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애설이 신문에 난 그날 밤, 선우와 보라는 언제나처럼 손을 잡고 골목에 앉아있었다.

"선우야.. 이거 봤지? 넌 어떻게 생각해? 택이랑 덕선이..."

선우의 머리속엔 벌써 수년 전 덕선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얘기했던 택의 말과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아마도.. 정말이겠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백을 접고 나서 미친듯한 대국을 하고 와서도
잠에 들지 못하여 수면제를 먹고나서야 잠을 청했던 택의 마음은,

보라와 헤어진 후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밤 늦도록 공부를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실습을 가서 피곤한데도 역시 수면제 없이 잠들 수 없었던
선우 자신의 마음과 일치해서 그 다음 얘기를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덕선이 때문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니에요.. 우리 사이 아시잖아요. 우리가 쉽게 변할 사이처럼 보이세요?"

택이 걱정어린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던 어른들께 저 말씀을 드리고난 뒤 각자의 집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그로부터 며칠 뒤,
선우와 보라, 택과 덕선은 퇴근길에 선우 병원 근처의 조용한 바에서 맥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언니 왜 보자고 했어? 선우도 왜 갑자기? 뭐 둘이 결혼하는데 나한테 밥사주려고 한거야?"
뭔가 모를 어색한 분위기에 늘상 그렇듯 덕선이 밝고 유쾌하게 얘기를 시작하는데도 선우와 보라는 머뭇거릴 뿐이었다.

"야 최택. 너 그 신문. 진짜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솔직함만이 답이라고 생각한 선우는 단도직입적으로 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응."
잠시 덕선의 눈치를 보던 택은 나중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지금 문제를 수면위에 올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사실을 말했다.

"그거 지금 말하면 어떡해!!!!!"
덕선의 타박하는 소리에도 선우와 택은 얼굴을 마주보며 역시 그랬구나 하고 빙긋 웃었다.
"덕선아. 야 처체. 얘 6년 전에 나한테 너 없으면 죽을것 같다고 했던 애야. 내가 바보냐? 최택이 그런 말을 했는데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보라는 눈이 뜨끈해졌다.
"왜.. 그럼 아니라고 했어?"
"덕선이가 아니라고 하라고 했어요. 시간을 좀 가지자고 해서요."
"아 성보라 그럼 내가 지금 여기에서 네 맞아요 우리 사겨요 할까? 성보라 성선우 결혼한다고 동성동본 터져서 어른들 안그래도 힘드신데
겹사돈도 할래요 하라고?"
"저는 처음에 그냥 말씀드리자고 했는데.. 덕선이가 그럼 둘 결혼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요."

보라는 갑자기 선우와의 결혼 문제로 잠들지 못해서 뒤척이고 있을 때 덕선이 등뒤에서 자신을 토닥이던 생각이 났다.

자기보다 어린 동생.
늘. 자기에게 양보했어야 했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던 동생.
자기가 수없이 때렸던 동생이었다.
미울법도 했지만 덕선이는 또.. 이렇게 나에게 양보를 해주는구나.
자기도 속상했을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위로해줬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보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아 울기는 왜울어? 우리도 결혼 할꺼야. 그냥 너네 먼저하는게 순서에도 맞고 그럴거 같아서 그런거야.
왜 울어, 울지마."
"덕선아.. 미안해... 고마워..."

"택아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아냐.. 선우야. 그대신 나중에 우리 결혼할 때 도와줘야돼. 아마 그때는 더 반대하실거야. 보라누나 그때 덕선이 안울게 도와주세요."

----- 보라와 덕선이 얘기도 한번 써보고 싶어서.
안자면 계속 찌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