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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토벌하던 장수

.(116.255) 2016.05.29 10:43:42
조회 6908 추천 21 댓글 5

작년의 일이다. 내가 갓 관직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돼서 동탁이 난을 일으킬 때다. 낙양 왔다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 반동탁연합을 결성하기 위해 남양에서 일단 말을 세워야 했다. 남양과 허창 사이 길가에 장수가 있었다. 동탁을 토벌하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역적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용병 구하시우."

대 단히 무뚝뚝한 장수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토벌이나 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싸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뛰어 다니고 저리 뛰어 다니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이겼는데, 자꾸만 더 싸우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가자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친구를 만날 시간이 되었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싸우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고용할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싸운다는 말이오? 장군, 외고집이시구먼. 지금 중요한 회견이 있다니까요."

장수는 퉁명스럽게,

"다른 용병을 고용하시오. 난 안 싸우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회견은 어차피 글렀다고 판단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싸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밀리고 늦어진다니까. 전투란 제대로 싸워야지, 싸우다가 그만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싸우다가 말고 숫제 말에서 내려서 태연스럽게 두건을 풀어서 다시 매고 있지 않는가. 그 특유의 붉은 두건은 원래 붉은색인지 적의 피로 붉게 물든건지 모르겠다.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한 적장을 일기토로 쓰러뜨린 후 그 적장의 머리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이겼다고 내 준다. 사실 이기기는 아까부터 다 이겼던 전투이다.

회견 시간을 어겨서 명문 원가의 장손인 친구에게 한사바리를 당할 생각을 하자니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전투를 해 가지고 이길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장군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장수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낙양성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명장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검은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장수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회견장에 와서 적장의 머리를 내놨더니 친구는 대단하다고 야단이다. 그 어떤 전투보다 잘 싸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전의 전투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친구의 설명을 들어 보니, 그 적장의 이름은 화웅인데 여포와 더불어 동탁군 제일가는 장수라 했다. 이런 화웅을 사살했으니 동탁도 겁에 질려 벌벌 떨 것이라고 했다. 대충 싸우다 말면 적의 야습에 무너져 전멸할 수도 있고 너무 전투만 하면 그 지역 백성들의 민심을 잃게 된단다. 요렇게 꼭 적장의 목만 딱 베어서 전투를 이기는 게 좀체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장수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 재(藥材)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拯九暴)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적장도 그런 심정에서 사살했을 것이다. 나는 그 장수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전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장군이 나 같은 문관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전투에서 승리를 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장수를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달에 상경하는 길로 그 장수를 찾았다. 그러나 그 장수가 앉았던 자리에 장수는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장수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낙양성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장수가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전투를 하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장수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이미 남양지역 유지가 되어있는 그 친구의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서 도적을 토벌하던 장군은 어디 갔나?"


"아, 그 붉은 두건을 쓰고 덩치 큰 장군 말하는 거요? 작년 말 정도에 죽었어요."


"아니, 죽다니, 왜?"


"사실 그 장수가 원래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은 아니고 장사성을 지배하던 사람인데 동탁이 황제를 갈아치웠다는 소문을 듣고 와서 동탁을 토벌하러 온 건데 그 사이에 유표라는 역적놈이 원래 형주자사의 치소가 무릉인데 지맘대로 양양으로 옮긴 뒤 그 지역 백성들을 징발해서 그 병력으로 그 장수의 영지인 장사성을 도적질했습니다. 이에 그 장수가 자기 집 되찾으러 가서 싸웠는데 처음에는 승승장구했죠. 하지만 유표의 부하 황조라는 놈이 자객을 시켜서 저격해서 그 장수는 골로 갔어요. 그 장수의 이름이 손견이었던가... 아마 그랬을 겁니다."


요즘 온 나라가 도적들로 들끓고 있다. 당장 내 코앞에도 장연이라는 놈이 설치고 있다. 요새는 백성들에게 아무 피해도 안 입히고 딱 적장의 목만 벨 수 있는 장수가 없다. 문득 작년에 동탁군 토벌하던 장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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