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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다

유신(119.70) 2015.08.11 10:27:20
조회 116 추천 1 댓글 0




"부르셨습니까? 각하."




김재규는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자신 앞에 앉아있는 존재를 눈으로 훑었다.

그의 앞에 앉아있는 건 일국의 대통령이었다. 건국 이래 최고의 지도자라는 소리를 들은,

그와 동시에 희대의 독재자라는 소리를 듣는, 낡은 시계와 허름한 옷차림의 지도자가 있었다.




"자리에 앉게."




높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게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잠깐 미간을 찌푸린 후 김재규는 마지못해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았다.

퀴퀴한 냄새, 거미집 치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적막함, 연신 침 꼴깍거리는 것만 반복하는 중,

마침내 대통령은 먼저 입을 열었다.




"날 죽여라."




김재규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엘리트조차도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 따위를 알고 있지는 않았다.

고개를 떨군 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인지…."




대통령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잠깐 눈을 감은 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한 대 피워도 되겠나?"




김재규는 대답 대신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대통령은 무궁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회색 빛깔 담배 연기가 사방에 퍼지고, 곧이어 쓴 냄새는 김재규의 코 역시 자극했다.




"난 잿더미가 된 조국을 부흥시키고 싶었다."




대통령은 추억에 잠긴 것인지 눈을 아련하게 치켜세웠다. 마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기라도 한 듯…




"민주화와 산업화, 잿더미가 된 국가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었고 난 산업화를 택했지. 

그로 인해 이 땅의 민주주의는 후퇴했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김재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역시 한강의 기적을 목격한 세대였고, 잿더미가 된 땅에 민주주의란 허울에 불과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라면 누구나 체감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면벌부가 되어줄 수 없지.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제 명에 죽길 바라지도 않고 그리해서도 안돼"




문득 김재규의 머리에 영부인의 얼굴이 스쳤다. 동요하는 심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랫입술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깨물었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에 바치기로 약속한 몸, 내 죽음 역시도 이 땅에 바치기로 했네."





대통령은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김재규는 대통령이 무엇을 찾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독재자의 최후란 어떤것인지를 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네."





검은색 구형 콜트권총..

오래된 모델이지만 살상용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물며 육사를 졸업한 김재규라면…




"짐승조차도 길러준 제 부모를 알아봅니다"




김재규는 눈을 똑바로 뜨고 대통령의 눈을 응시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눈이 흐트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의 눈을 쳐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물며 나라의 녹을 먹어 사는 저보고 국가의 원수를 쏘라는 것입니까? 각하께서는 저를 기어이 금수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까?"




대통령은 담배를 재떨이에 털어놓았다.

잠깐의 정적 후 대통령은 마침내 입을 떼었다.






"총을 쏴도 되는건

총에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자뿐이다

김재규 그대는 영웅이 되는거야

민주주의의 적 독재자 박정희로부터

민주주의를 탈환해낸 영웅"







김재규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그의 삶을 통해 산업화의 기반을 다지고 죽음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선물을 이 땅에 선사하려는 것이었다.

세계를 부수고, 다시 세계를 창조하는것.

그것은 수천만 국민 모두를 혼자 어깨에 짊어진, 실로 독재자다운 결단이었다..




"자넨 민주화의 투사의 가면을 계속 써야 해. 김재규로써의 삶은 이제 없어. 인간다운 행복도 모두 조국에 바치는 거야. 

그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야수'가 되는걸세. "





김재규는 역시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의 권총을 집었다.

검고 차가운 금속의 느낌..

그러나 그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붉고 뜨겁게 뛰고 있었다.

김재규는 권총을 안주머니에 넣고 최대한 예우를 갖춘 인사 후 사저를 나왔다. 

그의 눈에서 더는 흔들림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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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 김재규, 1979년 12월 18일 계엄군법회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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