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에 인기리에 방송중인 애니메이션 「카드캡터 체리」(원제 「카드캡터
사쿠라, 이 작품이 요즘 나의 연기를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주인공 체리의 오빠 도진의 친구인 청명. 고등학생. 엄청 미소년. 늘 상냥하고 자상함. 주인공
소녀 체리의 짝사랑의 대상. 매회 크로우 카드의 위기 상황에 엉뚱하게 등장하는 수수께끼의 인
물. 실질적 남자 주인공. 그리고, 중성적 이미지….
이상은 「체리」에서 내가 연기하고 있는 청명이라는 캐릭터의 대략적인 프로필이다. 처음 청명
역을 맡고는 이 역에 나를 캐스팅해준 PD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은 다 알지
만, 성우 강수진하면, \'열혈남아 캐릭터에 있어선 최고 성우, 소리를 가장 잘 지르는 성우, 변
화무쌍한 감정 연기의 천재, 바보스런 코믹 연기의 으뜸….\' 뭐 대충 이렇게 평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교만을 부디 너그러이 용서하기 바람)
그러다 보니 그 동안은 연기할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작품마다 소리지르고, 길길이 날뛰고, 절규하고. 하여간 온갖 잘난 척, 멋있
는 척, 터프한 척은 혼자 다 해야했다. 그러니 항상 대사량 많으니 목 아프지, 힘들지. 한 마디
로 땀에 젖은 성우 생활이요, 상처뿐인 목젖이었다.
그런데 글쎄 청명이…. 이 캐릭터는 그게 아니었다. 작품 첫회 대사량 - 호흡 포함 2마디.
2회째 대사 총 4마디.
"우와, 웬일이니?!"
이건 분명 그 동안 너무 수고 많았다고 이젠 편안히 쉬면서 돈 벌라고 하늘이 주신 보너스가 아
니겠는가! 혼자서 좋아 어쩔 줄 모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 놀면서∼쉬면서∼, 띵
가 띵가∼.
방송이 나가고 서서히 팬들의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 오빠 청명 너무 멋져요. 짱이예요." 하∼고맙지.
"오빠 닮았어요."허∼쑥스럽군.
"그동안 하시던 거하고 많이 달라요."
"잘 보고 있는데요. 솔직히 오빠한테 안 어울려요." 잉? 이게 무슨 소리래니?
"수진님 연기 변신에 애쓰시나 본데, 솔직히 좀…." 얼라리라네.
"실망이예요. 한 마디로 닭살이예요."
시간이 갈수록 강도 높아지는 야유와 질타에 나는 거품 물고 쓰러질 뻔했다. 문제는 청명의 중
성적인 성격이었다. 사내 녀석이 왜 그리 예쁜지, 어쩜 그리 상냥한지, 요리도 잘하고. 꼭 예쁘
고 친절한 옆집 언니 같다고나 할까. 일본에서는 여자 성우가 더빙을 했던 역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무난히 소화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안일한 설정과 연기에 팬들은 가차없이 칼
을 뽑았던 것이다. 사실 연기를 하는 나도 대사 때마다 닭살이 돋을 때가 많았다. 목소리는 사
내 녀석이 말투에서의 느낌은 여성적인 연기를 하자니, 목이 간질간질 오싹 소름이 끼친다. 그
러다 보니 명확한 성격 구축에 실패, 불안정한 연기를 하기에 이르렀나 보다. 더구나 청명은 체
리뿐만 아니라 체리의 라이벌 소년 (리 샤오랑)의 짝사랑도 함께 받게 되니 동성애도 아닌 분위
기 참 야릇하게 스토리가 전개되어 가고 있다.
하여튼, 이러저러한 부담감과 타성에서 비롯된 연기가 불확실한 캐릭터를 연출해내고 말았다.
역시 세상에 쉬운 연기가 어디 있겠는가. 야단맞아도 싸지.
그래서. 성우 강수진은 현재 절치부심 새로운 인물 창조에 도전하고 있다. 열혈남아 강수진이 아닌, 언
니같은 오빠-중성연기의 으뜸 강수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낯간지러움을 참는 연습을 하고 있
다.
기대하시라. 카드 캡터의 새로운 오빠 청명이 탄생하는 날을…!!




음...나는 원판을 안봐서 그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의외로 비난이 꽤 있었던 모양...
수진님이셨는지도 모를 만큼 말캉말캉한 연기였던거 같은데, 이런 말캉말캉하고 여성스러운 수진님이 어색하신 분들도 많았던 모양인듯.
근데 수진님은 평상시에도 "얼라리라네" 이런 말 쓰시는 모양이네.ㅋㅋ


출처:뉴타입 99년 8월호 강수진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