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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스카티 피펜에 대한 고찰.gisa

ㅇㅇ(58.237) 2017.10.25 06: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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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볼프로젝트 김윤호] 오프시즌임에도 요즘 NBA는 여전히 뜨겁다. 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나 이야깃거리가 계속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전세계 NBA 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은 소재가 있었으니, 바로 샤킬 오닐과 스카티 피펜의 설전이었다. 샤킬 오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LA 레이커스 역대 베스트 5가 시카고 불스 역대 베스트 5를 50점차로 이긴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자 피펜은 “샤킬 오닐은 LA에서 3개의 반지를 얻었지만, 난 6개를 얻었다”라며 맞받아쳤다. 이에 오닐은 “시카고의 파이널에서 당신보다 론 하퍼, 스티브 커가 더 잘했다. 당신은 그다지 한 일이 없다”라며 반격했다. 한 술 더 떠서 오닐은 “피펜 당신은 영원히 2인자일 뿐이다”라고 디스했다.

여기서 굳이 불스와 레이커스의 전력을 비교하고 가상 대결의 승자 예측을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다만 샤킬 오닐이 꺼낸 말 중에서 “피펜 당신은 영원히 2인자일 뿐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보자. 이는 긍정적으로 칭찬한 멘트가 아니라, 피펜이 팀의 1인자의 위치에서 승리를 이끈 적이 없다고 비꼰 것이며 피펜이 1인자로 불릴 만한 선수는 아니라고 꼬집는 것이다. 피펜에 대한 수식어 중 “역대 최고의 2인자”라는 말은 그가 1인자 마이클 조던을 도와서 시카고 왕조의 건설에 절대적 기여를 했다는 찬사이지만, 그 표현을 사용한 오닐은 피펜에 대한 칭찬을 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

미국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도 피펜에 대한 논의는 뜨거웠다. 그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근본적 역량에 이르기까지 피펜을 소재로 팬들 간의 논쟁이 펼쳐졌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핵심은 하나로 요약될 수 있다. 과연 최고의 2인자라는 말이 피펜에게 적합한 지의 여부이다. 조던의 곁에 있어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피펜이었지만, 그의 경력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피펜이 진정 1인자에 견줄 만한 위치의 선수였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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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굴드와 순욱에게서 보는 2인자의 정의

여기서 잠시 농구 외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굳이 농구 이야기가 아닌 역사 이야기, 사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2인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짚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2인자를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 있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 아닐까 생각한다. 왕의 나라에서 1인자가 왕이라면 2인자는 조정을 지배하는 재상이 된다. ‘킹 메이커’라는 표현 또한 2인자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어구일 것이다. 2인자는 단순히 1인자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리더를 충실히 따르기만 사람은 보좌역 혹은 부하에 불과하다. 2인자라면, 1인자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보태는 것은 물론, 1인자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1인자의 부담을 덜면서 그의 약점을 채워주는 과정을 통해 1인자를 빛내는 것이 2인자의 역할이다.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2인자는 1인자의 위치까지 탐내지 않고 킹 메이커로서의 자기 자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전면에서 튀어서는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적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1인자의 위치를 안정시키는 것, 1인자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는 것 역시 2인자의 역할 중 하나이다. 만일 2인자가 1인자를 욕심 낸다면, 그것은 반역이 되고 명분을 상실시킨다. 이는 1인자라는 위치의 명분을 상실시킬 뿐만 아니라 현 구조까지 무너뜨릴 것이다. 동시에 킹 메이커라는 지위도 잃게 될 수 있으며 1인자를 올려놓기 위한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2인자는 1인자의 명분을 지키면서 자신의 실리를 추구한다. 어찌 보면 2인자는 1인자의 위치를 건드리지 않고 조직을 이끄는 묘한 매력을 지닌 자리라고 생각한다.

1인자를 끌어올린 2인자를 떠올려보자면, 일단 토니 블레어를 영국의 총리로 만들고 위기의 노동당을 다시 여당의 위치로 회복시킨 필립 굴드가 먼저 떠오른다. 1979년에 마가렛 대처가 수상이 된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에 대처하지 못하고 줄곧 야당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노동당이었지만, 굴드가 블레어의 총리 부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노동당이 다시 의회와 내각을 장악할 수 있었다. 재능도 있고 본인만의 정치 철학도 있었지만, 노동당과 영국 전체를 위한 비전을 잡아내지 못했던 블레어에게 현실적 조언과 도움을 더해준 굴드는 노동당 재집권의 단연 일등 공신이다. 블레어의 머릿속에 있었던 ‘제3의 길’*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제3의 길’은 영국의 사회학자인 앤써니 기든스의 저서로 유명하다. 기든스는 토니 블레어의 사상적 스승이자, 정책 브레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물론 당시 영국 정계에서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혔던 피터 만델슨의 역할도 컸고 실제로 만델슨이 대중들에게 더 익숙할 것이다. 언론 앞에서 모습을 보인 건 늘 만델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노동당의 전략과 방침을 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물론 보수당에 대한 방어 전략까지 구축한 굴드의 공적 또한 크다. 무엇보다 언론 앞에서 보여지는 만델슨의 활동 전략을 막후에서 구상한 건 굴드였으니, 굴드의 공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노동당의 진짜 2인자는 필립 굴드가 되는 게 합당할 것이다.

이렇게 영국 정계에서 인정받은 굴드였지만, 그는 수상 자리를 욕심내지도 않았고 정계의 이슈 메이커가 되지도 않았다. 지난 2011년에 61세의 나이로 운명할 때까지 그는 정치 컨설턴트로 남았을 뿐, 대중 앞에서 빛나는 스타는 아니었다. 반면 만델슨은 현재 영국 노동당의 상원의원이자, 유럽연합(EU)의 무역위원회장으로 대중 앞에 나선 정치인이다. 그러다 보니 만델슨은 주변에 적이 많아, 늘 정치 현장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노동당의 킹 메이커에 만족한 굴드와 달리, 만델슨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을 넓히고 있는 만큼 영국 정부의 1인자 욕심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토니 블레어와 필립 굴드, 피터 만델슨의 관계와 유사한 사례를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조조와 순욱, 곽가이다. 재능은 있지만 출세의 한계가 있었던 조조를 난세의 간웅으로 끌어올린 두 명의 참모를 꼽으라면 순욱과 곽가일 것이다. 물론 조조를 보좌하며 하북 제패에 큰 공을 세운 곽가의 공로는 상당하다. 하지만 헌제를 옹립하여 명분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후한 말을 평정하는 거대한 전략을 세운 것은 순욱이다. 순욱은 조조를 따라 직접 전장을 따라다닌 적은 없지만 조조가 전장에서 승리를 할 수 있는 필승 전략을 구현해냈다. 덕분에 조조는 후한 말의 난세를 평정하고 삼국 시대의 주축이 될 수 있었다. 조조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략과 전술을 순욱이 채워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훗날 조조는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일등 공신으로 순욱을 꼽았다. 하북의 거대한 영토를 손에 넣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곽가가 아닌 순욱을 꼽았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곽가는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모사는 될 수 있어도 천하를 경륜하는 2인자가 되기에는 순욱에 미치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게다가 곽가는 피터 만델슨처럼 해 주변에 적을 많이 두는 스타일이어서 조조의 안정적인 2인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권력 욕심을 내지 않고 조조가 얻을 수 있는 명분과 실리의 극대화를 위해 능력을 활용한 순욱은 단연 삼국지 최고의 2인자 중 한 명이다.

 

타의적 2인자, 조던의 짐을 덜기엔 부족했다

이제 위의 사례와 정의에 근거하여 피펜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단 피펜이 정말 자신이 2인자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그렇다기 보다는 조던 자체가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2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피펜의 기량이 올라오기 전인 80년대 후반의 조던은 그야말로 전지전능에 가까웠다. 데뷔 시즌인 1984-85시즌부터 1989-90시즌까지의 조던은 매년 올스타에 선정되는 것은 물론, 득점왕을 네 번(1987 ~ 1990)이나 차지한 특급 스타였다. 게다가 VORP(Value Over Replacement Player) 부문 1위를 세 번(1988 ~ 1990), BPM(Box Plus-Minus) 부문 1위를 네 번(1987 ~ 1990) 차지하며 확고부동한 간판 스타였다. 우승 반지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조던은 이미 슈퍼스타였다. 그런 조던에게 피펜이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90년대 이후의 피펜은 조던의 부담을 얼마나 덜어주었을까? 선수가 공격에서 차지하는비중을 나타내는 유시지 퍼센티지(Usage Percentage)를 보자. 조던의 유시지 퍼센티지는 피펜의 기량이 상승하기 전에도 리그 1위 수준이었다. 그만큼 팀 공격에서 많은 부담을 짊어졌다는 의미이다. 만일 피펜이 조던의 부담을 제대로 덜어줬다면, 조던의 공격 부담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사실이 아니다. 조던의 유시지 퍼센티지는 90년대 이후에도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80년대의 조던이 유시지 퍼센티지에서 1위를 세 차례(1987, 1989, 1990) 차지했는데, 90년대에는 다섯 번(1992, 1993, 1996, 1997, 1998)이나 1위에 올랐다. 특히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한 1996년부터 1998년까지의 조던의 유시지 퍼센티지는 각각 33.3%, 33.2%, 33.7%로 80년대와 차이가 거의 없다. 오히려 포인트가드 역할까지 했던 1988-89시즌*의 32.1%보다도 높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피펜이 공격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1988-89시즌에 조던은 포인트가드 역할을 수행하며 평균 32.5득점 8.0리바운드 8.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의 평균 출장시간은 40.2분으로 NBA 전체 1위였다.

가장 큰 이유는 피펜이 조던을 도와줄 공격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외곽슛 부문에서는 더더욱 도움을 주지 못했다. 조던의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2.7%로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준은 못 된다. 그런데 피펜도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2.6% 정도로 조던보다 근소하게 낮다. 그나마 조던은 3점슛 라인이 1미터 가량 당겨졌던 1995-96시즌에 42.7%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피펜은 3점슛 성공률이 40%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995-96시즌에 기록한 37.4%가 최고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팬들을 늘 불안하게 만들었던 자유투(시카고에서 12시즌 통산 69.3%)로 인해 피펜의 돌파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무엇보다 피펜이 조던의 짐을 제대로 덜어 주었다면, 조던의 리바운드나 어시스트가 줄어들더라도 종합적인 팀 내 기여도는 이전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상승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앞서 말한 2인자의 정의에 부합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BPM(Box Plus-Minus)과 VORP(Value Over Replacement Player)라는 개념을 이용해보도록 하겠다. 쉽게 말해서 BPM은 리그 평균 수준의 동료들과 함께 뛰었을 때 코트 위에서 생산해내는 득실 마진이고, VORP는 리그 평균 선수와 비교한 가치 수준이다. BPM이나 VORP는 득점이나 리바운드, 어시스트와 같은 1차적 기록 외에도 실질적으로 선수가 만들어낸 점수 차를 토대로 형성되는 기록이기 때문에 기록이 다소 감소하더라도 BPM이나 VORP는 증가할 수 있다. 드레이먼드 그린(골든 스테이트)과 같은 수비형 선수들의 BPM이 높게 나오는 것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실제 기록을 보면 조던의 BPM과 VORP는 오히려 감소했다. 90년대 이후 조던의 BPM이 10을 넘어간 시즌은 1990-91시즌 단 한 번밖에 없다. 80년대에는 심심치 않게 VORP가 10을 넘어갔지만 90년대 이후로는 10을 넘어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는 피펜의 힘으로 조던을 치켜세웠다기보다는 조던의 기여도와 공적을 조던 외의 나머지 팀원들이 골고루 가져갔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해석이다. 그것이 필 잭슨 감독과 텍스 윈터 코치의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피펜이 1인자의 짐을 덜어서 그를 더 높여주는 플레이는 보여주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2인자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 면이 존재한다.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조던의 재능을 극한의 시점까지 살리는 것이 아니라, 조던의 비중을 최소화하는 전술임을 다시 한 번 알아두자.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빅맨의 패스 능력을 최대화하는 전술이다. LA 레이커스에서 샤킬 오닐과 파우 가솔이 보인 플레이를 기억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1인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피펜은 배트맨을 돕는 로빈의 역할에 만족했을까? 그렇지 않다. 조던과 함께 했을 때의 피펜은 조력자에 만족했지만, 조던이 없었던 때의 피펜은 에이스가 되기를 원했다. 조던이 잠시 팀을 떠났던 1993-94시즌에도 그랬지만, 시카고를 떠난 이후의 피펜은 2인자의 모습과 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떻게든 조던만 없다면 팀의 1인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피펜이 보여준 모습은 감독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에이스와 거리가 멀었다. 토니 쿠코치에게 마지막 작전을 맡겼다는 이유로 경기장을 박차고 나갈 때부터 피펜은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신임을 잃기 시작했다. 사건 직후에 언론을 통해 사과했지만, 적어도 피펜이 조던을 대신할 그릇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졌다. 불스 왕조의 주축이었던 호레이스 그랜트는 “피펜 밑에서는 뛸 수 없다”며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했다. 게다가 1994-95시즌에 팀이 34승 31패로 주춤할 때, 피펜은 자신이 위기를 타개하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조던의 복귀만을 기다렸다. 스스로 1인자의 자격을 내놓은 셈이다.

무엇보다 시카고를 떠난 이후의 피펜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휴스턴으로 이적한 피펜은 자신이 팀 공격의 1인자가 되지 못하자 언론을 통해 대놓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찰스 바클리는 피펜이 자기만 생각한다며 그를 꼬집었다. 여기에 피펜은 지지 않고, 바클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며 받아쳤다.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와 한 팀이 된 피펜이었지만, 그는 이들의 조력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올라주원 중심의 팀 공격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불화를 일으켰고, 결국 단 한 시즌 만에 쫓겨나듯이 포틀랜드로 이적해야 했다. 바클리가 피닉스에서 휴스턴으로 이적한 이후에 리바운드와 수비에 전념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피펜의 언행은 그저 헛된 욕심에 불과했다. 포틀랜드로 이적한 이후에는 팀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부채질을 하며, 리더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 2000년대 초반의 포틀랜드는 도저히 수습이 안 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라쉬드 월러스, 본지 웰스 등 한 성격 하는 악동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틀랜드의 별칭은 철창 블레이저스(Jail Blazers)였다. 피펜은 이러한 팀 분위기를 수습하기는커녕 다른 악동들과 같이 에이스 욕심을 부렸다.

결과적으로 피펜은 1인자가 될 그릇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더 빛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그릇을 몰랐는지, 피펜은 팀의 중심이 되기만을 소망했다. 조던의 그늘 밖에서의 피펜은 만만찮은 야망의 소유자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언론을 통해 자신이 “르브론 제임스 이전의 르브론 제임스와 같은 존재”라며 큰소리쳤다. 자신이 최고의 스몰포워드라는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다.

 

정말 당대의 1인자라 불릴 만 했는가?

그렇다면 피펜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당대의 1인자라고 불리기에 어색함이 없는 선수였을까? 정말 조던이 없었다면 자신이 1인자가 되는 게 합당했고, 당대의 르브론 제임스라고 불려도 될 만한 수준이었을까? 기록적인 부분을 통해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먼저 BPM(Box Plus-Minus)과 VORP(Value Over Replacement Player)로 살펴보겠다. 비교대상은 같은 포지션의 그랜트 힐과 르브론 제임스로 삼았다. 피펜의 최전성기의 BPM은 1993-94시즌에 기록한 8.3이고 VORP는 1994-95시즌에 기록한 7.4가 최고치이다. 경쟁자들의 최고 수치, 즉 커리어 하이 기록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선수스카티 피펜그랜트 힐르브론 제임스
BPM8.38.013.0
VORP7.47.911.6

결론부터 말하면, 피펜은 힐과 대등한 수준이나 르브론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르브론 제임스의 BPM과 VORP 기록은 역대 최고 수준의 페이스이기 때문이다. 그의 VORP 기록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한 선수는 마이클 조던밖에 없다. 참고로 1980년대 이후, VORP가 10 이상인 선수는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데이비드 로빈슨, 그리고 크리스 폴*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피펜이 스스로를 르브론 제임스와 비교한 건 과한 행동이었다.

*80년대 이후를 통틀어서 VORP가 10을 넘어간 포인트가드는 크리스 폴이 유일하다. 이 때가 08-09시즌이었는데, 불운하게도 MVP는 고사하고 All NBA 퍼스트팀에도 뽑히지 못했다. 최전성기의 코비 브라이언트와 드웨인 웨이드가 버틴 까닭이었다. 어쩌면 CP3는 되려 과소평가당하는 포인트가드일지도 모른다.

그랜트 힐과의 비교는 어떨까? 둘 중 누가 더 낫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다만 힐의 경우, 팀의 슈터였던 앨런 휴스턴이 뉴욕 닉스로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위력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조던의 후계자 경쟁에서 앞서나갔다는 특이 사항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피펜보다 인기도 많았다. 게다가 시카고와 달리 당시의 디트로이트는 팀 시스템이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고, 플레이오프에 오르기도 쉽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힐이 피펜에게 뒤질 것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피펜이 1인자 자리를 자부하기에는 그랜트 힐의 존재감이 너무 강했다.

선수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PER(Player Efficiency Rating)로 파악해 보더라도 매한가지이다. 피펜은 시즌 PER이 25를 넘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조던 없이 시즌을 치렀던 1993-94시즌에 기록한 23.2가 최고 수치이다. 조던이 없는 상황에서 PER이 23.2가 최대치라면 과연 피펜의 그릇이 한 팀을 아우를만한 그릇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반면 그랜트 힐의 PER* 커리어하이는 25.5(1996-97시즌)로 조던에게 대항할 만한 그릇이었음을 입증한다. 참고로 르브론 제임스의 커리어 하이는 무려 31.7(2008-09시즌)인데 이는 한 시즌 최고 PER 기록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일반적으로 PER이 20을 넘어가면 올스타, 25를 넘어가면 슈퍼스타 레벨로 분류된다. 피펜의 경우 시카고 시절의 통산 PER이 19.6이지만 그랜트 힐의 디트로이트 시절 통산 PER는 22.4이다. 르브론의 경우 클리블랜드 시절 통산 26.8, 마이애미 시절에는 통산 29.6을 기록했다.

그 외의 다른 사항들을 보더라도 피펜이 확고한 1인자의 그릇이라 불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90년대는 일단 센터들의 전성시대였고, 특급 센터들이 주목을 많이 받았다. 90년대 초중반에는 휴스턴을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하킴 올라주원을 포함해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등이 조던 다음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선수들이었다. 9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불세출의 엔터테이너 샤킬 오닐이 조던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피펜이 시대의 1인자를 논하기에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았다. 오닐이 피펜에게 보인 자신감은 당대의 존재감을 토대로 한 자신만의 프라이드에서 나온 셈이다.

하나 더 논하자면, 90년대는 상대적으로 스몰포워드의 존재감이 모자랐던 시기이다. 평균 득점이 20득점을 넘어가는 스몰포워드를 찾기가 쉽지 않던 시대였다. 센터와 슈팅가드들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주를 이룬 반면, 스몰포워드와 포인트가드들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나마 포인트가드는 90년대 이후에도 게리 페이튼, 존 스탁턴, 제이슨 키드 등의 걸출한 인물들이 계속 배출되었지만 스몰포워드는 그렇지 못했다. 90년대 초반에 골든 스테이트의 런앤건을 이끌고 NBA 드림팀에도 뽑혔던 크리스 멀린은 90년대 중반 이후에 득점력이 크게 감소했고 다미닉 윌킨스는 90년대 이후로 급격하게 하락세가 왔다. 그나마 글렌 라이스가 득점력 있는 스몰포워드의 명맥을 이어간 정도였다. 그리고 NBA 올스타에서 피펜과 힐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스몰포워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피펜의 존재감은 그러한 시대적 환경으로 인한 반사 이득의 산물일 지도 모른다. 현대 NBA의 슈팅가드 기근 속에서 제임스 하든이 독보적으로 빛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데, 하든이 독보적이었던 데에 반해 피펜은 그렇지 못했다.


폄훼가 아닌 재평가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피펜은 타의적 2인자이다. 스스로 선택한 2인자가 아니라, 조던의 존재로 인해 강제적으로 선택된 자리였다. 물론 피펜이 조던과 시카고 불스 왕조를 위해 세운 공로는 부정하기 어렵다. 누가 뭐래도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고, 일리걸 디펜스(Illegal Defense) 룰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지역 방어를 펼쳤던 선수이기도 했다. 다만 그의 1인자 욕심은 과했고, 2인자에 만족하지 못한 야망이 결과적으로 본인을 깎아먹는 결과만 낳았다. 2인자, 혹은 참모에 만족했다면 ‘2인자’ 피펜은 더욱 빛났을 지도 모른다.

필자가 이렇게까지 피펜에 대한 고찰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피펜 한 명만 돌아보기 위함이 아니다. 21세기 이전의 선수들은 현역 선수들보다 미디어에 덜 노출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기에는 기억과 현실 간의 괴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상세한 자료를 통해 검증하고, 해당 선수의 플레이를 자세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피펜을 굳이 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피펜을 포함해, 과거 선수들에 대한 정확한 재평가는 필요하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평가들이 학계에서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NBA에 발자취를 남긴 선수들에 대한 재평가 역시 이뤄져야 할 일이다. 당대에 과소평가되거나 과대평가된 선수들이 분명 존재할뿐더러, 그들의 업적이 후세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평가를 통해 좀더 정확한 선수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http://bizballproject.com/?p=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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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4522 코두순 지안나 롯데타워에서 뛰어내리며 행타임 섹스 ㅇㅇ(116.212) 00:56 26 1
7084521 코두순 드래프트데이때 알몸으로 출연후 코끼리팬티 착용 ㅇㅇ(121.176) 06.08 23 0
7084520 코두순 바람풍선 후장에 뒤치기때리고 오르가즘후 기절 ㅇㅇ(121.176) 06.08 18 0
7084501 세아 척추 부수는 직업 아님? ㅇㅇ(185.160) 06.07 128 0
7084499 Celtics in 4 ~ ㅇㅇ(49.173) 06.07 25 0
7084498 [1] ㅇㅇ(125.135) 06.07 46 0
7084495 ㅇㅅㅋㄷㅅ ㅇㅇ(223.39) 06.07 27 0
7084494 돌싱 한거없이 벌써 5회네 ㅇㅇ(59.28) 06.07 32 0
7084493 현숙빠는 노괴들 아직 살아있누 ㅇㅇ(128.1) 06.07 31 0
7084492 종규는 볼수록 비호다 ㅇㅇ(59.28) 06.07 28 0
7084491 규덕이는 첨부터 혜경이네 ㅇㅇ(59.28) 06.07 27 0
7084487 클 쿄 농차 쓰는법좀 ㅇㅇ(185.160) 06.07 32 0
7084486 17영숙 술쳐먹으니까 더 낫네 ㅇㅇ(185.114) 06.07 45 0
7084485 규온이 젤 낫지 않냐 ㅇㅇ(185.114) 06.07 29 0
7084483 미국 미식축구 인재들이 축구하면 씹어먹는다 < 개소리인것같다 [1] ㅇㅇ(118.235) 06.07 53 0
7084473 골라보셈 N갤러(114.199) 06.06 27 0
7084472 ㅅㅂㅋㅋㅋㅋ N갤러(180.224) 06.06 30 0
7084471 소방관 Kobe Bryant [3] ㅇㅇ(146.70) 06.06 91 4
7084467 영수 영식 키차이 ㅇㅇ(128.1) 06.06 71 2
7084466 영수 키보소 ㅇㅇ(128.1) 06.06 79 1
7084461 nba갤 망함? N갤러(218.238) 06.05 69 0
7084459 나솔 10분전 ㅇㅇ(118.235) 06.05 24 0
7084454 파이널 언제 열리냐? N갤러(119.197) 06.05 28 0
7084453 제이비 폴 뚜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ㅇㅇ(49.173) 06.05 21 0
7084452 제이티 폴 뚜뤼이이이이이이이 ㅇㅇ(49.173) 06.05 20 0
7084438 16옥 재산 100억 맞냐 [6] ㅇㅇ(146.70) 06.04 139 6
7084437 짤 몇개 가져와서 개소리쓰는애들은 무시해도됨 농구는 실패의스포츠임 [1] 릅신팬(118.235) 06.04 115 0
7084427 와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리형 바로 나옴 [2] N갤러(58.121) 06.03 111 1
7084422 DJ 두숙 드랍 더 헬기.gif [5] ㅇㅇ(116.212) 06.03 274 11
7084421 대구 코비 브라이언트 [6] ㅇㅇ(116.212) 06.03 538 12
7084420 GOAT와 물로켓의 파이널 상대 명전 비교 [6] ㅇㅇ(182.161) 06.03 626 13
7084419 뭉찬 요늘 재밌냐 [5] ㅇㅇ(182.161) 06.03 61 6
7084413 댈러스팬인데 보스턴이 우승할거 같음. N갤러(211.247) 06.02 68 0
7084406 80년대 데뷔한 애들이 물로켓인 이유 [2] ㅇㅇ(118.235) 06.02 112 4
7084405 샤킬오닐은 유잉도 못막았냐?? [2] betboom(222.108) 06.02 91 0
7084381 아이쒸발 좀 닥치자 ㅇㅇ(49.173) 06.01 57 0
7084380 아 농구 NBa고수형님들 이것좀봐주세요 N갤러(175.213) 06.01 50 0
7084379 포징 안 나오는 보스턴 vs 댈러스 어떻게 생각하심? [2] .(1.215) 06.01 89 0
7084378 펨코 옛날 코비글보다가 빵터짐 ㅋㅋ [1] N갤러(118.235) 06.01 102 2
7084377 ㅋㅋ N갤러(112.167) 06.01 41 0
7084376 늡갤 뉴비들 필독.jpg ㅇㅇ(221.168) 06.01 80 0
7084375 코비 20년후 모습 [6] ㅇㅇ(89.187) 05.31 754 14
7084374 코비 브라이언트 전기구이 버전.gif [5] ㅇㅇ(125.135) 05.31 739 11
7084373 Nba본지 얼마 안된 초보여서 그런데 111111(175.114) 05.31 68 0
7084371 슈퍼 코비 브라이언트 [6] ㅇㅇ(125.135) 05.31 816 12
7084369 느바 30년보며 느낀 역대 최고재능 7명꼽으면 N갤러(115.22) 05.31 81 0
7084361 이런 픽앤롤을 뭐라고 부르냐?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0 132 0
7084359 개노잼 사계 3시간반 남았다 ㅇㅇ(125.135) 05.30 80 0
7084358 커리어 평득30의 위엄 [7] ㅇㅇ(185.160) 05.30 108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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