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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

엠제이(27.113) 2015.07.13 21:16:23
조회 312 추천 3 댓글 4


 여여


 


 


  불교에는 여여(如如)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모든 차별을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선으로 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란 기대는 없다. 나는 내가 지금부터 할 일으로 인해 당신이 날 무어라 부를지 알고 있다. 그 호칭이 악의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음습함과 더러움을 내포한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앎은 내 마음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지든 상관없다. 난 계속 할 것이다.


  "미미쨩. 불편하지. 잠깐만 있어봐."


  그녀를 침대에 눕혀놓은 난 정장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상의의 단추를 다 풀고, 정장 상의와 와이셔츠, 넥타이를 한꺼번에 벗어던졌다. 업무의 피로가 온 몸에 남아있었다. 알몸이 된 나는 미미쨩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표정에는 '어서 벗겨줘'라고 말하는 것 같은 구겨짐이 있었다. 나는 베게로부터 그녀를 벗겨냈다. 그리고 침대에 눕혔다.


  "나 좀 씻을 건데 역시 같이 있는 것이 좋겠지? 미미쨩."


  그녀를 다시 수건걸이에 눕혔다. 나를 잘 볼 수 있게 눕혔다. 물을 틀었다. 미리 데워놓지 않아 차가웠다. 차가운 물이 그녀에게 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샤워기를 몸에 댔다. 밖에서 묻혀온 먼지와 얼룩을 씻어냈다.


  나는 작년 9월에 미미쨩과 결혼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결심한 결혼이었다. 당연히 가족들은 반대했다. 친구들은 내 의견을 존중하는 척했지만 결국엔 다 반대했다. 네티즌도 반대했다. 지나가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똑같다. 반대했을 것이다. 당연히 결혼식은 조촐했다. 신부 측 하객이 없어서 결국은 대행 아르바이트 하객들을 열댓 명 정도 고용했다. 하객들은 모두 미미쨩을 친한 친구라고, 친한 선배라고 주장했다. 사실 미미쨩은 일본인이고 대학교를 나오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난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이 말을 내뱉는 걸 참았다. 이를 내가 말했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 했지 않을까.


  "부장님께선 이번 회식에 안 가십니까."


  "아내가 쓸쓸해할 것 같아 일찍 가보려고."


  "매일 아내 생각만 하시고. 팔불출이십니다."


  "너희도 결혼해봐. 다 똑같으니까."


  결혼식까지 치렀으나, 회사에선 내 아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 명 없다. 이미 나는 스캔들의 유통기한을 넘겼다. 내 나이쯤 되면 대개 아내가 있었으며, 그 아내와 다른 아내들은 모조리 찍어낸 듯 똑같아 보였다. 육아문제에 관심이 많고, 남편의 월급날만 기다렸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 것은 그런 아내와 그런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금 더 습하고 눅눅한 것을 원했다. 사실 나와 내 아내의 이야기는 타인의 시선에서 충분히 습한 것이지만, 나는 오히려 숨기지 않았다. 그래선지 다들 평범한 아내와 평범하게 사는 줄 알았고 관심가지지 않았다.


  "미미쨩. 춥지. 조금만 참아. 곧 집이야."


  "미미쨩. 회사에서 부하직원 놈이 연애를 하다가 걸렸지 뭐야. 그래서 말인데.


  "미미쨩. 사랑해."


  "미미쨩. 나랑 있으니까 행복하지?"


  미미쨩의 가장 큰 매력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내가 이상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다 선물하고 다 이뤄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리고 또 그렇게 헤어졌다. 주는 사람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을 뿐인데, 받는 사람은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저 부담스러워한다. 주는 사람도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사랑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대상으론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할 수 없다. 난 여러 번의 연애와 이별 끝에 그것을 깨달았다.


  불교에는 여여(如如)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모든 것의 차별을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말을 바꿔, 페이트라는 이름의 만화 캐릭터에게 미미(美美)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녀는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페이트와 다른 존재가 되었으며, 나만의 것이 되었다.  


  나는 침대 위에 눕기 전에 베게에 미미쨩을 씌웠다. 그리고 그녀의 무릎 위에 머리를 얹었다. 푹신했다.


  "무겁지 않아? 미미쨩."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 대답에 만족한 나는 편안히 눈을 감았다.



  --

ㅎㅎ. 뻘소설 시원하게 잘 싸고 간다. 그나자나 짱이 맞냐, 쨩이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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