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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기증한게 자랑앱에서 작성

한산이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9.12 23:14:31
조회 3300 추천 24 댓글 13

한국조혈모세포은행에서 홍보 좀 널리 해달라 하셔서 만든 영상 ㅎㅎ 원래는 제작비 주신다 했는데 걍 자비로 만듬. 이것도 자랑.


아래는 조혈모세포기증 과정을 소설형식으로 써본 거임
아마 딱딱한 설명문 보단 절차에 대해 이해하기 쉬울거임 ㅎㅎ

00년 9월 13일



군복 바지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L은 천천히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야 너 전화 받았어?”


 L의 아버지다. L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내 살펴본다. 무슨 전화를 받았냐는 거야. 궁금증을 남긴 채 아버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손안에 휴대폰이 다시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모르는 여자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는 그런 전화가 반갑지 않다. 벌써 빚이 1억인데 뭘 또 빌리라고. 그 전화를 끊으려 했다. 여자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하셨죠.”


 L은 멈칫 했다. 조혈모세포. 익숙하지는 않은 단어인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여자는 L이 서약을 했다고 한다. 서약? 무슨 서약?. 여자는 10년 전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고 보니 그런 비슷한걸 하기는 한 것 같다. 그 때 L은 어렸다. 어리면 뭘 모르니 겁이 없다. 겁이 없는 놈은 이상한 짓을 한다. 


여자는 기증 받을 사람이 나타났다고 아주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골수 그거 되게 아프다던데.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는 걱정스레 의문을 표한다. 

 

“환자가 죽습니다.”


 여자가 너무 밝게 말한다. 문자메시지로 치면 ㅋㅋㅋ 라든지 ^^ 표시 등을 잔뜩 붙여야만 할 것 같다. 어조만 들으면 환자는 절대 죽지 않을 것만 같다. 그는 어쩐지 아니오 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아내하고 상의해 볼게요. 하고 끊은 L은 정신이 없다.


 전화를 끊고 곧장 문자가 온다. 정말로 환자랑 유전자가 일치하는지, 정밀 유전자 검사를 한단다. 그는 여자가 날래다고 생각한다. 눈앞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멋없는 건물이 생경하게 보인다.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바쁜가 보지? 받지 않는다. 그는 대신 카톡을 남긴다.

 

‘여보, 나 조혈모세포기증이라는 걸 신청했었는데 대상자가 나타났데. 어쩌지?’


 1이 없어졌는데 답문이 없다. 그는 초조하다. 휴게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지나가던 군의관 선배가 한마디한다.

 

“내 친구 그거 하다가 진짜 죽을 뻔했는데. 진짜.”

 

 진짜에 힘을 줘서 말한다. L은 선배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이왕이면 10년 전에 알려주지 그랬수. 


선배는 입이 가벼운 모양이다. 중령님이 환한 얼굴을 하고 뛰어온다. 그는 이대위님 장한 결심하셨네요. 정훈실에 알렸으니 곧 국방일보에도 날 겁니다. 라며 L의 손을 꽉 잡는다. 중령님 손이 어찌나 따뜻한지 놓을 수가 없다. 


 복도를 지나는데 의무병들이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L의 이름을 연호 한다. L은 진료실로 돌아와 머리를 감싸 쥔다.    



 00년 09월 15일

 


아내는 들떠있다. 이렇게 훌륭한 남편인지는 몰랐다며 호들갑이다. L은 그거 되게 아프다는데 하고 중얼거린다. 아내는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아픈 게 대수냐고 한다. 선배 친구가 그거 하다가 죽을 뻔했다던데.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래? 하며 물어온다. L은 조금 더 밀어붙여 본다. 그렇다니까 진짜 죽을 뻔했대. 그런데 아내가 피식 웃으면서 내과 친구들은 그거 별거 아니라던데? 라고 말한다.

아 그 자식들? 거지같은 새끼들. 


L은 말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교회 단톡방이 시끄럽다. 이번에 아들놈이 골수 기증한다고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잘 할 수 있게 기도 부탁 드립니다 라는 글 밑으로 역시 목사님 아들! 존경합니다 등의 답문이 수도 없이 달려있다.

이삭이 된 기분이다. 오 하나님 맙소사. 


친구 놈들도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허리를 칼로 쑤시는 거야? 이제 얼굴 못 보는 거임? 사람 살리는데 고작 아픈 거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마라. 그는 휴대폰을 집어던진다.

실탄을 들고 탈영하는 병사의 마음을, 이제는 좀 알 수 있을 것 같다.       



00년09월20일 



 부대 안에 있는 우체국에서 연락이 왔다. L 앞으로 등기가 왔으니 찾아가라고 한다. 받아보니 봉투가 제법 묵직하다. 안에는 채혈 도구와 혈액 보틀이 6개나 들어있다. 그는 그 안에 담길 양을 예상해본다. 정말 검사만 하는 게 맞나? 피를 내다 파나? 


 L은 봉투를 들고 자신의 진료실로 들어간다. 봉투를 아무렇게나,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다. 전면에는 한국조혈모세포은행이라고 큼지막한 글씨로 써있다. 밑에는 L의 이름도 적혀있다. 


 보틀들을 쥐고 검사실로 향한다. 직원이 왜 뽑는 거에요? 라고 묻는다. L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골수기증 때문이요 라고 한다. 직원이 눈이 커지며 어머? 그래요? 좋은 일하시네요. 라고 칭찬을 한다. L은 기분이 좋아진다. 하하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요. 뭐. 라고 거짓말을 한다. 


 L은 오른 팔을 내민다. 직원이 팔을 고무줄로 감고는 탁탁 친다. 혈관이 도드라져 나온다. 직원은 차가운 알코올 솜으로 슥슥 문지르고는 주사 바늘을 꺼낸다. 바늘 끝이 무척이나 날카롭다. L은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는다.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 갈 때 낮은 신음소리가 흐른다. 아프세요? 직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L도 자주 하는 짓이다. 아니오 라고 L은 또 거짓말을 한다. 


 피가 빠져나간다. 하나였으면 금방 끝났을 텐데 6개라서 더럽게 오래 걸린다.



 00년09월27일

 


여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온다.

 

 “축하 드립니다. 유전자가 100% 일치하십니다.”

 

 L은 100% 기분이 좋지는 않다. 축하를 받았는데 영 기분이 개운하지가 않다. 그의 머리에 축하 드립니다. '현역대상 2급입니다'가 자꾸 맴돈다. 


 아내는 운명인가 보지 뭐 하고는 곰국을 끓인다. 운명이라. 소설에서 운명 어쩌고 하는 애들은 보통 잘 죽던데. L은 불안하다. 


 또 문자가 왔다. 기증 일정이 정해졌다고 한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4일 동안 주사를 맞고 입원해서 골수 채집을 해야 한다고 써 있다. 그는 달력을 바라보며 남은 날짜를 가만히 세어본다. 



00년11월01일

  


L은 집에 배달 온 주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주사약 표면에 GRACIN 이라고 적혀있다. 그는 구글에 검색 해 본다. 약제 정보에서 부작용 부분을 찾는다.  


GRACIN


전신계통 : 폐렴, 발열, 호흡곤란, 저산소증

피부 : 홍반, 발진, 발적, 발열을 동반하는 피부 질환

근-골격계 : 골통, 요통, 흉통, 관절통

간장 : 간기능 이상, 간수치 이상, 비장 종대, 비장 출혈

기타 : 두통, 피로, 소변검사이상, 불면증 


이런 걸 4번이나 맞으라고? 역시 사람들이 잘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그는 갑자기 가슴이 아픈 것 같다. 주사약 옆에는 타이레놀이 몇 알 들어있다. 진통제 몇 개 던져주고 저걸 다 견디라니. 이 새끼들 순 나쁜 새끼들 아냐? 


 아내에게 부작용을 보여주니 이거 어차피 확률은 적은 거 아니야?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나는 벌써 가슴이 아프다니까? 그는 자꾸 부작용이 떠오른다. 도망갈까? 



00년11월02일         



 L은 J병원 앞에 서있다. 여자는 일요일에도 주사를 놔주는 병원은 J뿐이라며 고마운 곳이라고 했다. 고마워야 되는데 불안하다. 특히 일요일에도 하는 부분이 불안하다.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일요일에도 주사를 놓지 않으며 안돼는. 


 J병원에서는 오래된 소독약 냄새가 난다. 접수대 직원의 얼굴이 영 좋지 않다. 일요일에도 나와서 그런가? 대기실에 앉아있는 환자들 얼굴은 더욱 좋지 않다. 하나같이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L이 자리에 앉으며 눈인사를 건넨다. 


 ‘어쩌다.. 네 일요일에도 여는 데는 흔치가 않아서.. 아.. 네 저도 그만..’

 

 간호사가 화난 목소리로 L을 부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움츠러든다. L이 가서 주사약을 내보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다. 여자는 J병원에 가면 알아서 해줄 거라고 했는데 간호사는 아무 것도 모른다. L은 집에 가고 싶다.


 어두운 얼굴의 L을 앞에 두고 간호사들끼리 토론을 한다. 그 중 하나가 이게 뭔데? 라는 말을 한다. L이 고개를 돌아보니 아까 환자가 고개를 끄덕 한다. 그도 끄덕 한다. 간호사가 다시 그를 부른다. 아까보다 더 화가 나있다. L은 어쩐지 죄송스럽다. 


 이게 뭔데? 했던 간호사가 주사실로 L을 끌고 간다. 그는 초조하게 양쪽 팔을 걷고 주사를 기다린다. 간호사는 팔을 탁 치더니 단숨에 주사기를 찔러 놓고 약을 밀어 넣었다. 주사약에는 분명히 천천히 넣으세요. 라고 써 있었는데. L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간호사는 번개 같이 양쪽 팔에 주사를 놓더니 휭 나가 버린다. 아플 새도 없구나. 그는 알코올 솜으로 주사 맞은 곳을 누른 채 서있다.

언제까지 누르고 있어야 되나. 한참을 누르고 서 있는데 간호사가 다른 환자를 끌고 들어온다. 환자와 L의 눈이 마주친다. 그는 재빨리 옷을 챙겨 입고 나온다. 



00년11월03일



 여자는 아플 거예요 라고 했는데 L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 쉬운걸 왜 사람들은 하지 않는 거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만화방을 간다. 주사를 맞으려면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다. 


 L은 신간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예전에는 볼만한 것 투성 이었는데 요새는 재미없는 것밖에 없다. 이전에 보던 만화책 몇 권을 골라 자리로 간다. 푹신한 의자에 기대앉아서 만화책을 본다. 


 L의 자세가 점점 이상해진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더니 일어섰다 앉았다 를 반복한다. 허리가 아프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좋아지지 않는다. 


 L은 만화방을 나와 S병원으로 향한다. S병원은 J보다 크고 세련된 병원이다. 무엇보다 일요일에 주사를 놔주어야 되는 이유가 없는 병원이다. 


 S병원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접수대 직원이 활짝 웃으며 안내해 준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환자들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전광판에 L의 이름이 뜬다. 간호사가 그의 이름을 묻고는 좋은 일 하시네요. 라고 인사를 한다. 그는 당당히 양쪽 팔을 걷고 주사를 기다린다. 병원 주사약에는 약 이름만 적혀있는데 간호사는 천천히 주사약을 밀어 넣는다. 천천히 넣으니까 오랫동안 아프다. 어제는 안 아팠는데. 그가 알코올 솜을 잡으려 하는데 간호사는 동그란 반창고를 대신 붙여준다. 가시면 되요. 


 저녁이 되자 허리가 더 아프다. 여자는 원래 그렇다고 한다. 어제 보다 아픈데요. 하니까 두 번 맞았으니까 그렇죠 라고 한다. 아직 두 번이나 남았다. 



 00년11월04일  



 L은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놓고 집을 나선다. 점심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약간 늦을 것 같다. L은 걸음을 재촉한다. 버스를 탈걸 괜히 지하철을 타 가지고. 카톡에 친구들이 욕을 해댄다. L은 허리가 아프다 라고 짤막하게 보낸다. 의외로 순순히 수긍을 한다. 


 친구들은 서현에 있는 한식뷔페로 오라고 했다. L은 들어가자 반갑게 맞아 주며 한마디 한다. 이여 허리 병신. 


 음식이 꽤나 맛이 있다. 그런데 L은 많이 먹을 수 가 없다. 어제 밤부터는 입맛도 없어졌다. 망할 놈의 GRACIN! 100키로에 육박하는 친구는 끊임없이 먹는다. 접시에 고기를 담고 또 고기를 담고 또 고기를 담아서 끝도 없이 먹는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50키로도 안 나갔던 녀석이 이제는 저렇게 먹는다니. 골수는 저런 놈한테서 빼야 되는 것 아닌가? 그는 자신의 마른 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다른 한 놈도 뚱뚱하다. 물론 100키로 정도는 아니지만 저 놈도 분명히 70키로 정도는 나갈 거다. 아니, 어쩌면 80키로? 뚱뚱한 놈들은 계속 먹고 마른 L은 물을 마신다. 커피까지 먹고 수다를 떨다가 L은 시계를 본다. 또 주사 맞을 시간이다.

여자는 매일 확인 전화를 한다. 주사 잘 맞으셨어요? 어디 아프지는 않으세요? 그는 주사를 안 맞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만 했는데 여자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세 번째 주사를 맞으니 허리가 더 아프다. L은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다. 아내가 배낭에 짐을 챙겨 준다. 그는 입원하는 것이 처음이다. 아내가 짐을 다 챙기고는 잘자 하고는 벌렁 누워 잔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00년11월05일



L이 S병원 로비로 가자 조혈모 협회에서 나온 여자가 맞이해 준다. 늘 전화를 하던 그 여자는 아니다.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한다. 여자는 L이 묵을 병실로 안내한다. VIP 병실이다. 호텔 같다. 기증하러 온 것만 아니면 더욱 좋을 텐데. 


여자는 내일 기증할 때 다시 온다 하고는 총총 사라졌다. L은 홀로 침대에 누워있다. 기증할 때 읽을 책을 꺼내서 읽어본다. 


노크도 없이 간호사가 불쑥 들어온다. L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책을 내려놓는다. 간호사가 생글생글 웃으며 아프시죠 라고 밝게 말한다. 그도 최대한 밝게 네. 아파요. 라고 말한다. 간호사는 진통제를 가져오마 하고는 다시 나가려 한다. 그는 간호사를 불러 세우고는 내일 하는 거는 얼마나 아파요? 라고 묻는다. 간호사는 웃으며 글쎄요. 그렇게 아프진 않아요. 라며 나간다. 저 여자는 해봤으려나? 글쎄요 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안 해봤을 것 같다. 


L은 환자복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다. 제목은 아 골수 기증 떨린다.. 좋아요 수를 세어본다. 생각보다 반응이 시원치가 않다. L은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L이 아내에게 받는 사람이 부자였으면 좋겠다 라고 하자 아내도 맞장구를 친다. 대기업 회장 중에 몸이 불편한 양반이 있다던데. 그는 B사 스포츠카를 탄 모습을 잠시 상상한다. 아내가 자기 이거 개업할 때 병원에 걸어놓자며 사진을 마구 찍는다. L은 최대한 아픈 표정을 짓는다. 


인턴이 와서 시술 설명을 한다. 머리가 부스스 한 게 어디서 자다 온 게 틀림이 없다. 마치 많이 해본 것처럼 설명을 한다. L은 알고 있다. 인턴은 개뿔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도 네네 하며 듣는다. 인턴이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다.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라는 말을 묘하게 흐린다. 사망이라는 말이 L의 가슴을 친다. 인턴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사인을 요구한다. 그는 펜을 받아 들고 군말 없이 사인을 한다. 인턴이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라고 묻는다.

있기는 한데 너는 모를걸?

그는 없다고 한다. 인턴은 졸린 발걸음으로 크룩스를 질질 끌며 나간다. 


주치의가 회진을 돈다. 가운에 두 손을 꽂고는 시술 설명을 한다. L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한다.

1년차인가? 2년차?

주치의가 오른쪽 팔에서 피를 뽑아서 채집을 하고, 다시 피를 왼쪽으로 넣어 준다고 한다. 아. 한쪽 팔만 뽑는 건 줄 알았는데. 책은 괜히 가져 왔다. 주치의도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라고 묻는다. 이 때 진짜 묻는 환자를 의사는 대개는 귀찮아한다. 그는 없다고 한다. 주치의는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바쁘게 걸어나간다.  

 9시에 L은 또 주사를 맞는다. 내일 채집 양이 부족하면 내일 또 맞고 모레 다시 채집을 한다고 한다. 자꾸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데 좋은 소리는 하나도 없다. 그는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제발, 한번에 끝나게 해주세요. 



 00년11월06일

    


 6시부터 간호사가 와서 피를 뽑아갔다. 팔은 이따가 쓸 거라서 손등에서 뽑아갔다. L은 아직도 손등이 아프다. 허리도 아프다. 어제보다 환자복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파서 그런가. 


 7시 반에는 아침을 줬다. 수프도 싱겁고 빵도 싱겁다. 케첩도 싱겁다. 거 더럽게 맛없네. 그는 절반이나 남겼다. 


 8시 반에 운송요원이 왔다. 남자의 안내에 따라 L은 시술실로 향한다. 터덜터덜 걸어간다. 걸을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 병원이 크니까 걸어갈 길도 멀다. 


 L은 투석기계처럼 생긴 기계 옆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와서 혈압을 잰다. 110/60 좋네요 라고 한다. 내가 알기론 약간 저혈압인데 저건. 간호사는 그는 혈관을 유심히 살핀다. 그는 바늘이 얼마나 굵나요? 라고 묻는다. 간호사는 웃으며 헌혈할 때 보다 조금 더 굵어요. 하고 말한다.

아니 그거보다 더 굵은 바늘도 있었나? 그건 이미 바늘이 아니라 칼이 아닐까?

L은 천장을 바라본다. 


 간호사가 트레이에 바늘을 두 개 들고 온다. 하나는 왼쪽, 하나는 오른쪽이다. 왼쪽에 꽂을 바늘은 헌혈할 때랑 같은 크기이다. 간호사는 L의 왼팔에 고무줄을 감는다. 혈관이 팽팽해진다. 그는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긴바늘이 살을 뚫고 혈관으로 들어온다. 그의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하다. 아마 지금 혈압을 재면 아까보다 높겠지. 간호사가 다른 바늘을 꺼낸다. L은 믿고 싶지 않다.

저런걸 쑤셔 넣는 다고?

그는 간호사의 표정을 살핀다. 간호사는 자신이 있어 보인다. 그는 약간 마음이 놓이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간호사가 L의 오른팔을 고무줄로 감는다. 그는 왼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왼팔에 꽂힌 라인이 보인다. 그는 다시 천장을 바라본다. 누가 오른 팔을 칼로 쑤시는 것 같다. 무언가가 쑥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다행히 라인이 잘 잡혀있다. 간호사는 휴 소리와 함께 이제 6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하고 기계를 만진다. 그는 시계를 본다. 9시다. 


 L이 잠깐 팔을 꼼지락거리면 기계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움직이지 말란다. 간호사가 와서 기계를 만지면서 이러시면 더 오래 걸려요 라고 한다. 그는 고통스럽다. L은 고개를 돌려 멀리 TV를 바라본다. 아침드라마다. 가끔 아내가 보던 드라마.

하필이면 틀어도 저런걸 틀어놓나.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L은 녹초가 되었다. 온몸이 축축한 땀으로 젖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2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골반 뼈를 쑤셔서 골수를 뺄 것을. 간호사가 다가 올 때마다 L은 희망을 품는다.

이제 끝인가?

간호사는 말없이 기계를 만지작거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간호사가 걸어온다. 음 다 되셨네요. 예상보다 빨리 끝났어요. 축하합니다. 시계를 보니 2시 45분이다.

축하는 니미. 


 올 때는 걸어왔지만 갈 때는 휠체어로 간다. L은 처음 타는 휠체어를 즐길 수가 없다.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다. 빨리 가서 눕고 싶다.     


 L은 침대에 누워 힘없이 늘어져 있다. 누군가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살집이 있는 남자는 인사를 하고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는 그에게 골수기증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한다. 그는 그의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한다. 카메라맨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묻는다.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정말 보람있는 일이에요. 여러분도 꼭 해보세요!”



00년00월00일



 L은 이제 다 회복되었다. 그는 이전처럼 진료를 보고, 책을 읽고 TV를 본다. 가끔 치킨도 시켜먹고 친구들과 게임도 한다. 가끔 헬스장에서 러닝도 하고 팔굽혀펴기도 한다. L은 가끔 오른팔의 주사자국을 보곤 한다. 어찌나 굵은 바늘이 들어갔었는지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 그것 외엔 변화가 없다.


 책상에 놓인 휴대폰이 울린다. 그때 그 여자다. L은 환자의 용태에 대해 묻는다.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한다. 


 "네, 환자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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