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삼 시험실은 퇴실해도 좋습니다"
끝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다
이내 지친 몸을 어느 찬 골목길에 내려놓는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원통 모양의 종이 안에
빈틈없이 구겨 넣어진 담뱃잎이
밝은 빛을 내며 타오른다

그리고는 허연 재로 변해간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떨군다.



일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사랑하던 이도 떠나가고
아끼던 이들도 이내 떠나갈 즈음

지난해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필사적으로 매달렸지
청춘을 밝게 불태웠지



나는 역한 냄새를 참고 숨을 한껏 들이쉬고는,
이내 연기를 토해내듯 내뱉는다

독한 연기에 일년의 묵은때가 녹아 있는 것 같아

나는 연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이내 흩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응시한다

그리고 그 멍한 상태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연기가 흩어질 때 마다 무언가에 쫓기듯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어느새 잠시나마 나의 도피처였던 종잇조각은

이제는 한 치 남짓한 길이로 줄어들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불씨를 바닥에 끌른다.






그러나 바닥에 끌러진 불씨는 마냥 쉽게 꺼지지 않았다

자신을 소멸시키려는 나에게 반항하듯

검은 재 가운데서 타오르는 이,
바닥에 쏟아져 선홍색 점으로 빛나는 이,

모두 아직은 사라질 수 없다고,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다남은 불씨만 못한 자신의 의지를 비웃으며,

나는 생각한다.

저 불씨 한 톨 조차도 아직 포기를 모르거늘,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어찌 지금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외거늘,
나 또한 삼 년에 안될 것이 있으랴


저 작고 힘없는 불씨처럼,

나는 마지막 남은 젊음을 태우겠다.




옛 선조들은 당시 가장 굳건한 물체였던 바위에

학업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새겨,
임신서기석 (壬申誓記石)을 남겼다.

21세기의 바위는 아마도 이 드넓은 가상의 공간이겠지.


그러므로 오늘 나는 이곳에 나의 의지를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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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戊 戌 誓 記 石 」(무술서기석)




戊戌年十一月十六日 誓記

무술년 11월 16일에 맹세해 기록한다.


天前誓

하늘 앞에 맹세한다.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지금부터 1년 이후에 충도를 집지하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만일,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늘에 큰 죄를 지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國語數學英語化學生命得誓一年

국어, 수학, 영어, 화학, 생명과학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1년으로써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