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한창할때였는데 집에가야하는데 비가 쏟아지는거야.
그때 남친이 약속있다고 나갔다는 걸 알고있었거든.

우산가져갔냐니까 챙겨갔대. 잘됐다고 안떠내려가게 조심하라고했지. 근데 난 우산안갖고 왔었거든. 그땐 지금처럼 편의점이 많은시절이 아니었고 우산사러 가까운 슈퍼까지만 가도 걍 물에빠졌다 생각할정도로 소나기가진짜 물난리 비슷하게 왔어. 슈퍼까지가서 우산사가지고 쓰고갈바에 처음부터 끝까지 귀신처럼 맞고가는게 더나을정도로 오는날. 잘놀아라 하고 연락은 말았었지. 내가 우산이 없는걸 걔가 물리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말기로 마음을 먹었었지.

그날 알바하면서 사장이 나보고 문닫고 가라고 하고 좀 일찍갔어. 근데 전화도 없이 사장이 다시와서 우산없지?이러면서 차돌려서 우산새거를 갖다주더라. 지도 우산산다고 옷이 좀 젖은거같더라

갑의 위치의 사장이라는 사람도 알바생이자 을인 나를 이만큼 생각하는데 얘한테 난 뭘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말은 또 지가 먼저갔다가 다시 안와도 되게 니이름써붙여서 여기 다시갖다놓으라고 재밌지도 않은 아재 농담한마디 하고 다시 가는거야. 그러고 밖에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었지.

그러다보니 일개 알바생한테도 이정도인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얼마나 따뜻할까 생각이 들더라

진짜 엄청 옛날일이라 까먹고 살다가
네명사는집에 현관에 못보던 우산이 자꾸 쌓이는거 같아서 낡은건좀 버릴려고 집에 우산을 모아볼려고 신발장을 열었지. 근데 그 우산이 아직있는거야. 사장이 나중에 우산보고 내이름써서 투명 테이프 붙인거 아직 안떨어진 채로.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에도 니는 우산만 잘챙기면 앞으로 만사에 탈이 없다~ 이러면서 가져가라면서 줬었거든 드럽게 화창한 날인데도.

이제 다시 봄이면 비가 올텐데 또 그런 일들이 생각이 날거같아. 예전엔 그런 일들도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는 좀 알것같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랑 살아야 할게 아니라, 세상에 꽤 따뜻할줄 아는 남자를 내가 사랑하고 사는 게 더 행복할거라는 걸.

간혹 길을 지나다가도 그때 내가본 비슷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어. 호의를 베풀면서도 되게 멋쩍게 웃는 사람들..

기차에서 내릴때 할머니들 캐리어같은거 바퀴달린 바구니 그런거 내려주고 고맙다는 인사도 대충보는둥마는둥하고 머쓱하게 웃으면서 인사 꾸벅하고 지 갈길 가는 사람, 비오는 날 슈퍼에 깔아논 박스에 신발밑창 닦으면서 아줌마한테 인사하고 들어가는 사람..

소개팅을 하고 몇번 만나봐도 그런 얼굴이 있는사람은 잘 안보이더라.
잘보이려해봤자 나한테일 뿐이고 세상을 품을줄아는 사람은 잘 없더라. 내가 그만한 사람이 못되거나, 그런사람들은 다 임자가 있겠지..

나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