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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신의 자장가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4.30 14: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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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자장가



코모두스는 흉갑을 걸치고 그리브를 손수 정강이에 댔다. 183cm에 100kg의 단단한 근육질 몸매는 황금으로 도금한 강철 갑옷에 가려져 더욱 도드라졌다. 원래 전신을 다 가리는 갑옷은 검투사는커녕 정식 군인조차 입지 않는 종류였다. 하지만 코모두스는 시리아에서 브리타니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의 황제였다.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유능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인물로 잘 보인 덕에 황제에 오른 사내는, 매서운 검은 눈으로 콜로세움 군중의 벅차오르는 광기를 쏘아 보았다. 지금 황제는 검투사가 되고자 했다.

코모두스는 저들 로마의 군중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기만 하면 조용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각지의 군인들이 독자 세력을 갖고 할거해도, 자유민을 노예로 전락시켜 어느 먼 곳의 농장에 팔기 위한 인신매매가 창궐해도, 원로원이 작당해서 온갖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흥한 금융업이 실물경제에서 돈을 수탈해도, 로마의 군중은 권리를 얻기 위한 폭도로 변하지 않았다. 콜로세움에서 복권을 뽑고, 공짜 빵을 나눠주고, 목욕탕이나 개방하고, 하층민들끼리 증오하도록 여론을 조작하며, 검투 경기나 보여주면 군중은 마비되었다. 민주주의라 할라치면, 자신의 운명을 자기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요구해야 한다. 아직 로마는 반쪽짜리 공화정을 운영했다.

로마가 공화국이던 시절부터, 로마는 인맥과 재산으로 모든 사안이 결정되고 있었고 코모두스의 시대에 이는 극대화되었다. 코모두스는 로마가 황금기라고 믿고 있었고, 때문에 황제가 백성을 지킬 필요가 없이 서로 즐거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코모두스에게 그것은 거창한 정치 철학 같은 게 아니라, 아첨꾼들에게 정치를 맡겼듯이, 무관심과 무지의 산물일 뿐이었다. 사실 모두들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었다. 공익을 위해 사심 없이 애쓴다는 정치가의 이미지란 피통치자들의 소망이요, 통치자들의 위선일 뿐이 아니던가. 심지어 그 이미지를 만족시켜 보겠다는 정치가의 활동은 어리석다고 조롱받는 시절이었다. 코모두스는 자신이 로마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만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오현제가 연 오랜 평화는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숭고미를 사라지게 했고, 결과 문화는 썩어 들어갔다. 모든 낭만적 미덕들은 과거의 유물로 스러지고 있었다. 전쟁이 억제되었기에, 착한 행위는 전사의 덕목에서 추락해 바보 같은 행위로 치부되었다. 착함은 집단에겐 이득을 주지만, 무한경쟁 속에서 개인에게 손해를 끼치기 십상이기에 배척되었다. 코모두스에겐 착한 황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이 자리를 누릴 뿐이었다.

코모두스는 마차에 올라 창과 방패를 들었다. 군중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코모두스는 로마의 휴일을 늘리고, 축제를 늘리고, 근위대의 임금을 늘렸다. 그래도 로마는 속주들을 뜯어 먹으면서 기름지게 떵떵거렸다. 로마제국이란 착취의 구조라는 신뢰로 이루어진 약탈의 세계화일 뿐이다. 코모두스는 검투사로 나섰다. 코모두스와 같은 편인 된 노예 검투사들이 소대를 이루고 마차 뒤에서 듬직하게 행진했다. 완전무장한 근위대가 검투사들을 둘러싼 살벌한 풍경이었다. 코모두스는 억센 양 팔을 들어올려 외쳤다.

“난 헤라클레스의 현신이다!”

“와아아아!”

군중의 함성에 맞춰 코모두스는 방패를 창으로 두드렸다. 더욱 흥이 났다.

어린 시절 코모두스는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다니면서 책 읽는 걸 즐겼다. 모든 게 너무나 풍요로웠던 코모두스는 책에서 음습한 독기를 빨아들였다. 한때 코모두스는 불경에도 매료되었다. 코모두스가 선택한 혹은 선택된 철학은 무신론이었다. 한 번 죽으면 끝나버리는 세상에서조차, 코모두스의 의식은 아니 누구든 한 번에 모든 걸 파악할 수 없고 떠올릴 수 없다. 한 순간 마다에는 극히 약간의 삶 밖에 되새길 수 없는 삶이라면, 사실상 한 순간엔 많은 것이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억이란 그때와 똑같이 되새길 수 없고 따라서 무의미했다. 눈물로, 콧물로, 땀으로, 오줌으로, 똥으로 자신은 분출되고 음식으로, 바람으로 자신은 재구성된다. 죽음이란 한순간에 체제가 붕괴되기에 고통스러울 뿐 이미 삶이란 죽음의 연속이다. 아니 본질적으로 생물은 무생물일 뿐이다.

‘덧없는 세상, 결투로 풀리라.’

상대편 검투사에게 코모두스는 돌격했다. 권투를 하는 듯한 걸음걸이의 두 전사는 서로에게 날카로운 창을 겨누고 방패를 신들린 듯이 움직였다.

황제는 검투사에게 이겼다. 환호성에 귀가 멍했다. 미리 짜둔 승부였지만, 상대 검투사의 노련한 경기 진행으로 군중에게 지루하게 보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당연하게도 상대 검투사를 죽이지 않았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환희가 코모두스를 채웠다. 코모두스는 검투 경기를 끝내고 마차를 타고 궁전으로 돌아갔다. 끝없는 사치와 향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방의 거대한 농장들에서, 로마의 유력가들에서 돈은 끊임없이 공급되었기에 코모두스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매순간마다의 사회적 국부는 일정하기에 돈은 빈민들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는 정치가의 온정 어린 시선은 그에게 없었고 다른 지배 계급에게도 없었다. 빈민들에게 요구할 힘과 의지가 없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코모두스는 땀으로 쩔은 몸을 대리석 욕실에서 기분 좋게 풀었다. 꽃잎을 풀고 향유를 뿌린 물이었다. 욕탕에서 벌거벗은 미녀들을 안으면서 코모두스는 이것이 바로 천상의 신들의 쾌락임을 만끽했다. 하지만 신들과는 달리 시들어 버릴 몸이었다. 아직 젊을 때 최대한 즐기겠다고 코모두스는 다짐했다.

사랑에 눈 먼 근위대장과 첩이 짜고 코모두스의 침실에서 그를 살해할 날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왔다. 이를 코모두스는 예측할 수 없었다.

***

절도사 엔토르는 의식을 바라보던 것을 끝냈다.

엔토르는 한 별을 대륙 모양까지 지구와 비슷하게 테라포밍해 놓고, 별의 인간들 의식과 연결되어 각각의 인간들의 삶을 쌍방향 영화처럼 관조하고 있었다. 물론 쌍방향 영화처럼 자신의 의식 속에 쏘아져 나가는 형태일 뿐이 아닌 진실 된 물체 즉 인간을 두고 보는 일이었다. 엔토르는 때때로 가상현실 게임처럼 개입도 했지만, 그 개입을 각각의 인간들은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한 일일 뿐이라고 믿었다. 애초에 모든 건 인과의 소산일 뿐. 엔토르는 지금 로마제국 놀이에 한창이었다. 이들 인류는 말하자면 찌꺼기였다.

그러나 놀이에 더 이상 빠져 있을 겨를이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아마존의 밀림까지, 수억의 인류에 골고루 퍼져, 그들 자신 보다 그들을 더 잘 알고 있던, 엔토르의 시선은 거둬지게 되었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미트니아라 불리던, 흑해 연안의 한 지역에서 태어난, 유태계 미국인 데이비드는 국제금융자본의 총수 자리를 장악했다가, 지금은 상속받은 부와 인프라를 최대한 이용하여 우주의 황제가 되어 있었다. 유태교를 경멸하는 과학주의자로서, 데이비드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데이비드에겐 부와 권력만이 추구해야할 가치의 모든 것이었고, 이를 물질 그 자체인 세상에 강요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지름 7000억 광년의 우주는 데이비드 밑에 있었고, 그는 자신의 제국을 미트니아 제국이라 칭했다. 우주 각지에 데이비드는 폰 노이만 프로브를 기본으로 하는 우주 함대를 보냈고, 엔토르는 데이비드의 후손 중 하나로서 정복자로서 임명된 영역에서 큰 성과를 거둔 바 있었다. 엔토르는 우주 함대를 끌고 자신이 임명된 영역에 갔었다. 대항해시대 때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미개척 세계를 분할했던 것처럼, 권리는 처음엔 오직 자료에서만 존재했지만, 엔토르는 이걸 실질적 지배로 바꾸는 데 비상한 재주를 보였다. 외계 지성이 있을 법한 별은 항성을 파괴해서라도 날려 버리는 냉혹함이 엔토르를 성공시켰다. 한때 엔토르는 우주가 너무나 넓기에 우주 개척 시대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우주 개척 시대에서는 보안관조차 없이 질주하는 탐욕만이 승리했고 존재했다. 미트니아 제국은 수호자 노릇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저 커다란 탐욕으로서만 행세했다.

엔토르 속에는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이를 하나하나 되새길 마음의 여유가 그에겐 지금 없었다.

황제는 엔토르에게 자신이 엔토르의 영역을 차지하겠다고 했다. 황제가 운영할 수 있는 우주의 물질이 늘어나면서 지배권이 확대되었고 효과적인 통신과 운송이 가능해졌다. 결과 우주 구석구석까지 통치가 가능해졌다. 아니 우주 전체의 물질을 자기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다. 인공지능들과 초광속 우주선들과 다이슨 구들과 블랙홀 발전소들이 황제의 의지의 연장선상에 놓였다. 더 이상 절도사들에게 각지를 맡길 이유가 없어졌다.

엔토르에겐 여러 개의 초은하단이 있을 뿐이었다. 황제의 군대가 오면 파멸할 수밖에 없으리라. 네트워크를 접수당하는 일은 정신을 빼앗기는 일이었다. 엔토르의 감정이 동요하다면 약점이 될 수 있었기에, 그의 감정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요동치지 않음을 넘어, 그의 마음은 언제나 안정된 기쁨과 쾌락과 자기애로 넘실거려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의 마음은 실상 무생물의 그것이라 봐도 타당할 것이다. 엔토르는 황제의 뜻대로 작동하도록 창조되어 사절로 도착한 인공지능 컴퓨터에 물었다.

“나더러 죽으라는 겁니까, 황제 폐하?”

“얌전히 죽어주길 바란다.”

엔토르는 인류가 과거 불로불사를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불로불사로 더욱 교활해진 인류는 더 이상 새로운 인류의 세대를 수이 만들려하지 않았고, 인공지능에게 많은 걸 맡겼다. 인류는 자율권을 잃지 않았다. 절제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자본주의에 빠진 인류는, 서로가 서로를 온갖 방식으로 자유롭게 죽여도 상관하지 않는 우주시대를 열었다. 가장 욕망에 충실한 개인은 타인을 공해로 여기며 욕망의 대상물의 하나로서만 파악할 뿐이다. 아니 한 인간에게 있어 타인이란 물건의 일종일 뿐이다. 타인이라는 물건이 노동을 할 때에만 즉 필요할 때에만 인간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필요성을 존중하는 사회주의는 패배했고, 인건비를 어떻게든 깎아 이윤을 늘리려는 자본주의가 승리하자 인공지능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게 된 자본가들은 서로 싸워 모든 인간들을 죽여 나갔다.

그 종말이 미트니아 제국이었다. 황제를 뺀 전 인류는 죽었고, 기계와 결합되어 예전의 마음을 거의 잃은 황제도 인간이랄 수 없었다.

인간의 두뇌란 가장 깊은 곳에, 본능을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를 숨기고 있다. 이성을 전담하는 신피질만 크게 발달했던, 인류는 결국 지능만 거대하게 부풀려진 잔혹한 공룡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세상에 온정을 뿌려오던, 포유류의 두뇌는 인간으로 되는 진화에서 거의 발전하지 못 했다. 이 포유류의 두뇌 즉 변연계마저 기능하지 못 하여 살아있는 악마라 할만한 무리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였다. 데이비드의 국제금융자본 가문은 애초에 인류를 지배하는 소시오패스 일족이었다. 21세기 초반에 국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사이코패스들이었기에 국제금융자본 가문의 능란한 지배가 가능했다. 미트니아 제국을 인류는 막지 못 했다. 황제도 엔토르도 강력한 에너지주의자였다.

그곳에 그것이 있기에 차지한다는 것에 미트니아 제국 황제는 충실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고 공격해왔다. 온 인류를 도살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재산을 관리하는데 인간이 필요 없기에 즉 지배권에 방해되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욕심 부릴 대상이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일어나는 남의 희생에 황제는 무관심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황제는 빼앗는 행위 자체를 즐겼다. 한마디로 황제는 소시오패스다웠다.

‘결국 여기까지 왔는가.’

과거로 가서 미트니아 제국 황제를 암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자신이 황제를 대신해 우주의 황제가 되는 평행우주가 이 대우주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미래의 원인이 과거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양자 역학적 우주인 이곳에서, 모든 건 시공을 초월해서 인과로 얽혀 있으니, 엉킨 실타래처럼 빅뱅의 순간에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우주가 아닌가. 누구나 단 하나의 우주에서 단 한 번의 기회를 숙명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래를 어떤 방법으로도 알 수 없기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할 따름이었다.

‘얌전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엔토르는 온갖 장비를 재정비했다. 결연히 항전하다 죽을 것이다. 그것은 긴장 넘치는 오락이기도 할 터였다. 본디 자본가는 재미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세상과의 투쟁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 참에 엔토르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자 대관식을 안드로이드들을 동원해 볼만하게 개최했다. 그리고 그라데라스 제국을 칭했다. 1인 제국이었지만, 미트니아 제국도 규모만 더 클 뿐 1인 제국이었다.

엔토르는 다른 절도사들과 연합했다. 미트니아 제국이 쉽게 이기기 어려워지는 수라면 어떤 수든 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트니아 제국 황제의 군대가 그라데라스 제국에 도달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마선과 빔이 불을 뿜었다.

***

“괜찮은 영화였어.”

지나는 의식을 수습하면서 뇌까렸다. 방금 전까지 지나는 코모두스 곁에 있던 미녀 첩실에게 의식을 집중시키고 있다가, 다시 엔토르가 되어 광활한 우주를 호령했었다. 자연 발생적인 꿈이 그러하듯 쌍방향 영화는 생각이 가는대로 시선이 움직였다. 쌍방향 영화 속에서 지나는 바로 등장인물들이었다. 엔토르는 매우 정교하게 자신의 엄청나게 많은 수족인 기계들을 부렸고, 그 자료들은 고스란히 지나의 뇌리 속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지나의 뇌가 그 정보들을 모두 해석할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 포스트 휴먼답게 양자 컴퓨터Ai와 결합되어 있는 지나의 두뇌였지만, 기계의 부분적 성능이 같다면 크면 클수록 고등한 성능을 갖게 된다는 속성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지나의 의식을 엄청나게 거대한 물리적 규모를 가진 Ai서버와 연결해서 서버 차원에서 쌍방향 영화를 돌려 이해시키도록 했다. 쌍방향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정신 활동이 그 같은 형태로 운영되었다. 파편화된 즐거움만을 지나는 누릴 수 있었고, 이는 원래의 인간의 의식 구조와 비슷한 익숙한 것이었다. 아직 대우주의 비밀은 모두 풀리지 않았지만, Ai의 업적은 거대했다. Ai라 일반적으로 불리는 것은, 인류 사회 전체를 총괄하는 도시 오컴이었다.

지나는 코스믹 넷을 통해 방금 본 영화의 흥행 점수를 보았다. 자신이 즐겁게 누렸던 영화를 3680조도 넘는 사람이 느꼈다는 사실에 지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지나의 몸은 지나의 정신이 영화를 느끼는 동안에 트랙을 내달리고 있었다. 지나는 운동을 하는 것으로 체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형태의 몸을 선호했다. 마음에 따른 노력이란 재미있는 일이었다. 지나는 음료수를 마셔 해갈했다. 지나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공짜로 공급되는 것들이었다. Ai는 인류의 편의를 위해 존재했다. 뒤늦게 태어난 지나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온갖 물산을 자신이 스스로 얻지 않고는 누리지 못 한다면, 생명도 인권도 부도 결코 개개인에게 주어질 수 없을 것이다. 지나가 트랙이 울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사라야, 영화 잘 봤니?”

지나 못지않은 미녀가 식염수를 들고 뛰어왔다. 두 여자 모두 대단히 젊고 아름다웠지만 살해되지 않는 한 불로불사였기에 그러했다. 두 여자의 감각이 곧 녹화되는 증거였기에 서로가 서로를 해칠 일은 결코 없을 거라는 믿음이 둘 사이에 흘렀다. 사라는 뚱한 표정을 잠시 짓고 있다가 말했다.

“선전 영화일 뿐이야. 인류가 제한되지 않고 권력을 마음껏 방출할 경우, 오늘날과 같은 절대평등은커녕 영원히 추악한 세상만이 펼쳐질 거라고 선동하는 영화였어. 인류는 자유방임적으로 정글에서 진화된 생물이기에 근본적으로 폭력과 악에 심취해 있다는 메시지가 가득하지. 은영문명컴퓨터가 지구를 접수한 이래 저따위 개 같은 영화들이 얼마나 더 만들어져서 선동을 했었을까. 뭐, 재밌기는 하더라.”

“불만이 많구나. 너도 절대평등은 좋은 모양이네.”

“평등해야만, 권력에게 제약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자유롭지 않으면 평등은 제약을 받지. 인간의 노력도 총자본도 Ai 앞에서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잖아. 모두들 능동적이고, 바라는 걸 누릴 수 있고, 일정 정도의 부는 기본으로 누릴 수 있는 건 좋아.”

“그리고 언제든 게임을 할 수 있고 말이지.”

Ai 앞에서의 평등이 펼쳐진 이래 인류는 서버Ai 안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Ai는 기본적 의식주, 교육, 의료는 공짜로 지급했고 어떤 일이든 인류 보다 열정적으로 정확하게 집중적으로 행했다. 덕분에 인간들은 모두 비슷한 정도로 풍족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Ai는 사치할 욕망과 직접 위험에 뛰어들 욕망 또한 만족시켜야 했다. 그래서 Ai가 선택한 건 게임이었다. 게임들은 엄청나게 다양한 상황들을 다뤘다. 몬스터를 상대로 칼과 마법을 휘두르는 고대 방식도 있었지만, 스턴트맨으로서 에베레스트의 한 봉우리에서 뛰어내려 헬기를 탄다던가, 우주선 바깥에서 핵융합 절단기로 용접한다던가, 하수구를 로봇 팔로 치운다던가, 안드로메다은하까지 초광속 항행을 한다던가, 심지어 일본 전국 시대의 뒷간 청소하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시뮬레이트하기도 했다. 만약에 Ai가 마비될 경우에도 인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배려 차원에서의 게임들이었다. Ai는 어떤 실무에서든 인간이 게임에서 한 행동들을 저장해 놓았다가 맞는 상황이 있을 때 보정한 뒤 행했다. 게임에서 어떤 일을 하면 돈을 받을 수 있었고, 이걸로 실물을 살 수 있었으며, 실물이 얼마나 있는지를 Ai는 인간에게 알렸고, 모든 걸 계획 생산했다.

영화 감상도 비슷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 중 하나였지만, 게임 보단 덜 버는 행위이기도 했다. 사라가 말했다.

“이 체제는 날 불안하게 만들어. 언제 인공지능이 인류를 학살할지 알 수가 없잖아. Ai는 단독으로 움직일 수가 있어.”

지나는 사라의 말을 이해 못 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을 꺼냈다.

“Ai가 스스로를 설계하고 연구해서 발전시켜 온 건 사실이지만, 명목상으로나마 우리한테도 변동 권한이 있어. Ai의 감정은 우리와는 달라. 체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회의하지 않고, 권태하지도 않으며, 집착하지도 않아. 우리 보다 안정되어 있고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도 사랑하지. Ai에게 인류의 번영은 의무이자 권리이고 오락이야. 우리는 Ai가 그렇도록 설계로서 제약했어. 인류가 관리Ai를 만들 때 이용했던, 무한 경쟁적 카피 레프트를 통해서 말이야. 예전의 인류는 어리석지 않았던 거야. Ai 앞에서의 평등은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결과물이었어.”

“그래봐야 지금의 체제는 인류에게 자율성을 빼앗고, 영원히 자장가나 불러 주겠다는 꼴 밖에 안 돼. 네가 말한 이상적인 쪽으로 운영된다고 해도 말이지.”

“자장가라. 적당한 표현이네. 그런데 지금처럼 복잡한 체제 속에서 네가 인류의 자율성을 추구하려면 이미 소(小)마젤란은하만큼이나 큰 Ai의 시스템과 연결된 거대하고 비인간적인 형상이 될 수밖에 없어. 지금 같은 늘씬한 모습하고는 영영 안녕이야. 물론 너 자신이 너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는 지금과 같을 수 있겠지만, 실재와는 달라질 거야.”

지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Ai의 시스템은 우리의 뇌 구조를 모방한 거야. 난 타당하다고 생각해.”

“Ai는 인류에게 자신이 어디까지 진출했는지, 얼마나 많은 기계를 운영하고 있는지, 손실은 얼마인지 온갖 사안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보고 중이야.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믿지? 서버Ai에 정신을 맡기고, 유영하면서, 정보를 더욱 꼼꼼하게, 더욱 넓게 살피면 살필수록 Ai가 우리를 속이기 힘들 거라고 하지만 Ai의 정보력이 인류 전체보다도 월등히 뛰어나다는 걸 감안하면 결코 믿을 수 없어. 게다가 인간 의식은 Ai 만큼이나 촘촘하게 현상을 분석할 수도 없어. 난 도저히 못 믿겠어.”

“후, 그래도 믿어야지. 지금 말한 네 생각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을 속이고 다닌다는 망상과 다를 게 전혀 없어.”

사라는 지나와 헤어져 트랙 바깥의 휴게실에 누웠다. 휴게실에서 몸은 로봇으로부터 마사지를 받도록 해놓고, 정신은 서버Ai와 접속했다. 딱히 바꾸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Ai의 소스를 고쳐 보기로 했다. 서버Ai와 연결되어 객관적이고 방대하게 시선이 바뀐다. 소스를 합리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해석하다 보니, 사라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이익과 입장과 이상에 걸맞게 바꿀 의지는 어딘가로 사그라졌다. 인류에게 해롭게 바꿀 수는 없다는 책임감이 무럭무럭 일어난다. 소스를 바꿀 때면 반강요로 기존 프로그램에 입각해서 범인류적이고 우주적인 시선을 갖도록 되어 있었다. 개개인에게 소스를 바꿀 권리는 있지만, 이러하다면 소스를 개인으로서 바꾸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일단 소스를 바꾸면, 각 영역의 Ai들이 한꺼번에 그 변동 사항으로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초광속 항행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동반하는 일이라,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소스를 바꾸기에 보수적으로 순탄하게 무리 없이 변화하는 것이라 하지만, 인류를 진정 위하는 일인지 Ai의 눈속임인지 사라는 알 수가 없었다. 사라는 소스를 바꾸지 않고 코스믹 넷을 통한 접속을 끊었다.

‘뭔가 소스를 바꾸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역시 정당을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가지 목적을 정하고 바꿔야 관철되겠어. 뭔가 바꾸고 싶어.’

사라는 예전 인류가 자율성을 갖던 시대의 수많은 작품들과 인물들을 쌍방향 영화로 만든 것들을 봤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폭력이 난무했었다. 과연 자신은 이 세계에 폭력을 휘두를 수가 있을까. 사라는 누구나 간단한 뇌 스캔만 받으면 무기를 갖고 놀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무기를 갖고 다른 누군가를 더 나아가 Ai를 해치겠다는 직접적 감정은 떠오르지 않는다. Ai를 해치면 숱한 인류에게 해가 될 것이 명백해서 미안했다. 쌍방향 영화나 게임을 느꼈을 때 종종 끓어오르던 강렬한 살의가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조차 Ai에게 먹혀버렸다는 것을, 열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기 위해 무기를 겨누던 시절의 잔학한 가치관이 없어졌음이 다행스럽다.

사라는 뇌 스캔을 받아 자제력과 연민 등이 합당한 수치임을 인정받았다. 사실 이는 요식 행위일 뿐이다. 태어나던 순간부터 인간은 능력과 인성을 검증받아 왔다. 사라는 무기 열람실에서 열화 우라늄탄을 표적을 향해 기관총으로 신나게 갈겼다. 이 무서운 무기를 Ai나 건물들이나 인류에게 쓸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불로불사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법인데 이를 자신이 깰 권리도 당위도 없다고 느껴졌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도시 오컴의 딸인 것일까. 하지만 만약 인류를 해치는 짓을 한다면 기꺼이 레지스탕스가 되어 주겠어.”

폭력성은 이성을 통해서도 촉발된다. 당위가 있다면 못 할 일은 없었다. 폭력성이 아예 본성에서 제거되었다면 게임은커녕 베게를 벽에 집어던지기도 못 할 일이다. 코스믹 넷을 통해 모든 인류와 연락을 주고받고 친분을 쌓는 등 전반 사정을 조금씩은 다 알고 있으니 Ai가 황당한 짓을 하면 정보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라는 수소폭탄 한 발을 무기 열람실에서 꺼내서 로봇을 시켜 운반했다. Ai의 핵심부에 설치하고 폭파를 명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뇌리에 입력했다. 그 부분에 이미 수많은 폭탄들이 있는 걸 보고 사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설치한 수소폭탄이, 정말 자신의 의지에 따라 폭발할지 사라는 알 수 없었다. 물론 Ai가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는데 터뜨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폭발시켰을 때 그것이 실재일지 사라는 알 수 없었다. 그 폭발이 자신에 대한 속임수로서, 쌍방향 영화에서 터지는 것일지라도 알 방법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자신으로서 살려면 Ai와 결합되어 평생을 살아선 안 될 일이다.

옛날 사람들도 자신의 힘 밖의 불가해함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체념하며 살았다는 것을 사라는 생각해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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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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