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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강모연의 1년

이응(211.179) 2017.10.18 21:51:35
조회 2968 추천 37 댓글 10
														

리뷰 속에 나오는 모든 대사와 이식센터 이야기들은 대본에 언급되어 있는 부분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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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떠들 곳이 내 가슴 속 밖에는 없다.

당신이 없어지는 바람에 나는 더이상 일상적인 수다가 불가능해졌다. 내 입속에는 이제 당신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가득한데 당신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떠들 곳이 없다. 내 가슴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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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고 있는 걸까?
요즈음 나는 내가 정말 살아가고 있긴한지 확신이 없다.


당신이 떠난 후에도 세상은 변함이 없다. 믿을 수가 없다. 당신이 없는데 어떻게 내 일상은 이다지도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는 걸까.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거냐고.

그래. 그건 아니지. 나도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나도 당신이 나의 전부라고 하지는 않겠다.


만약 당신의 존재가 나의 삶의 가, 불가를 결정하는 요소였다면 당신이 전사했다는 그 순간에 나의 숨도 멈추었을 것이다.
나의 숨이 멎는 것으로 나는 당신이 떠났다는 것을 그 순간에 알았겠지.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때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의 부하가 찾아와서야 비로소 알았을 뿐, 나는 그 전까지 일말의 징조도 느낀 적이 없었다.

온갖 드라마와 소설에서 쓰이는 소재처럼 탁자 위의 유리잔이 저절로 떨어져 깨지고, 깨진 사기그릇 조각을 줍다 손이 베이는 일 따윈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다 허구였을 뿐, 나는 매일 같은 일상을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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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떠났을까. 설마 내가 웃고 있을 때는 아니었겠지. 좋은 날씨에 병원 복도를 걸으며 당신 생각이 나서 흥얼거리던 때는 아니었겠지.
하지만 나는 자신할 수가 없다.


명주가 그랬었다. 우리가 마주앉아 제때 돌아오지 않는 두 남자를 성토하던 때에 그 애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올 때 됐다고.


그렇다면 명주가 유리한 부당함을 이용해 그 소식 듣던 그때까지는 당신은 분명 나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때부터 최중사님이 날 찾아오기 전까지의 시간 중에 당신이 떠난 것이다.

당신의 기일은 알고 있다. 참으로 고맙게도 당신의 조국은 나에게 그 정도의 알권리는 보장해주었다. 그래서 다행히 나는 당신의 기일은 챙길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게 나의 참 형편없는 처지를 반증하지만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다만 내가 자신할 수 없는 건,

당신이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적어도 내가 하하 호호 하고 있지는 않았다고 자신할 수가 없는 이유는, 그날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일은 내가 당신의 유서를 받기 한참 전이었다.

아마도 그 사이의 차이는 당신을 찾다찾다 결국 시신조차 찾지 못해서 당신이 전사자로 처리되기까지 걸린 시간이겠지.

그 시간은 당신의 기일에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것에 보태어 더욱 나를 자신할 수 없게 하는 건, 그 즈음이 내가 대체로 들떠 있었던 때라는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약속했던, 계절이 바뀔 때쯤이 바로 그 언저리 어디쯤이었다. 사실은 이미 그때가 지나던 중이라 이제 정말 당신이 돌아오겠다는 기대에 나의 가슴이 흥분에 부풀어오르던 때였다.

점점 더 자신이 없다. 아무래도 난 당신에게 했던 말을 지키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당신이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하하 호호 하고 있게 하진 말아 달라구요."


아무리 아니길 빌어봐도 아무래도 당신은 내가 웃고 있을 때 떠난 것 같다.

싫다.
끔찍하다.


당신은 나와의 약속과 나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백화점에 간다는 말을 해주었지만, 나는 당신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기대에 불안해할 권리는 잠시 놓아두었었다.


의무도 아닌 다만 권리였건만, 그 권리를 잠시 소홀히한 대가는 나를 더 큰 고통으로 떠밀었다. 백일 간 견뎌온 불안과 기다림이 며칠간의 안도와 기대로 변한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당신의 유서를 받았다.

배가 기운다.
점점 배의 바닥부터 물이 차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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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사랑하고부터 나는 망망대해를 배를 타고 건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당신이 함께 타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더 이 배를 타고 가야 뭍에 닿을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었다. 당신이 C4와 RDX 다루는 일을 언제 그만두느냐에 따라 우리가 이 배에서 내려 땅 위에 집을 짓고 살 때가 정해질 것이었다.

나는 그 시기를 오로지 당신에게 맡겼다. 빨리 배에서 내리고 싶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고, 나를 이곳에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의 노력과 인내가 이제는 모두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 당신과 살아가고 싶어서 냈던 나의 용기의 결론은 우리의 평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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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완전히 떠나버리기 전에는 당신이 잠시 나를 혼자 남겨 두고 작은 배를 타고 더 먼 바다로 나가도 나는 괜찮았다. 괜찮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 헤지고 다치더라도 당신이 휘청대는 작은 배를 타고 돌아오면 우리의 배는 다시 안전한 곳이 되었고 나는 괜찮아졌다.


당신이 떠나고 혼자 남은 배는 너무 컸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에 무서웠지만 그래도 당신의 약속을 녹여 용접한 배는 튼튼해서 나는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당신은 돌아오면 당신이 배를 비운 사이 여기저기 상처난 곳을 고치러 다녔다. 당신이 백화점에서 돌아와 나와 보내는 시간은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돌아온 당신이 나와 눈을 맞추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는게 나에겐 나의 상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그렇게 나의 상처에 입맞춤하며 나의 공포를 지워주고 그 자리에 안도와 안심을 채워 주었다. 날 위로하고 사랑해주었다.

당신이 그렇게 나를 고쳐주면 나는 이내 다시 괜찮아졌다. 그러면 또 당신을 보내줄 수 있었다.


당신은 그렇게 시간을 들여 나에게 견뎌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시간들을 혼자 잘 보내고 있으면 당신은 어느새 나에게 돌아와있었다. 나는 점점 당신을 더 믿을 수 있게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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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백화점에 갈 때면 적어도 꼭 하나씩은 나에게 약속을 했다.

다이아몬드와 치료제를 맞바꿀 거래를 하러 가던 당신에게 나는 당신을 부탁했었다. 라이언일병에게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지켜 돌아오기를 나는 약속받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밤에 무사히 돌아왔다. 내가 납치된 후였지만 당신은 일단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켜낸 셈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어땠나. 백화점에 가야한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던 당신은 다녀와서 영화보자고 했던 나와의 약속을 썩 잘 지켜냈다. 그것도 내 퇴근시간보다도 더 빨리 끝내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당신은 그렇게, 거짓말하기 일쑤고, 농담으로 감추고, 비밀만 많던 빅보스에서 점점 나의 유시진이 되었다.


당신은 백화점에 간다는 말을 해야하는 시간이 되면 연거푸 나를 만지고 쓰다듬었다.

나는 당신의 손길에 기다릴 수 있는,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았다. 당신은 그렇게 나의 괴로움을 미리 챙겼다.

당신이 그렇게 매만져주고 가면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참이었다. 나는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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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도 당신이 약속을 잘 지켜내리라 믿었다. 백화점 가던 그날에 내 뒤꼭지를 서늘하게 꼬아잡던 기분나쁜 예감은 다 나의 기우라고 여겼다.

올 때가 됐다는 명주의 말은 당신이 나와의 약속을 또 한 번 잘 지켜내고 있구나, 나를 확신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당신이 나에게 남겼다는 편지를 받기 그 바로 직전까지도 병원 창밖으로 보이는 군용지프에 마냥 행복해 했었다.



{딴놈이랑 살거면 잘 살지 말라고 했던 말 취소합니다. 누구보다 환하게 잘 살아야 해요.}


당신은 유서에 썼었다. 딴놈 만나서라도 누구보다 환하게 잘 살라고.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어떤 강제도 할 수 없는 말이다.

당신은 내가 딴놈을 만나든 만나지 않든, 환하게 잘 살든 그렇지 못하든 이제 나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멋대로 취소하고 멋대로 당부한 말인데 내가 당신이 뭐가 이쁘다고 그 말까지 들어주나. 나는 청개구리로 살 거다.


{그리고 날 너무 오래 기억하진 말아요. 부탁입니다.}


당신은 나의 부탁들을 전부 두고 가버렸으니 나도 당신의 부탁은 들어주고 싶지 않다. 내가 끌어안고 있다가 당신이 데리러 오면 전부 다 들고 그곳에 갈 것이다.

내 사랑은 당신 것이 맞지만 내 마음은 내 것이다. 내 것은 내 뜻대로만 할 테다.


이게 싫으면, 당신 마음에 안 들면 나에게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러면 내가 청개구리짓도 안하고 당신 말도 잘 들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당신은 이제 올 수 없으니 내 마음은 내 뜻대로 하게 내버려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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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과 사는 결국엔 나와 무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무관하다는 것은 내가 당신의 생사에 관심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나의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그런 얘기다.

그 말인 즉슨, 강모연은 유시진이 없어도 이세상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이 절망 속을 나는 이제 혼자 살아내야 한다.
내내 혼자서..

나는 이제 그렇게 되었다.


싫다.

왜 나와 유시진은 서로 다른 심장을 갖고 있는 걸까.
우리가 하나의 심장으로 살았다면 이렇게 나 혼자, 죽은 생에, 살아있지 않은 생에 내팽개쳐져 있진 않았겠지.

그랬다면 이 고통은 나의 몫이 아니었을텐데..

아프다.
아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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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인생인데도 나는 요즈음의 내 삶을 주도하고 있지 않다.

그저 내 삶은 저절로 살아지고 있을 뿐이다.

살아지기 때문에 나는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일을 한다. 해가 떴다가 지고, 달이 떴다가 지기 때문에 나의 하루는 살아지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아침이 밝고 해가 하늘 가운데 걸렸다가 이내 지고나면 하늘은 짙은 남빛이 된다. 그러면 세상에는 한낮의 시끄러웠던 소음들이 잦아들고 이내 조용해진다.

그러면 나는 소름끼치는 적막을 체감한다.



처음 그 적막함을 느꼈을 때가 당신의 유서를 집에 놓아두고 다시 병원에 출근한 첫날이었다. 그 숨막히는 적막을 그때 나는 처음 느꼈다.

너무도 당황스러웠고 낯설었다. 왜 새삼 나는 병원이 낯설어진 걸까.


내가 9년 가까이 일한 병원이다.
1년 365일 중 350일은 있었던 내 직장이다.
어쩌면 병원은 집보다도 내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살았던 곳이다.


병원은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항상 시끄러웠다가 조용해지고 밤사이 간헐적인 소란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상이었다. 매일매일 그랬으니까.

병원은 그대로였다. 병원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변한 것은 나였다.


병원 로비에, 복도에 와글거리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데스크에만 불밝혀진 것을 나는 새삼스레 보았다.
해 저문 병원이 무척이나 적막하다는 걸 나는 그날 불현듯 깨달았다.


진료시간이 끝나고 한산해지는 병원은 나에게 일과가 끝나가고 있다는 증명이었기에 달갑지 않을 이유가 없었는데 그날부터는 그 시간이 되면 두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부러 없는 일까지 만들어 잠을 자야만 하는 시간이 될 때까지 나를 바쁘게 했다. 그래야 그 적막의 기척이 조금이나마 약해졌다.


무섭다.


나는 의사다. 앞으로도 의사로 살아갈 것이다.
그 말은 나는 이제부터 매일을, 이 끔찍한 적막 속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처음에는 밤에만 느껴지던 그 적막이 시간이 흐를수록 한낮에도 한번씩, 두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점점 빈번해진다.

시도때도 없이 찾아드는 적막이 이제는 익숙해질만큼 자주 그렇다.


조용할 때가 드문 곳 중에 대표적인 곳이 병원이기에 사실은 내 주변이 시끄러울 때가 많지만, 나는 자꾸만 주변이 고요하다고 느낀다.

어쩌다 한 번씩 누군가가 고맙게도 그 소름끼치는 적막을 깨뜨려 주기도 하지만 이내 내 세상은 다시금 빠르게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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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식구들이 그런 나를 모르는 것 같지가 않다.

그들 속에서 그린듯이 미소를 짓고 있어도 자꾸만 텅빈 눈동자를 하는 나를 자꾸 눈치챈다. 하선생님이, 송선배가, 지수가 그런 나를 자꾸만 챙긴다. 이제는 하다하다 최선생과 치훈이까지도 홀로 적막한 나를 알아챈다.


그들이 나를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걱정들이 고맙지 않다거나 귀찮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 갖고 있는 애정을 고마워할만큼의 염치는 아직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건네는 두루뭉술한 위로와 걱정 섞인 눈동자가 나에게 효과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내가 당신이 살아있던 때만큼 깔깔 웃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당신과 만나기 전의 나만큼이라도 무던해지기를 바라고 있겠지. 대략 2년쯤 전의 나만큼 정도로라도 살아가기를 그들이 바라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렇지가 못하다. 그때처럼만큼도 떠들 수가 없고, 웃을 수도 없고, 농담도 할 수가 없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아닌데, 그게 가능하지가 않아서 그들을 걱정하게 한다.


내 조용해진 세상을, 이 적요를 깨뜨려줄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또다시 내 주변이 숨이 막히도록 고요해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질 않는다.


내 삶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언제까지 이 적막 속을 혼자 살아내야 할까.
이 하루가 얼마나 쌓이고 나야 당신이 나를 데리러 올까.

항상 이 곳으로 나를 데리러 오던 당신은 어디로 갔나.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나도.
그곳에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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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는 당신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명주의 연인도 나의 연인과 같이 시신도 찾을 수 없는 전사자가 되었다고 들었다.


명주는 거기까지만 말해주었다.

어쩌다 둘이 함께 그렇게 된 건지도, 시신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그 애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느냐고 원망하지도 않았다. 원망한다고 당신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원망한다고 내 고통이 덜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당신과 함께 돌아오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최중사도 서류를 들고 나를 찾아온 대대장도 그 누구도, 나는 원망하지 않았다.

오갈 데 없는 원망은 내 가슴 속에만 켜켜히 쌓이는 중이다.

나의 마음이 그 속에 점점 파묻힌다.
내 정수리까지 묻히고 나면 나도 당신 사는 그곳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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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나는 저세상이 있는지를 한 번씩 생각한다.

나는 꽤나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감성적인 사고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세상에 대한 생각도 그런 감성적인 사고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저세상이 있다면.
[저세상]이 내가 사는 [이세상]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당신도 거기에 살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살며 당신은 여기를 보고 있을까.
보기만 할 뿐 내 꿈에 나와줄 수는 없는 건가.
아니면 당신이 꿈에 와주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기억 못 하는 꿈에 찾아와 내가 모르고 있나?


꿈이라는 것은 얕은 잠이든 깊은 잠이든 어떤 수면 상태에서건 꾼다. 다만 꿈이라 기억에 남는 회상몽의 경우는 잠에서 깨기 조금 전에, 의식이 꽤나 깨어났을 때에 꾸는 것이다.

내가 당신이 나오길 바라는 꿈이란 내가 기억 못하는 꿈이 아니다. 당신이 그곳에서 꿈에서나마 나를 찾아와야 하는 꿈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꿈, 회상몽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꿈을 자주 꾸지 못한다. 회상몽이라는 꿈이 나처럼 머리를 대고 누우면 까무룩 정신을 잃을만큼 몸을 쓰고 나서야 눕고, 응급콜이 억지로 깨우는 잠을 자는 사람이 꾸기엔 어려운 꿈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씩 꿈을 꾸는데 그 꿈에 당신은 나온 적이 없다.

나쁜 놈.


당신이 원망스럽다. 나랑 했던 약속을 전부 멋대로 어기고 떠나버린 걸로 모자라 내 꿈에도 한 번 찾아오지 않는 사람이니 당신은 원망을 들어도 싸다.


당신은 저세상에서도 바쁜가보다. 거기도 조국이 있나? 조국보다 내가 좋다더니 당신은 거기에서도 백화점에 가나보다. 꿈에서도 당신은 나를 기다리게 한다.

당신은 나쁘다. 나쁜 사람이다.


그치만 이건 나의 감정일 뿐 당신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꿈을 자주 꾸지도 못하면서 자기보고 안 찾아온다 뭐라 한다고 저세상에서 투덜댈지도. 당신은 보기보다 어리광도 많고 아이처럼 굴기도 하는 사람이라 지금쯤 나를 보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보고싶다.
만나고 싶다.
안겨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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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도 속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내 속에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로만 가득해서, 당신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도 입밖으로 속엣말을 꺼내놓으려면 당신에 대한 이야기말고는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데 당신은 온통 말할 수 없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남자라서 나는 지수에게도 알 수 없는 말만을 내뱉을 뿐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할 수가 없다.


당신에 대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 명주만이 유일한데 그 애도 나만큼 괴로울 것이 뻔한 터라 나는 또 나의 괴로움의 핵심을 말하지 못하고 삼키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여기도 저기도 떠들 수 없는 곳 투성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목구멍에 콘크리트가 발린 것 같다.

나의 이 답답증은 내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장소가 사라져버렸기에 생긴 일이다.


이게 다 당신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쁜 것이다.

아, 그런데 또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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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당신이 떠난지 9개월이다. 당신을 백화점 보내고 기다렸던 시간들까지 합치면 당신을 못 만난지는 1년도 넘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누구에게도 떠들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살았다. 자연스레 나의 수술실력은 강남 최고가 되었다.


입을 다물고 산 것과 나의 실력 향상이 무슨 연관성이 있나 싶겠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까닭은 입을 다물고 있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수술실이었기 때문이다.

수술실 밖 병원 내 어디에도 내가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 없다. 수술을 할 때는 적어도 아무도 나의 조용함을 수상하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수술 잡히기만 기다렸다가 수술방 안에 콕 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 덕에 나의 정확하고 실력 좋던 손은 속도까지 얻어 나는 한강 이남에서 제일 빠른 손이 되었다.


나는 특진병동 교수로 복귀했고 방송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병원 마케팅에 곧잘 쓰이는 스타플레이어다.

예전과 지금이 달라진 것은 나의 순번까지는 오지도 않던 수술스케줄을 내가 부러 끌어당겨 내 스케줄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 일이 한가하거나, 특진병동이 텅텅 비어서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어려운 나라에서 의료봉사까지 하고 온, 실력도 좋은데 마음도 따뜻한 의사를 좋게 보아주었고, 재벌집 진상환자분들은 여전히 예쁜 나의 외모와 남다른 재기를 자신들의 허영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우르크에서 찍어온 봉사 사진 몇 장은 그렇게 나에게 또 한 번의 도약을 가능하게 했다.


"나 이제 수술 안 해요. 수술 실력은 경력이 되지 못하더라고요. 금방 돌아갈 거고, 돌아가면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올라가야 해서 아주 바빠요."


그때 당신의 상처받은 표정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있다. 그때 그 말은 진짜로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미였다기보다 나의 자격지심과 오기 때문에 했던 자기방어였지만, 그 말은 지금에 와보니 몇 가지를 빼고는 다 사실이 되었다.

시청자들이 빽이 되어주는 나에게는 이제 수술 실력도 경력이 된다. 나는 원래 있던 자리로 금방 복귀했고, 더 나아가 전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하네요. 저 친구는.. 좋은 손입니다."
"VIP 병동 복귀하고도  손 안 쉬고 꾸준히 수술 스케줄까지 소화하고 있습니다. 새로 짓는 이식센터는 강선생에게 맡겼으면 합니다."
"병원도 마케팅이 중요한데 강선생같은 스타플레이어가 간판으로 나서주면 좋지요."


병원이 요즘 새로 짓는다는 이식센터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해성병원 서전들은 다들 그 자리가 제것이길 바라는 터라 이리저리 줄을 대느라 물밑작업들이 한창인데 예전같으면 나도 거기에 뛰어들었을 것을 이제 더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제는 그냥 인턴교육용 수술촬영을 하고 병원 홍보를 위해 방송을 하고 재벌집 진상 환자분들과 씨름하며 그렇게 살면 족하다. 더는 방송도 하지 않고 특진병동 교수도 그만 두게 되면 그저 닥터강으로만 살아도 좋겠지.

다른 생각 안 하게 바쁘게만 산다면 나는 이제 내가 어디에 있어도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더는 개인병원을 개업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개인병원은 나를 더 한가하게 살게할 것이기에 나는 이제 해성병원을 떠나 내 병원을 개업하고 싶지가 않다.

바쁘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야 살아진다.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나는 나름 출세욕이 있는 의사였다, 그렇다고 생명의 존엄함을 잊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내가 살린 환자만큼 내가 흘린 노력의 땀만큼은 보상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 임용에 그렇게 공을 들였던 거고, 떨어졌을 때 그토록 억울하고 분했던 것이다. 나의 이상과 윤리관에 더해 병원이라는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적 노력을 해도 빽 하나의 효과에도 못 미친 결과는 나를 좌절하게 했다.


그 후 방송 한 번에 일약 닥터테이너가 되고 그렇게 내가 노력해도 안 되던 교수 자리가 떡하니 만들어져 내 몫으로 떨어졌을 때, 나는 낙담했다.

그렇게 나는 내 오른손에 쥐고 있던 나의 이상을 놓아버렸었다. 그리고 왼손에 쥐고 있던 출세욕만 잡고 내가 놓아버린 나의 윤리는 애써 외면했었다.


그러다 우르크에서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나의 이상과 윤리관을 되찾고 처음의 선서를 다시 새겼다. 나는 더 단단해졌고 더는 출세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후 내가 원하게 된 것은 좀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이었다.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은 더는 돈이나 자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작은 병원 하나를 개업해 내가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며 당신과 함께 늙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더이상 안정을 원하지 않는다. 나의 편안한 삶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나는 더이상 걷지 않는다. 항상 종종걸음으로 병원을 뛰어다닌다. 그래야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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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에도 좀 들어가고. 숙직실에서 며칠 째야. 인턴 애들 힘들어."
"나 때문에 힘들대? 그 생각을 못했네. 내일 아침에 수술 있는데."
"수술실도 그만 들어가고."


이사장은 더이상 나에게 나이트 당직과 수술실 스페어로 복수하지 않지만 나는 부러 나서서 당직을 서고 작은 수술마저도 내가 한다. 교수 직함을 달고 있는 나는 상당부분을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맡겨놓고 내가 해내야할 몫만을 해내면 족하지만, 나는 부러 남이 해도 되는 일까지 끌어다 내가 한다.

그 시간에 집에 가서 잠이라도 푹 자면, 그럴 수 있다면 나도 좋겠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온통 당신이 서있고, 나에게 말을 걸고 튀어나온다. 집에 가면 당신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다 당신이 허상으로 사라져 버리면 그 상실감이 너무 커서 당신이 나타나는 순간들도 무섭다.

당신이 보고 싶은데, 보고 나면 또 혼자 남을 것이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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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 쓰러져 누워 자는 잠이 아니면, 누워서 잠에 들기 전 뒤척이는 시간이 너무도 길다. 내 집 내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동안 내내 나는 당신의 부재를 실감한다.

그게 싫어서 무서워서 나는 집에 갈 수가 없다. 집은 더이상 [즐거운 나의 집]이 아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엔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이 내 집이었고, 꽃피고 새우는 집이 바로 내 집이었는데, 당신이 더는 나에게 없어서 내 집은 더이상 [즐거운 나의 집]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쉴곳이 없어졌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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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미치겠다 지수야.."


우는 나에게 지수는 휠체어로 춤까지 추며 웃겨주려 했지만 친구의 그런 노력도 나에게 위로가 되질 않는다. 지수는 오래도록 괴로워하는 나를 어쩌질 못해서 미안해하며 부러 더 퉁명스럽게 군다.


"이건 뭐 쉬운 줄 아냐? 니가 해."
"야 이 와중에 내가 춤까지 추면 진짜 미친년이지."


울 수 없어서 웃는 내 표정에 지수는 이러고도 사는 나도 있으니 너도 힘내라고 했다.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하는 친구에게 그런 말까지 하게 하는 나도 참 답답한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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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이제 지수만큼 가까운, 어쩌면 지수에게보다도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얼짱 군의관 윤명주.


명주와 나는 종종 만나고 있다.

서로 바빠서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애와 나는 문득 시간을 내서 얼굴을 본다. 한 사람이 먼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이 거절하는 일은 없다.

바빠서 자주 볼 수 없는 거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건 아니다.

바쁘려고 하니 바쁜것이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돼서, 바쁘게 살아야겠어서, 그래서 바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이 보자고 하면 다른 한쪽은 시간을 낼 수 있다. 어떻게 때마다 꼬박꼬박 만나러 나올 수 있는지 그 이유를 구태여 서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서로 알고 있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짝을 잃은 여자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져서 사는지 우리는 그런대로 짐작은 한다. 그래서 나도 명주도 서로에게 하는 만남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을 때 만나자고 하는 것이 뻔해서, 나도 마침 그랬어서 우리는 지체없이 약속을 잡는다.

우리가 만난다고 서로를 내리누르고 있는 이 중력을 서로가 거두어줄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잠깐동안은 이 고통에서 눈돌릴 수 있기에 우리는 만나서 낮술 한 잔을 한다.


서상사님이 명주를 들여다보고, 당신은 나를 들여다볼까?
이런 우리를 두 남자는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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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한테는 말한 적이 없지만 나는 그 애가 부럽다.

그 애와 내 처지가 이제는 다를 바가 없지만 그 애는 그래도 7년 간의 세월이 있지 않나. 사귀던 날보다 헤어져 있던 날이 더 많았다고 했지만 사랑이든 원망이든 명주는 7년은 해보았지 않은가.


나는 왜 반년도 못해보고 당신을 보내야만 했을까.

그 중에 3개월이 넘는 시간은 그저 당신을 기다리기만 했다.


당신이 늦더라도 돌아왔다면, 계절이 완전히 바뀌고 왔어도, 그 다음 계절에 왔다고 해도 결국 당신이 돌아왔다면 백일이 넘는, 길다면 긴 그 시간도 나는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오지 않았다. 계절이 바뀔 때쯤은 커녕 당신은 이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이 억울해졌다.

그 시간만이라도 당신이 내 곁에 온전히 있어주었다면 나는 백일 더 행복했을 것이고 백일 덜 불안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백일이 아니라 그 백배는 되는 시간을 살아내야한다.

그 끝에 당신이 온다면 그 시간도 억울하지 않을텐데 그러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지금부터도 억울하다.


그 시간 중에 당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나의 삶에 찾아올까?

당신은 그러길 바란 것 같지만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다. 이제 내가 당신 아닌 다른 남자의 노크에 문 열어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어리석은 일을 두 번 하고 싶지는 않다.


당신이 돌아와 두드린다면 혹시 또 모르겠다. 떠나버린 당신도 놓질 못해서 이렇게 사는 내가 살아있는 당신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랑이 이다지도 어리석은 일임을 나는 이제 알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이고 영영 끝날 것 같지 않기에 나는 이미 사랑해버린 당신을 그만두지는 못한다.


당신이 죽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당신은 죽은 게 아니라 떠난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3개월짜리 말고 30년 짜리라고 믿으면 되지 않겠나? 아니 그러면 내 삶이 다하지 않을 확률이 높겠다. 30년을 한 번 더 더해 60년 짜리 백화점이라고 믿고 싶다. 그랬으면 차라리 좋았겠다.

그랬다면 당신이 60년 후에 오더라도 나한테 돌아오긴 한다는 거니까.
60년의 기다림이라도 그 끝이 당신의 귀가라면 나는 기다릴 수 있다.

바보같은 생각이다. 똑똑한 내가 점점 멍청해진다.


당신은 오지 않는다. 나는 [이세상]에 살고, 당신은 [저세상]에 사니까.
내가 [저세상]에 살기를 허락받기 전에는 당신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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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거기 꼭 돌아가요. 그 해변. 돌맹이도 갖고 왔으니까."
"그래요. 꼭 다시 가요. 둘이 같이."


둘이 같이 가자고 굳게 했던 약속이 아쉬워서 혼자 그 해변에 다녀올 수가 없었다.


갖다 놔야지. 갖다 놓고 오면 다 잊어버려야지. 다 잊고 보내줘야지.

그러려고 비행기 표 끊었다가 취소하고, 호텔도 예약했다 캔슬하고, 휴가도 신청했다 반납했다. 그렇게 몇 번을 생각하고 시도했지만 결국 나는 하얗고 예쁜 돌맹이를 고향에 돌려보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이걸 계속 쥐고 있으면 당신이 그곳에서 편히 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약속은 반만 지키는 것으로 하자.

그 해변은 둘이 가기로 했으니 나 혼자는 갈 수 없다. 그러니 이건 다른 곳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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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면 나는 이제 영영 혼자 배에 남아 바다를 떠다닐 것이다. 이제는 뭍에 닿을 수도 없고, 더는 당신이 돌아오지도 않는 이 배에..


당신이 완전히 떠나 돌아오지 않는 배는 점점 낡아지고 부서진다. 고쳐줄 사람이 없는 배는 끼익거리며 쇳소리가 커진다. 불이 꺼지고 프로펠러가 멈춘다.

당신이 돌아오기까지 멈춰있으려고 내려놓은 닻에 해초가 낀다. 이제는 닻을 올려야겠다. 돌아오지 못하는 당신이 더 미안해하기 전에 나는 닻을 올리고 어디로든 떠가야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날엔가 당신이 나를 데리러 오겠지. 그러면 나도 당신 사는 그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게 언제쯤일까.

그날에도 당신은 젊고 멋있겠지. 내가 너무 호호할머니가 되기 전에 그날이 되면 좋겠다.

언제나 당신에게 [이쁜이]이고 싶으니 당신이 빨리 와야한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 나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나를 데리러 오기를, 함께 당신 사는 그곳에 가기를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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