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엄띄엄 써놓았던 꿈일기를 몇 장 발견했다. 원래는 공책 하나에 차례대로 적어서 모아두려던 것이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행여나 누가 볼까 숨겨둔 것도 있고 내가 보기에도 민망스러워 찢어버린 것도 있다. 다시 찾은 꿈의 영상을 되살려보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강렬했던 감정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키워드를 몇 가지 적어두고 곰곰 생각하니 나는 부끄럼이 많고 욕구 불만에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키워드는 가족, 남자, 그리고 퀴즈였다). 두려움을 선두로 그 아래에는 분노와 슬픔이 깔려있다. 내동댕이쳤던 꿈일기들은 고맙게도 내게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문제를 파악한다고 해서 답을 단번에 찾을 순 없다는 것. 그것이 수학 문제와는 다른 인생의 문제가 아닐까. 나는 더 무거워졌다. 문제는 알지만 답은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문제를 모를 때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한 나는 더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저주를 풀기 위해 저주 속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