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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이웃집 가이드 - 12

벼와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9.27 05:00:01
조회 1459 추천 61 댓글 17
														

*센티넬버스

 

 

 

 

 

 

 

 

 

 

5일 만에 만난 안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일단 어, 엄마랑 아빠한테 가 봐야 해." 하고 뛰쳐갔을 땐 그러려니 했다. 왜 사라졌던 것인지. 어디서 무얼하다 어떻게 돌아온 것인지. 붙잡아서 자세한 전말을 듣고 싶었지만 말하는 투로 보아 이제 막 돌아온 듯 해서 그냥 가도록 뒀다. 부모님 곁으로 가는 게 최우선이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두 사람 집은 같은 방향이 아닌가. 엘사는 안나와 나란히 걸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5일 전 다툰 것을 사과하고 싶기도 해서 재기진 표정을 지으며 앞서 걷는 안나에게 성큼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지진 않았다. 엘사가 다가가는 만큼 안나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안나는 어느 순간 부터 굉장히 빨리 걷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엘사가 빨리 걷자 아예 달리기 시작했다. 엘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질주하는 것이다. '집이랑 부모님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나봐.' 안나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진 엘사는, 안나의 심정을 헤아려 추격을 멈추고 달려가는 뒷모습을 쳐다봤다. 안나는 '귀가'에 정신이 팔린 가출 소녀 처럼 보였다. 코너를 꺾어 돌며 사라진 안나가 자기 쪽을 슬쩍 흘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 나 피한 거야?'


엘사는 기분이 나빠졌다. 안나가 자신을 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속편히 언짢아하기엔 안나랑 싸웠던 것이 걸렸다. 안나 마음 속에 아직 앙금이 남아 있다면 피할만도 하니 사과하고, 대화해서 풀어 마땅했다. 그런데 또 쫓아가 사과를 하자니 망설여지는 것이다.


'안나가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가출한 것이라면?'


그럼 사과를 하든 대화를 하든 안나에게 다가가는 자체가 깨름칙해진다. 가출이라는 엄청난 비행을 저지를 정도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찾아가서 심란하게 만들어선 안 됐다. 엘사는 안나가 자신을 피한 이유를 고민하면서 자신을 피하는 안나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했다. 앙금 때문일까? 아니면 나를 끊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일까? 고민 하다보니 둘 다 섞인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툼으로 인한 앙금 때문에 나를 끊어내기로 결정한 거지. 그래서 충동적으로 가출을 해버린 것일 수도 있어.' , '물론 나랑 전혀 상관 없는 이유로 가출한 것일 수도 있어. 예를 들어 단순히 부모님하고 다퉜는지도 몰라. 부모님이랑 화해하는 게 급해서 부모님한테 뛰쳐간 걸 수도 있단 말이지.' , '아님 이상한 양아치 같은 애가 같이 가출하자고 꼬득였을 수도 있어. 안나 주변엔 그런 애들 투성이잖아. 그런 애들이랑 놀다보니 나 같이 따분한 애랑 가깝게 지내기 싫어진 것일 수도 있고.' , '또 어쩌면...'
...모르겠어.
엘사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고, 생각한 끝에 생각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 생각해봤자 안나가 자신을 피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동기를 추리해내더라도, 안나 본인 입으로 진상을 듣지 않는 이상 자신의 추리가 맞는지 어떤지 확인할 길도 없어서 적절한 대처가 무엇인지 또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엘사는 안나의 '왜'를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사실 중요한 것은 안나가 자신을 피한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날 피하다니.'


엘사는 자신을 피한 안나가 섭섭해 죽을 지경이었다. 또 그런 스스로가 심각할정도로 미성숙하게 느껴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수치스러웠다. 철딱서니 없는 것 같았다.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가출이던, 납치던, 안나는 5일간 사라졌다가 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귀환을 기뻐하며 반겨주지는 못할 망정 자길 좀 피한 것 하나 가지고 이렇게 섭섭해하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랬다. 엘사는 사실, 안나가 자길 보고 반가워해주기를 바랐다. 왜 사라졌던 것인지, 어디로, 어떻게 사라져서 돌아온 것인지 모두 설명해주길 바랐다. 안나가 안나의 부모님 보다, 자기한테 맨 먼저 정황을 털어놓길 바랐다! 하지만 이런 망측한 바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건 친구가 아니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에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겨야하는 관계는 가족과의 관계, 그 중에서도 부모님과의 관계였다. 부모님이 천에 없는 몹쓸 인간이 아닌 이상 친구, 지인과의 관계는 부모님과의 관계보다 경시 되는 것이 맞다.
귀중히 여겨야 하는 관계일 수록 아래 쪽에. 등한시 여겨도 되는 관계일 수록 맨 위로 두고, 쏟아야하는 관심과 정성을 넓이로 표현해 하나의 도형 그래프를 만들면 피라미드 모양이 될 것이다. 맨 아래 쪽엔 세상에 둘 뿐인 부모님. 그 보다 좁은 윗층엔 형제나 자매. 그리고 그 위엔 사촌과 친구. 그 위엔 그저 그런 관계의 지인. 맨 꼭대기 층에는 지천에 널려 스쳐 지나가지도 않는 사람들이 위치하는 것이다.
이 서열 그래프에 아래에서 부터 층수를 매겨보자면, 엘사는 안나에게 있어 3층이나 4층 짜리 인간으로, 안나가 자신에게 보여야하는 정성의 넓이는 1층에 계신 부모님 쪽 넓이 값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돌아온 안나가 1층에 계신 부모님 곁으로 맨 먼저 달려가는 것은 응당한 행동이다. 그래서 안나를 보내준 것인데.
섭섭해하다니.
안나가 자길 내팽개치고 부모님 곁으로 달려간 것을 섭섭해하다니! 이 섭섭함을 인정하면 안됐다. 이 섭섭함을 인정하면, 안나에게 1층 짜리 인간으로 취급 받고 싶다는 것과도 같았다. 어쩌면 1층에 계신 안나네 부모님보다도 더 귀한 사람 취급을 받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난 아직도 안나가 날 좋아해주길 바라고 있는 거야.'


안나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단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꾸준히 외면해 왔던 감정과 또 다시 마주해야한다. 안나를 향한 사랑말이다. 엘사는 안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안나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꽤 오래된 감정이고, 바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미련할 수가 있지.'


하지만 엘사는 그 감정을 덮어왔다. 안나에 대한 사랑을 오롯하게 인정하고 안나와 사랑을 나누기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걸리는 것은 바로 안나에게 사랑할만한 점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안나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 안나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단 말인가. 안나의 그저그런 외모? 그저그런 재력? 그저그렇지 못한 지능? 설마, 도덕성? 그건 앞서 말한 안나의 요소중에서도 가장 후달리는 것이었다. 외모, 옷 입는 스타일로 사람을 헐뜯고 남의 실수에 까르르 넘어가는 안나는 전혀 선하지 않다! 그럼 나는 왜 안나를 좋아하는 걸까. 존경할 점이라곤 하나 없는 안나의 무엇을, 어떻게, 왜 사랑하는 것일까.


아마 스킨십 때문인 것 같다. 엘사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스킨십이 주는 쾌락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실존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것이다. 그 이중적인 신비함을 견주어 봤을 때 스킨십은 굉장히 값진 것임이 틀림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스킨십의 나누는 것일 것이며, 연인이 아닌 사람과 스킨십 하는 것을 망측하게 보는 풍토가 생긴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 값지고 신비한 것을 안나와 나누었고,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안나와의 스킨십이 주는 이상야릇한 쾌락이 안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안나도 마찬가지야.'


이러한 원리를 '안나의 순정'에 적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엘사 자신에게도 안나가 좋아할만한 점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얼굴에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안나가 자신의 얼굴 하나에 홀려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너무 과한 생각 같았다. 안나가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엘사 생각엔 자신의 용모가, 남자친구도 사귀어 본 이성애자가 동성애를 저지르게(?)할 만큼 아름답진 않은 것 같았다. 지능. 지능에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안나는 그런 것에 존경심이나 경외감을 가질만한 사람이 아니다. 안나의 성적, 안나와 그의 가까운 친구들이 매우 가벼운 자세로 공부에 임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안나는 대체 나의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투철한 준법정신과 높은 윤리의식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건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안나에겐 쾌락을 위해서라면 비윤리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고 저질러버리는 저속한 면이 있다. 안나가 여지껏 까재낀 '남의 얼굴'을 세어보자면 열 손가락은 물론, 열 발가락을 보태도 부족할 것이다. 손 발을 합쳐 스무 가락을 제곱한 수도 '안나가 까내린 얼굴 수'엔 못 미칠 것이다. 걸핏하면 남의 얼굴을 보며 저 사람은 이럴 것이다, 또 남의 옷 차림을 보며 저럴 것이다 소곤대는데 정말 견뎌주기 힘든 점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안나는 그의 친구 크리스토프에게 중세시대 얼음장수 같다고도 말했다! 이런 얼굴로 살아야지,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패션 같은 미적 요소에 절대 기준은 또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얼굴 생김을 갖고, 옷차림을 갖고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을 재다니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잣대를 갖고 사람을 평가질하는 안나가 나처럼 도덕적인 인물을 좋아할리 없다. 좋아하지 않기만 하면 망정이지. 엘사는 안나가 그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가서 '엘사 언니는 생긴 것에 비해 너무 따분하고 지루해.' 하고 뒷다마를 깔 지도 몰라 두려움에 치를 떨었던 세월이 새삼 지난하게 느껴졌다. 나랑 너무도 다른 안나가 나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을 이유는 없어. 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안나도 스킨십이 주는 쾌락과 나에 대한 호감을 구별하지 못하는 거야.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해서 나한테 고백한 거지.'


여성 둘이서 이토록 변태적인 이유로 서로를 원하고 있다니. 비참한 일이었다. 물론 현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두사람의 변태적 공통점이 레즈비언 관계라는 한가지 결말로 운명을 몰아가고 있다면 잘된 것일 수도 있다.


엘사가 스킨십 때문에 안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알고보니, 안나도 스킨십 때문에 엘사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이유로 서로를 좋아하다니(착각이라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고), 이런 축복이 어딨단 말인가. 어쩌면 두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찰떡궁합일 수 있다. 육체적 쾌락 때문에 사랑이 시작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육체적 쾌락을 줄 수 있는 사람 (심지어 물건)은 지천에 널렸다. 시작점을 육체적 쾌락으로 두고 있는 사랑의 영속성은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것으로, 엘사나 안나에게 상대방이 줄 수 있는 성적쾌락 보다 훨씬 더 짜릿한 쾌락을 줄 수 있는 절륜한 사람(혹은 물건)이 나타나면 사랑이 흔들릴 위험이 컸다.


여기에 안나의 근본 없는 저돌성과 낙관성도 문제였다. 사랑은 숭고한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 거다. 특히 동성간의 사랑이라면 더더욱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동성애자는 아직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 그런 지탄에서부터 자유로우려면 동성애자가 대다수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야할 것이다. 따라서 동성간에 사랑을 나누려면 뛰어난 경제능력과 도덕성, 타인의 비난에 아랑곳 않을만큼 튼튼한 정신력을 가져야한다.


그런데 엘사 눈엔 안나가 동성애 관계를 감당할만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며칠만 안나랑 지내봐도 안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인생에 계획은 커녕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이는 안나는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독특한 재능이 있냐면, 또한 아니다. 안나의 도덕지수는 말할 것도 없이 낮으며, 타인의 비난에 아랑곳 않을만큼 튼튼한 정신력을 가졌냐면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안나가 얼마나 변덕이 심하고 위기를 못견뎌 하는지 이번 반년 동안 안나의 곁에 붙어있었던 엘사는 확언할 수 있다. 안나라는 개인 자체는 몹시 괄괄하고 당차지만, 이 사회를 나기에는 무척이나 나약한 인물이라고.


아무런 계획 없이 사는 안나와의 사랑엔 미래가 없다. 엘사의 최종 결론은 이러했다.
파멸이 기다리고 있는 사랑은 그냥 덮는 것이 현명하다. 엘사는 안나를 향한 사랑이나 소유욕이 끓을 때마다 덮고, 또 덮었다. 그러면서도 혹시 안나가 바뀌진 않을까, 좀 더 현실감각이 생기지 않을까, 끈기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지켜봤다. 하지만 고백이 거절당하는 실패를 겪고, 그걸 극복하는 그의 모습은 심히 위태롭고 안타깝기만 했다. 안나를 지켜볼 수록 안나와 사귀어선 안 되겠다는 확신은 커져만 간 것이다.


'이제 그만 생각하자.'


집으로 돌아온 엘사는 공부하기 위해 책을 펼쳐놓고 한 글자도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길 버리 듯 내팽개치고 부모님에게 뛰쳐간 안나에게 느끼는 비상식적 섭섭함 또한 그만 덮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어차피, 시작이 너무 부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자신의 이상한 병과 병을 잠재우는 이상한 능력에 '의리'라는 개념이 끼어들면서 초래된 이상한 사랑이다. 이런 이상한 사랑을 이상할 정도로 철 없는 안나와 품고 가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 결코 가능치 못한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엘사는 노트 모서리를 볼펜 끝으로 툭툭 치는 반복적인 소음에 빠져서, 안나에 대한 모든 감정과 사념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안나를 어떻게 대할지를 고민했다.


'그냥 계속 친구처럼 지내야겠지. 예전 처럼 아무 감정 없이 스킨십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별 감정 없는 것 처럼 같이 다니면서 안나도 내 감정도 정리 될 때 까지 버티고, 버티는 수 밖엔 없어.'


그 때 방 문 밖으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엘사는 볼펜을 놓고 얼른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아빠였다.
그간 있었던 충돌로 서로에게 무척 물렁해진 두 사람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진정성 있는 안부를 묻고 답했다.


"오늘 일 빨리 끝나셨나봐요. 일찍 오셨어요."
"응, 넌 뭐하고 있었냐?"
"...공부하고 있었어요."


엘사는 유도리를 발휘해 '공부'와 '하고' 사이에 '하는 시늉'이라는 말은 생략해서 대답했다.


"네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결과는 노력하는 만큼 나오는 거니까."
"아니요, 별로...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


아빠가 빙빙 둘러 엘사의 성적을 칭찬했고 머슥해진 엘사는 수줍고도 차가운 말투로 겸손을 떨었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라. 미래는 네가 노력한만큼 보답해줄 거야."

 

 

 

 

 

 

 

 

 

 

2
노력.
아빠와 대화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성실한 인물인지 새삼 깨달은 엘사는 격양됐다. 안나랑 사귀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답은 웃음이 나올만큼 간단했다.
뛰어난 레즈비언이 되기 위해 안나와 함께 노력해가면 되는 것이다! 노력에는 자신이 있다. 노력에는 보답 받지 못한 적이 없었다. 의지박약인 안나가 세상의 풍파에 흔들려 엇나가는 레즈비언이 되더라도 내가 노력하면 바로 잡을 수 있을거야. 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력, 인내, 근면, 성실 따위는 엘사가 가진 무수하고도 뛰어난 요소중에서도 가장 고품질이었다.


엘사는 더 이상 안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덮어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들떠서 안나랑 사랑을 나누는 동안 닥칠 다양한 위기와 역경을 상상해 보고 어떤 형태의 노력으로 이겨내야할지 방법을 모색했다. 어지간한 고난은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딱 한가지 위기에는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바로 자신에 대한 안나의 사랑이 식는 것. 엘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위기로, 위기라기 보단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안나가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안나의 마음이 식는 것.
덜컥 겁이 났다. 이제 감춤 없이 좋아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는데 안나 쪽에서 감정이 식어버렸으면 안나와의 사랑은 시작도 못 해보고 결말을 맞는 것이다.


'안나는 더 이상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


엘사는 안나가 자신을 피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제 막 싹튼 사랑이지만 언제건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몇 일 있다 물어봐야지, 너 아직 나 좋아하냐고. 아니다, 내일 물어 볼까? 아냐.'


지금 당장 물어보자, 하며 양손으로 움켜 쥔 휴대폰과 진부한 씨름질을 몇 분.
벨이 울렸다. 안나였다. 안나에게 연락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안나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이건 뭔가 잘풀릴 징조가 아닐까. 흥분한 마음으로 나눈 통화는 짧았고 내용은 간단했다. 아파트 근처 놀이터로 나와 달라는 것이다. 전화를 끊은 엘사는 얇은 외투를 걸치고, 다소 빠른 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와 아파트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전에 고백했을 때도 놀이터로 나와 달랬는데.'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데자뷰에 빠진 엘사는 혹시 이번에도 비슷한 이유로 부르는 것은 아닐까, 민망한 기대를 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언닐 좋아해.' 뭐 이런 류의 저돌적인 재고백을 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말이다. 그럼 정말 해피엔딩인데. 평소 앞 뒤 안보고 저지르는 안나의 행보는 그런 기대심을 더욱 부풀렸다.


'기대하지 말자.'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엘사는 옷가짐을 정리하고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갔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고,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서있는 안나가 길쭉한 타원형 모양의 점처럼 보였다. 점은 가까이 다가갈 수록 사람형상이, 안나 형상이 되어갔고 그 형상의 구체성은 엘사의 심박수와 입꼬리가 올라가게 했다.


"오랜만이야."


엘사는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밝은 인사를 건넸다.


"아까도 봤는데 뭐가 오랜만이야."


안나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게 뭐 본거야. 이게 제대로 보는 거지."


엘사는 안나의 표정과 목소리가 몹시 귀엽고 섹시하게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긴장해버렸다. 날 대체 왜 부른 걸까. 어떤 말을 하려고 부른 걸까. 왜 가출 했던 것인지 얘기할 셈인가? 아니면,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도 난 언니가 좋아! 하고 고백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이제 보지 말자. 그 말 하려고 불렀어."


...그렇구나, 나한테 식었구나.
이상야릇한 긴장 상태로 기대 중이던 엘사에게 꽂힌 말은 너무 아픈 것이었다. 엘사는 당황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았다. 예상했던 일이다. 원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냥 친구로 지내고 싶어서 여태껏 안나를 밀어냈으니까. 그 속사정이야 어쨌건, 쭈욱 밀쳐진 안나의 마음이 식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수능과 연애를 병행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노력할 분야가 둘에서 하나로 줄었으니 잘된 일이 맞았다. 잘 된일이 아니더라도, 보지 말자는 말에 수긍 말고는 달리 할 반응이 없다. 안나도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안나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지만 존중해주는 게 맞다. 알았어, 잘 지내. 인사한 뒤 집으로 돌아가야겠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만 보자'고 결정하게 된 이유를 들어 두면, 앞으로 사회를 나는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들어 내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지독한 단점 때문에 절교선언을 들은 것이라면? 그 단점이 무엇인지 자세히 물어 고쳐 마땅했다.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유로 나에게서 멀어지려는 것일 수도 있어.'


안나가 가출했던 동안 만난, 어떤 무서운 사람이 '옆집 사는 애랑 알고 지내면 죽여버리겠다며' 안나를 협박 했을 수도 있다. 좀 황당무계한 생각이긴 하지만, 엘사는 자기 병 보다야 '협박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좀 더 현실적인 것 같았다. 안나가 이 같은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위험으로 부터 안나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의향이 있었던 엘사는 복합적인 목적을 갖고 '절교해야만 하는 이유'를 물었다.


"왜?"
"몰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냥 그게 나을 것 같아서."


물론 절교 선언을 들은 이유를 알고 싶다는 목적은 지극히 부가적인 것으로 엘사는 안나에 대한 미련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래서 물었다. 절교를 선언한 이유조차 듣지 못한다면 몸서리 쳐질정도로 아쉬울 것 같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안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그럼 난 어떡하라고."


안나에겐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줄곧 병을 들먹이며 우정을 강요했던 것은, 안나가 의리를 중요히 여기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은 그야말로 핑계였다. 엘사는 그냥 안나를 곁에 두고 싶었다. 현실적인 조건이 불충되서 안나와 연인이 될 수 없다면 가장 가까운 친구라도 되고 싶었다.
엘사는 음습했던 짝사랑을 떠올리면서 안나 몰래 한숨을 쉬었다. '안나는 이런 내 마음을 절대로 모를 거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예상했던 대답을 들은 엘사는 작게 절망했다. 되돌리자니, 지난 시간을 너무 비틀어 버린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개인 A가 그의 지인 B에게 절교를 '선언'씩이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에겐 인정이라는 것이 있고, 사람은 그 인정을 외면할 만큼 차갑지 않다. A가 단순히 싫은 감정으로 B와 멀어지고 싶다면 말 없이 멀어지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A가 굳이 '절교선언'을 선택했다면. A에겐 B를 완강히 쳐내야만 하는, 어떤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A안나에게 절교를 선언 받은 B엘사는 A안나의 결정을 존중해 기꺼이 사라져서 도리를 다해야 했다. 한 때 가까웠던 사람으로 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자, 마지막 선물로서 말이다.
엘사는 이 아름다운 도리를 거슬러서 안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전했다. '평소 지극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엘사가 어떤 도리를 거슬러서라도 안나를 붙잡고 싶어해. 그만큼 너를 좋아해.' 이런 의미였다. 거의 발악이였다. 안타깝게도 안나는 엘사의 속 뜻을 전혀 알아 채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안나의 차가운 목소리에서 작위성을 감지한 엘사는 안나가 자신을 밀어내려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고, 희망을 품었다.


"왜 모르기만 해. 말하기 싫어서 그래?"
"...그건 아닌데."


그건 아닌데, 라고.
A안나가 B엘사에게 절교를 선언하긴 했지만 B엘사와 대화가 하기 싫은 것은 아니라고? 엘사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영혼의 무릎을 탁, 쳤다. '안나는 적어도 내가 싫어져서 절교 선언을 한 건 아닌거야. 아직 날 향한 사랑이 식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대체 무슨 이유로 날 밀어내려 하는 것일까.


"나 때문에 학교 빠지고, 집 나가고 그런 거야?"
"아니, 아니야. 아니다, 맞나? 모르겠어."


혹시, 설마. 하는 마음에 했던 질문은 안나가 몹시 우스꽝스러운 얼굴과 목소리로 버벅거리게 만들었다. 엘사가 익히 알고 있던 안나의 전형이었다. 정곡을 찔리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안나 벨벳 그 자체였다! 엘사는 기뻐서 몸서리를 치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했다.
'안나는 사실 나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는데도 날 밀어내려는 거야. 우리 관계에 어떤 긍정적인 낌새가 보이질 않으니 마음을 접기로 한 거지. 철 없어 보이는 안나를 지켜 보던 내가 계속되는 실망감 때문에 마음을 접어버렸던 것 처럼!'
물론 이것은 추측에 불과했지만 엘사 생각엔, 진실 같았다. 안나도 엘사 자신처럼 '사랑하는데도 사랑을 접으려' 하는 것이다. 그 운명적 동일성에서 어떤 기분 좋은 예감을 느낀 엘사는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안나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그 욕구를 가감없이 내지를 적절한 타이밍이 지금인 것 같았다! 엘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상냥함과 아름다움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안나에게 고백할 셈이었다.
그런데 막상 고백을 하려니 몹시 부끄러웠다. 뻣뻣한 몸체가 베베 꼬이고 윗입술은 아랫입술은 자석의 S,N극이 되어 흡착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적절한 멘트는 떠오르지 않았고 엘사는 점점 경직되어 갔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널 좋아해? 너랑 사귀고 싶어? 사실 내가 널 좋아했었어? 사랑해?'
머릿속을 지나가는 말들이야 많았지만 다 너무 진부하고 직설적인 뉘앙스라 입을 떼서 발음하는 상상만으로 낯부끄러워진 엘사는 사귀자느니, 사랑한다느니 하는 것 보다 안나한테, 안나에 관해, 안나에 의해 가졌던 감정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가장 담백하고 괜찮은 고백같다고 생각했다.


"...우리 싸웠었잖아."
"응."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네가 내 전화도 안받고, 나와있지도 않아서 나랑 영영 안 보자는 건 줄 알았거든."
"응..."


엘사는 안나가 악의적으로 자신을 바람 맞힌 것일까봐 겁났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그 때의 히스테릭하고 우울했던 아침을 상기했다.


"근데 알고보니 가출한 것이더라고. 그래서..."


이어서 안나가 의도적으로 자기 곁을 떠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을 때 느꼈던 안도감과 행복감도 상기했다. 그 때의 감정 변화를 솔직하게 전하면 안나에게 마음이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았어, 처음엔."


물론 자칫하면 '안나 네가 가출해서 정말 속시원했다.'는 괴악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처음엔'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안나의 가출 소식을 듣고 기뻤던 때는 '안나가 나한테 악의를 갖고 바람을 맞힌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아주 짧은 순간 뿐이었다. 그 뒤부터 안나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얼마나 걱정했던가. 하지만 엘사는 굳이 걱정됐다느니 하는 말은 하고싶지 않았다. '내가 널 정말 걱정했다'며 생색내는 것 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뭐?"


그런데 감정 표현을 너무 아낀 것인지 안나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엘사는 안나에 대한 소유욕과 애정을 좀 더 직설적으로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사귀어줘'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짐승 같고 저속한 말처럼 느껴졌다. 안나는 꽤 오래전 부터 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순간이 오기 전에도 안나를 쭉 좋아해왔고 앞으로는 더욱 좋아할 것이다. 때문에 사귀자, 사귀지 말자 하고 선 긋듯이 어떤 지점을 만드는 것은 불필요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지점, 사귐이라는 약속에 관계를 맡기는 것은 안나를 물건이나 트로피 취급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안나에게 소유욕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성, 결속감으로 관계의 순수성을 더럽히고 싶진 않았다. 엘사 생각에 연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마음을 드러내서 서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엘사는 사귀고 싶다는 말 대신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니 단점이 거슬릴 때가 있어. 근데 참았었거든."


그저 친구 관계라면. 상대방의 행동, 버릇, 기호 같은 것들이 내 맘에 들지 않아도 입 댈 권한이 없다.
하지만 연인 관계는 다르다. 상대방의 선택과 행동이 통상적인 도덕과 윤리에 알려주고 지적해 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너도 내가 네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참았을 것 같더라고."
"응, 응, 알아. 우리 진짜 안맞는 거. 그러니까..."
"이제 우리 편견을 지우고 서로를 알아가보자."


엘사는 안나에게 권해보기로 했다.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관계가 되어보자고.


"네가 아직도 날 좋아한다면 만나보자고."

 

 

 

 


3
"어떻게 생각해?"
"왜 내 생각을 물어?"


벨이 마이크 볼륨을 낮추고 궬사에게 물었다. 안나에게 전달되면 곤란한 대화였다. 궬사는 까칠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받아치면서도, 벨을 따라 마이크 볼륨을 낮췄다. 궬사는 벨과 호흡을 맞춰 일한 적이 있다. 본인은 부정하지만, 궬사에겐 그 때의 습관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벨을 못 잡아 먹어 안달인 궬사가 벨과의 대화를 위해 마음을 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벨과는 일 얘기 조차 아끼리라 다짐했던 궬사는 벨의 페이스에 휘말린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저 백금발 여자애가 안나의 센티넬 같아."


궬사의 얹짢아 보이는 대답에 벨이 오! 소릴 내며 까르르 넘어간다.
궬사는 미드 찍는 배우 처럼 과장된 제스쳐로 자길 비웃는 벨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난 저 애가 안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냐고 물은 건데."


너만 일에 집중하고 있기야?
벨이 앞선 질문에 디테일을 추가하며 궬사를 놀렸다. 벨의 얼굴이 연속극을 보며 흥분한 아줌마 같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 챈 궬사는 작은 자극에도 다이내믹한 변화를 보이는 얼굴을 화끈 붉히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관심 없는데."
"설마 저게 고백은 아니겠지?"
"모르지."
"내 생각엔 아무래도 저 애가 안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왜? 여자라서?"
"뭐?"
"여자라서 서로 진정 사랑하는 게 불가능 할 것 같아?"
"아니야. 난 그런데 편견 없어."


궬사는 벨로 인해 불쾌해진 기분을 아낌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어떤 말은 속으로만 했다. '가식적이긴. 아까 안나한테 평범한 건 아니니, 뭐니 해놓고.'


"그럼 무슨 근거로 쟤가 안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데?"
"좋아한다고 말을 안 하잖아."
"그런 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물론이야."


궬사는 벨한테 줬던 시선을 거둔 뒤 다시 스크린 쪽으로 쏟았다. 그리고 속으로 몹시 열정적으로 벨을 헐뜯었다.
사실 궬사는 심술맞은 인상과 달리, 말하지 않더라도 통하는 것이 있다고 믿고 있는 로맨티스트이다. 그리고 그 텔레파시적 교감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시대를 이어주는 진리로서 시간과 함께 흘러가기 때문에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이비 이론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굳이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이유는 많았다.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고, 오그라들고, 사이비적이고... 하여간 이해 받을 수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벨의 의견에는 동의하기 싫었다. 비록 엘사가 안나에게 직접적으로 '좋아한다'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엘사는 안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고 궬사는 생각했다. 궬사 생각에 엘사는 '좋아한다'던지 '사귀자'는 류의 말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엘사는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언 교감의 파급력을. 그래서 직접적인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닐까.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궬사는 엘사가 마음에 들었다. 엘사가 영화를 보듯 관조적인 태도로 관계에 임하는 것 같아 좋았다.


"그래도 저 여자애가 안나의 센티넬인 것 같다는 말에 이견은 없어."


아무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다'에 대한 궬사의 믿음은 무척 굳건했다.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언급 또한 불필요 한 것이다. 궬사는 벨의 말을 무작정 씹으며 친절을 아꼈다. 벨도 딱히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 말 없이 스크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모두 안나가 전송해주는 화상에 집중했다.

 

 

 

 

 

 

 

 

 

────────────────────

담 부터 다시 썰형식일 것임

읽어주는 갤러들 항상 고마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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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설줌... 다음편 쪄올 떄까지 뒤에가서 손들고 있으셈 ㅡㅡ

뻥이고 편하게 의견 써줘ㅋㅋㅋ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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