도 수백명이 경찰서에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임 당시 경찰서엔 한 남성 관광객이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머물던 호텔에서 이슬람 성서 '코란'을 불태웠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임 폭도들은 경찰서를 공격해 이 관광객을 살해한 뒤 시신까지 불에 태우는 만행을 저지름 이 과정에서 8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음 어지러운 경찰서 내부는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보여줌 아직까지도 체포된 폭도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는데... 경찰이 동조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 미개한 파퀴 수준이면 충분히 가능함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은 이슬람교나 무슬림들을 모욕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누구든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말도 안 되는 법률인데 역시 개슬람스럽다는 소리밖에 안 나옴 이따위 법률로 사람을 쉽게 죽이다보니 파키스탄에서는 신성 모독에 대한 비난과 폭력이 빈번하다고 함 지난달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 지방에서도 코란 훼손 혐의를 받던 70대 기독교인 남성이 군중에게 공격을 당해 치료 끝에 숨지기도 했다네 10년 전 뉴스를 봐도 공장 휴지통에서 불탄 코란 조각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부부을 산채로 가마에 넣어 죽였다는데 저것들은 10년이 아니라 천년이 지나도 저지랄 할 미개한 새끼들임 개슬람을 국내에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신병자가 있으면 그건 비국민 취급하고 추방해도 무방하다고 봄
작성자 : 난징대파티고정닉
가미카제 전설을 남긴 몽골의 일본침공..JPG
고려를 정복한 몽골은 일본에 사신을 보내 원나라에 복종하고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유목민인 몽골인들이 바다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일본은 몽골의 요구에 코웃음을 친다.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는 여섯 번에 걸쳐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다. 그러나 일본이 계속해서 사신들을 모욕하고 박대해 돌려보내자 일본 정벌을 결행한다. 몽골은 고려에 대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독촉했고, 이에 고려에서는 장인 3만5천명을 동원해 900척의 배를 건조했다. 고려로서는 엄청난 재정부담이자 출혈이었다. 이 당시 일본을 공격하기 위한 병력은 몽골 및 북중국의 한족 혼성군이 2만5천명, 고려군 8천명, 키잡이 등 보조원 6천700명으로 이뤄졌으며 1274년 5월 14일 마산에서 출정했다. 이때 원의 도원수는 홀돈이었고, 고려군은 김방경이 지휘했다. 여·몽 연합군은 월등한 전력과 함께 철포와 화전 등의 신무기를 보유했다. 뿐만 아니라 활도 그 사정거리가 길었다. 먼저 연합군은 대마도를 점령해 대마도주를 죽인 후 규슈로 향했다. 하지만 대반격이 시작된다 전선 사령관 쇼니 가게스케는 시마즈 가문의 병사들과 함께 맹렬히 연합군에 항전했는데 결국 원나라의 좌부원수 유복형이 화살을 맞자 연합군은 함대로 철수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태풍을 만난 정벌군의 함대는 큰 타격을 받는다. 이때 정벌군 총 2만5천명 중 1만3천500명이 익사했고 고려군 5천300명 중 2천700명만이 겨우 살아 돌아왔으며 200여 척의 전함이 바위와 언덕에 부딪쳐 부서지고 침몰됐다. 2차 정벌 1차 일본 정벌에 실패한 몽골의 쿠빌라이 황제는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일본을 재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결국 2차 정벌에서도 고려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다. 1281년 남송을 멸망시킨 쿠빌라이는 결국 일본 2차 정벌을 결행한다. 그는 병력을 동로군과 강남군, 크게 두 개로 나눠 일본을 침공한다. 먼저 동로군을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 4만 명에 병선 900척으로 전면에 배치시키고, 강남군은 10만 명과 병선 3천500척으로 후위에서 돕게 한다. 이키섬을 1차적으로 정벌하고 시가노 섬으로 진격했지만 막부에서 미리 돌성을 세우고 대비했기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해 다시 이키섬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그 사이 쇼니 카게스케의 지휘 하에 오토모 가문, 시마즈 가문, 마츠우라 가문, 류조지 가문, 다카시 가문에 속한 1만의 일본군 병력이 이키 섬을 탈환했다. 결국 여몽 연합군은 히라도 섬으로 이동한다. 전선 사령관 쇼니 카게스케는 시마즈 가문의 병사들과 함께 하카타 만에서 맹렬히 연합군에 항전했는데 그 덕분에 여몽연합 강남군이 합류할 비슷한 시기에 일본 본토에서 6만의 대군을 모아 지원군으로 보낼수 있게 된다. 7월 말 드디어 강남군이 도착하지만 싸워보기도 전에 8월 15일 태풍이 북상하면서 강남군은 거의 다 익사하고 큰 타격을 입은 여·몽 연합군은 결국은 퇴각한다. 쿠빌라이 칸은 두 번에 걸친 원정이 모두 실패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3차 원정을 계획하고 일본을 복속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계속되는 반란에 직면하는 바람에 추진에는 실패했고, 결국 1294년 8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동시에 일본 원정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환송대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