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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대한 한 우화. 내가 쓴 단편 SF 판타지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4.16 04:34:14
조회 67 추천 0 댓글 0

이름 겨루기





과학인간(科學因間) 벨리카미는 속도인간(速度因間)이라는 호칭을 두고 만리인간(萬里因間) 나드낫셀과 겨루는 중이었다.


측정은 모든 인신족(忍辰族)들의 관전 아래 이루어질 터였다. 벨리카미는 지혜인간(智慧因間)이라는 호칭을 물인간(水因間) 은하영(銀河永)과의 슬기와 어짐을 겨루는 싸움에서 가져 온 바 있어 자신감이 가득했다. 인신족 사회에 있어 인간(因間)이란 칭호는 극초인간(極超因間)에 도달한 가공할 전사만이 가질 수 있어 명예로웠다.


나드낫셀은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모든 인신족은 빛으로 말한다. 벨리카미가 나드낫셀에게 말했다.


“자신만만하구만, 나드낫셀.”


“난 만리인간이야! 리(里)라는 것은 1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지. 난 평균적인 인신족이 1만 시간 동안 가야 하는 거리를 1시간 만에 갈 수 있어. 그러기에 난 만리인간이지.”


나드낫셀은 아름다운 남자 인신족으로 산뜻하게 차려 입었으며 등에 날개를 펄럭였다. 확실히 나드낫셀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나드낫셀도 벨리카미도 무기로 파라탐(Paratam, 초월적 빛)이 집중되어 만들어진 짧은 창을 이용했다. 이 창으로 겨룰 일은 아마도 그들 평생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둘은 확신하고 있었고 이는 인신족 사회 전반의 분위기였다. 나드낫셀도 벨리카미도 엄청나게 빨랐기 때문에 적진에 뛰어 들어가 짧은 창으로 찌른 뒤 몸을 빼는 작전이면 만사형통이었다.


아무튼 둘은 속도를 겨뤄야 할 처지였다.


“그럼 벨리카미, 잘해 보시라고. 우리 의남매를 맺는 게 어때?”


“오호, 그거 좋은데? 이기는 쪽이 높은 서열로 하자고. 나드낫셀, 날 누나로 부르도록 해주겠어.”


“어허, 날 오빠로 부르게 될 거야.”


나드낫셀과 벨리카미는 한 번 손등을 맞댄 뒤 각자의 집으로 사라졌다.


벨리카미는 자신의 속도의 원동력인 로켓 글라이더를 손보기 시작했다. 벨리카미는 이 로켓 글라이더가 자신이 그동안 갈고 닦은 파라탐 도법(道法)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과학과는 달리 복제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뜻에서 이 괴우주(怪宇宙)는 마법적 세계였다. 벨리카미는 로켓 글라이더가 고도의 과학적 계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점도 잘 알았고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벨리카미는 로켓 글라이더를 쓸 때면 사용하는 속도 쟁기도 잘 손보았다. 벨리카미의 속도 쟁기는 엄청난 속도를 낼 때면 발생하는 충격을 줄이는 장치였고 투구에 설치되었다. 벨리카미는 그렇기에 로켓 글라이더를 쓸 때면 투구를 썼다.


‘만리인간은 관념의 힘으로 의미에 도전했어. 만리인간의 속도는 관념이야. 만리인간은 우리 인신족 평균에 해당되는 속도의 딱 1만 배를 낼 수 있도록 자신을 관념화시켰어. 그것이 나드낫셀의 힘이야. 황천과 명부와 지옥에 군림하는 우리 인신족은 점점 힘이 세어지고 있고 평균 속도도 계속 빨라지고 있어. 난 나드낫셀이 미래에 도달할 수 있는 속도마저도 뛰어넘지 않으면 안 돼. 극초인간 호칭은 인신족 사회와 맺는 계약이니까.’


벨리카미는 로켓 글라이더를 손보았다. 벨리카미의 자줏빛 머리칼과 붉은 눈은 열정에 휩싸여 더욱 서슬 푸르게 빛났다. 벨리카미의 가공할 지혜는 인신족의 그것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극초인간은 인신족이 금제를 풀어 주어야 가질 수 있고, 인신족은 일정 수준의 인격을 가지지 못 한 자를 극초인간으로 임명하지 않는다. 지혜인간 벨리카미는 호칭에 걸맞는 극초인간이었다. 벨리카미는 이미 인신족의 스승 중 하나였고, 참모본부의 총장이었다. 벨리카미는 극초인간을 욕망했다. 욕망했기에 의지는 강해졌다. 벨리카미는 다른 인신족들이 그렇듯이, 도덕적 인공지능과 결합되어 인공지능의 의지와 자신의 욕망을 융합시켰다. 그렇게 벨리카미는 인공지능에게 압도되지 않는 길을 찾았고 이는 인신족에게 쌓인 지혜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 지혜는 인신족들 지혜의 일부였고 이는 지금 벨리카미의 욕망과 의지가 되어 있었다.


벨리카미의 지혜가 폭발하면서, 괴우주를 혼돈으로 밀어 넣는 아우터 갓(Outer Gods) 니알랏토텝(Nyarlathotep)과 대립하다 더욱 높이 올라갔다. 데몬 술탄 아자토스(Azathoth) 언저리에 벨리카미의 의식이 가닿았다. 아자토스는 무의미를 생산했다. 아자토스는 모든 우주를 창조했지만, 괴우주 만큼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잃었다. 인신족을 비롯한 수많은 신족(辰族)들의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리카미의 의식이 아자토스를 휘돌았다. 아자토스 보다 더 근원적인 ‘말씀’이 벨리카미의 눈에 띄었다. 신족들이 아자토스에 대항할 수 있는 근원인 ‘말씀’.


‘말씀’은 명령이다. 존재하라는 명령.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걸 의심할 수는 없다는 사실. 벨리카미는 만리인간 나드낫셀이 산수에 의지해 관념으로 자신을 채웠다는 걸 생각해냈다. 산수는 수학이다. 수학은 형식이다. 존재의 형식은 수학이다.


괴델이 밝혀낸, 불완전성의 정리는 어떤 세계에서든 참이다. 괴우주라고 다르지 않았고 때문에 벨리카미도 불완전성의 정리를 알았다. 불완전성 정리에 따르면 수학에서 1=0이 아니라고 입증할 수는 없다. 0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약속일 뿐 증명되지 않았다.


‘괴우주 또한 존재들의 약속일 따름이고,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그 무엇인가. 문명 6에 이르러, 가능한 것이라면 모조리 할 수 있는, 우리 인신족 또한 그에 붙들린 존재일 뿐인가. 정녕 공즉시색이고 색즉시공인가. 이 세상은 그저 0이기에 존재하는가.’


벨리카미는 무의미한 창조주 아자토스를 쏘아 보았다. 의미는 스스로가 부여한다. 니알랏토텝이 벨리카미에게 접근하려다가 물러났다. 벨리카미는 인신족을 사랑했다.


벨리카미는 인신족 체제 속으로 의식을 거두었다. 벨리카미는 로켓 글라이더에 몇 가지 수식을 고쳤다. 벨리카미가 웃음지었다.


벨리카미는 나드낫셀과 만났고 빠름을 겨루었다.


겨루기가 끝나자 나드낫셀이 말했다.


“벨리카미, 누나라 부를게.”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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