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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본 도자기 여행: 규슈 7대 조선 가마편

그로밋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3.18 1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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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 조선 사기장, 낯선 땅에서 조선의 혼을 빚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미천한 출신을 감추고 다이묘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차와 찻잔, 다도를 이용했고, 특히나 고아하고 격조 높은 조선 찻사발을 몹시 갖고 싶어 했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에 참여했던 다이묘들은 수많은 조선 사기장을 납치하고, 조선 도자기를 약탈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의 도자기 예술을 크게 발달시키는 계기가 된다.
『유럽 도자기 여행』3부작에 이은 『일본 도자기 여행』시리즈는 낯선 땅에서 더욱 절실하게 도자기를 빚었을 조선 사기장들이 일군 일본 최고의 가마와 그들의 후손들이 이어 나가고 있는 조선 도자기의 전통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일본 도자기 여행: 규슈 7대 조선 가마 편』은 일본 규수 지방에서 이름난 조선 가마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조선 사기장이 만든, 일본의 미의식을 반영한 도자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들은 처음에는 조선의 흙과 비슷한 흙을 찾아 조선에서 만들던 방식 그대로 도자기를 구웠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점차 일본 각지의 특색과 그곳 주류 계급의 문화와 융합되어 조선 도자기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개성을 입게 된다.
규슈 지방의 조선 가마는 번주에게 바칠 헌상용품을 주로 제작하면서 기품 있고, 특색 있는 고급 도자기를 생산하는 가마로 전문화되었다. 단정하고 기품 있는 형상과 절묘한 유약이 조화를 이루는 다카토리야키, 도자기 표면에 유약이 자연스레 흐르는 듯한 세련된 멋의 아가노야키, 정교한 양각과 투각 기법으로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 주는 미카와치야키, 청화백자와 국화 무늬 세공의 세밀한 장식에서 두각을 보이는 나카사토야키, 다양한 색채의 유약을 발라 구운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린 화려한 도자기를 선보이는 아리타야키 등은 그 형태와 색감, 질감 면에서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었고, 지금까지도 일본 최고 수준의 가마로 인정받고 있다.

3. 화려한 도자 강국의 이면에 감춰진 잔혹한 진실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일본에서는 전통 문화, 특히 도예에 대한 재평가 운동이 일어났고 파리박람회와 비엔나박람회를 통해 일본 도자기를 알리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도자기 판매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일본 도자기 업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에서 배워 온 새로운 도자기 제조기술을 전통적인 도자기 제작법에 접목시켜 세계 최고의 도자기 왕국으로 발돋움했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솜씨 좋은 사기장들을 빼앗긴 이후 도예 기술의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우리의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더 안타까운 역사적 비극은 조선인 사기장들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는 도자기가 일본의 근대화와 아시아 침략을 지원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2016년은 일본에서 도조로 숭상하는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인 사기장들이 가마를 일군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이 책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들의 삶과 그들이 만든 도자기를 조명하고, 우리 도자기와 일본 도자기의 뒤바뀐 위상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되짚어 본다.



책 속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지칭하는 것은 비록 한 측면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더 명확하게 규정하려면 ‘조선 도자기 및 사기장 약탈 전쟁’이라 해야 한다. 일본은 조선의 사기장 대다수를 납치하고 도자기를 약탈함으로써, 다시 말해 도자 산업 전체를 강탈해 자신들의 나라로 통째로 이전시키는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도적질로 기간 산업을 발전시켰다. 게다가 일본 도자기는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막대한 부를 이룩해 메이지 유신이 추진될 수 있는 자본을 구성했고, 일본은 이를 근간으로 아시아 침략에 다시 나서게 되는 것이니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점령한 힘의 바탕에는 바로 도자기가 있다. ---「PROLOGUE · 밤은 길고 나는 천 년 뒤를 생각하네」중에서

구로다 나가마사는 도자기를 만들고 있던 팔산을 납치하라는 명을 내렸고, 수하를 시켜 팔산과 그의 아들을 후쿠오카 현 북서부에 해당하는 지쿠젠국에 있는 에이만지, 지금의 노가타 시 동쪽 다카토리산 기슭에 데려가 정착하게 했다. 이때 나가마사는 팔산을 사무라이 계급으로 책봉하면서 50석의 녹봉과 함께 다카토리란 성을 주고, 이름도 하치조로 바꾸게 했는데, ‘다카토리’라는 성의 발음은 이들이 처음 정착한 산 이름과 같지만 고려인高麗人에서 ‘高’ 자를, 응취산鷹取山에서 ‘取’ 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팔산 가족은 1614년에 에이만지 인근 우치가이소로 이주해 10여 년 동안 생활했다. 이 시기의 도자기는 이전 것에 비해 보다 세련되게 변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CHAPTER 1 · 후쿠오카, 팔산의 다카토리 가마」중에서

일상과 어우러지며 은근한 존재감을 내뿜는 북한의 회령자기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가라쓰로 전해지면서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찻사발이나 차이레 등으로 뿌리내렸다. 다카토리야키나 아가노야키, 고다야키는 회령자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도자 표면 위에 여기저기 유약이 자연스레 흘러내린 자국이다. 유약은 화산에서 마그마가 흘러내린 것처럼 전혀 인위적이지 않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만 북방 회령자기의 거칠고 남성적인 기풍은 다카토리야키나 아가노야키에서는 좀 더 세련되어지고 고분고분한 맛으로 변했다. 고다야키는 아가노야키와 같은 뿌리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해 아가노야키의 몸체에 상감 기법을 더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CHAPTER 2 · 구마모토, 존해의 고다 가마」중에서

일본으로 납치된 조선 사기장들은 계단식 오름가마를 설치하여 고온을 유지하며 도자기를 대량 생산했다. 제작 방식도 물레를 발로 돌리면서 손으로 두드리는 조선의 기법 그대로였다. 초반에는 조선의 감각과 미학으로 식기나 옹기 등 소박하고 질박한 느낌의 생활자기를 만들었으나 곧 고급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대다수 다이묘와 주류 계급의 취미에 딱 맞아떨어졌다. 막부의 실력자들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미 조선의 찻사발에 매혹당해 있던 터라 가라쓰의 찻사발들은 인기를 얻으며 일본 전역으로 팔려 나갔다. 조선 사기장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가라쓰야키는 일본 3대 다기로 성장하면서 그 유명세가 높았다. ---「CHAPTER 3 · 가라쓰, 또칠의 나카사토 가마」중에서

미카와치는 1699년 왕실 어용 가마로 지정되면서 다이묘의 각별한 보호와 감시 아래 청화백자, 양각과 투각 등 정교하고 다양한 도자기들을 구워 냈다. 신분도 격상되어 사무라이처럼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허용되었다. 미카와치의 명성이 높아지자 비법을 캐내 가려는 다른 지역 사기장들의 염탐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기술 탈취 시도는 18세기 초반 무렵에 무려 50~6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하니, 도자기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각광받는 ‘하이테크 산업’이었는지 알 수 있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번은 ‘잇시소덴’이라는 제도를 두어 한 명의 자식에게만 제조법을 전수하도록 제한했고, 어용품을 올리고 남은 것은 판매하지 않고 깨뜨려서 땅속에 파묻도록 했다. ---「CHAPTER 4 · 나가사키·사세보, 고려 할머니와 거관의 미카와치 가마·나카노 가마」중에서

일본 도자기 종사자들이 도자기의 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도조 이삼평은 정유재란의 끝 무렵인 1598년 일본에 끌려갔고 처음에는 가라쓰 부근에서 도기를 제작하다가 다쿠에서 10여 년쯤 머무르며 가라쓰 도자기의 한 종류인 ‘다쿠가라쓰’를 만들었다. 그 후 그는 조선의 것과 같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흙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리타의 이즈미산에서 백자광을 발견한다. 그의 나이 38세가 되던 1616년 무렵 변두리 시라카와 가마에서 덴구다니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마침내 일본 최초의 백자 도자기, 이전의 일본 땅에서는 결코 만들 수 없었고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만드는 방법도 몰랐던 그것이 조선 땅이 아닌 일본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CHAPTER 5 · 아리타·이마리의 이삼평과 백파선 그리고 3대 명가」중에서

하기야키의 큰 특징은 질의 부드러움과 흡수성에 있다. 가마의 낮은 불에서 오랜 시간 천천히 구워 제품의 감촉이 부드럽고, 또한 질이 덜 구워졌기 때문에 무거우며 보습성을 가진다. 바로 그래서 오래 사용하다 보면 차나 술이 침투하고 그릇의 색상이 달라진다. 이전이 다인들 사이에서 ‘차나레’라고 불리는데, 이는 다인과 찻사발이 서로 조우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그만큼 정이 들어 애지중지하게 된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곁에 두는 찻사발은 오랜 세월을 같이 견뎌 준 문방사우와 같은 동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격조 높은 찻사발로 평가받는 하기야키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릇의 변화가 계속되어 깊고도 미묘한 맛이 난다. ---「CHAPTER 6 · 하기·나가토, 이작광·이경 형제의 후카가와 가마·코라이사에몬 가마」중에서

사쓰마야키는 시로모노, 구로모노, 자기의 3가지로 분류된다. 시로모노는 옅은 황토에 무색 유약을 바른 도기며, 구로모노는 검은색이나 갈색 유약을 바른 도기다. 가고시마 지역의 흙은 두꺼운 화산재가 많이 덮여 있어서 철분이 많은 흑토가 대부분이라 조선에서와 같이 정결한 백자를 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쓰마의 조선 사기장들은 초기에는 검은색 질그릇을 구울 수밖에 없었고, 영주에게 바칠 진상품만을 조선에서 가져온 백토로 구웠으나 이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곧 바닥났다. 사기장 박평의와 심당길은 백토를 찾으러 10여 년을 돌아다닌 끝에 1614년 마침내 기리시마 산의 이부스키에서 양질의 백자토를 발견했고, 시로모노 곧 오늘날의 사쓰마 도자기를 만들어 냈다. ---「CHAPTER 7 · 사쓰마 미야마, 심수관·박평의의 나에시로카와 가마」중에서

그동안 우리 학계는 일본의 본격적인 도자 문화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사기장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의 아리타와 도자기의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삿초동맹군이 막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도자기 수출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있던 사가 현이 막강한 화력의 암스트롱 대포와 근대 함선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다. 따라서 일본에 넘어간 조선 도자기 연구는 조선 출신 사기장에 대한 연구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본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현대 일본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풀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PILOGUE · 20년 전의 나는 왜 아리타로 갔을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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