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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ㅇㅍㅇ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12.24 12: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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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에-


  1월 1일이면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러 바닷가를 찾습니다. 하지만 준영씨는 그 하루 전 날인 12월 31일 저녁에 바닷가에 향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후,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걷고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던 동해의 바닷가. 그 곳에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제법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추위 때문인지 그들은 서로 엉켜붙은 채, 헤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시계를 바라보니 6시. 슬슬 해가 일과를 마칠 시간입니다. 준영씨는 잠시 은색의 방파제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마치 숨박꼭질을 하는 아이처럼. 술래는 저 하늘에서 준영씨를 향해 외치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제 10분 남았다.” 라며.

  어둠이 지평선으로부터 바닷가로 점점 스며들고 있습니다. 준영씨는 두리번거리기를 끝내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부터 조금은 먼,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절벽 밑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 곳엔 하얀 실크같던 구름이 어느새 발갛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지는 해를 보러 간다고? 보통은 뜨는 해를 보러 가는 것 아니야?”

  여행을 오기 전, 화영씨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그는 제법 얇은 흰 색 셔츠에 결코 따뜻해 보이지 않는 청색 자켓을 걸친 채, 옷깃을 여미며 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준영씨는 그에게 대답 대신에 오히려 질문을 던졌습니다.

   “안 춥냐?”

   “춥긴 추운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준영씨는 계속해서 물어오는 화영씨의 질문세례에 결국 침묵으로 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자신도 그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는 건지도.

  사실, 한 해의 마지막 해를 보러 간다는 것은 준영씨에게도 처음의 경험입니다. 기차를 타고 여행지로 향하면서 준영씨는 스스로도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결론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라는 논리적이지 못한 답변만이 머릿속에서 새어나올 뿐이었습니다.

  아주 잠시간 생각에 빠져 있었을 뿐인데, 주변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저 멀리서는 가로등의 하얀 빛이 한산한 거리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밤은 도둑처럼 소리소문 없이 주변에 스며들어있습니다. 준영씨는 그 스며드는 모습의 실체가 늘 궁금했지만, 오늘도 역시 찾아내지 못한 듯 합니다.

동그랗던 해가 어느새 사분의 일 정도의 꼬리 부분만 남기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준영씨는 이상하게도 아쉬움을 느낍니다. 사실 이번 한 해는 준영씨에게 있어서 굳이 좋고 나쁨을 따지자면, 나쁜 측에 속하는 해였습니다. 지나가는 것을 속 시원하게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아쉬움이라니.

   ‘미련-’ .

  어쩌면 그것이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바닷가에 홀로 앉아 한 해의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음은, 미련, 그것이 이유일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사라져 버리는 해와 같이 그것-도 사라지기를 바라는 지도 모릅니다.

  문득, 콧속으로 고기의 탄 냄새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뭐해, 타잖아 타!, 고기도 못굽냐 이휴!”라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그리고 해가 모습을 감췄습니다.




 녹이 슨 철문 앞에 서 있습니다. 분명 익숙한 곳일진데, 익숙치 못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루마의 『Spring rain』이라는 곡이었습니다. 준영씨는 노래의 차분한 음율 때문인지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려 열었습니다. 발걸음도 조심스레.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자 그 곳에 한 여인이 보였습니다. 침대 받침에 반쯤 몸을 뉘인 채, 콧소리를 흥얼거리는 여인이 눈에 보였습니다. 침대는 영화 『이프온리』의 오두막에 나온 침대와 비슷한 것이었는데-특별히 주문한 것이었던-, 짧은 핫팬츠에 연회색의 셔츠를 입은 채,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이, 제법 침대와 어울리는 듯해서 잠깐동안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꽤 늦었네요?”

  라며, 그녀는 태연스레 말을 건네옵니다. 준영씨는 그녀의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립니다.

   “어쩐일이야?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들어왔어?”

   “헤에-, 키 정도야 미리 복사하는 것. 당연한 것 아녜요?”

  당돌한 그녀의 태도에 준영씨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묻는 것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다만 완전히 승복하지는 않았는지 “당연하긴 뭐가. 그게 왜.” 라며 작게 읊조립니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낸 뒤, 컵과 함께 테이블로 가서 앉습니다.

  준영씨는 물을 마시는 동안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침대에서 흰 양다리를 일자로 쭉 편 채, 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살짝 붉게 물든 볼이 마치, 복숭아처럼 보여서 어쩌면- 한 입 베어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준영씨는 이내 고개를 작게 흔들고는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 봐, 그리고 그 셔츠도 두고 가고.”

   “오늘은, 이요? 오늘도가 아니고요?”

  그녀, 슌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습니다. 이내, 슌카는 준영씨와 테이블에 마주앉더니 자연스럽게 셔츠의 윗 단추를 하나 풀면서 말했습니다.

   “오늘은, 오늘만은, 오늘도가 아니면 안돼요?”

  하지만 준영씨는 이미 결심이 확고했는지, 손까지 휘저으며 말했습니다.

   “안 돼.” 라고.

  슌카는 그의 그런 태도에 쉽게 포기를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 아니라고 하면, 절대 아닌 그의 성정을 잘 알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그녀가 준영씨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런 단호한 태도에 더 약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셔츠, 여기서 벗을까요?”

  라는, 슌카의 마지막 도발에, 준영씨는 “아니, 화장실에서.” 라며 일축시킨 채, 물 한잔을 더 들이킵니다. 결국 슌카는 얌전히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게 된 방 안, 쓰러지듯 침대에 누운 준영씨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사람은 없어졌는데도, 그 온기는 여전히 그 곳에 남아있습니다. 준영씨는 짐짓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잠에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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