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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지 않아야 하는 이유

ㅅㄹ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4.18 04:48:53
조회 112 추천 0 댓글 2


 



 팔에 손길이 스쳤다. 그녀가 펜을 돌려주었다. 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도 고개를 꾸벅이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펜을 빌려달라는 말이 있었다. 잠시만요, 그녀의 등을 스쳐가는 내가 있었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가 있었다. 나는 사랑을 시작했다.


 그녀는 철학을 전공한다. 학과 조교에게 바보스럽게도 그녀에 대해 물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책은 항상 바뀌었다. 행태에 망설임이 없었다. 차분한 사람이었다. 사소한 것들을 하나씩 수집하며 감동받는 게 사랑이 아닐까. 모르겠다. 어쨌든 좋다. 나는 그녀를 훔쳐보곤 했다.

이는 충분한 정리일까. 고민할 시간이 없다. 그녀는 내 앞에서 창문을 앞두고 있었다. 거기서 떨어지면 죽어요.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똑똑하다. 다르게 접근했다.


 "죽지 말아요."


 결국 내 입장은 이 한 마디였다.


 그녀는 말했다.


 "내가 죽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봐."


 그녀는 차분했고 철학적이었다. 나는 아마 땀을 흘렸던 것 같다. 말을 고르는 건 힘들었다.


 "좋아해요."


 그녀는 웃었다. 잠든 나를 깨웠을 때처럼 차분하게 웃었다. 곧 창밖으로 자신을 떨어뜨렸다.


 어. 나의 행동은 그 뿐이었다. 긴 시간 후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길게 느껴졌다.


 그녀를 살리려는 노력이 부족했을까. 그렇지도 않은데. 나는 억지로 그녀에게 말을 붙이곤 했다. 책 재밌어요? 담배 피우세요? 아. 깨달았다. 나는 바보처럼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가 그녀를 얻기 위해 한 노력은 그녀의 생사 관건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의 어떠한 목적이 아니었음을, 차분하고 철학적인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죽음은 나와 어떠한 상관을 가지고 있는가. 아마도, 그렇겠지.


 그녀에게 가기로 했다. 계단을 한참 밟았다. 그녀는 아직 혼자였다. 생각보다 처참했다. 까맣게 물든 블록들이 백 개는 되어 보였다. 오른 쪽 옆구리가 터졌고 입천장이 입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눈과 입술은 아름다웠다.


 오 나는 그녀의 발목을 잡아 당겼다. 그녀가 보도블럭에 찢겨질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그녀는 이제 스스로를 지킬 수 없구나. 입술이 다치지 않도록 그녀를 똑바로 뉘이고 끌었다. 등과 뒤통수가 쓸리는데, 아프지 않다니 다행이야.


 그녀를 계단에 앉힐 수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나는 새로운 생각을 얻었다.


 그녀와 하고 싶었던 것, 함께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흡연자임을 숨겼다. 성지 형과는 함께 피웠으면서. 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녀의 입에 담배를 물렸다. 그녀는, 턱을 다물어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녀의 턱을 잡아야 했고, 그때마다 나는 설레었다. 연기가 들어간 코가 아팠다. 젠장, 결국 한 번도 담배를 같이 피워주지 않는 군. 그녀의 귀에 담배를 꽂으려다가, 깨달았다. 그녀는 아름답다는 것을. 콧구멍도 안 된다. 질구에 끼우려다가, 그녀의 바지를 벗기지는 못했다. 오늘 그녀는 치마를 입지 않았다. 원망스러웠지만 손가락 사이에 남은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별 수 없죠, 혼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녀를 지켜본 기억들을 훑었다. 담배는 금방 금방 탔고 나는 또 또 담배를 꺼냈다. 갑을 비우자 두통과 어지럼증이 나를 덮쳤다. 아. 나는 그녀에게 기대었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나의 체중을, 실었다. 따뜻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와 온기를 날리었다. 나는 계속 어지러웠고 바람은 계속 불었다. 그녀의 눈두덩이와 코, 입술이 아름답게 내려온다. 이 시간은 영원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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