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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학의지적도전4

ㄷㄷ(125.185) 2018.04.22 16: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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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네 색 Four Color 문제


  1852 년에 구쓰리 Francis Guthrie (1831-99) 는 영국의 브리튼 섬의 지도를 카운티 별로 색칠하다가 네 색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의 형 프레데릭 Frederick Guthrie에게 이웃하는 (점이 아닌 경계선을 공유하는) 지역들에 서로 다른 색을 칠할 때 모든 평면지도는 네 색 이하로 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프레데릭은 자신의 스승 드 모르간 A. De Morgan (1806-71)과 의견을 나누었고, 1878년에 케일리 A. Cayley (1821-95)가 이 문제를 처음으로 문서로 남겼다. 그 뒤로 여러 사람이 이 문제의 증명을 내 놓았으나, 모두 틀린 것이거나 불충분한 것이었다.

  이 문제는 최종적으로 1976년에 일리노이 대학의 아펠 K. Appel 과 하켄 W. Haken이 해결하였다. 그들의 방법은 지도를 그 특징에 따라 약 1,476 개의 경우로 분류하고, 그 각각의 경우를 칠하는 데 네 색으로 충분함을 컴퓨터를 써서 수학적 귀납법으로 증명을 완성하였다. 대형 컴퓨터를 1,200 시간 이상 가동하여 계산한 결과였다. 이 해결로 인하여 글로 쓴 증명이 아닌 컴퓨터를 쓰는 증명이 수학에서 처음 공인될 수 있었다. 

  1977년에 Illinois J. Math.에 두 논문과 부록으로 발표된 이 결과는 그 뒤에 보충 결과가 더해져 1989년에 741 페이지의 방대한 [Appel and Haken 1989]로 완성되었다. 수학자가 아닌 독자를 위한 해설로는 같은 저자들의 [1977]이 있다.

  그 뒤의 연구로 증명에서의 앨거리듬이 개선되었고 1996년에 로벝슨 N. Robertson, 샌더스 D. P. Sanders, 세이모어 P. D. Seymour, 토마스 R. Thomas가 새로운 간단한 증명을 발표하였다 [Robertson et al. 1997].

  네 색 문제는 평면지도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의 변형으로서 앞뒷면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 띠 Möbius band에 그려져 있는 지도라면 6 색이 필요하고, 원환면(torus, 튜브 꼴, 둥근 도우넡 꼴의 표면)에서는 7 색이 필요함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981년  유한단순군의 분류


  한 군 G의 한 부분군 H가 정규부분군이라 함은 임의의 ∈G와 h∈H에 대하여 항상  ∈H가 성립하는 것이다. 단위원만으로 된 부분군과 G 자신은 항상 G의 정규부분군이다. 이러한 두 정규부분군 이외의 정규부분군을 가지지 않는 군을 단순군이라 부른다.

  군론 연구의 시초부터 유한 단순 비가환군의 결정은 기본적인 문제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타잎의 단순군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는 위수(원소의 개수)가 8․10보다 큰 것도 있다. 그 이후 모든 단순군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방대한 양의 논문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를 가능하게 한 기본적인 결과는 1963년에 페이트 W. Feit 와 톰슨 J. G. Thompson이 증명한, 모든 유한 비가환 단순군은 짝수 위수를 가진다는 것이다 [Feit and Thompson 1963]. 이는 254 페이지의 긴 논문이며 당시까지의 수학 전체를 통하여 가장 복잡한 증명으로 된 것 중 하나이다. 

  오랜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해 오던 유한단순군의 분류가 고렌스타인 D. Gorenstein (1923-92)의 주도로 1982년 2월에 완성되었다 [Gorenstein 1979, 1982]. 이 유한단순군의 분류의 완성은 1950-80 년 초까지의 약 30년에 걸쳐 100 명 이상의 학자들의 총 500 여 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단일 정리로서는 가장 긴 증명을 가진 것으로, 모두 합하면 학술지 페이지 수로 5,000 페이지를 넘는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예외적인 단순군들인 “띄엄띄엄인 군들(sporadic groups)” 중 가장 큰 것에는 “괴물(the Monster)”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아티야 Sir Michael Atiyah 는 이 괴물의 발견만으로도 단순군의 분류의 가장 흥분되는 산물이며, 그것이 수학의 다른 많은 분야, 타원 모듈라 함수, 더구나 이론물리학과 양자마당 이론에조차 의외의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2001]. 이것은 흥미있는 부산물이다.

  단순군의 분류가 계기가 되어 군론 뿐 아니라 체론, 그래프 이론, 유한기하학 등에서 새로운 연구가 촉진되었다.


1984년   대수방정식의 풀이


  다항방정식을 푸는 것은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수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기원전 2000 년경에 바빌로니아, 중국, 인도 등의 고대 문명사회 사람들은 특정한 2차방정식을 풀 수 있었다. 16 세기에는 페로 del Ferro 와 카르다노 Cardano 같은 이탈리아인이 3차방정식과 4차방정식의 근을 계수들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카르다노의 저서 위대한 기술 Artis Magnae [1545, 1968]에 나와 있는데, 이 책은 라틴어로 씌어진 최초의 대수학 책이다. 그 뒤에는 일반적인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다항방정식)에 대하여도, 그 근을 계수들에 가감승제와 거듭제곱근을 유한 번 결합한 식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대수적 해법이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는 대수학의 오랜 숙제였다.

  이 문제의 해결에 앞서 대수방정식이 반드시 근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가우스 C. F. Gauss (1777-1855)는 1799년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다음 정리를 발표하여 이를 해결하였다:


  대수학의 기본 정리. 계수가 복소수인 n차 대수방정식은 복소수의 범위 안에서 반드시 한 근을 가진다.


이 정리와  인수 정리를 쓰면 다음을 얻는다:


  정리.  n차 대수방정식은 n 개의 복소수 근을 가진다.


이것을 오늘날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정리.  복소수체는 대수적으로 닫혀 있다.


여기에서 체(体)라 함은 가감승제의 사칙연산에 관하여 닫혀 있는 수의 집합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한다.

  일반적인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구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것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벨 N. H. Abel (1802-29)의 논문 [1826] 에서 위와 같은 해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갈르와 E. Galois (1811-32) 는 한 n차방정식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풀리기 위한 군론적인 조건을 밝혀내었다. 한 대수방정식이 풀리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그 방정식의 갈르와군의 가해성이다. 이것을 갈르와 이론이라 부르는데, 그 내용은 대학 3 학년 수준의 대수학 교과서에 나와 있다.

  한편 이탈리아인 루피니 Ruffini가 1805년에 위와 같은 불가능성을 증명하였다고 전해져 가끔 아벨-루피니 정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불가능성에 대하여 루피니는 아무 것도 증명한 바가 없다는 반론도 역사에 나타난다.

  아벨은 노르웨이의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21-22년에 생긴지 10 년 밖에 안 된 크리스티아니아 (현재의 오슬로)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거의 독학으로 수학을 익혔다. 1823년에 함수방정식과 적분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그 중에서 처음으로 한 적분방정식을 풀었다. 1824년에 5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의 불가능성을 자비로써 팜플렛으로 발표하였다. 그 뒤 그는 정부의 장학생으로 독일과 프랑스를 방문하여 저명한 수학자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1825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또 1927년 1월부터 5월까지 베를린에 체재하면서 프러시아 왕국의 토목기감이었던 크렐레 A. L. Crelle (1780-1855)의 도움을 받았다. 1826년에 크렐레는 흔히 Crelle's Journal로 알려져 있는 최초의 수학 전문 학술지 Journal für die reine und angewandte Mathematik를 창간하고, 그 제1권에 아벨의 논문 7 편을 실었다. 그 중의 한 편 [Abe]가 위의 불가능성을 다룬 것으로 프랑스어로 된 원문을 크렐레가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라 한다. 아벨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방정식론과 타원함수론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썼으며, 182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애인의 품에 안긴 채 사망하였다. 한편 크렐레의 잡지는 세계 일류의 수학 학술지로 자라나 지금까지 간행되어오고 있다.

  갈르와는 파리 근교의 유복한 집에 태어났으며, 그가 4세이던 1815년에 그의 아버지는 고향 소도시의 시장에 당선되었다. 나폴레옹 Napoleon이 워털루에서 패전하여 물러난 뒤 왕정복고 후의 격동기에 가르와는 21세의 나이에 결투로 죽었다. 17세 때에 이미 방정식론에서 중요한 발견을 하는 등 몇 개 논문을 썼으나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에콜 폴리테크니쿠 École Polytechnique의 입학시험에 두 번 실패한 뒤, 1829년에 고등사범학교 École Normal Supérieure에 입학하였으나 교장 배척 운동으로 이듬해에 퇴학당하였다.  그 뒤 공화주의를 추구하는 정치 활동에 몰두하였고,  1932년에는 몇 개월간 수감되어 있었다. 죽기 전날 밤 자신의 수학에서의 저작의 원고에 가필과 정정을 하고,  그 처리를 친구인 쉬발리에 A. Chevalier에게 유서로 부탁하였다. 갈르와의 유고 중 중요한 것을 리우빌 J. Liouville이 자신이 편집하던 Journal de mathématiques pures et appliqués9 (1846) 권에 수록하였는데, 그 중 갈르와 이론의 간결한 원형은 [Galois 1846]에 나와 있다. 갈르와의 아이디어를 ‘판독“하여 처음으로 충분히 상세화한 것은 그의 사후 거의 40 년이 지난  1870년에 간행된 조르단 C. Jordan의 치환론 Traite' des substitutions이었다. 이것으로 비로소 반항적 공화주의자 갈르와가 19 세기의 지도적 수학자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게 되는 것이다.

  갈르와의 아이디어가 수학에 혁명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대수학은 방정식론과 거의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부터 대수학은 주로 군(群), 체(体), 환(環), 벡터공간 등과 같은 대수계의 연구로 바뀌었다. 

  그런 뒤에도 여전히 다항방정식의 근을 명확히 구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는데, 1984년에야 우메무라 H. Umemura (梅村浩, 1944-   )가 이를 (거의) 완전히 풀었다. 인류가 방정식을 풀기 시작한지 거의 4000 년이 지나서이다.

  이미 1858년에 에르미트 C. Hermite (1822-1901) 와 크로네커 L. Kronecker (1823-91) 는 서로 독립적으로 5 차방정식을 타원적 모듈라 함수를 써서 풀 수 있음을 보였다.

                    exp ((1/n)log a) exp((1/n)                       (*)

이므로, 근을 구한다는 것은 함수 1/x 의 적분과 지수함수의 사용과 관련되어 있다.  에르미트와 크로네커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5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 에 들어 있는 지수함수를 다른 초월함수(한 타원적 모듈라 함수)로 바꾸고, 그 적분을 타원적분으로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크로네커는 임의의 대수방정식의 근들이 마찬가지 방법을 써서 얻어지리라 생각했다. 우메무라는 크로네커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였다 [1984]. 


  정리.  임의의 대수방정식은 모듈라 함수와 초타원적분을 써서 표현되는 한 근을 가진다.

  이 항목의 우메무라에 관한 내용은 오래 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Mauin 1993]의 내용을 소개한 [Shenitzer 1996]을 따랐다.


1984년   존스의 매듭이론


 매듭은 3차원 공간 안의 닫힌 곡선 꼴이다.  매듭 이론에서는 한 매듭을 끊지 않고 매끄럽게 움직여서 다른 매듭으로 옮겨갈 수 있을 때 이 두 매듭은 같은 종류라고 한다. 매듭이론의 한 중요한 과제는 매듭을 분류하는 일이다. 매듭들이 서로 다름을 보여주는 각 매듭의 다항식을 발견한 것이 존스 V. F. R. Jones (1952-  )이다.

  존스는 해석학에서의 어떤 특수한 문제를 연구하다가 그것과 매듭의 수학 사이의 흥미로운 유사성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매듭들을 구분할 수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였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아무도 매듭이 어떤 수학적 의미로는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 없었고, 두 매듭이 다르다는 논리적 증명은 하려 하지 않았다 [Stewart 1995].

  이것은 곧 분자생물학(DNA의 구조)과 물리학(통계역학)에 응용되었고, 뒤이어 물리학자 위튼 E. Witten (1951-   )이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참으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동안에 개발한 위상적 양자마당 이론에의 응용이 나타났다.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물질이 ‘초끈’(super-strings) 시공간 안의 작은 매듭 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성질은 어떻게 매듭지어져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존스와 위튼은 1990년에 함께 필즈 메달을 받았다. 


1995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와일즈


  페르마 Pierre de Fermat (1601-55)는 변호사이며 프랑스 툴루스 Toulouse 지방의회 의원이었다.  비록 그는 아마추어 수학자이었지만,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데카르트 Descartes 와 함께 해석기하학과 미분학의 선구자이고, 파스칼 Pascal 과 함께 확률론의 창시자이며, 무엇보다도 근대 정수론의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다.

  오랜 동안 수학에서 가장 악명 높은 미해결 문제로 되어 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다음과 같이 태어났다. 1637년경에 그는, 디오판투스 Diophantus (246?-330? 또는 AD 1세기) 의 산술(Arithmetica) 의 바셰 C. G. Bachet 의 그리스와 라틴어 대역판을 공부하다가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관한 논의를 읽게 된다.  이것에 영향을 받아, 그 책의 여백에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넣게 된다.

   

   “정수의 세제곱을 두 개의 세제곱들로, 또는 네제곱을 두 개의 네제곱들로, 또는 일반적으로 제곱이 아닌 임의의 거듭제곱을 같은 지수의 두 거듭제곱들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 사실의 참으로 놀랄만한 증명을 발견하였으나, 그것을 적어 넣기에는 이 여백이 너무나 좁다.”

  

  페르마는 이 같은 진술들을 흔히 약간의 정당화나 증명 없이 적어놓기 일쑤였는데, 이것이 알려진 것은 그의 아들 사무엘 Samuel이 바셰의 책을 아버지가 중간 중간에 적어 넣은 것과 함께 1670년에 다시 간행한 뒤이다. 1800 년까지 페르마의 진술들은 유일한 예외를 빼고 모두 해결되었으나, 위의 것 -- 그의 “마지막” 정리(FLT = Fermat's Last Theorem) --이 그 예외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FLT).  임의의 정수 N>2에 대하여 다음을 만족하는 정수 x, y, z 는 없다:

0.


 

  페르마 자신은  의 경우에 위의 결과의 완전한 증명을 남겼다.  그것은 오늘날 페르마의 강하법이라 알려져 있는 교묘한 방법을 쓴 것이었다. 150 년 후쯤인 1780년에 천재 오일러 L. Euler가 N=3의 경우를 증명하였고, 그 뒤 50 년도 더 되는 동안에 다른 이들이 5, 7, 13의 경우를 증명하였다. 그러나 페르마의 이 위대한 정리는 무한히 많은 수에 대하여 성립한다는 것이므로, 하나하나씩 해나간다는 접근법으로는 결코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 뒤로 많은 위대한 수학자들과 그다지 위대하지 못한 수학자들이 FLT를 증명하려 하여, 부분적인 증명이나 잘못된 증명이 많이 나왔다. 더구나 이 정리의 내용이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에 수학자들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큰 관심사가 되어 왔다. 이 정리의 해결의 역사는 가령 [Cox 1994]와 [Singh 1997]을 보라. 한편, 이 정리를 증명하려는 300 년 이상의 노력은 가환환의 이론과 그 밖의 많은 수학적 발견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파리의 과학 아카데미(학술원)와 독일 수학자 볼프스켈 P. Wolfskehl (1856-1906)은 FLT의 증명에 거액의 상금을 내걸었다.

  1983년에 폴팅스 Faltings는 모델 Mordell 예상을 증명하였다. 그는 FLT에 나오는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서로 소인 x, y, z는 유한 개 밖에 없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그 해결에 진일보를 하였다. 그는 1986년 버클리에서의 ICM에서 필즈 메달을 받았다.

  한편 오일러는 페르마의 정리에서와 같이, 한 거듭제곱이 같은 지수의 세 거듭제곱의 합이 되지 않으리라 예상했는데, 1988년에 엘키스 Elkies는 n=4의 경우에 다음과 같은 반례를 발견하였다:


                            


  일반으로, 유리수체 위에서의 한 타원곡선이라 함은 A, B, C, D가 유리수일 때 


                                 


꼴로 나타나는 방정식으로서, 우변의 x에 관한 3차 다항식이 서로 다른 근을 가지는 것을 가리킨다.  FLT와 전혀 관련이 없이 페르마 자신도 타원곡선을 연구하였으며, 그러한 연구는 근대 정수론에서 아주 크고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타원곡선의 이론에는 한 유명한 (어렵고도 심오한) 문제로 다니야마-시무라-베이유 Taniyama- Shimura-Weil (TSW) 예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1955 년에 다니야마(谷山)가 제기한 원래의 예상에 시무라(志村)와 베이유가 부분적인 해를 주고, 다시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1986년에 프레이 Frey, 세르 Serre, 리베트 Ribet 는 STW 가 FLT 를 함의함을 보였지만, 그 뒤로도 수학자들은 자기 생전에 STW 나 FLT 의 증명을 보리라 생각지 못했다.  여기에 영국 태생의 프린스턴 대학 교수 와일즈 Andrew Wiles 가 나타난다.

  10 살 때 도서관에서 FLT에 관한 책을 처음 본 뒤, 그는 그것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FLT 에 매달려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옥스퍼드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에서 박사가 된 뒤, 그는 하버드로 옮겼고, 1980 년대 초에 프린스턴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주로 타원곡선과 STW 예상을 연구하였다.  1986 년의 프레이, 세르, 리베트의 연구의 영향으로 그는 다시 FLT 를 만나게 된다.  그는 즉시 이 문제에 뛰어들어 7 년 후에 그 증명을 얻게 되었고, 1993년 6월 23일 영국 케임브리지의 아이삭 뉴턴 Issac Newton 수리과학 연구소에서의 강연에서 그 증명을 발표하였으나, 12월에 첫 논문의 증명에서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증명을 취소하였다. 다시 와일즈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테일러 R. Taylor와 함께 그 결함을 보완한 둘째 논문을 집필하여 1994년 10월 7일에 두 논문의 프리프린트 preprint를 배포하였고, 그 두 논문은 함께 1995년 5월에 최고의 수학 학술지인 Annals of Mathematics의 한 권으로 발표되었다 [Wiles 1995; Taylor and Wiles 1995]. 그 첫 논문은 제목, 저자 이름, 가족 네 명을 위하여라는 헌사 다음에 모두에 나온 페르마의 라틴어 여백의 글이 인용되고, 그 다음에 서론이 시작된다. 

  와일즈가 STW 예상을 완전히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예상의 일부를 증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FLT 를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이며, 애초부터 그는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다.  이처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은 타원곡선, 모듈라 형식, 갈르와 표현의 이론들을 참조하고 그들 사이의 기묘한 연관을 탐구한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Cox 1994].  

  그로부터 6 년 뒤인 1999년에 하버드 대학의 콘라드 Conrad와 테일러가 위의 STW 예상의 증명을 완성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와일즈는 1995년 10월 28일에 툴루스 시에서 페르마 상을 받았고, 1997년 6월 27일에는 괴팅겐 과학학술원에서 볼프스켈 상(상금 약 75.000 마르크)을 받았다. 1998년 베를린 ICM에서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와일즈에게 특별상으로서 필즈 메달 대신 “IMU 은판”이 주어졌는데, 이는 그가 40 세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3년에 그 증명을 공표하였으며, 1994년 취리히 ICM에서 필즈 메달을 받으리라 기대되었었는데,  증명을 보완하여 발표한 것이 1995년인 탓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물론 그가 다른 수상자들보다 오랜 박수갈채를 받았음은 자연스런 일이다.

  여기에서 과연 페르마가 그 증명을 가지고 있었는가, 또 그 증명이 와일즈의 것과 같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와일즈는 NOVA와의 인터뷰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럴 수는 없다. 페르마가 이 증명을 가졌을 리가 없다. 이 증명은 150 페이지이다. 이것은 20 세기의 증명이다. 19 세기에는 할 수 없었던 증명이다, 더구나 17 세기에는 . . .  이 증명에서 쓰인 테크닉은 페르마의 시대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1995년에, 위와 같은 해결에 영향을 받아, 은행가 앤드루 비얼 Andrew Beal은 페르마의 정리를 확장한 다음과 같은 예상의 증명에 큰 상금을 걸었다.


   비얼 예상 Beal conjecture. 정수 에 대하여 이 되는 서로 소인 정수 는 없다.


이처럼 21 세기에도 도전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1996년   에르되쉬의 업적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수학 논문을 쓴 사람은 에르되쉬 E. Erdös (1913-96)이다. 그는 1913년 3월 26일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계 유태인으로 태어났는데,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기 위해 입원 중인 때에 그의 어린 두 누나가 홍역으로 죽었다. 고교 수학 교사였던 아버지와 수학 교사 자격증을 가졌던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다가 1930년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 때로부터 1996년 9월 20일 바르샤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60 여 년의 세월 동안에 정수론, 보간법, 함수론, 기하학, 집합론, 군론, 그래프이론, 조합론, 확률론, 등에서 1500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컴퓨터 과학의 기초인 이산수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연구할 과제를 찾아 가정도 직장도 없이 50 년 이상 세계 곳곳을 유랑하면서 다른 수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다양한 문제를 여러 사람과의 공동 연구로 해결하였는데, 정식으로 대학이나 연구소에 취직한 일은 없다. 생전에 많은 국제적인 학술상을 받았으며, 그 중에는 1983년에 5 만 달러의 상금을 받은 볼프 Wolf 상도 있다. 그는 헝가리, 영국, 미국, 네델란드, 오스트랄리아, 인도의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91년 6월에는 케임브리지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 전날의 기념강연 제목은 “수학의 60년”이었다.  그는 돈이 안 드는 생활 방식을 택하였으며, 학술회의나 강연에서 생긴 수입의 대부분을 학생들을 돕거나 자신이 낸 현상 문제의 상금으로 사용하였다. 그의 생애에 관한 짧은 추도문으로는 [Bollobás 1996], [Takács 1996] 등이 있다.

  그는 특히 정수론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30년 대학 1 학년 때 쓴 첫 논문에서 


  “임의의 자연수 에 대하여  인 소수 가 존재한다”


는 1852년의 체비셰프 P. L. Chebyshev  (1821-94)의 정리의 간단한 증명을 발표하였고, 이러한 공부는 곧 소수 분포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1949 년에는 셀버그 A. Selberg (1917- )와 함께 소수정리를 증명하였는데, 그 전의 증명과는 달리 복소함수론을 쓰지 않은 것이다.   


  소수정리.   를 넘지 않는 소수들의 개수  는 log  에 점근한다.  

  이 정리는 이미 가우스 C. Gauss (1777-1855) 가 예상하였던 것으로, 그의 사후에 아다마르 J. S. Hadamard (1865-1963) 와 발레푸쌩 C.-J. de la Vallée-Poussin (1866-1962) 이 1896 년에 거의 동시에 증명한 것이었다.  에르되쉬와 셀버그는 자신들의 증명에서 각자가 한 일을 따로따로 써서 한 학술지의 한 권에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공적을 공유하기로 하였는데, 셀버그가 먼저 발표하였고, 그는 이 업적과 다른 여러 업적으로 1950년에 필즈 메달을 받았다.

  에르되쉬는 부정방정식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하여 1975년에 셀프리지 R. G. Selfridge 와 함께 쓴 책에는 


  “둘 이상의 연속적인 자연수의 곱은 제곱수나 세제곱수 또는 그 이상의 제곱수로 표현될 수 없다”


는 것의 증명도 포함되어 있다.

  에르되쉬의 수학적 업적은 매우 크고 넓은 영역에 걸쳐 있지만, 그는 이론의 정립을 추구하기보다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었으며, 더구나 아름답고 이해하기 쉬우며 어렵기로 소문난 문제들을 좀더 간결하고 초등적인 방법으로 풀기를 원했다. 그는 수많은 현상 문제를 제기하였고 실제로 상금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논문의 공저자에게 에르되쉬 수 1을 부여하고, 에르되쉬 수 1인 학자의 공저자에게 에르되쉬 수 2를 부여하고, 차례로 수 3, 수 4, . . .를 정하였다. 한때의 기록은 에르되쉬 수 1인 학자가 근 500명, 2 이하인 학자의 수가 4750명 이상이며, 1986-94년의 세 번에 걸친 필즈 메달과 네반리나 상 수상자 전원이 에르되쉬 수 9 이하였다. 많은 수학자, 이론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 언어학자, (그래프 이론의 수 많은 응용 때문에) 사회과학자, 의학자, 그 밖의 분야의 학자들이 비교적 작은 에르데쉬 수를 가지고 있다.

  가령 아인슈타인은 에르되쉬 수 2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슈트라우스 E. Straus의 공저자이며, 슈트라우스는 에르되쉬와 많은 논문을 같이 썼다. Oppenheimer, Dirac, Fermi, von Neumann, Carl Sagan 등의 물리학자들도 에르되쉬 수를 가지고 있으며, MS의 Bill Gates와 언어학자 Chomsky도 4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논문의 저자는 에르되쉬 수 3에 속한다.)


1997-99년   큰 소수들의 발견    


  컴퓨터에 의한 계산능력의 확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들에 대한 정확도를 증대시켜 주었다.   나 e 같은 무리수들이 소수점 아래 100 억 자리까지 계산되었다는 것은 이미 지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결과는 컴퓨터의 기억용량이나 계산속도의 증가에 따라 더욱 발전될 것이다.  한편, 보다 더 큰 소수를 찾는 문제에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암호론에의 응용 때문이다.  

  17세기의 메르센느 M. Mersenne (1588-1648)의 연구의 영향으로,  꼴 (p는 소수)의 수를 메르센느 수라 부르고, 특히 이것이 소수일 때 메르센느 소수라 부른다. 1996년 초에 월트만 Woltman 은 GIMPS (Great Internet Mersenne Prime Search) 를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의  http://www.mersenne. org/prime.htm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영국의 정보기술자 스펜스 Spence 는 1997 년 12 월에 자신의 펜티엄 Pentium 100 PC 를 15일 동안 사용하여 메르센느 수 2 29762211 이 소수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 기록도 1998년 1월 27일 클라크슨 Clarkson, 월트만, 쿠로우스키 Kurowski 등이 230213771 이 909,526 자리의 소수임을 밝힘으로써 곧 깨졌다. 이러한 방식으로 게속하여 큰 소수가 발견되어오고 있으며, 2005년에는 42 번째의 메르센느 수일 것이라 생각되는 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781만6230 자리의 소수이며, 한 페이지에 3500 자씩 들어가는 책으로 펴낸다면 약 2200 페이지가 된다.

  GIMPS는 1000만 자리 크기의 더욱 큰 새로운 소수를 발견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1000만 자리의 소수를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10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1998년   케플러의 예상 (공 쌓기 문제)


  행성운행의 법칙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천문학자 케플러 J. Kepler (1571-1630) 는 1611 년에 자명한 사실로서 공간에서 동일한 크기의 공들을 가장 조밀하게 쌓는 방법은  (과일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면심입방쌓기 (face-centered cubic packing) 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케플러의 예상 또는 간단히 공 쌓기 문제(sphere packing problem)라 한다. 이 때의 밀도는 약 74.05%에 이르며,  이것이 3차원 공 쌓기의 최대밀도로 생각되었다. 실생활에서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지만, 거의 4 세기 동안이나 엄밀한 수학적 증명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387 년 후인 1998년 8월 9일 미쉬간 대학의 헤일즈 T. Hales 는 마침내 자신의 제자 퍼거슨 Ferguson 이 증명을 완성했노라고 e-메일로 전 세계에 공표하였다.   

  이 증명이 나오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은 여러 가지 쌓기에 대하여 밀도를 계산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입방격자 모양으로 쌓을 때는 밀도가 약 0.5236 이고, 육각형격자로 쌓을 때는 약 0.6046, 면심입방쌓기로는 약 0.7405 임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불규칙적인 쌓기에서는 밀도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1958년 버밍햄 대학의 로저스 Rogers 는 어떠한 쌓기도 밀도가 0.7796 보다 클 수 없음을 보였다.  이 결과는 케플러의 예상이 옳음을 더욱 믿게 하는 것이었다.  한편 1953 년에는 헝가리계 수학자 페예스 토트 L. Fejes Toth 가 증명이 (비록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기는 하지만) 유한한 계산으로 귀착될 것이라는 것을 보였다. 컴퓨터에 의한 계산 능력의 향상으로 용기를 얻은 헤일스는 1994년부터 다섯 단계로 문제를 나누어 증명을 시작하였고, 마지막 단계를 퍼거슨이 증명한 것이다. 


2000년   20 세기의 10대 업적


  이 해에 미국수학협회 (MAA = The Mathematical Association of America) 미쉬간 Michigan 지부는 20 세기 수학의 10대 업적을 투표로 선정하였다. “르벳구 Lebesgue의 박사논문”으로부터 “선형 프로그램의 발전”에 이르는 30 개 정도의 서로 다른 사건들이 후보로 올랐으며, 지부의 각 회원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5대 사건을 묻는 투표용지가 배부되었다.

  다음은 그들이 정한 10대 업적이다.


   1. 디지털 컴퓨터의 발전

    2. 괴델의 불완전성 증명

    3.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4.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 [Wiles]

    5. 1900년 ICM에서의 힐버트의 강연

    6. 유한 단순군의 분류

    7. 선형 프로그래밍의 발전 [Dantzig]

    8. 양자역학의 수학화 [von Neumann]

    9. 프랙탈 기하학의 발전 [Mandelbrot]

   10. 암호론에의 수학의 응용


이 투표 결과는 http://www.cst.cmich.edu/units/mth/ttm2k/topten.htm에 나와 있다.

 

2000년   새 천년의 현상 문제들


  2000년 5월 25일 16 : 00 시에 파리의 꼴레즈 드 프랑스 College de France 에서의 “새 천년 모임” 에서, 클레이 Clay 수학연구소 (CMI) 는 수학에서 중점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7 개의 문제에 관한 7 백만 달러의 현상금이 조성되었음을 발표하였다.  1900년 8월 8일 ICM 에서의 힐버트의 저명한 문제들의 리스트에 영향을 받아, CMI 는 제시된 문제들의 해결에 각 백 만 달러씩을 지급할 것이라 한다.

  CMI 는 발표문에서 “수학은 과학 가운데에서 특권을 가진 위치를 가진다”라고 주장하고 이 현상 문제들은 “새 천년의 수학을 축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했다.

  CMI 는 사립 비영리 재단이며, 그 목표는 “수학적 사고의 아름다움, 강력함, 보편성을 촉진시키는 데 있다”.  

  아래에 그 7 개의 문제와 미국 수학회 회보 Notices에 실린 간단한 요약을 들기로 한다.


    P versus NP  한 문제가 P 에 속한다 함은 다항식 시간 안에 진행되는 앨거리듬 (즉, 소요시간이 기껏해야 입력한 크기의 다항식 함수가 되는 것)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문제가 NP 에 속한다는 것은 제안된 풀이가 다항식 시간 안에 검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PNP 인가?


 리이만 Riemann 예상  리이만의 제타 zeta 함수의 모든 비자명 영점 (nontrivial zero) 은 실수부가 1/2이다.

프왕카레 Poincare 예상   임의의 닫힌 단연결 3 차원 다양체는 3 차원 구면과 위상동형이다. 

하지 Hodge 예상  한 비특이 복소 사영 다양체에서, 임의의 하지류는 대수적 윤체들의 류의 유리수계수 일차결합이다.

버취 Birch와 스위너튼-다이어 Swinnerton-Dyer 예상   유리수체에 관한 임의의 타원적 곡선에 관하여, 그것의 1 에서의 L 함수가 0 이 될 위수는 그 곡선 위에서의 유리점들의 가환군의 계수와 같다.

나비어-스토크스 Navier-Stokes 방정식   3 차원 나비어-스토크스 방정식의 (적절한 경계 및 초기조건들을 가정할 때의) 해들의 존재와 해들의 원활성을 증명하든가 반례를 들어

양-밀즈 Yang-Mills 이론   양자 양-밀즈 마당들의 존재와 그것이 질량 gap을 가짐을 증명하라.


  이들 7 개의 문제는 새 천년의 큰 도전으로 선정된 것이며, 그밖에도 수학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골드바하 Goldbach 의 예상 (2보다 큰 짝수는 두 소수의 합이다), 샤우더 Schauder 의 예상 (위상벡터공간의 완폐 볼록 부분집합에서 그 자신으로 가는 연속함수는 한 부동점을 가진다) 등 여러 미해결 문제가 있다. 미해결 문제들은 21 세기 수학에서도 계속하여 연구될 것이다.

  한편, 이 해에 미국 수학회는 로스 안젤레스에서 “21 세기의 수학적 도전”에 관한 회의를 가졌는데, 100 년 전의 힐버트의 문제들과는 달리, 30 명의 지도적인 수학자들로 된 팀이 문제 제시를 하였다. 그 중 8 명이 필즈 메달 수상자이었다.

   클레이 연구소의 창설과 현상문제의 배경에 관하여는 당시의 소장 자페 A. M. Jaffe 의 회고 [2006]를 보라. 이에 대한 반대 여론도 녹녹치 않은데, 그 예로 [Vershik 2007]이 있다.


2003년  프왕카레 예상의 해결

  

  앙리 프왕카레 Henri Poincaré (1854-1912)는 프랑스 동부의 낭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레온은 낭시 의과 대학의 교수였다. 형제로는 누이동생 하나뿐인데, 이 누이는 철학자 에밀 부트루 Émil Boutroux 와 결혼하여 수학자 피엘 부트루를 낳았다. 대통령 레몬 프왕카레와 물리학자 류시앙 프왕카레는 레온의 아우 안토니의 아들들이다. 즉, 수학자 앙리와 고명한 정치가 레몬은 사촌간이다.

  프왕카레는 1973년 에콜 폴리테크니쿠 École polytechnique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1975년에 졸업하고, 광산학교 École des mines에 들어가 1979년 봄에 광산기사가 되어 잠간 동안 광산 현장과 철도 건설 사업에 종사했다. 그 해에 편미분방정식에 관한 논문으로 파리 대학교에서 수리과학박사가 되었고, 12월 1일에 캔 Caen 대학 강사가 되었다. 1980-82년에 풐스 Fuchs 함수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1881년 10월에 파리 대학교로 옮겨 연습 강사, 85년에 역학 강사, 86년에 수리물리학 및 확률론 강좌의 교수가 되었다. 10 년 후인 1896년에는 천체역학 강좌로 옮겼고, 그 뒤에 그 분야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그보다 앞서 1887년 33세에 과학학술원 Académie des Sciences의 회원이 되었고, 1908년 시인 술리- 프루돔므 Sully-Prudhomme의 뒤를 이어 프랑스 아카데미 Académie française 회원이 되었다.

  프왕카레는 1912년 로마 ICM 참석 시에 발병하여, 7월 17일에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 때문에 수 많은 발견이 그 시기가 늦어지고, 또 오랜 동안 애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라고 팽르베 Painlevé는 말하였다. “그 비범한 생산력과 다방면임은 꼬오쉬 Cauchy를 연상하게 한다”는 클라인 F. Klein의 평이다. 실제로 프왕카레는 수학, 물리학, 천문학 이외에, 과학 비평에서도 탁월한 철학적 견해를 저서들 과학과 가설, 과학의 가치, 과학과 방법, 만년의 사상으로 발표하였다. 그 밖에 과학자와 시인에서는 과학자들의 평전에 그의 아카데미 전임자의 작품 세계를 논하였는데, 이는 아카데미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CMI의 7 개의 문제들 중 프왕카레 예상은 3차원 다양체의 분류에서 큰 걸림돌이 되어온 100 년도 더 된 큰 문제로서, 1904년에 프왕카레가 “임의의 닫힌 단연결인 3 차원 다양체는 3 차원 구면과 위상동형이다”라 예상한 것이다. 여기에서 3 차원 구면이란 2 차원 구면인 공을 한 차원 높인 4 차원 공간에서의 곡면이다.

  이 예상은 곧 “완폐(compact) n 차원 다양체가 닫혀 있고 단연결이면 n 차원 구면과 위상동형이다”라는 예상으로 일반화되었는데, 원래의 예상은 n=3의 경우이다. 프왕카레 예상은 원래부터 그 증명이 어려운 것이어서, 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잘못된 증명을 낳았다. 첫째 증명으로 잘못된 것은 프왕카레 자신이 이 예상을 발표하기 4 년 전에 발표한 것이며, 그 뒤에도 여러 사람이 잘못 증명한 뒤에 그 반례를 찾아낸 일이 있다. 이런 연구는 다양체에 관한 위상수학적 이해를 심화하였다.

  일반화된 예상의 n=1인 경우는 단순하며, n=2의 경우는 19 세기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n=3을 뛰어넘어, n=4의 경우는 1982년에 프리드맨 M. H. Freedman (1951-  )이 증명하여, 1986년의 버클리 ICM에서 필즈 메달을 받았다. 그보다 앞서, n=5의 경우는 1961년에 지맨 F.C. Zeeman (1925-  ), n=6의 경우는 1962년에 스털링스 J.R. Stallings (1935-  ), n이 7 이상인 경우에는 1961년에 스메일 S. Smale (1930-  ) 이 증명하였다. 그리하여  n=3의 경우인 원래의 프왕카레 예상만이 남아 있어 CMI의 새 천년의 문제 안에 들게 되었다.

  2006년의 마드리드 ICM에서의 전체 강연에서 콜럼비아 대학교의 해밀튼 R. Hamilton (1943-  )은 40 여년 전에 일즈 J. Eells (1926-  )의 세미나에서 그로부터 프왕카레 예상을 푸는 데 발전방정식 evolution equations을 쓸 수 있으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10년쯤 후에, 해밀튼은 이러한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여 1982년에 리치 흐름 Ricci flow이라는 발전방정식을 도입하였다 [Hamilton 1982]. 1985년에 썰스튼 W. Thurston (1946-  )이 오늘날 기하화 예상 Geometrization Conjecture으로 알려지게 된 3 차원 다양체의 성질에 관한 그 자신의 견해를 발표한 뒤에 이런 방향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리하여 위상수학의 이 난제를 푸는 데, 기하학과 해석학과 같은 위상수학 밖에서의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코넬 대학에 있는 썰스톤이 1970년대에 제기한 기하화 예상은 프왕카레 예상보다 더 일반적이고 더 심오한 것으로, 모든 3-차원 다양체를 분류하려는 것이다 [Thurston 1982]. 그의 위대한 통찰은 3-차원 다양체의 위상을 이해하는 데 기하학을 어떻게 쓸 수 있는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기하화 예상은, 임의의 3-차원 다양체는 조각들로 분해되는데 이 분해는 본질적으로 일의적이며, 각각의 조각은 8 가지 모형 기하학들 중 하나로 주어지는 기하학적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예상은 페렐만 G. Ya. Perelmann의 업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많은 경우에 성립함이 알려져 있었다. 썰스톤 자신은 충분히 큰 다양체에 관하여 그의 예상을 증명하였고, 그 뒤의 여러 연구에도 불구하고, 두 기하학에 관하여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Jackson 2006]을 보라.

  마침내 2003년 3월에 페렐만은 리치 흐름 프로그램을 이런 예상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를 인터넷에 발표하였다 [Perelmann 2002, 2003a,b].  페렐만의 연구를 토대로 하여 예일 대학의 클레이너 B. Kleiner와 미쉬간 대학의 로트 J. Lott [2006], 콜럼비아 대학의 모간 J. W. Morgan [2005] 등이 그 세부 증명을 완성하고, 학계의 검증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모간은 페렐만의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데 3 년간의 작업 끝에 프린스턴 대학의 티안 Gang Tian과의 공저로 473 페이지의 책을 써서, 프왕카레 예상이 해결되었음을 선언하였다. “페렐만에게나 수학에게나 그것은 위대한 승리이다.” 그의 말이다.

  한편 리하이 대학과 칭화 대학의 차오 화이동(曹懷東) Huai-Dong Cao 과 종샨 대학(중국 광조우 소재)의 주 시핑(朱熹平) Xi-Ping Zhu이 “프왕카레 예상과 기하화 예상의 완전한 증명 -- 리치 흐름에 관한 해밀턴-페렐만 이론의 응용”이라는 제목으로 2006년 6월에 미국에서 간행되는 Asian J. Math.에 327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발표하였다 [Cao and Zhu 2006]. 이 논문의 모두에는 

  

    “저자들은 리치 흐름에 관한 해밀튼-페렐만 이론을 제시할 것이다. 그것을 써서,  프왕카레 예상과 썰스튼의 기하화 예상의 완전한 증명의 처음으로 씌어진 설명을 부여할 것이다. 완전한 결과는 많은 기하학적 해석학자들의 노력의 축적이기는 하지만, 주된 공헌을 한 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해밀튼과 페렐만이다”

라 나와 있다.

  2006년 8월 22일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ICM에서는 페렐만을 비롯한 4명에게 필즈 메달이 수여되었으나, 페렐만은 수상을 거부하였다.

  페렐만은 1966년에 소비에트 연방이던 로시아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박사가 되었다. 한때 스테클롭 수학 연구소 Steklov Institute of Mathematics 상트페테르부르크 분소의 연구원으로 있었다. 1990년대에 미국을 방문하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 밀러 펠로우 Miller Fellow로도 있었으며, 1994년의 취리히 ICM에서는 초청강연을 하였고, 2003년 4월에 MIT에서 공개강의를 하였다. 그 뒤에 페렐만은 연구소를 사임하고, 미국 대학의 교수 제의도 거절한 뒤, 숲에서 버섯이나 따러 다니며, 한 달에 5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IMU 회장이 직접 찾아가 ICM’2006에 참석하여 필즈 메달을 받을 것을 권하였으나, 완강하게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수학계에서 고립되어 있어 수학계의 대표처럼 간주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 했으나, 사실은 수학계의 보스들의 횡포에 환멸을 느낀 탓이라고도 한다.

  2006년 12월 21일에 미국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Science는 그 해의 과학계의 10대 뉴스를 발표하였는데, 프왕카레 예상을 증명한 연구를 그 해의 최고의 과학 성과로 들었다. 최근에 리치 흐름과 두 예상의 해결에 관한 책이 여러 권 나오고 있다.



2003년  아벨 상 


  2002년에 노르웨이 Norway는 수학 분야가 없는 노벨 Nobel 상 대신에 아벨 Abel 상을 제정하였다.

  아벨 N. H. Abel (1802-29)은 가난과 결핵으로 너무나 젊어서 죽은 노르웨이의 수학자로,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이 대수적으로 풀릴 수 없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큰 업적을 남겼다. [“1984년 대수방정식의 풀이”를 보라.] 오래 동안 국왕을 비롯한 많은 노르웨이인들이 그를 기리는 상 제도를 만들려고 노력해 온 끝에 아벨의 탄생 200 주년이 되는 해인 2002년 1월에 국가적인 상으로 확립하였다.  

  아벨 상은 노르웨이 학술원 (Norwegian Academy of Science and Letters)이 수학 분야에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학자에게 매년 수여한다. 상금은 6 백만 노르웨이 크로너 (2006년의 경우 약 $825,000)이며, 국제적인 위원회가 수상자를 선정한다.

  2003년 6월 3일 세르 J.-P. Serre (1926-  )에게 첫 번째 아벨 상이 주어졌는데, 그 앞뒤로 이를 경축하는 노르웨이의 국가적 행사가 있었다. 그는 위상수학, 대수기하학, 정수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혁명적인 대수적 방법을 발전시킨 공적이 있으며, 28 세 때인 1954년에 필즈 메달을 받은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4년도 수상자는 아티야 M. F. Atiyah (1929-  )와 싱어 I. M. Singer (1924-  )가 공동으로 그들의 이름이 붙은 지표정리에 관한 공헌으로 받았는데, 그 정리는 수학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을 들었다.

  2005년에는 헝가리 태생의 뉴욕 대학 쿠란트 수리과학 연구소의 락스 P. Lax (1926-  )가 편미분방정식의 이론과 응용에 기여한 공으로 아벨 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스웨덴 왕립 공과 대학과 UCLA의 명예교수인 칼슨 L. Carleson (1928- )이 조화해석과 원활한 동력계 이론에의 공헌으로 아벨 상을 받았다. 

  아벨 상의 제정으로 아벨의 불우한 생애에 대한 노르웨이 국민들의 오랜 동안 안스러워하던 민족적 정서가 조금쯤 편안해졌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편, 아벨 상은 수학 부문이 없는 스웨덴의 노벨 상과 병립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 노벨이 수학 부문을 배제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하여 여러 루머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당시의 스웨덴의 국보적 수학자 미탁-레플러 G. M. Mittag-Leffler (1846-1927)와 관련된 것인데,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생애를 마쳤다. 

  노벨 상에 수학 부문은 없어도, 수학자 또는 수학에 관련된 업적으로 노벨 상을 받은 사람은 많다.

  노벨 문학상은 1904년에 스페인 수학자 에체가레이 H. Echegaray와 1950년에 럿셀이 받았다.

  경제학상은 1969년에 새로 생긴 이래로, 1972년에 애로우 K. Arrow, 1975년에 칸트로비취 L. Kantrovich, 1983년에 드브뢰 G. Debreu, 1994년에 내쉬 J. Nash, 2005년에 오만 R. J. Aumann과 같은 수학자들이 받았다.

  1985년에 화학상을 받은 하웊트만 H. Hauptman은 수학박사이었다. 

  노벨 상 수상 업적이 심도 있는 수학을 충분히 구사한 수상자를 들라면 경제학의 경우에는 거의 반수이며, 물리학의 경우에는 Einstein, Schrödinger, Dirac, Heisenberg, Glashow, Weinberg, Salam, Feynmann, Schwinger, Gell-Mann, Gross, Politzer, Wilczek 등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유일하게 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받은 바르딘 J. Bardeen은 수리물리학자로서 수학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노벨 상 수상자로서 동시에 수학을 연구한 사람은 생리 의학 부문에도 있는데, 1902년의 로쓰 Sir Ronald Ross, 1958년의 레더버그 J. Lederberg, 1979년의 코르매크 Cormack와 하운스필드 Hounsfield가 있다. 

  위의 정보들은 미국 수학회 회보 Notices of Amer. Math. Soc. 53 (2006)의 Nos. 1, 4, 7에 실린 사아리 D. Saari의 글과 그에 대한 편집자에게의 편지에서 얻었다.


2006년  가우스 상 


  2006년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ICM'2006에서는 “수학의 응용에 관한 카알 프리드리히 가우스 상” Carl Friedrich Gauss Prize이 처음으로 수여되었다. 이 상은, 오직 전문가들만이 많은 현대적 기술들의 추진력이 수학임을 알고 있는 듯한데, 그 밖의 사람들이 이러한 기본적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 상은 수학적 연구로써 수학 이외의 것--기술이나 비즈니스나 또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준 과학자들을 기리려는 것이다. 아래에 IMU가 발표한 가우스 상의 취지를 싣는다.


   가우스 상은 독일 수학회(DMV = Deutsche Mathematiker-Vereinigung)와 IMU가 공동으로 수여하며, 사무는 DMV가 관장한다. 이 상은 메달과 상금(현재로는 1만 유로)으로 수여되며, 기금은 베를린에서의 ICM'98의 수익금으로 이루어졌다. 이 상은 수학의 다른 분야에의 영향에 관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에서의 수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것이다.

 

  IMU의 발표에는 다음과 같은 가우스의 짧은 전기가 첨가되어 있다.


    가우스 C. F. Gauss (1777-1855)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무후무하게 과학이론과 실무를 결합하였고, 이미 젊은 날에 수학에 출중한 공헌을 하였다. 24세이던 1801년에 간행된 그의 정수론 Disquisitiones arithmeticae은 오늘날까지도 과학 탐구의 참된 걸작으로 남아 있다. 같은 해에 그는, 아주 적은 횟수의 관측만으로, 언제 그리고 어디에 소행성 세레스 Ceres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 예측함으로써 널리 명성을 얻었다. 하노버 Hannover 공국의 지도를 작성하면서 그것에 도움이 되도록 가우스 자신이 개발한 최소자승법은, 물리학자나 공학자 뿐 아니라 불가피한 부정확성을 가진 모든 종류의 측정으로부터 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려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수많은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로부터 바른 수를 분석해 내는 데 요긴한 도구이다. 지난번까지 통용되던 독일의 10 마르크 지폐에 그려진 그의 육분의(sextant)는 그의 측량에의 상당한 공헌을 기린 것이다. 거기에는 또한 종(bell) 꼴의 곡선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확률에서의 가우스의 정규분포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베버 Wilhelm Weber와 함께 가우스는 첫 번째 전신을 발명하였다. 그의 전자기 이론에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자기유도의 국제단위는 gauss로 되어 있다.

 

  가우스 상의 제정은 가우스 탄생 225 주년이 되는 2002년 4월 30일에 공표되었으며, 마드리드에서의 ICM'2006에서 처음 시상되었는데, 첫 번째 수상자는 91 세의 일본인 수학자 이또 기요시(伊藤淸) Kiyoshi Itô (1915-  )이다. 그는 도꾜 대학을 졸업하고, 내각 통계국 통계관, 나고야 대학 조교수, 교또 대학 교수와 명예교수, 가꾸슈인(學習院) 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여러 개의 국제적 학술상을 받았고, 여러 나라의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몇 대학의 명예박사가 되었다.

  이또는 1942년에 콜모고롭 A.N. Kolmogorov (1903-  )의 방정식에 대응하는 확산과정을 확률미분방정식을 써서 구성함으로써, 확률적분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확률과정의 견본함수에 관한 미적분학을 확립하였다. 이것은 종래에 해석학의 방법으로 연구되던 확률론의 여러 문제에 새로운 확률론적 방법을 도입한 것으로, 확률과정론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 와서, 확률해석(stochastic analysis)이라는 분야를 낳았다. 또 다양체 상에서의 확률미분방정식은 확률미분기하학이라는 분야를 낳았으며, 물리학이나 생물학에 나타나는 확률모형을 기술하기 위한 무한차원의 확률미분방정식의 연구도 활발하다. 자세한 것은 [EDM 1987]과 거기 실린 참고문헌을 보라. 이또는 이 책의 제3판의 편집대표이다.

  이 항목에 관한 자세한 것은 IMU의 홈페이지 http://www.mathunion.org에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이또의 이론은 생각지 못했던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추상적이다. . . . 금융시장에서의 주식 가격은 브라운 운동에 작용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확률적 힘(random forces)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변동들의 영향을 막으려는 은행가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 자신이 “연속적인 시간에서”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또의 아이디어로부터 연속적 거래를 위한 전략이 생겨나고, 마침내, 한 옾션(option)의 값을 계산하는 공식이 나타난다. 오늘날 블랙-숄스 Black-Scholes 공식은 옾션과 미래에 관련된 거의 모든 재정 거래의 기본이 되며; 더구나 그 발견자 중 두 사람이 1997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하였다.

    브라운 운동에서의 입자의 위치나 주식 가격 이외에도, 이또의 이론은 살아있는 유기물의 개체수, 한 인구집단의 유전자집단에서의 어떤 상대형질(allele)의 빈도, 또는 더 복잡한 생물학적 양들에도 적용된다. 이또의 업적으로 말미암아, 생물학자들은 전체 개체 중 한 유전자가 차지할 확률 또는 한 종이 살아남을 확률을 구할 수 있다.

    수학자들은 이또의 결과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이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4년에 이또가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에서 그의 성취를 강의한 이후가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오늘날, 확률해석이 수학의 한 풍족하고 중요하고 생산적인 한 분야로서 가우스 상의 목표인 “기술, 비즈니스, 또는 간단히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방대한 충격을 주었음을 의심할 나위가 없다.


  위에서 말하고 있는 옾션이란 주식과 외환 등을 매매하는 권리 자체를 매매하는 금융 상품이다. 1970년대 초에 MIT의 물리학자 블랙 F. Black,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머튼 R.C. Merton, 쉬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숄스 M. Scholes는 열전도 방정식을 변형해 옾션의 가격을 계산해내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 공식을 쓰면 옾션 판매에 따르는 위험을 95%까지 없앨 수 있어 파생상품 거래의 혁명을 일으켰다. 1997년에 머튼과 숄스는 옾션 가격 결정 이론을 정립한 공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블랙은 1995년에 이미 서거하였다). 숄스는 스탠포드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2007년  슈퍼컴퓨터 경쟁 시대의 개막


  슈퍼컴퓨터는 흔히 프로세서가 100 개를 넘는 고성능 컴퓨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2006년 11월 중순에 발표된 세계 랭킹에 다르면, 현재의 세계 1 위의 슈퍼컴은 미국 에너지부 국가 핵 안전 보장국의 것(IBM사 제작)으로, 그 계산 능력이 367테라플롭스(1테라플롭스는 초당 1조번 연산)이다. 상위인 것 태반이 미국제이며,  핵무기 개발이나 암호 작성 등 군사 기술에 요긴한 도구여서 미국은 항상 세계 1 위를 견지하려 한다. 

  2002-4년에는 일본의 해양 연구 개발 기구의 ‘지구 시뮬레이터’ (요꼬하마 소재)가 세계 1 위였는데, 이것은 높이 2 m, 앞면 가로 1 m, 옆면 길이 1.4 m인 계산장치 640 대가 늘어서고, 거기에 관련 장치가 연결된 것으로 가로 50 m, 세로 65 m인 체육관과 같은 전용 건물에 들어 있다. 지난 11월의 랭킹에서는 ‘지구 시뮬레이터’는 14 위로 밀려났다. 2006년에 가동된 도꾜 공업 대학(TIT)의 TSUBAME (NEC와 선 마이크로시스템 사 제품)가 9 위이다. 일본의 이화학(理化學) 연구소(理硏=RIKEN)에 따르면 일본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슈퍼컴은 매년 성능이 1.6 배씩 향상되는 데 비하여, 세계는 1.8 배씩 향상되고 있어, 일본은 장기 저락 경향에 있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일본의 학술계는 “5년 후에 세계 최고속”을 목표로 차세대 슈퍼컴의 설계를 리껜의 주도로 시작하였다. 개발 실시 본부장은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리껜 이사장이며, 2012년까지 1154억 옌을 투입하여 세계 최고속을 탈환한다는 국가 프로젝트이다.  이에 대하여 아사히 신문 2006년 11월 24일자 (43327호) 보도에 따라 알아본다.

  차세대 슈퍼컴은 1초에 1경 회 (京은 10의 16승이며, 1조의 1만배로서, 10페타와 같은 뜻)의 계산 성능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경속 컴퓨터’나 ‘페타컴’이라는 애칭이 붙어 다닌다. 세계 최고속인 슈퍼컴이 탄생하면, 각지의 계산기의 성능도 향상되고, 일본의 계산 능력을 단번에 끌어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개발을 통한 인재 육성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와 리껜의 생각이다.

  기초 연구 뿐 아니라 “모세혈관 레벨에서 인체를 흐르는 혈액의 시뮬레이션을 한다”, “지진이 염려되는 지역에 대하여 빌딩이나 교통에 미치는 피해를 계산하여, 어떤 대책이 가장 유효한가를 고른다” 등 여러 용도에 쓰이는 범용 슈퍼컴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슈퍼컴 기술은 일상 쓰는 제품에도 파급된다. 휴대 전화에 쓰이는 고도의 반도체 츂은 몸체가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데 이 기술은 원래 슈퍼컴용으로 개발된 것이며, 게임기나 디지털 카메라에 응용되는 기술도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 2006년 11월 10일자 (26530호) 보도에 의하면, 국내 연구용 슈퍼컴 가운데 세계 500위권에 드는 것은 기상청,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등에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성능이 좋은 기상청의 것은 세계 22위로 계산 능력이 18.3 테라플롭스이며, 국내 슈퍼컴의 계산 능력을 모두 합쳐도 144 테라플롭스로서  ‘블루진 L’의 반이 되지 않는다. KISTI의 현재의 연구용 슈퍼컴 3호는 4.3 테라플롭스이며, 2007년 상반기에 들어올 슈퍼컴 4호의 계산 능력은 최소 30테라플롭스이고, 2년 뒤에 200테라플롭스로 성능이 올라갈 것이라 한다. 그 안에 들어가는 중앙연산처리장치(CPU) 수도 펜티엄급 프로세서 1만 개라 한다.

  바야흐로 각국은 슈퍼컴의 능력 향상의 경쟁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맺음말:  20 세기 수학의 회고와 전망


  우리는 역사에서 교양과 전망과 겸손을 배운다고 누군가 말했다.

  20 세기 중반에 학문을 시작한 저자에게는 수학은 추상성, 일반성, 무한성, 공리성, 포괄성 등을 지닌 거대한 조직으로 보였다. 이제 새로운 세기가 되어 누구나 지난 세기에 대한 회고와 21 세기에 관한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어떤 이가  말한 것처럼 회고는 어렵고 예측은 그래도 약간 쉽다. 회고가 어려운 것은 의견의 차이 때문일 것이며, 예측이 쉽다는 것은 아직 미래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977년경까지의 20 세기의 순수수학의 회고와 동향에 관하여는 부르바끼의 입장에서 본 [Dieudonné 1977a,b]가 있다.  그렇다면 21 세기의 수학은 어떠하리라 쉽게 예측할 수 있을까?

  수학이 무엇인가 말하기는 어려우나,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수학은 연역적 이론을 세우는 art (예술 또는 기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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