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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늘 - 3차판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7.13 15: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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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늘 





"아직 멀었어요?"


렉슬리가 천문 기기를 조작하고 있는 다이스케린을 재촉했다.


"거의 다 됐어요. 얼마 후엔 근사한 영상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세르카니아 초은하단 모두가 뒤흔들릴만한 비밀을요."


벌써 몇 번째 거의 다 되었다는 거야. 그 비밀 알았을 때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이 가만히 있기만 해봐라. 렉슬리는 투덜거리며 낡아빠진 심우주 관측용 기계들을 바라보았다. 렉슬리는 텐타 거죽 아래 깊숙이 자리 잡은 전파 망원대에 와있었다.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은 이 드넓은 우주에 하나 뿐인 초은하단이었다. 한 개의 은하도 대부분의 공간이 진공인데, 은하들이 외따로 떨어진 채 점점이 박혀 있는 초은하단은 오죽하랴. 그 안쪽에서도 광막한 진공이 끝없이 펼쳐진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은 설상가상으로 두께 수십억 광년이나 되는 진공에 둘러 싸여 있었다. 수십억 광년 너머에서 전해져 오는 빛은 전혀 없었다. 다만 팽창 속도를 비롯한 여러 증거를 보고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이 수십억 광년의 진공에 둘러 싸여 있다고 추론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런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에서도 가장 멀리 외따로 떨어진 채 홀로 휘도는 차가운 행성 텐타 아래 세르칸들이 살고 있으리라곤 짐작 못 했었다. 낡아빠진 데다 링과도 이어져 있지 않은 궤도 엘리베이터에 자르딘을 비롯한 몇몇 부하들과 더불어 왕복선을 타고 내렸을 때에도 이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굴 같은 복도 밑바닥에 섰을 때 거죽보다 온도가 60도나 높다는 걸 알아내 놀랐을 때부터는 짐작했었다. 별빛이라고는 한쪽 하늘에 아스라이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이 점점이 비치는 정도여서 텐타의 거죽은 진공이랑 온도가 거의 똑같았다. 지름이 3000km 남짓 밖에 안 되는 텐타가 지닌 핵이 제아무리 뜨거워도 그 정도 깊이에서 거죽과 60도 차이 나는 온도를 만들 법하지는 않았다. 세르칸은 진공에서도 버티고 고온에도 냉온에도 잘 적응하지만, 별도의 난방 시설이 있어야 쾌적함을 느꼈다. 렉슬리는 이 점을 잘 알았다. 아니 텐타의 거죽은 물결치는 고체 메탄 화합물이었는데 복잡하고 질서정연해 제법 거주지 같은 동굴과 계단들을 찾아냈던 때부터 세르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짐작했는지도 몰랐다. 그때 렉슬리는 기뻐했다. 렉슬리가 텐타에 갔던 것은 가장 먼 곳에 보물 창고를 누군가가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에서였다.


렉슬리는 점점 교착 상태에 빠져드는 초은하단 전선의 상황을 자신이 속한 군단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랬기에 변두리의 변두리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중이었다. 어딘가에 전황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만한 고대 유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렉슬리를 몰아세웠다.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을 통일해야 누구의 의지에도 구애받지 않고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렉슬리는 되뇌이곤 했다. 그 신념은 렉슬리에게 소중했다.


억겁의 피곤에 저며진 열정이, 적갈색 머리카락 아래로 선명하게 보이는, 은테 둘려진 붉은 눈을 매개체로 삼아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렉슬리의 눈이 옆에 있는 의자에 뒹굴고 앉아 있는 자르딘에게로 향했다. 


텐타에 가자고 했을 때 자르딘은 죽자고 반대했었다. 연료가 아깝지 않느냐고. 함장은 렉슬리인데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가 많니 어쩌니 하면서 비행단장의 힘을 과시했다. 지금이야 렉슬리의 의견에 감복하고 저렇게 자빠져 자고 있지만. 렉슬리가 못 마땅한 시선을 다이스케린에게로 돌린다. 다이스케린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렉슬리를 놀라게 해주겠다는 일념으로 천문 기계를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린은 렉슬리가 첫 번째로 만난 텐타 세르칸이었다.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의 세르칸 염색체를 검색했다. 착륙하면서 수색한 텐타의 천문대와 궁합이 맞는다는 점을 알아냈다.


다이스케린은 텐타의 다른 세르칸들이랑 마찬가지로 다 늙어빠져 엉그적 엉그적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천문대가 있는 곳으로 오면서 내내 지겨웠다. 렉슬리는 결국 화를 내고는 자르딘한테 다이스케린을 갱생시키도록 했다. 자르딘은 아무리 늙었어도, 다이스케린이 여자라고 반쯤은 신나 하면서 다이스케린이랑 뒤엉켰다. 다이스케린이랑 자르딘은 젤리 같은 것에 둘러싸인 다음 액체가 되어 완전히 섞여서 활력 있는 세포들을 갈아 끼웠다. 육체적으로 젊은 쪽이 훨씬 더 손해 보는 의식이지만 자르딘은 워낙에 팔팔한 남성 세르칸이라 다이스케린만 활기 넘치는 미녀로 바꿔놓았다. 그때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이 적어도 고마운 기색 정도는 낼 줄로 알았다. 그런데 돌아온 소리는,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들 덕분에 저는 이제 텐타에서 영원히 떠난 신세가 되어버렸어요. 제가 만든 단체에서 제명당하게 생겼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텐타에서 갱생 의식을 통해 노화를 맞춰 똑같이 늙어가면서 조금씩 기억, 활력, 덕성 같은 걸 잊고 잃어 가는 삶을 택했습니다.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서로를 느끼면서 위안을 삼았지요. 나름의 삶을 지키려고 그랬어요. 그건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저희의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이제 저는 한동안 그럴 수 없게 되어버렸군요."


였다. 렉슬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이스케린이 텐타라는 깡촌의 신관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런 삶이 좋다는 것일까. 최후의 최후까지 꿋꿋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렉슬리는 느껴 왔다. 한정된 자원 때문에 먼저 남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수많은 전쟁을 돌파하고 날아다녔지만,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의 모든 것이 찢어지고 사라져 열역학적 죽음의 바다가 되어 버릴 우주의 종말 날까지 살아남아 있어야 삶에 선택권이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다. 우주의 진리인 열역학 2법칙에게 패배하여 죽는 것조차, 죽음이 패배라는 사실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굳건히 믿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믿고 돕는 삶이 다이스케린의 말 속에서 그려져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렉슬리는 거대한 우주선을 다루는 무력을 갖고 있었기에 마음껏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힘으로 굴종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렉슬리에게 텐타의 분위기는 한없이 평안했기에 다이스케린을 평화롭게 대접했다. 집단 자살을 결심한 텐타의 아픈 마음이 렉슬리에게 닥쳐왔다.


다이스케린은 그 이후 씩씩하게 걸어갔다. 뭔가를 체념한 듯 보였지만 렉슬리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렉슬리는 천문대가 한쪽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다이스케린의 흔적을 천문대에서 발견했다. 그 한쪽 방향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냐고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을 문책했다. 천문 기계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이 아니라 정반대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막막한 진공을 향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린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지성이 성장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렉슬리는 납득 가능한 진실을 내놓지 않으면 다이스케린을 죽이고 텐타를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다이스케린은 관측 결과를 보여주겠지만, 보여준다고 자신을 텐타 밖으로 데리고 가지 말 것이며 텐타를 해코지하지 말라고 렉슬리로부터 계약을 받아냈다. 렉슬리는 약속했다.


그때였다. 천문 기계를 다루던 다이스케린이 뭐라 말을 꺼낸다. 


"생각보다는 좀 걸리네요."


"그걸 이제 아셨나요?"


"렉슬리, 세르카니아의 역사를 좀 말씀드릴까요? 아는 세르칸이 뜻박에 적은 걸로 알고 있어요. 기계를 오래 조작하다 보니 입이 근질근질한 참이에요."


"좋아요. 말씀해보세요."


대충은 아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의 역사지만 렉슬리는 다른 세르칸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게 색다른 느낌이 있겠다 싶었다. 간만에 목소리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곳에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반가웠다. 보통은 키보드를 두들기거나 이마에 둘러가며 나있는 24개의 반점을 깜박거리거나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두 방식 모두 하자가 많았다. 키보드는 가지고 다니다가 이야기할 때마다 상대의 후두부에 선을 끼워서 쳐대야 하고 반점 같은 경우엔 가능한 세르칸이 많지 못하다. 기술 뿐 아니라 유전자 풀도 많이 쓰지 않으니까 퇴화되어 버렸는지 렉슬리의 초광속 우주선에서는 반점을 쓸 줄 아는 세르칸이 함장인 렉슬리와 비행 단장 자르딘뿐이었다. 그나마 둘 모두 그리 잘 쓰지 못해서 고작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며 서로를 놀래 켜서 얼마나 많이 놀란 척 하나를 서로 구경하는 것 말고는 별로 할 게 없었다. 그런 자르딘이 떠오르자 렉슬리는 크게 미소지었다.


다이스케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르칸은 흔히 그렇듯이 작은 행성에서 시작했지요.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에 의한, 끝없는 정복욕을 간직한 채로요. 세르칸은 무한히 넓어지기를 바랐어요.


그때 세르칸은 과학기술을 통해 살해당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늙지도 않는 미생물의 불사를 이루어내고 있었지요. 작은 행성 안에서 세르칸은, 다른 모든 세르칸의 과거했던 행동과 말을 기억하고, 현재의 사회관계와 처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 그가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어요. 좁디좁은 작은 행성에서 광통신을 통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모두가 모두를 평등하게 감시할 수 있었고, 공공의 의제를 모든 이들이 알고 느낄 수도 있었던 것이죠. 당시 좁은 행성 안의 모든 세르칸은 진정으로 하나의 시끄러운 가족이었습니다. 서로 도울 때 반드시 그 보답이 돌아올 수 있는 윤리적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나 통신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작은 행성을 벗어나기 한참 전부터 예견되었던 문제였지요.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부터 벌써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어버렸죠.


상호 이해, 관용, 책임 있고 계획적인 1:1 소비와 생산, 욕망과 수요의 전면적 파악, 투명하고 공정한 신상필벌 등등을 가능케 했던 빛을 통한 통신은 점차 쓸모가 없어짐에 따라 잊혀져 갔어요. 아니 잊혀진 건 아니겠죠. 지금도 쓰이니까요. 다만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고 만 것이지요. 지혜를 모아주고 진리를 나누며 슬픔을 삭여주던 사이버네틱스는 나타났던 때만큼이나 급격히 물러났지요. 이에 편승해 강제적 기억 바꿔치기나 강제적 인격 주입과 같은 악랄한 신종 범죄도 더불어 사라져갔어요. 문명의 어미 행성과 멀찍이 떨어져 자율을 주장하던 공동체들 가운데 새로운 기술과 그에 맞는 체제를 이뤄내어 양적 팽창을 빠르게 할 수 있던 것들은 더 이상 스스로 공동체로 남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웜 홀은 뚫리지 않았고 타키온은 발견되지 않았던 겁니다. 블랙홀을 이용해서 중력으로 시공을 구부리는 워프 항법만이 초광속의 유일한 방식이 되고 말았어요. 워프 항법은 엄청난 에너지를 들이는 방법이었죠. 통신과 운송의 가격은 같아졌지요. 당시 세르칸들은, 초광속 통신과 초광속 운송이 같은 기술에 기반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만 의미가 없었죠. 다시금 낡은 방식인 우편 통신이 힘을 얻었어요. 우주선을 탄 우편 배달원들은 커다란 권력 체제를 탄생시켰지요. 너무나 멀어진 우주의 거리 앞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어려워진 세르칸들은 소문과 선동에 점점 더욱 더 기대게 되고 말았어요. 개체는 갖가지 공학의 덕분으로 아주 뛰어난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문제는 판단할 재료 즉 외부에서 오는 정보가 불완전했던 거죠. 그런 정보를 이용해 권력을 탐하는 무리가 다시금 부상했어요. 우주 공학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렇게 되어 갔어요. 세르칸들은 학살당했지만 동시에 마구잡이로 복제되었지요. 세르칸은 더 이상 자신의 복제체를 자식으로 대하지 않고 노예로 가축으로 대했어요. 우주로 뻗어나가는 세르칸의 욕망은 멈추지 않고 무한해져 갔고 그 탐욕을 희망으로 불렀죠.


서로 나누고 사랑하고 아끼며 살았던 덕택에 숨죽였던 중앙 집권체와 시장 경제, 차별과 격차가 다시금 거세게 고개를 들었지요. 점점 비대해진 권력은 자신을 줄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수십 억 광년이 넘는 진공에 싸여 있는 걸 잘 알면서요. 정신을 다루는 공학이 발전 가능한 한계에 이르러도 권력의 야욕은 작아질 줄 몰랐죠. 


세르칸들이 다른 수많은 생물들을 각자 따르는 방식대로 자기 체제 속에 편입시키려고 날뛰던 때부터 이건 예견된 일이었을 겁니다. 세르칸은 우주에 나가서도 그런 짓을 멈추지 않았죠. 수많은 지성들을 융합시키고 땜질해서 그들은 똑같은 문화와 유전자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세르칸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세르칸이 아닌 모든 지성을 자기 체제 속으로 끌어들이고 무너뜨렸어요. 장점만을 모았다고 자랑했고 또 이는 사실이었지만 관용과 다양성 등등의 가치들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더욱 엄혹한 통제가 세르칸의 사회와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에너지주의의 시대였습니다. 모든 가치는 모조리 에너지의 양으로 환원되었지요. 에너지를 모으거나 몇몇 세르칸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단기적으로 도움 안 되는 기술이나 문화들을 폐기처분하고 세르카니아 초은하단 곳곳의 천체의 자원을 기반 한 양적 팽창만을 중시하며 멈출 줄 모르던 이 체제는 결국 에너지 부족으로 약화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렉슬리의 표정을 다이스케린은 읽어낼 수 없었다.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에서 지름 20만km의 초광속 우주선을 끌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무수한 별바다를 통치하는 강대한 기득권이라는 뜻이었다. 즉 자신의 통치 기반을 비판적으로 말한 다이스케린이 언짢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다이스케린은 이 말을 트집 잡아 날뛰어대는 렉슬리를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조금이라도 그런 기색이 보이면 비밀이고 뭐고 때려치울 작정이었다. 차라리 나 혼자 죽겠다고 다이스케린은 생각했다. 다이스케린에겐 이런 외따른 곳에 머물러 살았던 존재의 외고집이 있었다. 그러나 렉슬리는 조용히 침묵을 내보였다.


렉슬리의 예상대로 아는 이야기였다. 다이스케린이 렉슬리가 아는 것보다는 옛 역사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기는 했지만, 거의 비슷했다. 세르칸이 태양계를 탈출하기 전에도 전자 민주주의는 관철되고 있지 못 했다. 그 옛날에도,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로서 정보가 불공평하게 배당된다는 점을 악용해서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독점했다. 부자들일수록 더욱 성능 좋고 거대한 기계와 결합해서 더욱 탁월한 정보 처리 능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가의 로비를 받은 정치가들은 감시를 무제한으로 펼치고 자신들은 그 공정해야 할 감시 속에서 자유롭기를 원했다. 오늘날의 세르칸이 지닌 육체적 복잡성과 다양성은, 과학기술이 옛 세르칸의 육체와 정신을 우주공학과 미시공학의 양면에서 해체하고 있었기에 그 반동으로 행해진 연구의 필연적 결과였다. 권력 너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인식은, 세르칸이 이성적 계산으로 사실이라고 한 바 있었지만, 태양계를 넘어서서 이는 경험적 진리로 굳어지게까지 되었다. 세르칸이 무너뜨리고 짓밟아 동화시킨 수많은 우주 지성체 가운데 권력 지향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지능을 생태계가 부양하려면, 방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지성체는 약탈적 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지능이 지닌 속성들 중 상당수는 오직 잔인한 수렵 동물에게서만 진화할 수 있었다. 세르칸 가운데 일부는 도덕적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선의지의 집적이자 공동체주의의 극한이랄 수 있는 공산주의를 하고자 했지만, 자본주의자들은 따로 살면서 강제로 경쟁시키는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또 다시 무너뜨렸다. 에너지주의는 그렇게 자본주의의 후계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에서 에너지를 단기적으로 많이 얻을 수 있는 영역들을 통제하고, 에너지를 기반으로 다른 산업들을 종속시켰다. 나중엔 세르칸 에너지주의자들은 자급자족을 하면서 완전한 쾌락을 누렸고, 모든 산업들을 하나의 체제로 흡수해서 블랙홀 발전소와 거대한 우주선으로 이어진 워프 항법 권력을 이루었다. 렉슬리 또한 가까스로 그 반열에 든 세르칸이었다.


죽음을 모르는 세르칸은 그렇게 태어나 지금 멸종해가고 있는 중이다. 늙더라도 기억이나 감각, 인식 같은 것들이 흩어지고 신진대사가 느려져 단순한 생물이 될 뿐이었다. 설령 정말 죽음이라 말할 수 있을 법한 상태가 되더라도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세르카니아 초은하단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될 것이다. 진공 속으로 느리게 흩어져 이 터무니없이 가벼운 우주와 함께 마멸한다. 제 종족의 너무나 뻔히 내다보이는 운명을 다이스케린 때문에 떠올린 렉슬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의 수명은 이 우주 보다 길었다. 원래 있던 우주에서 보통 진공의 상전이가 일어나서 더욱 더 진짜 진공에 가까운 진공으로만 이루어진 우주가 떨어져 나왔다. 그때 이어진 우주론적 장난의 결과로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은 다른 물질들과 떼어지고 휘말려 이런 우주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팽창은 계속되었고 세르칸이 태어났다. 발전하는 데에는 500만 년이 걸렸지만 닫힌 우주 앞에서 진행된, 경제적 절망에 기초한 정치적 낙후는 기술의 전반적 수준을 10억 년 정도에 걸쳐 조금씩 갉아먹었다. 렉슬리는 찬란했던 발전의 끝자락을 경험했을 정도로 오래 살았지만, 죽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뭐, 그야 누구나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렉슬리의 입가엔 쓸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렉슬리가 말했다.


"나도 아는 역사예요. 인격과 소박한 꿈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세르칸이, 비정하고 엄혹한 우주에서 살아가 보겠다고 발버둥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그렇게 안 했어도 결국 세르칸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같은 일을 했겠죠. 생물은 약육강식의 법도에 종속되고, 우주는 열역학 법칙에 지배되고 있죠. 하지만 우리 세르칸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죠. 오브엔과 같은 세르칸은 그런 우주가 그냥 그대로 너무 좋나 봐요. 하지만 나 렉슬리는 그런 우리의 운명이 슬퍼요."


다이스케린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 세르칸은 믿을 수 있겠다. 비밀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을 질곡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이스케린은 즉시 천문 기계를 자신의 실력대로 조작했다.


"됐어요. 봐요! 이제 초점이 맞아요."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이 일어나자마자 의자에 쪼르르 달려가 앉았다. 렉슬리의 긴 갈색 머리채 뒤에 있는 섬세하지만 그만치 어두운 원반 모양의 장신구와 그에 이어진 짧고 검은 망토가 렉슬리의 마음을 비춘 만큼 흔들거린다. 다이스케린이 말한다. 


"접안대를 건드리지 말아요."


세르칸의 눈은 빛의 모든 스펙트럼을 본다. 희끄무레한 초은하단들의 조합이 어슴푸레하게 좁은 원 속에 떠올랐다.


"77억 년을 넘어 이곳까지 온 겁니다. 우주가 초팽창한 직후 원래 우주와 시공이 얽혀든 게 틀림없어요. 그 빛이 이제야 우리에게 온 거예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그곳으로 가면 엄청난 자원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걸 왜 보여주는 거지요? 단지 텐타의 세르칸들을 살려주는 대가치고는 우리의 삶을 지나치게 유린할 가능성이 높잖아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새로운 하늘을 찾아내자 화가 났어요. 다른 곳으로 가서 이걸 알릴 수단이 없어서였죠. 비록 저희는 앞으로도 이렇게 죽어가고 싶습니다만. 죽음을 고를 권리는 중요하다고 여기거든요. 당신들을 만났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 공동체는 선택지를 얻었고 더욱 결속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도 당신들에게도 선택의 자유란 지극히 소중한 가치라고 믿어요. 렉슬리, 당신은 우리의 운명이 슬프다고 말했어요. 그런 감수성을 갖고 있고, 또한 20만 km의 초광속 우주선을 몰 수 있을 만치 강하다면 당신에겐 새로운 하늘을 향해 돌격할 자격이 있다고 전 믿습니다. 혼자서 새로운 하늘을 향해 가세요. 이 절망의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에서 벗어나주세요. 저도 데려가주세요."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 여자는 세상 물정을 너무나 모르는 이상주의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의를 선의로만 대하는 세르칸들만 만나와 균형 감각을 상실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렉슬리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상주의와 과단한 추진력이 결합하면 역사 속에서 재앙이 되기도 한다는 걸 렉슬리는 잘 알고 있었다. 렉슬리는 대답했다.


"이것으로 나와 당신은 되돌이 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을 건넜어요. 새로운 하늘은 77억 광년 너머에 있다고 했지요? 그 사이엔 아무 것도 없는 진공입니다. 블랙홀 발전소를 렘제트 광자로켓으로 옮겨서 깔아 대야만 워프 항로를 열 수가 있습니다. 정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 능력이 없는 렘제트 광자로켓이 아니라 제가 타고 온 것과 같이 시공 조절 우주선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수많은 항성들을 분해해야 합니다. 저 혼자 가는 건 무리입니다. 제가 속한 연합 군단 전체의 힘을 기울여도 원정은 무리입니다. 세르카니아 초은하단 전체의 힘을 기울인다? 글쎄요. 전 세르카니아 초은하단 전체에 얼마나 많은 군단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또한 그걸 고려하려면 통일을 해야만 합니다. 통일은 수십억 아니 수백억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워프 항로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에 널리 깔려 있지만, 군단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제가 속한 연합 군단은 강대하다는 건 확실하지만 제 위치는 군단 내에서 그리 확고하지도 우월하지도 못 합니다.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이스케린. 하지만 난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이스케린은 그녀만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잔뜩 가지고 나왔다. 옛날 공장들이나 무기들 가운데서는 쓸만한 것들이 있지만 상당수가 몇몇 세르칸 염색체에만 반응했다. 맞는 염색체를 가진 세르칸을 얻지 못해 기껏 어렵게 찾아내고도 진공의 한 지점에서 썩는 무기나 공장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이스케린은 천문대 기계와 궁합이 잘 맞았던 것이다. 텐타에는 렉슬리와 자르딘이 전쟁에서 이기려고 얻으려 했던 고대 무기는 없었지만 다이스케린이 있었다. 다이스케린, 자르딘, 렉슬리는 그들을 꽁지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세르칸들이 모인 홀에 이르렀다. 홀에서는 다이스케린의 신자 서른 명 남짓을 렉슬리의 휘하 대원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자, 우리는 이제 떠난다. 빨리 짐 꾸리도록. 다시 젊어지고 싶은 세르칸은 우리랑 같이 가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남고요. 단 다이스케린은 우리랑 같이 가야 합니다."


다이스케린이 기막혀 하며 말했다. 


"왜죠? 그러면 약속이 틀리잖아요. 이 자료는 다른 세르칸들이랑 궁합이 맞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세르칸을 찾지도 않고 이러지 마세요."


렉슬리가 다이스케린의 손을 붙들더니 구석진 곳으로 갔다. 자르딘이 세르칸들을 그쪽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렉슬리가 말했다.


"다이스케린의 정보가 빨리 유용해지려면 다이스케린이 가는 게 당연해요. 증거로서 다이스케린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많이 사정 봐주는 겁니다. 아시는지도 모르지만, 저토록 쇠약해진 세르칸들을 방치해두는 건 위험스런 일입니다. 세르칸의 뇌 속에는 양자 블랙홀이 증발하기 직전의 상태인 채로 외부와의 물질 교환을 통제하는 전자기장에 둘러싸여 박혀 있습니다. 양자 블랙홀 속의 특이점은 회전 때문에 고리 꼴로 왜곡되어 있지요. 그 중심의 텅 빈 핵을 통해 양자 블랙홀과 나머지 부분이 고리와 교류합니다. 특이점은 매우 불안정하면서도 엄청나게 압축되어 있으며 몹시 빠르게 진동하기 때문에 그것을 컴퓨터로 이용하면 뛰어난 정보 처리 능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한 번 습득한 정보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지요. 문제는 이 체계가 무너지면 재앙이 닥친다는 겁니다. 풍부한 물질세계를 접한 양자 블랙홀은 마구잡이로 먹어댈 겁니다. 물론 양자 블랙홀은 단독으로는 금방 복사를 일으켜서 없어져 버립니다만,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양자 블랙홀은 엄청난 숫자이기에 이것들이 충돌을 거듭한다면 쉽게 증발되지 않을 정도의 질량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세르칸은 죽지 못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늙음은 단순하고 쓸모없는 생물이 되어 가는 과정일 뿐이지 죽는 건 아닙니다. 만약 죽더라도 양자 블랙홀을 둘러싼 전자기장이라는 이 체계가 없어지지 않도록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과학기술이 잊혀지고 말았죠. 우리 세르칸의 기억 용량엔 한계가 있기에 과학 기술들을 많이 잃었죠. 만약 이런 사실을 안다면 자르딘은 즉시 내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여러분 모두를 젊게 만들어버릴 겁니다. 늙을수록 위험할 테니까요. 당신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너무 늙은 탓에 블랙홀이 튀어 나와서 커질지 모르는 일이예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의 관리자로서, 텐타를 안 이상 텐타를 방치할 수는 없어요. 나 피와 강철의 여왕 렉슬리는 어떤 방법으로든 텐타를 관리해야 할 입장에 놓인 것이죠. 만약 다이스케린이 따라온다면 나는 텐타를 억압하지 않을 것입니다."


렉슬리는 잠시 다이스케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양자 블랙홀 컴퓨터 체계 때문에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세르칸, 우주가 어떤 기계든 결코 에너지를 뽑아 쓸 수 없는 열적 죽음의 상태로 향한다는 걸 알면서도 끈덕지게 생존욕구를 놓치지 않는 세르칸, 양자 블랙홀 컴퓨터를 머릿속에 박아 넣은 건 어떤 경우에도 삶을 포기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설계자들의 결연한 의지겠지.


다이스케린이 답했다.


"알았어요. 그럼 같이 가죠."


다이스케린 말고도 여덟 명 정도의 세르칸이 렉슬리와 자르딘 뒤를 따랐다. 골수분자가 렉슬리의 예상보다는 많았다. 렉슬리는 다들 텐타를 버릴 줄로만 알았다. 우주선이 주는 풍요로움을 거부하는 것이 한 순간 렉슬리의 우월감으로 검열되어 어리석게 보였다. 렉슬리는 그들에게까지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이스케린은 렉슬리의 초광속 우주선에 오르고는 잠깐 멍하니 있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잘 지내고 있던 텐타에 불쑥 찾아와서는 마치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젊음과 때때로 왕복선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줬다. 우리 공동체의 법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잘난 규칙들을 강요했다. 저들은 남의 가치를 존중할 줄 몰랐다. 아무리 자비로운 척, 세련된 척 웃어대어도 렉슬리는 그런 세르칸일 뿐이었다. 어떻게 한다지. 그래 자료를 내자. 자료를 발표하면 다이스케린은 이용 가치가 없어진다. 남는 건 발견자에 대한 예우뿐이다. 예우를 핑계 삼아 텐타로 돌아가 비일상의 끝을 맺자.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지만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을 연단에 세울 계획 같은 걸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다이스케린은 자르딘과는 좋게 지냈지만 텐타로 떠나기까지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에 불과했다. 다이스케린은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활용했다. 자르딘의 젊음과 자신의 젊음을 교류했다. 두 세르칸은 자주 배를 맞췄고 서로에게 가벼운 호감을 키워나갔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지되기 힘든 우정을 위해서. 세르칸은 언제나 충족된 쾌락 속에서 살도록 나노 단위에서부터 설계되어 있었다.


평소처럼 렉슬리는 초광속 우주선을 몰고 가끔 싸움을 하고 별들을 헤매어 인재와 무기를 모으며 여러 동지들과 토론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장 격렬한 토론의 와중에서도 그녀는 다이스케린에 관한 어떤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무너져 가는 적을 보며 쾌재를 울리다가도 그 생각만 나오면 어딘지 울적해지곤 했다. 자르딘이 아무리 잘 싸워도 그에 대한 믿음은 옅어져갔다. 나에게는 스카웃 제의가 밀려 있어. 다이스케린, 정말 예쁘지 않아? 그런 말들이 때때로 머리 속을 울리며 그녀의 자아를 텅 비워 냈다. 시기가 늘어날수록 평소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던 자르딘의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인지 파악되어갔다. 자르딘은 렉슬리에게 충실하지 않았다. 자르딘은 언제든 렉슬리를 떠날 수 있었다. 렉슬리는 울적해졌지만 자르딘을 믿었다.


렉슬리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에 군림하는 강력한 군주들 중 하나였다. 즉 렉슬리는 ‘피와 강철의 여왕’이라고 스스로를 칭했지만, 오래되고 미욱한 감정인 사랑을 자르딘에게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주를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 양심과 감정을 버린 세르칸도 있었다. 그것이 렉슬리는 아니었다. 하나의 생물이 한 종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번식 가능한 새끼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전의 낡은 분류법은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렉슬리와 같은 반열에 올라 작업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면 그건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에 세르칸 뿐이었다.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기는커녕 의사소통을 시도할 수조차 없어도 같은 뿌리를 가졌다면 세르칸이었다. 렉슬리는 자르딘에게 자신과 동등한 자아가 있다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소꿉친구로 지내던 먼 옛날부터 그랬다.


렉슬리는 자르딘을 동지로서 예우하고 좋아하고 있었지만, 권력으로 보아 엄연히 자르딘은 렉슬리의 부하였을 뿐이었다. 렉슬리는 진정한 자신의 동지들이 다이스케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지 알고 싶었다. 렉슬리는 가장 전형적이고 가장 자신과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는 세르칸 에너지주의자인 오브엔을 찾아갔다. ‘절대군주’라 자칭하는 오브엔은 거대한 함대의 지배자였다. 오브엔도 렉슬리처럼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갔다. 오브엔은 수많은 우주선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무수히 많은 세르칸을 용병으로 노예로 가축으로 부렸다. 오브엔은 세르칸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일을 즐겼고, 세르칸의 마음을 빼앗아 기계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정의롭다고 주장했다. 렉슬리는 오브엔의 함대 근처로 이동해 빛을 내쏘았다.


"오브엔, 할 말이 있네."


렉슬리와 오브엔은 거의 대등했다. 오브엔의 함대는 무수히 많은 잔챙이 우주선들로만 이루어져 있었지만, 렉슬리는 20만km 지름의 엄청난 우주선과 여러 잔챙이 우주선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작전 수행 능력에 있어서나 우주 약탈 능력에 있어서나 오브엔이 다소 앞서는 게 사실이었다. 오브엔이 대답했다.


"엄청난 미녀 군주인 렉슬리 아닌가? 나와 더불어 잔치라도 즐기는 게 어떤가. 발가벗은 당신의 요염한 육체를 보고 싶어."


"나더러 당신의 함선으로 건너가라고? 그러다가 당신이 날 죽이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앙칼지군, 렉슬리. 같은 연합 군단끼리 안 믿는다면 이 험난한 우주에서 무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절대군주 오브엔, 피와 강철의 여왕인 이 렉슬리가 질문한다. 우리 연합 군단은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의 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하지만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만 의견이 통일되어 있을 뿐이지 모든 세르칸을 지배한 뒤에 어떻게 할지에 관해서는 결정하지 못 했어."


"그건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의 일부만 점령한 현 시점에선 의논해 볼 이유가 없어. 그리고 난 그걸 의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기이하다고 생각한다."


"난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을 통일한 뒤에는 각자의 점령 영역에서 조용히 서로 교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평화가 올 것이다."


"까불지 마라, 렉슬리! 나더러 가만히 있으라는 거냐? 정복 활동을 하지 않고? 원래 강함이란 오직 치열한 승부로만 결정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보자. 너라면 우리 군단이 통일한 다음에 우리 내부에서 주도권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보나? 네 년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이 움직일 거야. 생물의 본능이란 그런 것이다."


"세르칸은 탁월한 지성을 갖춘 존재다. 그런 세르칸이라면 오늘날의 에너지주의자 활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정도는 알아야 해. 거듭되는 초광속 운행과 막대한 에너지 방출과 항성 파괴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의 팽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열적 죽음은 세르칸의 무분별하고 탐욕스러운 정치 경제 활동 때문에 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면 그때 멈춰야 한다. 우리의 통일된 힘을 세르칸의 삶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세르칸은 세르칸의 진화와 생활을 결정하고, 이를 위해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보다 오랫동안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약한 년. 두려운 것은 안정이다. 멈춰 있으면 자연스럽게 뒤쳐지고 죽고 만다. 어떻게 살든 열적 죽음은 우리 우주를 덮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열적 죽음으로 죽을 그날까지 나 오브엔은 영원히 우주와 투쟁할 것이다. 네 년의 현실을 저버리는 발언은 두고두고 우리 군단의 놀림감이 될 것이다. 겁쟁이인 넌 이제부터 따돌림을 당할 것이고 내 성노예가 되든지 아니면 자살하게 될 거다."


"네 뜻은 잘 알았다. 나를 모욕한 것은 나중에 갚아주마. 오브엔, 내분은 금물이다."


"하. 네 년의 유약한 발언은 녹화해두었다. 넌 군단의 공적이 될 거야. 내가 렉슬리 널 장난감으로 삼아 주겠다. 영광으로 알아라."


렉슬리는 오브엔과 헤어졌다. 자르딘은 다를 것이다. 자르딘은 나의 참다운 동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렉슬리는 블라스터를 집어들고 다이스케린의 방으로 향했다. 다이스케린을 없애야겠어. 그리고 블랙홀 발전소에 던져 넣을 거야. 블랙홀 발전소가 있음으로 해서 똑같아지는 쓰레기와 다른 물질들의 존재론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는데 그걸 스스로가 이용하려 들 줄은 몰랐다. 한 아름다운 세르칸을 없애러 가는 것이라 여기니 마음이 무거웠다. 다이스케린의 해맑은 영혼을 모든 구조들 가운데서도 가장 저열한 것에 속하는 블랙홀의 탐욕스런 아가리에 바쳐야 하다니. 그런 일을 하고 나면 렉슬리는 더 더욱 반쪽짜리 에너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에너지주의에도 철학이 있지. 에너지만이 대체되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은 에너지의 한낱 거품이고 존재양식일 뿐이기에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에너지만이 결코 양도되지 않는 절대적인 사용 가치를 가진다. 복제는 대체의 일종일 뿐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한때의 이해타산으로 복제 기술이 버려졌기에, 렉슬리는 블라스터를 들고 다이스케린에게로 갈 수가 있었다. 블랙홀에 들어간다고 해서 정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블랙홀 바깥에서는 다이스케린의 정보는 영원히 이 우주에서 지워질 것이다.


나름대로 내 삶을 걸었어. 그만하면 공정한 거 아냐. 렉슬리가 자기 합리화와 함께 문을 세차게 열었다. 다이스케린은 허리까지 오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여러 갈래 아무렇게나 굽이치는 시내처럼 흘려대며 침대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나른하게. 폐허처럼. 마음 놓고. 말하자면 텐타처럼. 렉슬리가 다이스케린에게 블라스터를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갑자기 시야가 뒤흔들렸다. 거친 충격에 렉슬리가 붕 떠 반대쪽 벽에 가 부딪쳐 떨어졌다. 


자르딘이 외쳤다.


"무슨 짓이야, 렉슬리!"


"너냐?"


렉슬리가 일어나 자세를 재빨리 추스르며 자르딘에게 블라스터를 겨누었다. 방아쇠가 당겨지면 격렬한 진동이 극저온의 실내 공기를 찢어발기며 초속 2만 5천 km로 총탄을 발사할 것이다. 자르딘도 똑같은 기종의 블라스터를 재빨리 꺼내들었다. 두 세르칸은 다이스케린을 사이에 두고 서로 블라스터를 맞겨누었다. 자르딘의 반응이 조금 느리긴 했지만 두 세르칸 모두에겐 아직 서로를 해칠 마음이 없었다. 사실 총싸움이라면 자르딘 쪽이 더 능숙했다.


자르딘이 말했다. 


"너 다이스케린을 죽이려 한 거 맞지. 이유나 들어보자."


"우리가 세르칸이라는 걸 잊지 마. 양자 블랙홀은 뇌에 박혀 있고 갱생 의식을 할 줄 알며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이 우주 속에 갇혀 있다는 인식 아래 사는 게 지금의 세르칸이야. 다이스케린의 정보는 그런 세르칸을 다시금 에너지주의의 늪 속으로 빠뜨려 버릴 거다. 간신히 눌러 놓았던 에너지주의야. 에너지주의는 세르칸의 존엄을 파괴할 거야. 세르칸의 행동반경이 아무리 넓어져도 세르칸일 수 있으려면, 그들이 양적 팽창을 아무리 해도 질적으로는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해. 수 천 만 년 지나 찾아가도 여기가 내 고향이구나 다시 돌아왔구나 할 수 있도록. 그러려면 뭔가를 선을 넘어서까지 바꾸려는 욕망을 통제하고 그 뒤에도 잘못이 생기지 않았나 살피면서 서로가 서로를 다잡아야 해. 끊임없고 고통스러운 내면화 작업이지.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이 강력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인식은 몇몇 에너지주의자를 되돌렸고 덕분에 나나 너 같이 고향 별 밖에 모르던 이들이 이만치 출세할 수 있게 되었어. 놈들은 고향을 때려 부수고 우리를 납치했지만 결국 우리는 경쟁자들을 함께 억누르고 이만큼 올라섰어. 괜찮은 잠재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 너무나 값쌌던 세르칸이 낡은 무기나 공장과 가끔 궁합이 맞았던 덕분으로 비싸졌기 때문에 벌어진 피치 못한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너나 나에게는 소중하잖아. 지금 이대로 머무르고 싶어. 만약 저 너머로 간다면, 모든 공동체는 붕괴되고, 일단 먼저 차지하는 자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승자독식의 법칙만이 세르칸을 짓누르게 될 거야. 저들 중에 승리한 자가 우리에게 레이저를 겨눌 거야.


다이스케린은 수많은 법을 가진 공동체가 평화롭게 흩어져 가끔씩 담소나 나누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에너지주의가 어떤 곳에서 똬리를 틀 줄 모르는데 말이지. 뜻 맞는 이들끼리 외따로 떨어져 자신들만의 법을 지키겠다는 건 에너지주의를 우주에 강제하려는 자도 할만한 생각이야. 기득권에게 그들 자신의 도덕성을 통한 정의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이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에너지주의 만큼이나 기술을 통제했는데. 그런 애와 위험한 정보를 계속 내버려두어야 하는 거야? 너랑 내가 이런 것 때문에 블라스터를 겨누고 있어야 되는 거니?"


"그 정보 때문에 세르카니아는 활력 넘칠 수 있잖아."


"질적인 개선은 나도 바라는 거야. 그리고 이루어지고 있어. 멸망할 그 날까지 나는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을 다이스케린의 텐타처럼 꾸려가고 싶어. 함께 평화롭게 우주와 더불어 죽음을 맞이하는 거야! 열적 죽음의 그날까지 단꿈 속에서. 그러려면 물론 질적인 개선도 필요해. 하지만 저 멀리 다른 우주로 가면 에너지주의는 반드시 나타나. 에너지주의는 무력으로 자원을 차지하지. 저 정보가 이미 쓸모없어진 정보일지도 몰라. 77억 년 전이니까 두 우주의 접속이 다시 끊겼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정보가 알려지면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해가면서 원정이 행해질 거야.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은 더 더욱 피폐해져.


그래서 난 두 우주 사이에 공용 초광속 우주선과 함께 반물질 폭탄을 보냈어. 지금쯤 터졌겠지. 설령 두 우주가 붙어있었더라도 다시 쪼게 졌을 지도 몰라. 그렇다면 생겼을 사건의 지평선은 두 우주의 죽음을 더 빠르게 하겠지만 내 결정을 후회 안 해. 난 텐타를 파괴해서 빛을 어지럽히기까지 했어. 전파 망원경도 이젠 없지.


공공 기물을 멋대로 썼다는 걸 고백했으니 네가 날 재판에 회부할지도 모르겠구나. 우리 체제는 에너지주의 앞에서는 너무나 절망적이야. 자르딘, 제발 도와 줘. 난 너와 함께 이대로 살고 싶어. 최후의 최후까지 싸우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열역학 2법칙은 모든 우주에 똑 같이 적용되는 법칙이야. 설령 저 새로운 하늘로 가더라도 결국 우리는 죽어."


"다이스케린을 설득해서 텐타로 돌려보내거나 하는 방법은 어째서 고려하지 않은 거야?"


"텐타엔 전파망원경이 있어. 텐타의 전파망원경과 궁합이 맞는 다른 세르칸이 없다는 보장이 없어. 오브엔은 우주를 샅샅히 검색하고 있어. 텐타에 갈지도 몰라. 다이스케린은 정보를 갖고 있어. 내가 다이스케린을 보호할지도 모르지. 오브엔은 내 육체 뿐 아니라 나의 전함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 오브엔은 내 모든 걸 약탈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수십억 년이 걸리더라도 다이스케린을 납치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새로운 하늘로 돌진할 거야. 다이스케린의 세르칸 염색체와 그녀의 양자 블랙홀 컴퓨터 시스템은 새로운 하늘이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될 거야."


"그 말을 왜 나한테 하는 거야, 렉슬리?"


"자르딘, 널 믿으니까. 그러니 비켜. 다이스케린을 죽여야 해."


다이스케린은 어느새 깨어 있었다. 공포감에 다이스케린은 손가락 하나 꼼작 꼼작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렉슬리의 사상에 공감 안 가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렉슬리가 다이스케린에게 공감하는 딱 고 만큼이었다. 텐타가 부서졌다는 건 공포감보다도 더한 충격으로 그녀를 잡아챈다.


다이스케린은 가만히 있으면서 그 자세 그대로 조금씩 몸에 힘을 넣어 갔다. 렉슬리는 다이스케린이 움직이는 즉시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았다. 지금이야 자르딘과 대치 상태여서 사실상 움직임이 0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상황이 바뀐다면 렉슬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할 말을 다한 렉슬리는 자르딘을 바라다보기만 했다. 이러고 있자 갑자기 고향별에서의 추억이 되새겨진다. 두 세르칸은 어릴 때부터 조금은 친구처럼 조금은 앙숙처럼 지내왔었다. 두 세르칸의 입가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동업이라는 죄로 가득 찬 미소가. 이 거친 우주에서 살기 위해 함께 감당해 왔던 죄악들의 경험이 렉슬리와 자르딘에게는 가끔 떠올려지는 추억이었다.


대치가 끊긴 건 한순간이었다.


다이스케린이 온 힘을 다해 몸을 퉁겨 렉슬리에게 안기듯 덤벼들었다. 세르칸 가운데서 거의 최상급에 속하는 강한 몸을 가진 렉슬리였지만 자르딘과의 대치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져 버렸다. 다이스케린은 렉슬리에게 달라붙어 말했다.


"살려주세요, 렉슬리. 렉슬리도 죽고 싶어 하진 않을 거 아니에요. 전함의 가장 깊은 골방에서 웅크려 살게요.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게요. 우리 세르칸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살잖아요. 그럼 전 텐타에서처럼 급속히 늙게 될 거에요. 조금씩 지능, 활력, 덕성을 잃어 갈테고, 결국 아무 느낌도 없는 뇌사 상태에서 양자 블랙홀 컴퓨터 시스템이 붕괴되어 먹히고 말겠죠. 전 그렇게 죽고 싶어요. 세르칸의 존엄을 위한다면 이 못 난 나도 이해해줘요. 누구도 남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제발 제게 죽음을 강요하지 말아 주세요, 렉슬리. 당신의 독선과 독단으로 날 죽이지 말아 달라구요!"


렉슬리는 스스로 달려든 사냥감에 미소를 지었다. 다이스케린을 붙잡아 공중에 슬쩍 집어던져 자르딘의 시야도 가리고 블라스터를 잡은 손도 자유롭게 했다. 이걸로 된 거다. 미안하다, 다이스케린. 넌 죽어야 한다. 언젠가 오브엔은 적이 될 것이다. 오브엔이 과시한대로 곧바로 적이 될지도 모른다. 오브엔은 함대를 펼쳐 닥쳐올 것이고, 내 전함에 강습함을 보낼 것이다. 강습함이 전함 안으로 들어오면 세르칸들이 난입할 것이고 복도들을 뒤져 내 재산을 훔칠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난 모른다. 지극히 길 그 세월을 넘어, 내겐 널 지켜줄 자신이 없다.


극심한 진동이 방안을 돌며 메아리친다. 렉슬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자르딘을 얕보았다. 또는 너무나 믿었다. 다이스케린이 공중에서 나폴 나폴 떨어져내려 자르딘의 품안에 얼싸 안겼다. 다이스케린이 먼저 말했다.


"떨고 있군요."


"다이스케린, 일단 이 우주선을 나가요. 이젠 쓸모도 없어요. 렉슬리랑 궁합이 잘 맞는 우주선이었거든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자르딘과 다이스케린은 함께 작은 우주선을 타고 렉슬리의 거함 밖으로 나갔다. 공감하는 동료를 잃은 고대의 거함은 끝내 버려져 우주를 떠돌 것이다. 다이스케린은 조종을 하는 자르딘 뒤에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거죠, 자르딘?"


자르딘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이스케린을 보면 미칠 것 같다. 자르딘이 답한다. 


"일단 발표하세요. 한 번 모험을 떠나요. 렉슬리는 참으로 멍청합니다. 그런 걸 아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요. 설령 다이스케린이 죽었더라도 저는 더듬거리며 그 우주를 찾아갔을 겁니다. 이왕 세르카니아 초은하단에 태어난 거, 열적 죽음의 그 순간까지 독하게 살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닌지요. 왜 렉슬리가 그런 나약한 소망을 품었는지 그 애를 평소에 잘 봐둔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에요. 이래뵈도 저를 스카웃하려고 애쓰던 세르칸 군주가 있습니다. 오브엔에게 가서 사실대로 털어놓고 몸을 의탁할 생각입니다. 함께 새로운 하늘로 갑시다, 다이스케린."


다이스케린이 제 옆에 있는 자르딘의 블라스터를 집어들고는 머리에 쏜다. 자르딘의 머리가 부서져 날아갔다. 그래도 양자 블랙홀을 바탕 삼은 체계는 세르칸이 볼 수 없는 자리로 날아갈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이스케린은 블라스터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었다.


"렉슬리, 미안해."


다시 한 발이 발사되었다.


{Fin}


-----

1999.11.11 초판 완성. 2000.07.05에 완성한 두 번째 판으로 문장 장르 마당 상시 공모 월간상 수상. 2009.05.22에 세 번째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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