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벤트 때 일이다 E-7에 가기 전 컷인을 쏴야 했기 때문에 말유국을 먹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3-2-1에서 말유국을 끓이는 제독이 있었다. 한 그릇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 몸을 이리저리 만진다.

"그냥 해 줄 수 없나요?"

했더니

"말유국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맘에 안 들거든 다른 제독에게 부탁하슈"

대단히 무섭게 말을 했다. 이리저리 만지는 걸 뭐라 하지 못하고 말유국이나 잘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3-2-1을 돌았다. 원정도 보내고 이것저것 하더니, 저물도록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는데. 자꾸만 마루유 레벨업을 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이벤트 종료가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마루유 개장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컷인 쏠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한다는 말이오? 외고집이시구먼, 이벤트가 곧 끝난다니까요"

제독은 퉁명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우, 난 안 끓이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관둘 수도 없고 내릴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말유국은 제대로 끓여야지 하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3-2-1을 돌며 태연스럽게 롤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말유국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말유국이다.

12시가 지나고 다시 방깎부터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말유국을 끓여 가지고 컷인이 광광 터질리가 없다 컷인요원 본위가 아니고 제독 본위다 깡알못에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제독이다'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제독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e-7을 바라보고 섯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남자다워 보였다. 강인한 눈매와 짧은 머리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제독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비스마르크 언니에게 가서 보여주니 멋지게 운이 올랐다고 야단이다. 그냥 말유국을 먹은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전 나의 몸과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언니의 설명을 들어 보니, 말유국은 하나만 먹어서도 안 되고 다섯을 그냥 먹어도 안 되고 다섯을 개장해서 먹어야 효과가 확실하게 나온다고 한다. 

제독들이 조급증에 말유국을 제대로 끓이지 않고 먹이다가 야전에서 컷인이 터지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제독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예전 야전은 본디 가지고 있던 운에만 의지해서 컷인을 쏴야만 했다. 상대의 방어가 높으면 높을수록 컷인이 터지지 않을 경우 돌아올 반격이 무서웠다. 그래서 거의 연격으로만 세팅하여 다녔다. 그러나, 요새는 말유국을 끓여먹어 컷인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귀찮은 작업이다. 요새 말유도 잘 나오는데 며칠씩 걸려가며 개장해서 먹이는 제독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옜날 제독들은 말유도 잘 안나오고 컷인도 힘들었으므로 말유국을 끓이는 그 순간만은 오직 칸무스를 더 강하게 하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컷인요원을 만들어 냈다.

이 말유국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제독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뭔 컷인이 터진담 ' 하던 말은 '그런 제독이 나 같은 칸무스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컷인요원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제독을 찾아가서 스프밥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이벤트를 클리어하는 길로 그 제독을 찾았다. 그러나 그 제독이 있던 자리에 제독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제독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바다를 바라보았다. 푸른 바다 위에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제독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제독의 창문으로 보이는 구름을 바라보던 제독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깡갤에 들어갔더니 너도나도 말유국을 끓여 먹는다. 전에, 소소하게 개수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요새는 개수되는 소리도 풀개수가 되어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檮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檮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 해 전 말유국 끓여주던 제독의 모습이 떠오른다.

스프밥이 아니라 키타가미씨의 팬티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하는거로 하고싶었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