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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추천 하나 해준다

에브리맨(124.28) 2015.11.12 19:05:28
조회 194 추천 2 댓글 1


마루야마 겐지가 쓴 '만월의 시'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소설집 '여름의 흐름'에 수록되어 있는데, 꼭 한 번 찾아서 읽어 봐.


일단 소재부터 독특하다. 


주인공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집 지키기. 주말 동안 비어있는 집에 들어가서 전화를 대신 받아주거나 청소를 해. 


그런데 주인공이 맡은 집 벽에 큰 그림이 걸려 있어. 그림의 배경은 숲이야. 보름달이 떠 있고, 나무와 동물들이 있는 그런 숲. 


그리고 큰 버드나무 둥치에 남자 한 명과, 여자 둘이 앉아 있어. 셋의 관계는 알 수 없어. 


이제 주인공은 상상을 하기 시작해. 무슨 상상? 


그 셋이 쓰리썸을 하는 상상.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그림 속 세계로 뛰어 들어가서 남자를 죽이고, 그 여자 둘을 탐하는 상상을 해.


아주 치명적이고 자폐적인 망상이지.


주인공의 몽상을 치밀하게 묘사를 하는데, 재밌어. 긴장감 있고.



근데 주인공 아는 놈이 자꾸 전화를 걸어 와.


전화 내용은 이거야.


"사람이 한 명 부족한데, 와서 같이 놀래? 남자 둘, 여자 셋 있는데 너만 오면 그룹 섹스 가능"


주인공은 단칼에 거절해. 


왜?


그림 속 여자들이랑 하는 게 더 좋으니까. ㅋㅋ


끝까지 상상 속에 갇혀 있다가, 마지막에 현실로 돌아오는데 그 현실은 너무나도 초라해. 그리고 소설은 끝이 나. 



그룹 섹스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주인공은 상상 속 세계를 택하지. 


이건 단절된 현대인의 치열한 발악이야. 


게임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이나, 지금 디씨를 하고 있는 너네들과 나처럼. 


그림 속 세계는 가상현실을 상징하지. 현실을 돌아볼 용기는 없고, 가상세계 속의 쾌락이나 권위만 자꾸 쫓는 거야. 


마루야마 겐지는 이렇게 현실과 소통하지 못하고, 망상으로 현실을 전복하려 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숨 막힐 정도로 긴박하게 묘사해. 


단편인데도 글의 밀도가 높아서 장편 같기도 하고.


 

아래는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들



 셋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것은 불을 쬐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사를 즐기고 서로의 얼굴을 좀더 잘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잔이고 장밋빛 술을 마시고, 먹고 웃고 얘기한다. 아직 나를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다. 만일 마른 가지를 밟아서 바스락 소리라도 내면 금방 발견되어 청년이 왼쪽 허리에 매달고 있는 긴 검이 내 심장을 꿰뚫어버릴 것이다. 청년에게는 숙녀 둘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내가 변명해도 그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다행히 세 사람의 눈은 단 일 초도 다른 것을 보지 않는다. 들토끼가 빵을 훔쳐 가고 있는 것도 모를 지경이니까 걱정은 없다. (p 207)  




 이제 그들은 이야기하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녀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투명하다. 그녀의 피부가 장미색으로 물든 것은 불꽃 탓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닥불은 탈 것이 없어져서 급속하게 약해지고 이미 조명 역할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 여자들은 둘 다 내 것이야. 상대방 사나이의 신분이 아무리 높다 해도 제멋대로 하게 둘 수는 없다. 겨우 한 자루밖에 되지 않는 검 따위에 겁먹지는 않겠다. 무엇보다도 지금 그 검은 청년의 손 안에 없고 옷과 함께 그들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p 219)


 

 회초리 끝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나는 금방 땀투성이가 되고, 부인 몸에 몇 줄기나 되는 선홍빛 선이 새겨진다. 그녀는 젖무덤을 보호하면서 소녀 위로 쭈그린다. 밤을 반으로 찢을 듯한 메마르고 날카로운 소리가 날 때마다 세 마리 백마는 심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사실은 그녀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마차용 회초리 따위를 휘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반항하거나 자살을 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단검을 떨어뜨리기 위해 썼을 뿐이다. 그것이 이렇게 끔찍한 결과가 되다니. 늪 수면에 두 개의 파문이 생기고, 주변에는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다. 회초리의 위력을 본 백마들은 떨고 있다. 떨고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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