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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9) 2015.05.23 03: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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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영]이젠 나라에 기대지 않으련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입력 2015-05-22 03:00:00 수정 2015-05-22 15:12:10


나는 여간해선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 건물 앞을 걷지 않는다. 장난치고 싶어 하는 초중학생이 무심코 던진 돌멩이나 장난감에 맞아 죽고 싶지 않은 탓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앞을 걸어가야 할 때 내 시선은 그 건물의 베란다에 고정돼 누가 뭘 던지지 않는지 심각하게 감시하며 지나간다. 출근길 광역버스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5번째 줄 통로 쪽에 앉는다. 고가도로에서도 시속 80km를 넘나드는 난폭 운전을 매일 경험하는 터라 창 쪽에 앉아 있다 추락해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튕겨져 나가는 심각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앞뒤 충돌 사고 때 피해를 덜 보려는 의도도 있다. 휴가 때 놀러 가면 숙박시설의 소화장비를 살피고 층간 계단은 몇 개인지 세어 본다. 불이 나 정전이 돼도 발을 헛디디지 않고 아래층으로 대피해 가족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조치다. 집에는 1회용 방독면도 챙겨 뒀다. 야근하고 택시로 귀가할 때는 장남식 손해보험협회 회장의 조언에 따라 오른쪽 뒷자리에 안전벨트를 매고 앉되, 왼쪽으로 10cm 정도 옮겨 앉고 그 사이에 가방을 놓는다. 측면 충돌 사고 때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매일 온갖 어처구니없는 사고 소식을 듣고 분석하다 보니 생겨나는 습관이다. 그 덕분에 ‘내가 보고 들은 사건 사고는 피할 수 있을 거야’라는 안도감으로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한데 나만의 이런 행복감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13일 발생한 서울 내곡동 예비군훈련장 총기 살인 사건이다. 현역 때 관심병사였던 예비군이 손에 쥔 총을 아무 이유 없이 옆 사람에게 쏘아 댄 이런 사건은 도대체 피할 길이 없다. 앞만 보고 맨손으로 돈을 번 기업인은 “예전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가 사업하면서는 돈만 좀 무서웠는데, 예비군 사건을 보고 나니 지나가는 사람이 두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온갖 사건 사고를 보면서 대비책을 만들어 왔지만 대책 없는 이런 사건을 보면서 용감했던 기업인이나 나도 두려움을 느끼는데 세상은 별일 아니라는 듯 슬그머니 잊어 가고 있다. 내가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이 나라 역시 과속 버스에 속도저감장치를 다는 중이고 고가도로 안전펜스를 높인다. 건물 소방 설비를 점검하고 배와 항공기 안전도 형식적이란 비난을 받곤 하지만 어쨌든 잘 점검하고 있다. 나는 이런 노력이 모이고 모여 이 나라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준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어 무섭기만 한 이런 유의 범행을 놓고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을 향한 근거 없는 분노라고만 봐서는 대안이 나올 수 없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고난’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될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희망 포기 세대가 갈수록 늘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이렇게 되면 자살이나 무차별 범죄 둘 중 하나의 모습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물려주지 않는 한 제 힘으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고 아무리 애를 쓰며 온종일 일해도 단칸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계층이 두껍게 쌓이고 있다. 수학 정석과 성문영어책만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에도 들어가고 출세할 수 있었지만 이젠 알아들을 수조차 없고 돈을 들여야 가능한 입시제도에 막혀 서민의 탈출구도 꽉 닫혀 버렸다. 유리천장이 여성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나라 서민 전체를 짓누르는 듯하다. 예비군 총기 살인 사건을 그저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일로만 보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 이 나라가 과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522/71408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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