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시크릿 가든 상플] – 운명(運命) – 프롤로그

전기돌고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2.11 20:08:54
조회 665 추천 10 댓글 4
														


viewimage.php?id=3eb8d334e0c63fa77cbbd3bb&no=24b0d769e1d32ca73cee85fa11d02831fb456630640f875b0a4c706b476006d7ce1a6e6d8313ba2feaf7d167a14b7595e824a87ac0417eca43dc60611af951c40c0202




*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 프롤로그 >




온통 붉은 색만이 가득한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함성소리와 비명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는 전장의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중이었다.


손 끝에 느껴지는 묵직한 검의 무게와 온 몸을 내리 누르는 듯한 갑옷의 무게가 지금의 상황이 현실임을 깨닫게 했다.


겨우 무거운 다리를 한 발 내디뎌 본다.


누군가 제 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으로 검을 든 채 고함을 지르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손에 든 검으로 달려드는 그 사내를 베어 넘겼다.


나를 향해 고꾸라지듯 쓰러지는 사내를 밀쳐 내고 어디로 향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계속 걷기 시작했다.


내 머리 속은 온통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뿐.. 더 이상 다른 생각은 할 여유도 없는 듯 했다.


그녀.. 그녀를 찾아야 해..


그녀는 햇살처럼 말갛게 웃던 모습이 전부인 듯 기억 속에 박혀 있었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몸을 겨우 이끌고 궐 내부 깊숙한 곳까지 다다르자 내관이며 궁녀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기 바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라면 그녀가 있을까..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따위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 무시한 채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갑자기 몰려드는 피곤함이 온 몸에 무겁게 내려 앉아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현 상황과는 다르게 몹시도 화창한 하늘이었다.


눈에 내리 꽂히는 햇빛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려 본다.


우왕좌왕 도망치는 사람들 틈 속에서 내가 찾던 그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까지도 내 시야는 온통 붉은 빛 세상 속에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보다도 더 붉은 비단 옷을 걸친 채 놀란 듯 나를 보고 있었다.




“찾았다.”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를 보고 있는 그녀를 보자 울컥 울음이 터질 거 같았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애써 울음을 참아냈다.




“왜..”




왜냐고 묻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들고 있었다.


그녀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한 발 짝 다가섰다.


하지만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내게서 멀어져 갔다.




“보고 싶었어..”




그녀 역시 울음을 참기라도 하려는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무겁고 버거웠던 검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다시 그녀에게로 걸음을 향했다.




“가까이.. 오지 마..”


“어째서..”


“우리 인연은 이미 다 지나간 옛일일 뿐이야..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잖아.”




그녀의 말을 부정하려는 듯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자꾸만 멀어지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끊어진 인연 쯤은 다시 이어 붙이면 될 터.. 너만 내 옆에 있으면 그걸로 돼..”




그녀가 옷자락을 움켜 쥐며 소리 쳤다.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아프리만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다시 이어질 인연이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터져 나온 그녀의 목소리가 울음을 머금고 있었다.


가슴이 갈래갈래 찢어지듯 아파왔다.


참고 참던 눈물이 기어코 그녀의 눈에서 흘러 내렸다.


멀어져만 가던 그녀에게 겨우 손이 닿자 망설임 없이 품으로 끌어 당겼다.


힘없이 품으로 안겨오는 그녀의 어깨가 구슬프게 흔들렸다.




“울지마.. 네가 울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당신 곁에서 떠나왔는데.. 왜.. 이제 와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같이.. 돌아가자..”




힘 없는 손으로 나를 밀어내는 그녀.. 그런 그녀를 나는 더 힘주어 끌어 안았다.


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손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흐느끼던 그녀의 어깨가 차츰 잦아들고 울음소리도 어느 새 멈춰 있었다.




“놔 줘..”


“같이 가겠다고 해.”


“제발..”




놓고 싶지 않았던 그녀를 품에서 떼어내자 여전히 물기 서려 있는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눈이건만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같이 갈 수 없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


“그래도..”




그녀의 손이 내 뺨 위에 머무른다.


부드럽게 쓸어 내리는 손길에 그제야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슬픔을 머금은 미소가 그녀 얼굴 위로 서린다.


그러나 미소 짓던 그녀의 표정이 일순 놀란 듯 변해 버린다.


내 팔을 잡고 몸을 돌려 내 등 뒤로 그녀가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활 시위를 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여러 대의 화살이 나와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그녀의 등 위로 화살들이 꽂혀 들었다.




“라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 상황은 끝이 나버렸다.


붉은 빛 비단이 피로 인해 검붉게 물들어 갔다.


힘 없이 쓰러지는 그녀가 내 품 안으로 흘러 들었다.


짧게 토해낸 그녀의 숨이 내 귀가에 맺혔다.


놀란 내 눈은 그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무게로 인해 내 몸은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고통의 빛이 그녀의 얼굴 위로 내려 앉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표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굳게 닫힌 그녀의 눈 꺼풀이 파르르 떨려 왔다.




“라.. 라임.. 라임아.. 라.. 라임아..”




그저 내 입술은 그녀의 이름 밖에는 말하지 못하는 듯 연거푸 그녀의 이름만 되뇌고 있었다.




“라임아.. 길라임.. 눈.. 눈 좀.. 눈 좀 떠봐.. 제발.. 눈 좀 떠서 나를 봐..”




떨리는 그녀의 손길이 내 어깨 위에 닿았다.


그녀는 계속 짧은 숨만 토해낼 뿐이었다.


파르르 떨리던 눈 꺼풀이 열리고 검은 눈동자 가득 내 모습이 비춰졌다.


그녀의 눈동자 속 내 모습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 보여? 나 보이는 거지?”



그녀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됐어.. 조금만 참아.. 금방 의원에게 보이면..”


“같이 가고 싶었어..”


“뭐?”


“당신이랑.. 같이.. 돌아 가고 싶었어..”


“무슨 말이야.. 같이 가면 되지.. 얼른 치료 받으면..”




그녀가 힘 없이 고개를 젓는다.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내려 놓은 듯 편안해 보였다.




“나.. 아파..”


“알아.. 화살을 맞았으니까..”


“그게.. 아냐..”


“그럼?”


“당신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파..”




힘겹게 말을 잇던 그녀가 숨이 넘어갈 듯 독한 기침을 뱉어냈다.


그 바람에 그녀의 입술 사이로 붉은 핏방울을 흘러 내렸다.


점점 더 가빠지는 호흡에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 그만 말해..”




내 어깨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해야 돼..”


“아니.. 하지마.. 지금은 듣지 않을 거야..”


“미안해..”


“뭐?”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


“무슨 말이야.. 누굴.. 누굴 두고 간다는 거야..”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진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애써 참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손길이었다.




“당신.. 곁을 떠나면서.. 혼자 있게 했는데.. 다시 또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미안하면 두고 가지마.. 한번 혼자 뒀으면 됐어.. 이제 혼자 두고 어디에도 가지마..”


“약속할게..”


“무슨 약속?”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다음은 없어..”




내 외침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말만을 이어갈 뿐이었다.


마치 이별을 맞을 준비라도 하는 듯 차분한 음색의 그녀의 말이 칼날이 되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다음에는..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우리 원 없이.. 사랑하기로.. 또 세상과 맞서더라도.. 우리만 생각하고.. 우리만을 위해서.. 살자..


이번에.. 못했던 거.. 다음에는.. 원 없이.. 다 하자..”



“지금 해.. 지금부터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세상과 맞서 싸우면서 그렇게 우리 서로만 보고 살면 돼.. 지금부터 하면 돼..”




그녀의 얼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끝끝내 참아내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뺨에 닿아 있는 그녀의 손 끝의 흔들림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뜨자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한테 미안해?”


“무지..”


“그럼 이거 하나만 약속해..”


“무슨.. 약속?”


“다음에도 꼭 나한테 오기로.. 다음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만나기로..”


“약속.. 할게..”



“다음에 나한테 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지 않을 거야.. 네가 말한 대로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세상과 맞서 싸우면서 그렇게 우리..


평생 함께 살아가기로.. 평생 서로만 바라보고 사랑하기로.. 그렇게 약속해..”



“꼭.. 지킬게..”


“너는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해.. 내가 널 찾아내고 널 알아보고.. 내가 먼저 사랑할 테니까.. 그러니까 꼭 내 앞에 다시 나타나기만 해..”


“꼭.. 갈게.. 그대신 부탁이 있어..”


“무슨 부탁?”


“너무.. 빨리.. 나한테 오지는 마.. 내가.. 누리지.. 못한 것.. 다 누리고.. 세상 살만큼.. 다 살고.. 그런 다음에.. 나한테.. 와라..”


“그래.. 평생 살 것 다 살고.. 늙어 할아버지가 돼서.. 너한테 갈 테니까.. 늙었다고 구박이나 하지마..”




그제야 안심을 한 듯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




그녀가 마지막 숨을 토해내 듯 말을 마쳤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서서히 눈꺼풀 속으로 숨어들었다.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힘 없이 떨어져 내리려 해 얼른 붙잡아 다시 내 뺨 위에 대어본다.


그녀의 손 끝의 떨림이 사라졌다.


잠깐의 침묵이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듯 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박힌 듯 답답하고 아파왔다.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의 손을 그저 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멀리서 누군가 달려왔고 이내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녀를 내 곁에서 빼앗았던 그 남자다.


내 품 속의 그녀를 바라보는 그 남자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흔들렸다.




“라임이는?”


“떠났어.. 아주 멀리..”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답을 했다.


놀랄 정도로 담담한 내 목소리에 나 자신조차도 놀라웠다.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불안함을 담고 있던 눈동자가 어느 새 슬픔을 머금은 채 떨리고 있었다.




“잘 지켰어야지.. 차라리 더 빨리 데리고 떠났어야지..”




내 탓을 하는 듯 자신을 탓하고 있는 그는 이내 소리 없이 슬픔을 토해냈다.


그녀를 안아 들고 울고 있는 그 남자의 곁을 지나쳐 궐 밖으로 향했다.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장례는 소박하게 치뤄졌다.


하얀 색으로 만들어진 비단 수의를 입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관 속에 그녀를 눕히고 내 머리칼을 잘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조금 늦어질 테지만..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관 뚜껑이 굳게 닫혔다.


왜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끝내 울지 못했다.









그녀를 떠나 보낸 지 한 달이 흘렀다.


마지막 그녀가 입고 있던 그 피에 젖은 붉은 비단 옷만이 내 옆에 남아 있었다.


침상에 앉아 품 안에 비단 옷을 끌어 안은 채 멍하니 있는 날들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게 힘에 겨웠다.


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만 있다가 하루를 다 보내는 것이 일상 아닌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날도 그 비단 옷을 끌어 안은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문 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낯익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빼앗아 갔던 그였다.


자연스럽게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 그를 보다가 비단 옷을 고이 접어 침상 위에 두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내가 앉자 마자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탁자 위로 내려 놓았다.


평범한 나무로 만든 상자였다.




“뭐야? 이게..”


“라임이의 처소를 정리하다 나온 거다.”




그녀의 이름에 내 몸이 반응이라도 한 것인지 서둘러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상자 가득 든 종이 뭉치였다.




“내용을 보니 당신 것인 것 같아 전해주러 온 거야.. 내 용건은 끝났으니.. 나는 돌아가지..”




그가 나가는 모습은 본체 만 체 하고 종이 뭉치를 펼쳐 봤다.


하얀 종이 위에는 정성껏 써 내려간 단 한 문장만이 반복적으로 쓰여 있었다.


그 문장을 읽자 그녀를 떠나 보내던 날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흘러 넘쳐 내렸다.


종이 뭉치를 소중한 듯 가슴에 품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지 듯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종이에 써져 있던 문장은 ‘김주원 사랑해’ 이 단 한 문장 이었다.


어느 날인가 내가 그녀에게 장난처럼 알려줬던 말이었다.


그랬던 것을 그녀는 소중한 듯 정성껏 써 내려 갔던 것이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품 안에 종이 뭉치가 눈물에 젖어들 만큼.. 아주 오랫동안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렇게 울음을 토해냈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붓을 들었다.


새 하얀 종이 위로 붓을 놀렸다.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꺼낼 수 없었던 그리움을 종이 위 가득 써 내려갔다.


한자한자 마음 속 그리움을 담아 그녀에게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하얗던 종이 위에 빼곡히 글자들을 써 넣었다.


그립다.. 아프다.. 외롭다.. 보고 싶다..


진작 해줬으면 좋았을 말들을 빠짐없이 적어 그녀에게로 보내기 위해.. 내 손은 바삐 붓을 놀렸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적고 붓을 내려 놓았다.


종이는 곱게 접어 꽃으로 만든 배에 실어 강물에 띄워 보냈다.


이대로 흘러 그녀에게로 닿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이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 닿을 수 있도록..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어느 새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그녀 없는 시간을 얼마나 견뎌냈는지 이제 날을 세는 것도 잊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요새 부쩍 몸이 약해져 감을 느끼고 있었다.


앉아 있는 시간보다 침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오늘도 밤새 미열에 시달리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눈을 뜨니 걱정스러운 듯 나를 보고 있는 내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다. 눈 뜨자마자 보는 게 네 놈 얼굴이라니..”


“농담하지 마십시오..”


“농 아니다.”


“밤새 열에 시달리시더니.. 정신을 놓으신 겁니까?”


“어허.. 헛소리 그만하고 나 좀 일으켜 다오.”




내관의 부축을 받고 침상에 등을 기댄 채 일어나 앉았다.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갈 시간이 머지 않았음을 깨닫고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뭐가 그리 좋으십니까?”




내 표정을 눈치 챈 것인지 내관이 심통이 난듯한 표정으로 쏘아 댔다.




“그리 보이느냐?”


“예..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계십니다.”


“잘 보았다. 아주 좋아 죽겠다. 됐느냐?”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제 곧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안 좋고 베기겠느냐?”


“폐하.. 어찌 그런 말을.. 제 앞에서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럼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하겠느냐? 달리 너 말고 다른 누가 있느냐?”


“그래도 그렇지.. 왜 제 생각은 해주지 않으십니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모신 분이 폐하이신데.. 남겨질 제 생각은 왜 하나도 해주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서운하느냐?”


“서운합니다. 아주 서운해서.. 눈물이 나올 거 같습니다.”


“아서라.. 여인네 눈물 하나도 감당 안 되는데.. 하물며 사내놈 눈물까지 감당하란 말이냐?”


“그러게 왜 울리려 하십니까?”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내며 투정을 부리는 내관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어느 새 눈물을 다 닦아 내고 내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태의가 탕약을 준비해 뒀으니 가져오겠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탕약 그릇을 들고 내관이 돌아왔다.


내관이 내미는 탕약을 받아 마시고 난 후 아주 잠깐 혼자 있을 시간이 생겼다.


홀로 침상에 앉아 있으니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이 떠올랐다.


아주 아름답게 춤을 추던 그녀의 그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 안에서 생생히 되살아 났다.


내관이 볼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내가 말한 적 있던가?”


“무엇을 말입니까?”


“그 사람을 처음 만난 날의 일을..”


“소인에게는 하신 적 없습니다.”


“방금 그 날의 일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히 되살아 나더구나.”


“그러십니까?”


“들어 보지 않겠느냐?”


“예.. 하십시오. 들어드리겠습니다.”




내관은 침상의 이불을 정리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주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느냐?”


“괜찮습니다. 소인이 하는 일이 폐하를 모시는 일이니.. 무슨 얘기든 다 듣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 옛 일들을 떠올리며 내관에게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긴.. 이야기를..






==========================================


예전에 단편 형식으로 올렸던 것에 뒷내용 좀 더 추가했음..


안 올릴라고 했는데..


이렇게 또 일을 벌려놨네..


내용이 길어질지 짧게 끝날지는 미지수임..


연재도 글 쓸때마다 그때그때 올릴 예정이라 연재 텀이 길어질지도 모르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하겠음..


막 1년에 한편 올리고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게..







추천 비추천

10

고정닉 3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공지 시크릿가든 갤러리 통합공지 Ver.2 [1136] 심금을웃기고있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3.27 18608 42
공지 시크릿가든 갤러리 통합공지 Ver.1 [1124] 곶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1.23 37050 16
공지 시크릿 가든 갤러리 이용 안내 [627] 운영자 10.11.17 21427 1
363950 [디데이알림봇]싴첫방4900일 [1]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2 40 0
363938 [디데이알림봇]싴막방4800일 [1]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7 63 0
363937 중학교때 본방보고 20살때 한번더보고 지금 29에 문득 ㅇㅇ(118.235) 02.19 94 0
363936 첨봄 시갤러(182.225) 02.12 70 0
363935 [디데이알림봇]싴막방 13주년 [3]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6 100 1
363934 얘들아 왓챠에 시가 자막 생겼다 [1] 시갤러(122.44) 01.04 138 0
363933 2024년 [1]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1 131 0
363931 12년만에 정주행 했는데 [6] ㅇㅇ(122.34) 23.12.15 175 2
363930 시크릿가든 현빈 집 설정상 어디위치임? 서울근교임? [2] ㅇㅇ(39.114) 23.12.09 306 0
363929 근데 문분홍여사는 왜 은인딸을 박대함? 시갤러(175.119) 23.12.01 133 1
363928 [디데이알림봇]싴막방4700일 [1]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28 89 0
363927 나 17회 18회 보면서 몇번을 울었는지 시갤러(121.88) 23.11.26 122 0
363926 웨이브에서 다시보기 [2] 시갤러(121.88) 23.11.25 124 0
363925 싴첫방일 다가오면 [4]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24 131 0
363924 시크릿가든 만큼 설레는 드라마는 없을듯 [2] ㅇㅇ(218.150) 23.11.21 207 4
363922 시크릿가든13주년 시갤러(175.118) 23.11.14 124 2
363921 [디데이알림봇]싴첫방13주년 [1]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13 120 3
363920 11월 13일이 첫방 기념일이지만, 오늘이 토요일이라 첫방기념일 같네요 심씨네 동물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11 90 4
363918 다들 라임이랑 주원이가 왜 비가 오면 몸이 바뀌는지 아시나요? [1] 시갤러(122.44) 23.10.25 218 1
363917 또 시크릿가든이 생각나는 그 계절이 온다.. 시갤러(122.44) 23.10.25 99 3
363915 눈물자리는 언제들어도 좋네 [1] ㅇㅇ(211.193) 23.10.13 160 0
363899 김사랑 연기 이종석 노래처부르는거때매 못보겠다 [3] 시갤러(125.180) 23.09.17 289 0
363898 오랜만에 정주행드간다.. 시갤러(183.109) 23.08.22 116 0
363896 문득 술병처럼 찾아오는데 이건 내가 술 마셔서야? ㄴㅇㅇ(58.122) 23.06.09 206 0
363895 시크릿가든은 진짜 명작이야ㅜㅜㅜ ㅇㅇ(117.111) 23.05.28 233 5
363894 많은 로코를 봤지만 사랑에 빠지는건 이 드라마가 최고임 [2] ㅇㅇ(175.223) 23.05.22 432 7
363889 정주행 [1] ㅇㅇ(223.38) 23.04.23 222 1
363888 요정할머니 오스카 ㅇㅇ(118.235) 23.04.16 211 0
363887 최애가 바뀌려고 하는 중.. ㅇㅇ(118.235) 23.04.15 315 0
363884 엔손 ㅇㅇ(175.223) 23.03.30 202 0
363880 12년을 한결같이 사랑한 드라마..♡ [1] 수빙(220.88) 23.01.18 424 15
363879 22년 겨울도 책임져줘서 고마워 23년에 12월에 다시보자 ㅇㅇ(1.230) 23.01.13 313 9
363878 그... 그 짤 있는 사람...ㅜㅜ [1] ㅇㅇ(223.62) 23.01.12 459 0
363877 내가 젤사랑한들마 [1] 아무게(106.101) 22.12.29 401 5
363875 겨울이 되니 생각나서 와봄.. ㅇㅇ(218.145) 22.11.28 305 2
363873 그래도 와라...내일도...모레도 [3] ㅇㅇ(114.204) 22.11.13 1155 65
363872 12주년 그리고 싴갤 [4] 소카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13 616 16
363871 12주년이라며 나의 싴.. [4] m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13 667 20
363870 [디데이알림봇]싴첫방12주년 [3]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13 402 5
363869 여러분 혹시 인디언 썸머를 아십니까? [5] ㅂㄴㅂ(39.125) 22.11.11 619 10
363868 시크릿가든이 곧 12주년이라니.. 수빙(223.38) 22.11.05 287 3
363867 싴갤러들 안녕? [1] GOMDO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0.25 413 5
363858 정주행 완료 ㅇㅇ(1.228) 22.07.04 409 6
363857 시크릿가든 보고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 ㅇㅇ(119.67) 22.06.27 460 7
363850 김사랑 때문에 이거 봤는데 아쉽다 ㅇㅇ(211.193) 22.04.29 773 1
363849 나이거 이번주에 첨보고 오늘마지막회인데 손예진나오네 ㅇㅇ(211.193) 22.04.28 673 0
363848 볼 때 마다 느낌이 다 다르게 느껴짐 ㅇㅇ(175.112) 22.04.28 528 7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