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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문장? 묘사 관련 텍스트

김코쿤(182.229) 2015.04.30 14:05:04
조회 371 추천 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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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렸던거 재탕.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사 


베스트 셀러 작가들 사이에서 흔히 묘사를 할수록 망한다 라는 말이 있어서 적당한 텍스트를 찾아봤다.

굳이 디테일한 묘사가 아니라도 좋은것.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비단이란 소설에 보면 에르베 종쿠르 라는 프랑스인이

자연재해로 더이상 누에를 구하지 못하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영주인 하라 케이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하라 케이의 여인과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거의 묘사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영상만큼 생생한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그는 구구절절한 묘사보다 훨씬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를 구사한다


 


 


미지를 바른 미닫이 문이 미끄러지듯 열렸다. 에르베 종쿠르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라 케이는 방 애랫목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검은 빛깔의 튜닉 같은것을 입고 있었는데, 보석류는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그의 권위를 말해주는 유일한 징표는 곁에 누워 있는 여자였다. 여자는 하라 케이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눈은 지그시 감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팔을 감추고있는 붉은 옷소매는 잿빛 다다미 위에 불꽃처럼 활짝 펼쳐져 있었다. 하라 케이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천천히 쓸어 넘기고 있었다. 마치 잠들어 있는 귀한 애완동물의 털을 쓰다듬는 듯한 모습이었다. 39p


에리베 종쿠르는 방을 가로질러 하라 케이에게 다가갔다. 그는 집주인의 신호를 기다렸다가 앞에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이 소리 없이 다가와 찻잔 두 개를 내려놓고 연기처럼 물러갔다. 그제야 하라 케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본어였다. 단조로운 억양에 듣기 싫은 가성이 섞여 있었다. 에르베 종쿠르는 잠잠히 듣고 있었다. 그는 내내 하라 케이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여자의 얼굴 쪽으로 떨어졌다.
어린 소녀의 얼굴이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들었다. 40p


하라 케이는 말을 멈추고 두 개의 찻잔 중 하나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누군지 말해보시오."


프랑스어였다. 그는 모음을 조금 길게 끌었다. 탁하고 거친 목소리였다. 가성이 섞이지 않은 그의 진짜 목소리였다. 41p



일본에서 가장 범접하기 어려운 남자, 온 세상이 이 섬나라에서 빼내가려고 기를쓰고 있는 그 모든 것의 주인. 그런 사내에게 에르베 종쿠르는 자기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천천히 이야기했다. 하라 케이가 이해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풀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았다. 소소한 일부터 굵직한 사건까지 단조로운 어조로 털어놓았다. 손짓과 몸짓은 거의 하지 않았다. 마치 불길에서 간신히 건져낸 물건들을 세어보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남 이야기를 하듯, 최면이라도 걸린듯한 태도로. 하라 케이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의 얼굴 표정에서는 감정변화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에르베 종쿠르의 입술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별의 편지의 마지막 말이라도 되는 양. 방안의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했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실은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한순간 심장이 멎는듯했다.


 


갑자기
그 어린 소녀가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떴다. 42-43p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에르베 종쿠르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향해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 하면서 알아차린 것은 그녀의 눈이 동양인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당돌하게 그를 향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그 눈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에르베 종쿠르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있는 힘을 다해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방바닥에 놓인 찻잔에 눈길이 닿았을 때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한 손으로 찻잔을 들어 입술로 가져가 천천히 마셨다. 그러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44-45p


(중략)


소녀가 살며시 머리를 들었다.
소녀는 처음으로 에르베 종쿠르에게서 시선을 떼고 찻잔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천천히 찻잔을 돌려 에르베 종쿠르가 입술을 데었던 바로 그곳에 입술을 갖다댔다.
소녀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소녀는 찻잔에서 입술을 떼었다.
소녀는 찻잔을 원래 있던 자리로 밀어놓았다.
소녀는 손을 거두어 치맛자락 밑으로 감추었다.
소녀는 다시 하라 케이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소녀는 눈을 뜨고 에르베 종쿠르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길 양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우거져 햇빛이 들지 않았다. 길 끝이 돌연 창문처럼 열리며 갑자기 초목이 펼쳐질 때 그는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다. 30여 미터 아래쪽에 호수가 보였다. 하라 케이가 들을 돌린 채 호숫가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오렌지색 옷을 입은 여인 있었다. 여인의 머리채가 어깨 위에서 물결쳤다. 에르베 종쿠르가 여인을 바라본 순간 여인이 천천히 돌아보았다. 일순간이었지만 그의 눈길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녀의 눈은 동양인 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을 어린 소녀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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