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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211.173) 2015.02.27 0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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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생은 동물들을 좋아했다. 우린 초등학생 때 많은 동물들을 키우고 또 많이 떠나보내고 죽게 만들었다. 우리가 많은 동물들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우릴 자유롭게 키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용돈을 일정하게 주시지 않고 자신이 주고 싶을 때 주셨는데 꽤 자주, 많이 주셨다. 우린 그 돈을 모아서 대부분 동물들에게 썼다. 그런데 동물을 키우는 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3층에 사시는 큰고모 때문이었다. 큰고모는 우리 가족을 금전적으로나 그 밖에도 많이 도와주시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우리를 키우다시피 돌봐주신 분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사한 지금의 집도 큰고모 소유의 집이다. 큰고모는 아빠, 나, 동생 모두에게 거의 엄마였다. 그래서 영향력이 매우 크다. 문제는 고모가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걸 싫어하시고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거다. 그래서 우린 몰래 키웠다. 가끔은 동물을 보고도 고모가 눈 감아주실 때도 있었다.
키웠던 동물들을 나열하자면 강아지부터 시작해서 햄스터, 물고기, 무당벌레, 사마귀, 잠자리 애벌레(수채), 도마뱀, 거북이, 바퀴벌레, 병아리, 메추라기, 육상 플라나리아 등등이 있다.
바퀴벌레는 집에서 나온 바퀴벌레를 잡아서 통 안에 가둬놓고 키웠다. 육상 플라나리아는 처음에는 몸이 길고 머리가 좀 특이하게 생긴(부채 모양) 노란색 민달팽이인 줄 알고 잡아서 흙과 나뭇잎을 담은 통 안에 넣어 키웠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의 '하은'이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관찰일기도 쓰다가, 죽었나 싶을 만큼 조금 움직이고 키우는 재미가 없어서 나중에 방생했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애 이름이 하은이였다. 뜻까지 똑같아서 "너 이름 내가 키웠었던 육상 플라나리아랑 이름이 똑같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냥 안 말했다. 사실은 민달팽이가 아니라 육상 플라나리아였다는 것과 이 녀석을 도시 콘크리트 위에서 발견하는 게 드문 일이라는 것은 몇 년 뒤에 정말 우연히 알게 됐다.
제일 짧게 키운 동물은 하루 동안 키운 강아지였다. 아빠가 아빠 친구에게서 데려온 한 살 짜리 암컷 풍산개였는데, 큰고모가 무슨 개를 키우냐며 다음 날 시골로 보내버렸다. 나는 삐쳐서 그 날 저녁 먹을 때까지 말을 안 했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을 안 써줘서 그냥 은근슬쩍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제일 오래 키운 동물은 1년 넘게 키운 거북이였다. 우리가 여름 방학 동안 친척집에 가있는 동안 거북이들이 탈출해서 차에 치여 죽은 걸 동네 할머니가 보셨다고 고모가 말해주셨다.
우리가 키웠던 동물들의 팔할은 '펫샵'에서 데려온 동물들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우리집 근처에는 희귀동물들을 판매한다는 가게가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펫샵이었다. 과일 박쥐, 큰 뱀, 작은 뱀, 도마뱀, 이구아나, 거미, 개구리, 햄스터, 거북이, 잠자리 애벌레 등등 흔하거나 사실은 흔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나와 동생은 자주 거기에 가서 동물들을 구경하고 많이 사기도 했다. 동물을 안 키우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펫샵을 안 갔는데 나중에 중학생이 되고 문득 기억나서 가본 펫샵은 끔찍하게도 수학 학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키웠던 많은 동물들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은 거북이다. 내 별명 중 하나가 거북이기도 하고 제일 오래 키웠던 만큼 정성을 많이 쏟아서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한 마리인가 두 마리를 데려왔었다. 처음 거북이를 데려왔던 날은 눈까지 오는 아주 추웠던 겨울이었다. 그래서 펫샵 아줌마가 집이 몇 분 거리인지 물으며 걱정하셨다. 3~5분 거리로 가까워서 괜찮겠지,하고 데려왔는데 집에 와서 열어 보니 거북이가 배를 보이며 둥둥 떠 있었다. 식겁하고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그 안에 거북이가 든 통을 중탕하듯이 담아놓았다. 그러고 기다렸더니 거북이는 다행히 다시 등껍데기를 보이며 움직였다.
나중에는 또 다른 거북이들을 들였다. 맨 마지막에는 네 마리인가 다섯 마리가 되었다.(정확하지 않거나 떠오르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 점에 대해 죄송하고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나도 찝찝하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수조와 먹이, 돌은 물론 여과기도 사고 수초나 다리 같은 장식들도 샀다. 직접 돌을 주워 고인돌 모양으로 물 속에 놓아주기도 했다. 나중에 펫샵 아줌마가 보시고 돌 잘 놓았다고 해주셨다. 거북이들은 가끔 돌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돌 아래에 들어가기도 했다. 거북이에 대해 알아보니 가끔 돼지고기를 주면 좋다고 해서 정육점에 가서 돼지고기 500원 어치를 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왜 500원 어치를 사냐고 물어보셔서 거북이에게 줄 것이라고 했더니 잘게 다져서 주셨다. 그 이후로 정육점 아저씨들은 내 동생을 거북이 소년이라고 불렀다.
거북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식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부모님들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갔다. 거북이가 먹이를 먹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거북이들에겐 500원 어치도 많았던 건지 돼지고기는 항상 남았다. 거북이에게 돼지고기를 줄 때마다 새로 사와서 냉장고엔 400원 어치 쯤 되는 남은 돼지고기들이 많았다. 햇빛이 쨍쨍한 날이면 가끔 주변 공터에 가서 일광욕을 시켜줬다. 칫솔로 목욕을 시켜주고 발톱이 길면 발톱도 깎아줬다.
거북이가 느리다는 건 편견 중의 편견이다. 내가 키운 거북이들이 작고 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방바닥에 놓고 나서 보면 정말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탈출도 잘했다. 다리도 짧은 것들이 도대체 어떻게 수조를 탈출하는가 본 적이 있는데 장식으로 놓았던 동굴을 밟고 수조 뚜껑을 밀어 탈출하는 거였다. 제일 탈출을 잘했던 상습범은 제일 나중에 들인 '가지'라는 이름의 거북이었다. 제일 활동적이고 빠르고 팔팔한 거북이었다. 맨 처음에 가지의 이름은 '마루'였다. 호두 꼭대기라는 뜻의 호두마루라는 아이스크림에서 따온 이름이다. 처음 봤을 때 맨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가지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등껍데기에 보라색이 섞여 있다고 가지라고 이름을 바꿨다.
거북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즐거웠지만 슬펐던 일도 있었다. 동생의 친구도 우리와 같이 거북이를 샀었는데, 키우다가 흥미가 떨어졌는지 거북이와 용품들을 우리에게 전부 줬다. 그 거북이는 처음 봤을 때부터 몸이 유달리 작고 잘 움직이지 않던 거북이였다. 우리에게 오고 나서도 여전히 잘 안 움직이고 구석을 좋아했다. 소극적이고 먹이도 잘 안 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와 무척 닮은 녀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눈이 가고 걱정되고 불쌍했던 것 같다. 결국 그 거북이는 얼마 후에 죽고 말았다. 어느 날 계속 등껍데기에서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해 꺼내서 만져보니 등껍데기가 힘없이 말랑말랑했다. 아무리 건드려봐도 거북이는 나오지 않았다. 거북이의 등껍데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했던 무덤이었을까. 우린 거북이를 우리집 맞은 편 아파트에 있는 흙길에 묻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맨 마지막으로 키웠던 동물이자 동물을 안 키우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햄스터였다. 햄스터를 다섯 마리 키웠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작은 왕따 햄스터가 있었다. 친구가 키우던 햄스터였는데 갈색이었고 이름은 땅콩이었다. 다른 햄스터들은 툭하면 땅콩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러면 땅콩은 그냥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땅콩이가 보이지 않았다. 톱밥 속에 있나 하고 다 꺼내서 봐도 없었다. 그런데 톱밥 속에서 '땅콩' 모양인 뼈로 추정되는 작은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 순간 햄스터들이 서로를 잡아먹기도 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소름이 돋고 남은 햄스터들이 괴물로 보였다. 그 귀여웠던 햄스터들이 이젠 만지기도 싫은 징그러운 쥐새끼로 보였다. 우린 더 이상 이전처럼 햄스터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아 남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친구들에게 키울 사람 없냐고 문자를 보냈다. 키울 수 있다는 애가 없었다. 우린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기로 했다. 햄스터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이런 날에 햄스터를 버리는 주제에 마지막 양심, 동정심은 있었는지 톱밥을 가득 채우고 먹이와 물통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난 청부살인을 부탁하는 사람처럼 비겁하게 동생을 시켜 밖에 버리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동물을 안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햄스터는 햄스터를 그렇게 깔끔하게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잔해도 없었고 톱밥에는 한 방울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나는 순전히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햄스터를 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나도 괴로웠다. 햄스터들은 아무 죄도 없었는데 난 그 정체불명 물체 하나로 망상하며 햄스터들을 괴물로 만든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동물을 안 키우겠다는 결심은 더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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