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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소설 써봤어요.

으후루(59.3) 2015.05.01 04:09:58
조회 160 추천 0 댓글 4

월급 



새벽 3시, 점장에게 전화가 왔다. 손님의 담뱃값을 계산하고 돌려보낸 뒤 그 전화를 뒤늦게 받았다. 점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빠르게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졌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을 1분 내에 하라고 누구에게 지시라도 받은 사람처럼 많은 말을 했고 그 말들을 요약하면 대충 이랬다.

이제 일을 그만두라는 것, 당장 금고와 계산대의 돈을 전부 가지고 자신에게 오라는 것. 그리고 편의점 문은 자물쇠로 잘 잠그라는 것이었다. 금고의 비밀번호를 들으며 그대로 금고문을 여러 번 돌려 안에 있는 돈다발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놀라지 않았다. 이곳은 워낙 손님이 없었다. 많아봐야 하루에 스무 명 정도가 전부였고 그걸론 편의점 운영비와 점장의 도박 빚을 감당하기엔 내 월급을 없애도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그런 사정에 월급은 이미 밀려있었다.


나는 탈옥수였다. 머리가 나쁜 내가 탈옥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장례식 참가 덕분이었다. 그들은 내게 전화기를 건네며 수시로 전화를 할 테니 받지 못하면 탈옥으로 간주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장기수인 내가 탈옥을 할 일은 없었다. 곧 있으면 석방이니까. 그러니 그들도 쉽게 나를 보내주는 것이었다.

물론 누이가 감옥에 돈을 넣은 게 더 큰 역할이었겠지만.


그러니까, 탈옥은 계획한 게 아니었다. 그저 누이가 강도를 만나서 부엌에 쓰러져 있었고 집에 도착했을 땐 죽은 누이와 놀란 나머지 전화를 받을 틈이 없었다는 것이 계기였다. 부재중 통화와 시체를 보며 벌벌 떨었고 다시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말하면 날 믿어줄지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조문객들이 문을 두드렸다.


뉴스가 몇 번 터지고 경찰은 날 잡기 위해 산을 뒤졌고 도로의 차들을 검문했다. 언론은 집 안의 보석과 돈이 털린 것을 말하며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한 인간으로 추측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 낡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노트북으로 그런 뉴스를 보며 차라리 자살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막상 하자니 겁이 났다. 나는 누구를 죽여본 적이 없다.

편의점 일을 한 건 그 이후로 3년 정도 지난 일이었다. 나는 잡히지 않았고 언론은 시체의 머리를 부엌 수납장에 보관한 살인마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한번은, 교양 프로그램에서 나를 다룬 이야기를 만들어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려보려 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는지 다음날 다른 프로그램이 그 시간대를 차지했다. 그렇게 내 존재감이 그 프로그램처럼 희미해질 때, 점장을 만났고 점장은 나를 알아봤다.

너 탈옥수지? 누이 죽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장은 아무렴 어때하는 심정으로 나를 고용했다. 아니, 아무렴 어때가 아닐 수도 있겠다. 최저 임금보다 더 밑바닥의 돈을 받았고 휴일은 없었으니까. 몇 달 뒤부턴 그것마저 없어서 밀린 게 많았다. 그래도 뭐 어찌됐든, 나는 그의 도움으로 근로계약서나 이력서 없이 일 할 수 있었다. 손님은 없었고 가끔씩 점장을 찾는 사채업자가 얼굴을 내미는 게 전부였다.


점장이 말한 주소는 선창가 근처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가 있는 곳이었다.

밖으로 나와 택시를 기다리며 담배를 한 대 물었고 택시가 도착하자 뒷자리에 앉아 기사에게 집주소를 말했다. 한 손엔 밀린 월급을 들고.

기사는 내비게이션에 그 주소를 검색한 뒤 어둠이 깔린 도로를 멈추지 않고 달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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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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