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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김은호햏 먼저 얘기 꺼냈으니 밥먹고 돌아오면 읽으시오

헤이샤(112.214) 2015.09.05 20:16:18
조회 228 추천 3 댓글 15




나는 내가 가진 380가지를 

아래 글과 같이 모두 쓸 수 있소.

게을러서 사람들이 주로 갖는 감정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을 가끔 끄적일 뿐이지.






피카소는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음악재능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모차르트는 피카소의 그림재능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소.


열등감은 

상대에 대해서 아는 "정보-하다못해 가장 빨리 파악되는 외모라도"가 있을 때 생긴다오.

동시에 그것이 "내가 갖고싶어하는 무언가"여야 한다오.

이 두가지가 열등감을 구성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전제라오.

저 두가지가 무너지면 

열등감은 그 사람 내부에 있다한들

"대상(사람)"에 대한 열등감은 생기는 것이 불가능하다오.




인간 심리에 대해서 단식을 경계해야 하오.

작가와 심리전문가는 더더욱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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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크 라깡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말을 했다. 
뭐 워낙 유명한 말이고 자주 언급되니 너무 들어서 이쯤되니 매우 뻔한 소리로 들린다. 
그럼 타자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태어나서 아이는 부모가 아이에게 욕망하는 무언가를 스스로 욕망하는 것을 처음으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대학에 진학할 것 >
<돈을 많이 벌 것>
라는 식으로 자녀에게 부모들 자신의 욕망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가 욕망하는 그 욕망을 자신이 얻어내고 이뤄가면 
부모로 부터 어떤 <사랑>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더욱 부모의 욕망(즉 타자의 욕망)을 추구한다. 
부모가 자식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안아주지 았고,  어떤 조건적인 사랑과 양육을 하게 되는 경우, 
이 아이는 성인이 되어 타자의 욕망을 더욱 크게 갈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커서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역시 개인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 때 개인은 자신이 타자가 욕망한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타자들로 부터 어떤 <사랑- 인정, 관심을 포함하여 통칭해서 사랑이라 하자.>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한다. 
타자의 욕망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이루지 못한다면 
타자로 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으며 ,  오히려 <무시와 냉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사랑-통칭하여>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 시킨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친절과 미소의 인격이 상품화 되고 
과거에는 밖에 나가서 그냥 주워 먹을 수 있었던 일종의 자연공공재화라고 봐도 무방했을 것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사유재산화되고 이것들은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 역시 자본시장에서의 상품이 되는데(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시장이 결혼시장이다.),
이 결과로 이 자본주의 세상에는 <존재>는 없고 <상품>만이 있게 된다.  
개인은 살아가면서 점점 타자의 기대와 욕망을 알게 되어가고 
많은 것이 상품화되고 있는 사회를 보면서 
또한 성장해 갈 수록 타자들의 욕망을 소유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타인을 접하게 되면서 
인간은 소외를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 욕망>은 좌절된다.  
<사랑-통칭하여>이란 그래서 사실상 <존재욕망>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개인은 자신의 존재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자가 욕망한 무언가를 가짐으로써 존재욕망을 이루려 한다. 

그렇지만, 
타자가 욕망한 것을 이루고 소유한 개인에게 다가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 개인의 <존재>가 아닌  그 개인이 가진 <타자들의 욕망이자 이 개인을 상대하는 상대방의 욕망>을 보고 접근하며
사실상 그 개인의 <존재>에 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인은 자신이 갖고있는 <타자가 욕망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며  이 과정에서 더더욱 철저한 자기소외를 느끼게 된다. 




2.


타자의 욕망에 있어서 
내 개인적인 생각은 사실 그 욕망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력>이 있는가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서 취업난이 심해지자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무원>이라는 타자의 욕망을 강요하고
자신도 그 타자의 욕망을 받아들이면서 공무원 공부에 집중한다. 
이렇게 <타자의 욕망- 공무원 시험>이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고 문제를 일으킬 때 
그 타자의 욕망은 힘을 가지며 <타자의 욕망>으로 구분이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특정 계급에게서만 허용이 되었던 과거 시험의 경우, 
혹시나 진짜 비범한 피지배계층의 사람이나 
진짜 공상이 풍부한 어느 피지배계급 사람이 
<나도 과거 급제해서 나랏일을 하고 싶다> 라는 욕망을 가진다 해도 
이 욕망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애초에 원천봉쇄되어 차단되어진 무언가에 대한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 보기가 어렵다. 




3.


존재욕망이란, 
타자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에 대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 
영향력이란,  상호간의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타자에 대한 전능감의 욕망일 수도 있다. 
상호간의 대화는 타인에게 자신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래서 존재욕망은 늘 대화를 매개로 해소가 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유는,  고립을 기피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으려 애쓰는 이유는, 
태초에 아이는 태어나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다 커서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만 존재하던 자신을 타인과 교류함으로써 그 세계를 넓히며 자신의 존재욕망을 채워간다. 

그 존재 욕망을 이루는 곳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심지어 병적인 자폐 조차도 혹은 사회와의 접촉을 피하는 사람들 조차도 그들 안에는 존재욕망이 있다. 


자살이란, 고립의 극단적 표출이다. 
자기만의 1인 세계에의 존재 욕망 마저도 잃어버릴 때,
개인은 자살을 선택한다. 



4.


존재하는 곳이  타자의 얼굴을 그리고 세계 변화를 볼 수 있는 사회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한 개인이 살고 있는 곳이 시점 중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있는 가장 단적인 지표이다.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수반한다. 
객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태가 점점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볼 수 있는 가장 단적인 지표가 객체가 얼마나 변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존재하는 시간이 어디인가 이것은 개인의 심리에 기원한다. 
심리적으로 어느 시기에 고착되어 그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때 당시의 사고와 습관과 외모를 고수한다.  
형상의 변화는 개인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그 변화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하는 곳이 현실 세계의 그 시간 그 곳이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세계라면 ,
인간은 객체의 형상이 변화하는 것을 쉽게 보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외면하는 것인지도. 







>>>>>>>>>>>>>>>>>>>> 타자의 욕망으로 해석하는 열등감과 그 해방 >>>>>>>>>>>>>>>>>>>>>>>>>>>>>>



열등감에 대해서 치열할 정도로 고찰했던 정신분석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들러. 


그에게는 형이 있었다.  자신보다 여러모로 뛰어난 형을 보면서 그는 어려서 부터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아들러가 가진 신체적인 컴플렉스로 인해 더욱 예민하고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 반전이 있었다.
이 세계적인 대 석학은 자신이 어려서 부터 느낀 그 열등감을 공부에 대한 추진력으로 전환시켰고
열등감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고찰해냈다.
그는 열등감이 추진력이 된다고 보았다.
아들러 자신이 살면서 그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열등감(나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을 보고서 느낀 것이다. 



>>>>>>>>>>>>>>>>> 아래 부터는 저의 해석입니다.>>>>>>>>>>>>>>>>>>>>>>>>>>>>>>>>>>>>>>>>>>>>>>>>





열등감이란 ,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열등감을 가진 개인이 자신의 열등감을 마주하고서 택하게 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아들러가 얘기한 것 처럼,  열등감을 자기 발전의 추진력으로 써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2. 노력은 힘들고 괴롭고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열등감(정확히는 , 자신의 못난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상대를 시기하고 깎아내리려고 애를 써서 일시적인 위안을 얻는다.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낀다고 얘기하는 몇 가지를 살펴보자.

크게 인간이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은
학벌, 외모, 스펙, 직장, 연봉, 차의 크기, 자식이 진학한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학벌좋은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낀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진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과 신뢰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일까? 
저렇게 누군가가 열등감을 가진다고 하는 부분들의 종합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답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타자의 욕망으로서 ,
그 욕망의 희소성 때문에 극심한 경쟁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욕망을 쟁취하는 사람은 일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갖지 못한 루저가 되도록 하는, 
경쟁사회에서의 줄 세우기를 통해 주입되어진, 
즉 쉽게 얘기해서 <사회가 주입한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있고 그 기준들이 있다.
그러나 극심한 경쟁은 사람들이 경쟁하도록 요구되어지는 그 가치 외에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거나 평가절하하도록 사회가 몰아가고 있는 비극이 현대 사회에서 실현되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 기준이 오직 돈인 사람은
자신을 비롯하여 타인도 소유 재산의 정도로 보고 판단하는 단식판단에 빠지며
그  많은 돈을 소유한다면 그래도 다행이겠지만,
개인이 가진 협소한 가치기준의 딜레마로 인해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만족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오직 돈이 가치기준의 전부인 사람은(외모, 학벌 등등 역시 마찬가지로.)
돈을 갖고 재화를 샀을 때 누리는 초기의 행복에 취하다가 
어떤 무언가의 이유로 인한 저조한 기분이나 불행감이 찾아오면
그 이유를 <내가 돈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탐하면서 욕심을 키워간다.

협소한 가치기준을 갖는 다는 것은 곧,  
자신을 욕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는 말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외모로 인한 열등감을 들여다보자. 

미의 기준은 점점 획일화 되어 가고, 눈 몇 센티 눈과 눈 사이의 비율 얼마, 
코의 각도 몇 도, 입술의 끝과 코의 끝의  이상적인 비율은 몇, 
이러한 기준으로 <미>라는 것이 수치화 되어 가고 기준이 매우 엄격해지면서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루저(나는 루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게 얘기함)가 만들어지고 
그 기준을 채우지 못한 타인에 대해서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살 빼라, 쌍커풀 좀 하면 괜찮겠다, 옷이 이게 뭐냐, 등등..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그 편협하고 획일화된 협소한 가치기준은 개인을 무한한 열등감의 궁지로 몰아 넣는다.





돌아가서, 

수많은 가치들 중 불과 몇 가지의 가치에만 집중하며
이로도 모자라 그 가치에서의 엄격한 기준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 대는 편협함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루저가 되어 버렸다.


(착한 남자는 많지만, 착하고 돈 많고 학벌 좋고 부모님 자산도 수억이고 결혼할 때 아파트 한 채 마련해 줄 수 있으며 전문직인 남성.. 
은 극히 극히 소수이듯..)



그런데 내가 줄세우기를 당해서 내 자존감에 상처를 낸 그 타자의 욕망인 가치는,
유전과 환경과 자본 등등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개인의 노력으로 한계가 있는 가치들이기에 
결국 저런 가치들에 자신의 기준이 갇혀 버리면 열등감에서 영영 헤어나올 수가 없고 
결국 그 열등감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방향이 아닌, 
자신과 그 열등감의 대상자가 되는 사람을 향한 <폭력>이 되어 나와 상대방을 모두 병들게 만든다.


이 폭력은 그 열등감의 대상자를 향하는 것임은 물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임은 물론,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보는 자신의 어떤 싫은 일부분에 대한 부정으로 폭력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의 발생 원인과 과정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말한 것을 토대로 하여 해결 방책을 <가치기준의 다양화>를 말하려고 한다.



가치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그것을 대표하는 <특징>이 있다. 
콜라가 단 맛과 톡 쏘는 탄산의 강한 자극을 가진 것은 콜라라는 존재가 가진 <특징>이다.  
이 특성은 바로 콜라의 존재가 <가치>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존재를 들여다보면, 
그 존재를 대표짓는 모든 특성이 곧 <가치>라 할 수 있다.  
<문>이라는 존재는 그 대표지어지는 특성으로서, 공간을 분리하는 특성과 외부의 무언가로 부터 방어하는 특성(특징)을 가진다.
이것이 문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모든 존재에는 시장이 부여하는 가격으로서의 화폐가치가 아닌,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이 세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에서 가치와 특성이 동일시 될 수 있음을 확인이 가능하다.
콜라가 가진 특징이 문이 가진 특징이 곧 가치로서 역할을 하여 거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존재가 특성보다 선행한다. 
시장에서의 <기능적 측면- 상품으로서의 가치->이라는 것은 존재가 가진 특성이라는 전체집합의 부분집합이다.

콜라가 단 맛을 가지고 강한 탄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콜라라는 존재의 특성이다. 
그러나, 이것을 시장에서의 재화로서 <기능적>측면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재화로서의 상품가격을 갖는 <가치>이지만, 
이것은 본래 있던 존재의 특성에 <기능적 측면_시장 재화로서의>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에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의 많은 재화들은 그 존재로서의 특성을 가진 그냥 그 무언가였다. 
그러나, 시장이 등장하면서 그것이 기능적 측면으로서의 어떤 시장 내에서의 값을 가진 무언가가 된 것이다.  

역시 상품화가 되어 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시장 논리에 따라 자기 자신 역시도 <재화>로서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특성은, 자본주의에서 <상품>으로서 기능적 측면을 하고 있으나, 
원래 본질은 자본주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인간 그 존재가 여전히 갖고 있던 특성이였다.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망각한다.
시장이 말하는 <기능적 측면>만을 생각해버리면서 
본래 그 존재 자체가 갖고 있었던 <특성>이 <기능적 측면>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망각해버리는 비극에 빠져있다. 


인간은 공기를 마시고 뱉지만, 공기를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인간은 거울로 나의 얼굴이 어떤지 반전된 상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자신의 얼굴을 죽을 때 까지 볼 수 없고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 
존재와 그 존재가 가진 특성은, 그 존재가 그 특성에 대한 <의지>가 있을 때 인식이 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개인들은 그 존재들은 자신의 특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을 보려는 의지가 있기 전에는.

그것을 보려는 의지가 없는 개인은 , 계속하여 사회가 얘기하는 기준만으로 자신을 재단할 뿐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가(정확히는 자본주의가) 얘기하는 가치 기준에 얽매여 자괴감에 빠지고 무조건 그것들을 좇아가는 연유는, 
나라는 존재와 그 존재에 가진 특성에 대한 인식의 <의지>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의지가 필요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가치기준을 많이 갖고 나를 본다고 해도 세상은 그런 나를 정신승리하고 있다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있을 때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 
가치는 그 가치로서 본래 존재한다. 인식하지 못해도 그 가치는 그대로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식은 다른 문제이다.  
어떤 개인이 a의 가치(특성)을 갖고 있을 때, 
그 개인은 자신이 그 특성을 갖고 있음을 굳이 볼 의지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모른 채 지내고 있다고 해서 그 가치(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은 개인을 바꿔 놓는다.


특징은 나와 타인을 구분짓는 무언가이기도 하지만, 내가 남들과 공통적으로 가진 무언가 역시 특징이다. 
콜라가 수만 병이라 할지라도, 그 콜라가 가진 콜라들의 특성으로 인해 그 콜라가 가치를 잃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남이 가진 특징을 나도 역시 갖고 있다는 것에서 인간이 열등감을 느낀다면, 
사람들은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해야한다는 마음에 유행을 좇고 타인과 동화되려 노력할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타인에게 자존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방법이란, 
결국에는 타자의 욕망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서 결국 이뤄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의 자신을 만들고 그 가치를 가진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느끼라는 말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다.
타자의 욕망인 가치, 그 가치를 매기는 기준 말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들을 생각해보자.

이전에는 타자의 욕망에 매몰되어 그 타자의 욕망으로만 나를 보느라 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가치기준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내면화하고 
이걸 기준으로 하여 자신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순간,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안에 다른 다양하고 많은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의 뿌리이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그런 자신을 좋게 볼 수 있는 한 렌즈이자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이렇게 다양한 가치기준으로 보는 순간, 
이 세상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치기준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세상을 극단적인 이분법이 아닌 <중용>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지고,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쓸모 없고 하찮은 것이 없으며 
그렇기에 모든 것이 모두가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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